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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남형석

[뉴스인사이트] '설국열차 아파트?' 생존까지 차별해야 했을까

[뉴스인사이트] '설국열차 아파트?' 생존까지 차별해야 했을까
입력 2019-08-05 17:11 | 수정 2019-12-3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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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설국열차 아파트?' 생존까지 차별해야 했을까
    10층과 11층이 이어지지 않은 아파트가 있습니다. 승강기로도, 계단으로도 올라갈 수 없지요. 심지어 불이 나도 10층 아래에 사는 주민들은 옥상으로 대피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왜 이런 기형적인 구조의 건물이 탄생한 걸까요?

    ‘완벽하게 분리되어 살기’를 선언한 아파트, ‘메세나폴리스’로 가보겠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설국열차 아파트?' 생존까지 차별해야 했을까

    왼쪽 승강기는 임대세대용, 오른쪽은 일반분양 세대용

    메세나폴리스는 서울 마포구의 대표적인 주상복합 아파트입니다. 2007년 공사가 시작됐고, 2012년부터 입주를 시작했지요. 3개의 동이 있는데, 저희는 103동에 들어가봤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양 갈래 길이 나오더군요. 입구가 멀어서 나눠놓은 아파트는 많이 봤지만, 코 앞에 있는 1층 현관을 굳이 양쪽으로 갈라놓고 차단문으로 막은 곳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른쪽 입구로 들어가 승강기를 타봤습니다. 29층짜리 아파트인데 승강기 버튼은 10층까지만 있더군요. 반대편 입구로 들어가보니 정반대였습니다. 그쪽 승강기는 11층부터 29층까지만 갈 수 있었지요.
    [뉴스인사이트] '설국열차 아파트?' 생존까지 차별해야 했을까
    왜 그럴까요? 알고 보니 임대 세대와 일반분양 세대를 구분해 놓기 위해서였습니다. 4~10층까지는 임대, 11층부터는 일반분양 세대였지요. 굳이 승강기 버튼까지 없애놓은 걸 보면 주민들끼리 교류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보였습니다.

    임대세대 주민 몇 분에게 물어봤습니다. 불쾌하진 않냐고요. 한 어르신은 “이것도 황송하게 생각하며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주민은 “서로 좀 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몇몇 에피소드를 털어놨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설국열차 아파트?' 생존까지 차별해야 했을까
    “몇 년 전에 주민 카페가 하나 생긴 적이 있어요. 너무 더운 날이어서 음료를 사먹으려고 커피를 한 잔 사려고 갔더니 몇 동 몇 호시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몇 동 몇 홉니다, 그랬더니 ‘임대에 계신 분은 판매가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제 돈 내고도 출입이 금지됐다는 겁니다. 심지어 입주할 때는 세대 당 주차가능한 차량이 ‘0.5대’였다고 합니다. 임대 주민은 두 세대에서 1대씩만 주차를 허용했다는 거죠. 차를 반으로 자를 수도 없는데요. 지금은 임대 주민 대표를 뽑아 문제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같이 살지만 완벽히 분리된 사람들. 사실 이 정도만 취재하고 다른 아파트로 넘어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민의 얘기를 듣고 우연히 비상계단에 들어가보면서 얘기는 달라졌습니다. 단지 ‘단절됐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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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층 비상계단. 11층으로 가는 계단이 없고 천장으로 막혀 있다.

    그곳은 임대 세대만 따로 쓰는 비상계단이었습니다. 올라가보니 10층에서 천장이 막혀있더군요. 옥상으로 향하지 않는 비상계단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쉽게 말해 아래층에서 불이 나면, 임대 주민들은 비상구를 따라 위로 대피했다가는 막다른 길에 이르게 된다는 겁니다. 반대편 일반분양 세대의 비상계단도 그럴까요? 그곳은 1층부터 옥상까지 온전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2010년 부산 해운대에서 일어난 37층 주상복합 화재 사건을 기억하는 분들 많을 겁니다. 당시 많은 주민들이 옥상으로 대피했고, 소방 헬기 등으로 구조됐죠. 아래층에서 불이 나면 당연히 윗층으로 대피하는 게 상식인데, 메세나폴리스 임대 주민들은 그게 원천 차단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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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당시 부산 해운대 주상복합 화재

    정말 불이라도 나면 어떡할까 싶어서 관할 소방서 예방팀장과 다시 아파트를 찾았습니다. 예방팀장은 “위로 연결이 안 되어 있는 구조”라고 인정했습니다. 다만 “소방관계 법규에는 규정이 없고, 건축법의 규정으로 안다”면서 “소방관들은 이미 지어진 건물 구조에서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옥상이 없는 구조의 건물을 본 적은 있냐’고 물으니 “처음 봤다”고 하더군요.

