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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태평양에 수장된 인권 "바다에 버려지다"

[뉴스인사이트] 태평양에 수장된 인권 "바다에 버려지다"
입력 2020-05-14 14:46 | 수정 2020-05-1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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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태평양에 수장된 인권 "바다에 버려지다"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바다에 수장됐습니다"

    38명이 숨진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가 전화기에 떴다. 보도국 인권사회팀 발령 이틀째였다. 취재에 제작에 정말 정신이 없었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환경단체 활동가였다.

    "기자님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노동착취를 당하다 수장됐습니다. 혹시 취재하실 수 있으신가요?"

    "노동착취요? 수장됐다고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증거 영상과 자료가 있습니다. 보내드리겠습니다"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앞섰다. 다음날 이메일로 도착한 영상을 열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중국어선 Tian yu 8호 위에 붉은 천으로 감싼 간이 관이 놓여있었다. 중국인 선원들은 그 관을 둘러싸고 간단한 장례식을 지내고 있었다. 향을 피우고 관위에 술을 따르더니 이내 인도네시아 선원 동료들에게 물었다. "더 추모할 사람 없어? 없어?" 질문이 끝나자 망설임없이 선원들은 관을 들어 서태평양 깊은 바다에 던져버렸다.

    인도네시아 선원 24살 아리 씨는 그렇게 수장됐다. 날짜는 3월 30일. 바다에서 숨진 당일에 수장됐다. 배에는 냉동창고가 있었고 20일 정도 뒤면 한국 부산항에 닿을 수 있었지만 아리 씨는 육지에 닿지 못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아래로 가라앉았다.
    [뉴스인사이트] 태평양에 수장된 인권 "바다에 버려지다"
    수장된 가장 어린 선원은 19살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동료가 수장되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다.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24살 중국 원양어선 long xing 629호에서 일하던 24살 세프리씨가 숨진 당일 수장됐다. 그리고 얼마 뒤 또 한 명의 인도네시아 선원 알파타가 수장됐다. 두 번째로 수장된 알파타의 나이는 19살이었다.

    이들은 모두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다 숨졌다. 다리가 마비되고 몸이 붓기 시작하더니 숨쉬기를 힘들어했고 그러다 끝내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고 한다. 길게는 45일 동안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선장이 주는 몇알의 알약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액이 치료의 전부였다. 아팠지만 어선위에서 작업 지시를 받았고 꾸역꾸역 나가 일해야했다고 한다. 그러다 병들어 숨지면 바다에 버려진 것이다.
    [뉴스인사이트] 태평양에 수장된 인권 "바다에 버려지다"
    선원들은 4개 업체를 통해 모였다. 각각 계약내용도 다르고 조건도 달랐다. 수장된 선원 중 한명의 서약내용에는 배에서 사망시 화장해 인도네시아로 송환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선원들은 적어도 바다가 아닌 가까운 육지에 내려 화장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 MBC와 인터뷰를 했던 20살 인도네시아 선원은 죽은 선원 중 한 명이 자신의 친구 였다고 말했다. 친구가 눈 앞에서 바다에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고 지금도 그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고 고백했다.

    "중국 선원들은 생수를 먹고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바닷물을 걸러 마셨습니다"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아팠던 이유를 물에서 찾았다. 중국인 선원 대부분은 육지에서 정기적으로 공수해오는 생수를 마셨고,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일종의 정수기를 통해 거른 바닷물을 마셨다는 것이다. 정수는 했다지만 그 물을 마셨을 때 속이 안좋거나 어지러운 느낌을 받았다고 얘기했다. 선원들은 그 물에도 점차 적응은 했지만 이후에 목에서 가래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숨진 선원들의 증상을 봐도 몸에 여러 염증이 나타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시간의 노동과 상태가 좋지 않은 식수에 이들은 점차 병들어 갔다고 증언했다.

