스포츠
전훈칠
[전훈칠의 맥스MLB] '타격 꼴찌' 시애틀의 위태로운 선두 도전
[전훈칠의 맥스MLB] '타격 꼴찌' 시애틀의 위태로운 선두 도전
입력
2024-07-22 10:18
|
수정 2024-07-22 10:54
경기 기록을 통계학적으로 접근하는 세이버메트릭스를 넘어, 이제는 경기 중 야구공의 움직임을 측정해 의미를 부여하는 스탯캐스트 활용도 일반화됐다. 누구나 웹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공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다음은 특정 구단의 올 시즌 전반기 타격 스탯캐스트 자료이다.
평균 타구 속도 89.5마일 (MLB 전체 5위)
강한 타구 비율 42.5% (MLB 전체 3위)
타구 당 정타 비율 9.2% (MLB 전체 7위)
(편의상 ‘Hard Hit’을 강한 타구로, ‘Barrel’을 정타로 표기.)
스탯캐스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숫자를 보자마자 역동적이고 활발한 타격을 상상할 것이다. 수치상으로는 그렇다. 개별 선수에 대입할 경우, 전반기 평균 타구 속도 89.5마일은 클리블랜드의 호세 라미레스나 볼티모어의 앤서니 산탄데르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두 선수 모두 올해 올스타 멤버다. 강한 타구 비율 42.5%는 샌디에이고의 핵심 타자로 거듭난 주릭슨 프로파와 같다. 타구 당 정타 비율 9.2%를 기록 중인 선수 중에는 워싱턴의 제시 윈커가 눈에 띈다.
그런데 이 수치를 기록한 팀의 현실 타격은 반대다. 경향성에 차이가 있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정반대다. 주인공은 시애틀이다. 스탯캐스트 수치로 상상할 수 있는 풍경과 달리, 시애틀의 전반기 타격은 역동적이거나 활발하기는커녕 역대급 침체였다. 전반기 팀타율이 0.219로 30개 팀 가운데 당당히 30위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더한 OPS는 0.667로 전체 28위, 경기당 팀 득점 3.87도 28위다. 시애틀보다 득점과 OPS가 낮은 팀은 마이애미와 시카고 화이트삭스, 둘 뿐인데 공교롭게 양대 리그 최하위 팀으로 올 시즌 쉬어가는 것이 사실상 양해(?)된 팀들이다.
놀라운 건 최악의 타력을 가진 시애틀이 전반기를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로 마쳤다는 것이다. 야구는 점수를 적게 주고, 많이 내면 이기는 상대성의 경기다. 빈곤한 득점력으로 지구 1위에 올랐다는 건, 결국 실점을 적게 했다는 얘기다.
전반기 시애틀의 경기당 실점은 3.67점. 애틀랜타에 이어 전체 2위에 해당하는 훌륭한 투수력을 과시했다. 특히 선발진이 대단했다. 개막 전부터 메이저리그 파워랭킹 1위로 평가받던 카스티요-길버트-커비의 선발 로테이션은 실제로도 위력적이었다. 선발 투수 평균자책점 3.36으로 필라델피아에 이어 전체 2위. 선발 투수 피안타율(0.223)도 2위였다. 에이스로 성장한 길버트와 볼넷 없기로 소문난 커비 덕에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은 1.04로 30개 팀 가운데 1위였다.
시애틀이 몇 점을 뽑아 이겼는지 살펴보면 극심한 투타 불균형이 설명된다. 시애틀은 전반기에 5점 이상 뽑은 33경기에서 무려 30승 3패의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했다. 보스턴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승률이었다. 하지만 5득점 이상 경기가 33번에 불과한 게 문제였다. 30구단 중 27위일 만큼 드물었다. 4점 이상 얻은 경우에도 39승 9패로 훌륭했지만, 역시 4점 이상 만들어낸 경기수가 전체 24위로 적었다. 평균적인 득점력만 보여줘도 압도적인 투수력 덕에 승승장구할 수 있는 팀인데 현실은 1점에 애를 태우는 것이다.
반대로 실점 기준에서 볼 때, 전반기에 시애틀이 5점 이상 허용한 경기는 총 35경기였다. 횟수 자체는 전체 24위로 많지 않다. 하지만 이들 경기에서 시애틀은 5승 30패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투수진이 5점을 내주면 이미 진 것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4점 이상 실점한 경기도 46회로 타 구단에 비하면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해당 조건에서 11승 35패였다.
