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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신수아

[탐정M] "'마귀'를 뺀다"는 신병 구타가 소대의 전통이라고요?

[탐정M] "'마귀'를 뺀다"는 신병 구타가 소대의 전통이라고요?
입력 2020-04-29 10:58 | 수정 2020-04-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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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마귀'를 뺀다"는 신병 구타가 소대의 전통이라고요?
    인간은 언제 무너질까요?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아무도 내 편이 없다'라고 느낄 때, 그 고립감 앞에서 인간은 완벽하게 무너진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만난 한 군인의 이야기입니다.

    "신병의 '마귀'를 빼야 한다"

    A 일병은 넉 달 전 계룡대 근무지원단 군사경찰대대로 배치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24일, 소속 부대의 오모 하사에게서 낯선 단어 하나를 듣게 됩니다. 바로 '마귀'였는데요. 오 하사는 선임들에게 다가와 "오늘 신병의 '마귀'를 빼는 게 어떠냐"고 묻곤 떠나 버렸습니다. A 일병은 그날 밤이 돼서야 '마귀'의 뜻을 알아 차렸습니다.

    밤 11시. A 일병의 소대 선임 3명과 다른 소대의 선임병 3명, 모두 6명이 A씨의 생활관을 찾아 왔습니다. 출입문 가장 가까운 침대에 누우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마귀'를 빼내는 '의식'이 시작됐습니다.
    [탐정M] "'마귀'를 뺀다"는 신병 구타가 소대의 전통이라고요?
    침대에 누운 A 일병의 가슴 위로 선임 1명이 올라탔습니다. 나머지 5명의 선임들도 각각 A 일병의 양팔과 다리를 잡았습니다. 한 손으론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다른 한 손으론 때리기 시작한 겁니다. 팔꿈치로 내리찍고 꼬집고 간지럽혔습니다.
    [탐정M] "'마귀'를 뺀다"는 신병 구타가 소대의 전통이라고요?
    관등성명을 대야 했습니다. 너는 어디 소속이냐, 무슨 소대냐,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거냐. 대답을 조금이라도 틀리면 같은 질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만하고 싶다'는 호소는 무력했습니다. A일병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폭행이 아팠고, 자신의 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와서 이 상황을 끝내주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소리를 지를 때마다 선임들은 이불로 A 일병의 입을 막았습니다.
    [탐정M] "'마귀'를 뺀다"는 신병 구타가 소대의 전통이라고요?
    결국 다른 소대 간부가 '시끄러우니 그만하라'고 생활관을 찾아와서야 50분간의 악몽은 끝났습니다. 그날 밤은 A 일병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모든 행동이 위축됐습니다. 자신에게 '마귀가 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선임들이 보기에 자신에게 '마귀'가 들렸다면 하루에 3번이든 4번이든 '마귀를 빼내는' 폭행이 계속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행동이라도 잘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A 일병을 옭아맸습니다.

    "신고해봐. 네 편은 없어"

    이날 밤의 폭행이 A 일병에게 뼈저리게 가르쳐 준 게 하나 있습니다. 이 부대에서 내 편은 없다는 거였죠. 같은 소대 상병은 A 일병을 상습적으로 때렸다고 합니다. 이유는 없었습니다. A 일병이 기억하는 어느 날은 차고에서 주먹으로 명치를 세게 맞았습니다. 순간 턱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서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해 상병은 A 일병에게 오히려 ‘찌질하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대를 맞은 것도 아니고 한 대 맞았을 뿐인데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게 이유라고 덧붙였습니다.

    상병의 계속된 폭행에 A 일병은 물어보기도 했답니다. 왜 때리냐고요. 돌아오는 답은 황당했습니다. '얼굴이 때리고 싶게 생겼다'는 거였죠. 신고를 하겠다고도 호소해봤습니다. 상병은 신고하라고 했답니다. 신고해도 너의 편은 아무도 없고, 한 대 때린 걸로 들어갈 바엔 차라리 널 죽이겠단 말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탐정M] "'마귀'를 뺀다"는 신병 구타가 소대의 전통이라고요?
    '신고해도 너의 편은 없다'는 임 상병의 말은 적어도 이 소대에선 진짜였습니다. '마귀'를 빼낸다며 집단 폭행을 당한 다음 날, A 일병은 소대 간부인 오 하사에게 멍든 몸을 보여줬습니다. 도움 요청이었습니다. 오 하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 번 더 해야겠네."

    가해 상병의 말이 다시 뇌리를 스치고 갔습니다.

    가해자가 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번엔 반대로 하자. 부대를 위해

    A 일병은 부대 안에서 폭행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지난 6일, A 일병은 소대장에게 '마귀'란 집단 폭행과 부대 내 상습 구타를 털어 놓습니다. 절차대로 상급자에게 보고한 겁니다. 그 자리에서 소대장은 가해자를 처벌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소대장이 철저히 조사한 뒤 가해자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킬 테니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군 생활에 집중하란 지시.

    그리곤 나흘 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돼 버렸습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 병사인 A 일병이 다른 소대로 전출을 가게 됐으니까요. 근무대장 박 모 대위는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가해자를 전부 다른 곳으로 전출 처리하면 부대가 돌아가질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부모님에게도 처음엔 본인이 원해서 이동한 거라고 거꾸로 알렸습니다.
    [탐정M] "'마귀'를 뺀다"는 신병 구타가 소대의 전통이라고요?
    '마귀'라는 이름으로 신병을 폭행하는 건 이 소대의 '관례'였다고 합니다. 가해자들은 당시엔 장난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병가를 내고 잠시 군대 밖 세상으로 나온 A 일병은 용기를 내 방송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그는 요즘 뒤척거리다 잠에 들면 계속 같은 꿈을 꾼다고 합니다. 자신이 맞고 있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투명인간이 되어버리고 마는 꿈을요.

    병영 내 악습,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뉴스를 들어야 하나요. A 일병이 소속된 부대는 군사경찰대대. 얼마 전까지 '헌병'으로 불렸던 부대입니다. 병영 내 사건사고 예방과 범죄 단속을 위해 존재하는 곳에서 범행이 벌어졌습니다. 폭행은 물론 그 이후의 조치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피해 병사와 부모님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관련 의혹에 대해 국방부 측은 '현재 군사경찰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혀 왔습니다. **

    ▶ 관련 영상 보기 [뉴스데스크] [단독] "마귀를 빼자" 알고 보니 집단 폭행…어느 신병의 폭로


    신수아 (newsua@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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