    이 건물은 매년 정기적으로 소방훈련을 실시하지만, 임대세대 주민들은 대부분 비상계단이 막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임대 세대만 따로 소방훈련을 실시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임대 주민들은 최악의 경우, 완강기 등을 이용해 각자 탈출해야 할 상황이 오겠지요.그러나 주민들은 “불가능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노인과 장애인들이 많은 임대 세대의 특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겠죠.

    왜 이렇게 안전까지 다르게 보호 받도록 건물을 설계했을까요? 구조까지 굳이 어렵게 바꿔가면서 계단을 막아놓은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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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세나폴리스 비상계단 구조 모형

    메세나폴리스를 지은 건설사에 찾아가봤습니다. 당시 설계책임자는 “공사가 시작된 2007년 당시의 시류가 그랬다”고 하더군요. 당시 서울시에서 건축 심의를 할 때 심의위원들이 임대와 분양을 분리하라고 요구했다는 겁니다. 당시 심의위원이 누군지, 정말 그렇게 말했는지 알아봤지만 10년이 넘어 회의록이 남아있지 않더군요. 다시 설계책임자에게 물었습니다. 불 나면 특정 주민의 안전에만 문제가 더 커지지 않겠냐고요. 설계자로서 그런 책임감은 못 느끼냐고요. 설계책임자는 “일반 세대에 대비해서 임대 세대가 불리한 건 사실이다”라고만 말했습니다. 그 이상의 대답은 건설사의 홍보책임자가 인터뷰를 중단시키면서 들을 수 없었습니다.

    마포구청에도 찾아가 물었습니다. 구청은 “법적으로 위반 사항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다만 취재가 시작되자 “안전에는 차별이 없어야 하는 만큼 향후 건축 심사 과정을 개선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며 개선 의지를 밝혔습니다.

    건설사와 구청의 말처럼, 정말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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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법을 보니 “모든 층은 지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옥상에 관해서는 명시되지 않았죠. 대신 국토교통부의 시행령으로 “비상계단은 옥상으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두 조항을 종합해 보면 비상계단은 1층부터 옥상까지 이어져 있어야 한다는 거겠죠.

    그렇다면 문제의 메세나폴리스 103동은 불법 건축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층부터 옥상까지 이어진 계단이 분명히 있긴 하니까요. 그걸 임대주민들만 못 쓰고 있을 뿐이죠. 법을 교묘히 이용해 기형적인 설계를 하면서까지 임대 주민들을 분리시켜놓은 셈입니다.

    꼭 그래야 했을까요? 결국 마지막 질문은 일반분양 세대에 사는 주민들에게 던져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메세나폴리스 같은 재건축 단지의 경우 건축 설계 단계부터 입주자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입주한 지 7년이 지났으니 그 동안 새로 이사온 분들도 계실테고, 이런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들도 많이 계실 테지요.

    아파트 입구에서 여러 차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대부분 “별 생각이 없다”거나 “모르고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사는 데 지장은 없다”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설국열차 아파트?' 생존까지 차별해야 했을까
    다행히 일반 세대 주민 한 분이 비교적 오래 취재진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관리비를 내는 액수나 이런 것들도 굉장히 많이 차이가 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뭐든지 똑같이는 좀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더군요. 충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이지만, 안전까지 굳이 차이를 둬야 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공식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아파트 측은 “1층으로 연결된 비상계단을 두 개 만들어 대피로는 충분히 확보돼 있다”며, “주민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메세나폴리스에 대한 취재는 여기까지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곳이 여기 하나뿐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희 <로드맨>팀은 이번 주말(8월10일) 뉴스데스크에 방영 예정인 2부를 통해 <소셜 믹스의 민낯>을 더 파헤쳐 볼 예정입니다. ‘소셜 믹스’는 한 단지 내에 일반분양과 임대 주민들을 일정 비율로 섞어놓는 제도를 이르지요. 다양한 계층이 모여 살자며 시작된 정책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굳이 ‘티 나게’ 분리시켜놓은 채 살고 있는지 뉴스를 통해 보여드리려 합니다.

    2부도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 관련 영상 보기 [로드맨] 불나면 우린 어떡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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