    "악마같은 경험이었어요. 13개월 일하고 120달러를 받았습니다"
    [뉴스인사이트] 태평양에 수장된 인권 "바다에 버려지다"
    이들은 지난해 2월 부산항에서 출발했던 중국 선박에 탑승했다. 그리고 지난 달 다시 부산항에 돌아오기까지 단 한번도 육지를 밟아보지 못하고 13개월 동안 바다 위에서 일을 했다. 하루 18시간의 노동은 기본이었고 연속으로 3일 동안 서서 일을 했던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도 사실 고된 노동이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계약은 노예계약과 다름없었다. 애초 인도네시아 선원 대다수는 한 달에 300달러 우리돈으로 36만원 정도를 받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한 달 월급에서 인력 중개 수수료, 2년 탑승기간을 다 못채웠을 때의 보증금을 뗐고, 일부 임금마저 체불되면서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심하게 적었다. 13개월 동안 일하고 5명의 선원이 받은 돈은 120달러 우리돈 14만 4천원. 한 달 월급으로 치면 1만 1천원 꼴이었고, 하루 1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이들의 시급은 '20원'이었다.

    대한민국은 '인신매매'방지 의정서 비준국이다.

    한국은 2015년 인신매매방지 의정서를 국회에서 비준했다. 인신매매하면 보통은 물리적인 납치와 성착취를 연상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인신매매는 전통적인 개념의 인신매매와는 다르다.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합리한 계약을 강요받고 속아서 송출된 다음 노동착취에 준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 이것도 인신매매로 분류된다. 그리고 이 인신매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국적과 영토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 형법 제296조의 2는 인신매매 유인 납치 사건의 경우 대한민국 영역 밖에서 죄를 범한 외국인에게도 적용한다고 되어있다.

    보편적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가해자는 국적을과 영토를 불문하고 수사해 처벌해야한다. 또한 인신매매 피해자로 판단되면 지원과 보호를 하는 것도 또 하나의 책무다. MBC보도 이후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문자를 보내왔다.

    "가난하든 부자든 교육을 받았든 못받았든 지금 이순간 내가 '사람'으로 대접받고 있다고 느낀다"

    MBC 보도 이후 해경의 수사가 시작됐고 단 하루의 피해자 조사가 이뤄졌다. 해경은 최선을 다했다고 밝혀왔지만 선원들은 통역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전해왔다. 그리고 질문은 대부분 물리적인 납치, 폭력이 있는지 가해자가 있는지가 주였다. 즉 전통적 방식의 인신매매가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조사한 것이다.

    대부분의 선원들은 납치, 폭력, 강제노동이 없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귀국한 선원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상당한 노동착취,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밝혔다. 외교부 장관이 직접 나서중국 정부에게 인권 말살 행위에 대한 공동 조사를 벌일 것을 촉구했다.

    우리 정부와 수사당국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을 실체적으로 규명할 의지가 있었는지 인신매매를 바라보는 시각이 과거에 머물고 있는건 아닌지 말이다.

    그리고 꼭 하고 싶었던 말 "중국 혐오는 답이 아니다"
    [뉴스인사이트] 태평양에 수장된 인권 "바다에 버려지다"
    보도가 나간 뒤 인터넷에 노출된 기사 댓글 상당수는 중국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내용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중국인 선원들이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대상으로 차별적인 대우를 하고 인권을 침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원양어선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적의 배 위에서도 지속적인 노동착취와 인권침해가 있다. 단지 중국 어선이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사안은 지금 취재하고 있다.

    한국 원양어선에 탔던 베트남 선원들에게 구전되는 시가 있다. 서로 다른 배를 탔지만 알음알음 전해져 공유되는 시다. 이 시를 끝으로 이번 후기를 마치고 다음 보도 후 다시 글을 이어갈 생각이다.

    "작업이 시작되면 쉬지않고 18시간 동안 일해요 이제 한국을 이해했어요.

    그들은 손이 빠른 사람을 좋아해요. 손이 느리면 **놈이에요.

    씹지마라 그냥 삼켜라 아무리 급하게 밥을 넘겨도

    그들이 말하는 '빨리'보다 느려요.

    내가 넝마를 걸치도록 가난해져도 한국, 이 나라에 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을 거에요"


    - 한국 원양어선에 탄 베트남 선원의 구전시中


    ▶ 관련 영상 보기 [단독] "하루 18시간 노역…병들어 숨지면 바다에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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