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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라이트] '자기혐오의 시간' 극복한 펜싱 박상영‥"다시 할 수 있다"
[스포츠라이트] '자기혐오의 시간' 극복한 펜싱 박상영‥\"다시 할 수 있다\"
입력
2025-11-1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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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1-14 14:16


Q. 요즘 하루, 어떻게 보내세요?
A.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서 러닝하고, 아침 먹고 펜싱 훈련, 점심 먹고 기술 훈련, 저녁 먹고 웨이트하고 그런 식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Q. 국가대표로 훈련하기도 바쁜데 대학원 공부도 하고 있죠? 공부는 언제 해요?
A. 야간 운동 끝나면 2~3시간 하고요. 석사를 처음에 가볍게 생각했는데 운동하면서 병행하기 힘들더라고요. 시합으로 이동할 때 비행기에서 논문 쓰기도 했고요. 그런데 성취감이 있어서 내년에 박사 과정을 밟을 예정입니다.
Q. 왜 대학원을 선택했어요?
A. 처음 말씀드리는 건데 도쿄올림픽 끝나고 불안장애가 왔어요. 지금까지도 약을 먹고 있습니다. 공황 증세도 와서 그 이후에 경기를 뛰는데 그런 증상들이 나오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경기에 심리가 중요하구나, 생각이 들었고 공부를 하다 보면 해소가 되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어요. 언젠가 대표팀 코치도 해보고 싶은데 지도자의 자원으로 활용되면 좋기도 하고요.

Q. 펜싱을 관둬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A. 있었죠. 근데 막상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고 좀 오래 쉬어보고 했는데 더 무기력하고 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내가 펜싱을 좋아하는구나, 계속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Q. 이제 좀 이겨냈을까요?
A. '이겨내야겠다' 보다 '그냥 지금 이런 상태인가 보다, 괜찮아지면 운동해야겠다' 생각해요. 처음에는 펜싱장 들어오는 것도, 칼 잡는 것도 무서웠는데 하다 보니 이어갈 수 있더라고요.
Q.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당혹스럽지 않았어요?
A. 연예인들만 오는 건 줄 알았죠. 막상 이게 오니까, '내가 강한 사람이 아니구나, 계속 버텨내고 있었던 거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인을 찾아서 편해진 것도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요.
Q. 아직 현역 선수여서 공개하는 게 꺼려질 수도 있을 텐데요.
A. 사실 거의 얘기를 안 했어요. 다른 선수들한테 이야기하면 이게 약점이 될 수 있고. 소속팀에선 매년 연봉 협상을 해야 하는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까요. 부모님은 걱정하실 거 같고. 저를 '긍정적이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생각도 했죠. 증상이 심할 때는 좀 감추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냥 이것도 나인가 보다' 싶어요.

Q. 어린 나이에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계속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많았죠?
A. 많았죠. 시작할 때부터 그런 큰 성적을 거두니까. 그다음에 아무리 잘해도 그거보다 아래인 거예요. 거기서 오는 '불만족감'이 선수 생활 내내 저를 괴롭혔던 거 같아요. 시간이 흘러가면서 저는 조금 떨어지는데 친구들은 아직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뭔가 잘못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면서 저를 혐오하는 시간을 좀 가졌던 거 같아요.
[만으로 18살인 2014년에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된 박상영은 그해 아시안게임과 아시아선수권 단체전 금메달, 세계선수권 단체전 은메달, 그랑프리 우승 2회를 달성했다. 세계 랭킹은 3위였다.]
Q. 리우올림픽 이후에 '긍정의 아이콘'이 되면서, 이겨내야 한다는 시선도 느꼈을 거 같아요.
A. 네. 그런 시선 때문에 '나는 이렇게 해야 돼, 이런 사람이 돼야 돼'라는 그런 정체성을 저한테 좀 주는 느낌이었죠. 쉬고 싶을 때는 쉬어도 되는데 '나는 계속 꾸준하고 성실하게 해야 되고 이런 걸 무조건 이겨내야 되는 사람'이라고 마침표를 찍어버리니까. 더 힘들어져 있는 그런 상황이었죠.
Q. 도쿄 올림픽 이후에 성적이 좋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잊혀지기도 했는데요.
A. 예전에는 그런 거에 조금 집착을 했거든요. 빨리 좋은 성적 내서 더 이렇게 스펙을 쌓고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고 이런 게 있었는데 더 안 되더라고요. 혐오하는 시간을 가졌던 이유 중 하나가 그거였던 거 같아요. 이제는 그런 걸 신경 안 쓰기로 했습니다.

Q. 지금도 리우 올림픽 결승 영상 찾아보세요?
A. 많이 보죠. '할 수 있다' 그 부분은 안 보고요. 어떤 게 강점이었을까를 보려고 해요. 어떻게 보면 제일 검증된 플레이잖아요. 무모하긴 한데 단순한 강력함이 있어요. 도쿄 올림픽 이후에 슬럼프가 왔을 때 약점을 보완하려고 하니까 제 특유의 색깔이 없어지는 거 같아서 그래서 지금은 강점, 득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불필요한 정보를 배제하면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을까요?
Q. 그럼 그 당시 박상영이 외친 '할 수 있다'도 잘하는 걸 잘하자는 의미로 볼 수 있겠네요.
A. 그렇죠. 예전에 유럽의 어느 대가가 '펜싱은 단순함에서 시작해서 복잡함으로 갔다가 다시 단순함으로 오는 것'이라고 했어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했는데 넓게 보니까 맞아요. 그냥 찌를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찔리는 거에 그렇게 의미를 두지 않고 이렇게 좀 해야 될 거 같아요.
Q. 올해 목표도 정했어요?
A. 앞에서 했던 말과 다르긴 한데, 목표는 목표니까. 아시안게임이든 세계선수권이든 금메달이 목표입니다. 개인전 금메달도 좋은데 단체전 금메달이 더 따고 싶어요. 단체전 금메달을 딴다는 건 팀 경기력이 좋아졌다는 의미니까요. 내년이 남자 에페가 다시 빛을 발하는 시간이 아닐까.

Q. 내년에 시작할 박사 과정에선 뭘 공부할 건가요?
A. 경기력이 우수한 선수 중에 트라우마를 겪고 재기에 성공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차이를 알아가 보고 싶어요. 한 번에 될까 싶지만 일단 그게 목표입니다. <박사 논문도 할 수 있다?> 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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