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8년간 수출 통계가 심각하게 부풀려지기 한참 전부터 한국은행, 그것도 같은 경제통계국내의 다른 팀에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수출 통계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나서 취재를 하던 중 내부 문건을 입수했는데요. 이 문서에는 왜 이런 방식으로 국가통계를 개편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근거가 조목조목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문제제기는 묵살됐고, 이후 한국은행의 수출 통계의 오류는 점점 커졌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단독] 내부에서도 문제제기 있었지만 '네 탓'하다 묵살
1) GDP 담당 부서의 강한 반대에도 '강행'
이 내부문서의 제목은 ‘해외건설에 대한 국제수지 계상방식 검토’입니다. 2010년 11월에 작성된 건데요. 지출국민소득팀, GDP 통계 생산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국제수지를 만드는 부서와 함께 '경제통계국'에 속해 있습니다.
이 문서 바로 첫 장부터 '건설 서비스의 계상 기준이 대치된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GDP팀 의견이 더 국제기준에 합당한 데 BoP팀이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면 GDP와 BoP는 상이한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썼습니다.
사실 한국은행이 작성한 문서에서 이 정도의 표현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저도 한국은행을 출입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단정적인 표현을 쓰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 '니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 하지만, 이쪽으로 생각해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식의 우회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실제 취재 결과 이런 내부 문제제기 이후 양 팀이 이른바 '조정회의'를 수차례 거쳤지만 갈등만을 확인한 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단독] 8년간 부풀려진 수출 통계…의도는?
특히 지난 2017년에는 한국은행 통계자료를 모두 일치시키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와 두 팀이 다시 테이블에 앉았지만 "우리는 못 바꾸니까 너희 팀이 바꾸라"면서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 무리한 개정…왜 그랬을까?
한국은행은 통계의 기준을 바꾸는데 매우 보수적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 경제통계를 생산하는 최고 권위의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이 잘못된 결과를 생산한다면, 그 결과물이 국내외에 그대로 공표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주요 정책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한 마디로 ‘경제통계의 최후의 보루’인 셈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 국제수지 통계에서 BPM6를 개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만은 한국은행답지 못한 태도를 보입니다.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이 2014년을 기점으로 새 기준을 도입하는데, 우리나라는 2010년에 호주 등에 이어 세 번째로 적용합니다. 일본도 3년 뒤에나 적용하는데 말이죠. 또 경제통계국 내에서 극심한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 기준 적용을 강행합니다. 그러면 다른 나라는 어떻게 적용하나, 보는 게 순서일 텐데 그런 과정도 아예 생략돼 있습니다. 한국은행답지 못한 대응입니다. 당연히 그 ‘의도’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3) 부풀려진 수출 통계…누구한테 이득인가
앞에서도 여러 번 강조했지만 수출 통계가 잘못된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실제 우리의 해외건설 실적이 좋지 않은데 '아! 우리 수출 잘 나가고 있구나'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실제 이 통계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 2010년, 그러니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서서히 회복해 나가고 있던 때입니다. 과연 어느 나라가 이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날 것인지, ‘대외적인 성과’가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경제수치를 조금이라도 좋게, '장밋빛'으로 보이려는 정부의 입김이 반영됐다면 정말 큰 문제일 겁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경제연구실장인 주 원 박사는 "적자폭을 인위적으로 줄여놓은 그런 통계를 가지고 경제를 바라봤다면, 그것은 민간이나 정부에게도 상당히 왜곡된 방향의 연구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MBC가 입수한 내부문건에서 볼 수 있듯이 내부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않은 기준 적용을 강행했고, 왜 지난 8년간 이 통계수치들이 계속 왜곡돼 왔는지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4) '제보자 색출'에만 열 올리는 한국은행
최초 보도 이후 한국은행의 대응은 그야말로 실망스러웠습니다. 뭐가 잘못됐는지는 따져볼 생각도 하지 않고 '문제없다'는 해명자료만 냈습니다. 제가 추가 취재를 통해 팩트를 확인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해명자료를 낸 이후가 더 가관이었습니다. 한국은행은 내부문건을 누가 유출했는지를 색출하기 시작했습니다.
BPM6의 개정 과정에서 아무 문제가 없고, 단순히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던 거라면, 이렇게 대대적인 색출작업을 했을까요? 저는 한국은행의 통계 오류보다 이 부분이 더 놀라웠습니다. 경제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한국은행이라면 뭐가 문제인지 확인해보고, 문제가 있는 것이 맞다면 오류를 바로잡으면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OECD 36개국의 BPM6 이행시점 상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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