타격 침체의 표면적인 원인은 새로 영입한 선수들의 부진이다. 시애틀 타선은 원래 약했다. 작년, 재작년에도 연속 안타나 볼넷을 엮어 점수를 만드는 경우가 희귀했고, 예상치 못한 홈런이 나와야 득점하곤 했다. 타자들도 상황에 맞는 타격 대신 일발장타를 기대하는 스윙으로 일관했다. 삼진은 많고 생산성은 떨어졌다. 구단도 알고 있었다. 제리 디포토 사장은 지난 시즌 딱 1경기 차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뒤, 팀 전력의 가장 큰 문제로 부진한 타선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헛스윙률과 삼진 빈도를 지목했다.
나름대로 대처는 했다. 홈런은 곧잘 때리지만 삼진이 지나치게 많은 타자,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와 에우헤니오 수아레스를 내보냈다. 두 선수는 2023년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200삼진의 불명예를 당한 3명 중 2명이었다. 다만 구단주의 미온적인 태도 탓에 팬들의 갈증을 풀어줄 만한 타자는 영입하지 못했다. ‘로스터 짜맞추기’의 달인으로 통하는 제리 디포토 사장은 걸출한 타자 대신 텍사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던 미치 가버와 올스타 출신 내야수 호르헤 폴랑코를 데려왔다. 두 선수는 단점도 있지만 기대할 부분이 존재했고, 무엇보다 막대한 지출 없이 영입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구차한 설명을 떠나 잘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두 선수는 전반기 내내 재앙에 가까웠다. 폴랑코는 3년 전 33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고, 최소한의 콘택트 능력은 갖춘 선수로 인식됐다. 그런데 전반기 타율 0.197에 홈런은 단 5개. 과거 1년 동안 당할 삼진을 전반기에 미리 쌓은 건 비밀이 아니다. 전성기의 끝물이라고는 해도 이제 30살인 선수가 이 정도로 추락할 줄은 몰랐다. 풀타임 지명 타자로 낙점한 미치 가버 역시 전반기 타율 0.174로 타선 부진에 큰 몫을 담당했다. 가버를 계약할 당시만 해도 소속팀이 없던 J.D. 마르티네스가 얼마 뒤 같은 연봉으로 뉴욕 메츠와 계약하면서 더 비교됐다.
누구보다 애타는 선수는 훌리오 로드리게스다. 켄 그리피 주니어나 에이로드에 비견될 만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기대를 모은 로드리게스. 시애틀 구단의 온갖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우고 최대 12년간 유효한 초장기 계약까지 맺어 팀의 미래로 불리는 선수다. 그간 로드리게스의 유일한 아쉬움은 발동이 늦게 걸린다는 것이었다. 2022년 데뷔 첫해 4월 타율을 0.206으로 시작했는데 그해 9월 타율 0.394를 몰아쳐 시즌 타율을 0.284로 마감했다. 작년도 비슷했다. 그런데 올해는 아무리 땔감을 집어넣어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 중고차를 보는 듯하다. 한 달에 3개 이상의 홈런을 때린 적이 없을 만큼 장타력이 실종돼 전반기 OPS가 0.690에 그쳤다. 중요한 상황에서 더 실망스러웠고, 삼진으로 맥을 자주 끊어 기록상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이 컸다.
이처럼 극단적인 투타 불균형 속에서 지구 1위를 달리는 과정이 쉬울 리 없었다. 경기 초반 대량 득점해 간단히 이긴 경기는 없었다. 선발 투수가 7회, 때론 8회까지 최소 실점으로 버티면, 타자들은 상대 팀 구원 투수가 나올 때쯤 뒤늦게 홈런을 때려 겨우 승리하곤 했다.
로건 길버트의 기록이 그 증거다. 전반기 최다 투구 이닝(132.1)에 선발 투수 가운데 유일하게 0점대 출루허용률(0.87)을 기록하며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는 중이지만, 시즌 전적은 6승 5패로 뭔가 허전하다. 리그 최고 투수 중 한 명인데, 승률은 5할을 겨우 넘고 20경기에서 승패가 기록되지 않은 ‘노 디시전’ 경기가 절반에 가깝다.
실점은 많지 않지만, 경기 내내 1점을 뽑지 못해 괴로워하다 종료 직전 ‘뜬금포’ 한 방으로 승리하는 팀. 그래서 팬들은 올 시즌 시애틀의 경기 양상을 ‘개미지옥’으로 표현하곤 했다. 물론 매번 무실점하지 않는 이상 이런 방식이 통할 리 없다. 상대를 경기 막판 ‘개미지옥’으로 끌어들이는 데 필수 요소인 준수한 불펜진도 시즌이 흘러가면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6월 19일, 10경기 차까지 벌려뒀던 2위 휴스턴과의 간격이 전반기를 마치며 1경기로 급격히 줄었다. 그리고 후반기 첫 경기에서 만난 휴스턴에 치욕에 가까운 경기력으로 패하면서 드디어 1위 자리를 내줬다. 미국 프로스포츠의 공식 기록을 다루는 엘리아스에 따르면, 시애틀은 10경기 차의 리드를 24경기 만에 까먹고 선두를 내줘 이 부문 신기록을 세웠다. (이전 기록 보유팀은 1995년, 10경기 차 리드를 33경기 만에 역전당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였다. 당시 에인절스를 뒤집고 올라간 팀이 공교롭게 시애틀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평균의 스포츠’인 야구에서 시애틀은 자신의 전력에 어울리는 순위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100승 이상을 수확해도 지구 우승을 놓칠 수 있고, 5할을 겨우 넘겨도 정상에 서곤 한다. 2001년 오클랜드는 정규리그 102승을 거두고도 지구 2위였고, 2006년 세인트루이스는 83승 78패로 반타작을 겨우 넘기고도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해냈다. 그만큼 상대팀과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 최근 2년간 번갈아 정상에 오른 휴스턴과 텍사스가 나란히 부진하던 상황이었기에 월드시리즈를 단 한 번도 구경 못 한 시애틀에게는 전반기 흐름이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타격이 사라진 시애틀을 향해 팬들도 기이한 행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훌리오 로드리게스의 부진이 길어지던 시점에, 그가 홈구장 타석에 서면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 응원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실제 일부 관중이 기립박수를 하기도 했다. 순수한 방식의 독려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어린이도 아닌 프로 선수에게 과연 합당한 응원 방식인지 회의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답이 안 보이는 상황이 이어지자 시애틀 홈구장이 타격을 방해한다는 의견마저 제시됐다. 시애틀에서 한 시즌을 뛴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는 올해 올스타전 공식 인터뷰를 통해 시애틀 홈구장에서는 이상하게 타격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 뿐 아니라 팀 동료나 상대팀 선수에게도 비슷한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명확한 이유를 대지는 못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부’ 빌 제임스는 야구에 대해 말하기 위해 통계를 이용하는 것일 뿐, 통계 자체를 말하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의 건강에 대해 말하려고 키, 몸무게부터 심장 박동수와 헤모글로빈 수치를 제시하는 것이지, 각각의 항목을 분석하려고 해당 수치를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고 비유했다. 그래서 스탯캐스트 수치로 시애틀의 팀 상황을 파악하는 것 역시 별 의미가 없다. 평균 배트 스피드 72마일로 메이저리그 전체 4위에 오른 시애틀은, 바로 그 과감한 스윙으로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 전반기에 1,000개의 삼진을 당한 팀이 됐다.
해마다 정상에 도전하는 다양한 선수와 팀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좌충우돌하며 희비가 교차하는 과정 자체가 메이저리그의 본질적인 매력이다. 상대적으로 허약한 타력을 지니고도 월드시리즈에 우승한 팀들이 여럿 회자되지만, 팀타율 꼴찌가 반전을 이뤄낸 사례는 없다.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 다가오면서, 다양한 영입으로 타선의 체질을 바꿔 달라는 요구가 쏟아지지만 정작 디포토 사장은 극적인 트레이드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시애틀의 고구마 같은 경기는 후반기에도 진행 중이다. 휴스턴은 전반기 도중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던 MVP 출신 타자, 호세 어브레유의 남은 연봉 400억 원 이상을 떠안으면서까지 방출한 뒤 급상승세를 탔다. 결국 과감해야 흐름이 바뀔 수 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