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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임명현

[청와대M부스] '논란의 탁현민' 다시 부른 이유는?

[청와대M부스] '논란의 탁현민' 다시 부른 이유는?
입력 2020-05-28 11:17 | 수정 2020-05-2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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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M부스] '논란의 탁현민' 다시 부른 이유는?
    대통령 외에 '대체 불가능'이란 없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한 사람을 빼고는 누구도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월 16일 텔레그램으로 받은 메시지의 한 대목입니다. 발신자는 탁현민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입니다. 청와대에 사표를 낸 뒤 일부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사직의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획자이며 연출자가 어떤 일을 그만둘 때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일이 끝났거나,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거나.. 그리고 입금이 안 되었거나. 바닥났습니다. 밑천도 다 드러났고. 새 감성과 새 시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첫눈' 오고 두 달 넘어서야 수리된 사표…하지만

    사실 탁 행정관의 사의는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2018년 6월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맞지도 않는 옷을 너무 오래 입었다'며 사의를 밝혔습니다.
    [청와대M부스] '논란의 탁현민' 다시 부른 이유는?

    당시 탁 행정관이 올린 페이스북

    그런데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 만류했죠. "가을에 남북정상회담 등 중요한 행사도 많으니 그때까지만 일해달라.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 유명한 말이 이때 나왔습니다. 결국 그해 첫눈이 오고서도 두 달 이상 지나서야, 탁 행정관은 청와대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을 빼고는 누구나 대체될 수 있다", 탁 행정관의 저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고 지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과적으로 청와대에서 '대체될 수 없는' 자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표 수리 보름여 만에, 다시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지난해에도 태국 순방 '브랜드K 런칭쇼', 국군의날,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올해 들어서도 101주년 삼일절 기념식과 5·18 40주년 등 주요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탁현민의 필요성을 확인한 청와대는 올해 초부터 '총선 끝나면 복귀하라'는 신호를 계속 줬다고 합니다. 결국 2020년 5월 말,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다시 내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직급으로는 2급에서 1급으로의 승진이기도 합니다.

    사라지지 않은 '여성비하' 논란

    재발탁을 하기에 부담이 있는 인물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논란'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M부스] '논란의 탁현민' 다시 부른 이유는?

    여성비하 발언으로 사퇴 촉구하는 단체

    문제가 되는 2007년의 <남자 마음 설명서>.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서는 테러를 당하는 기분', '파인 상의를 입고 허리를 숙일 때 가슴을 가리는 여자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다' 등 책에 적힌 숱한 문구들은 분명히 여성비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처음 문제가 제기된 2017년 당시, 그는 "현재 저의 가치관은 달라졌지만 당시의 그릇된 사고와 언행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며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여론은 '자리를 지키면서' 하는 사과의 진정성을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가 공직에 머문 기간 내내 이 논란이 계속됐던 이유입니다.
    [청와대M부스] '논란의 탁현민' 다시 부른 이유는?

    당시 사과문 올린 탁 행정관 SNS

    탁 내정자의 청와대 복귀가 결정됨에 따라 논란은 다시 불거졌습니다. 녹색당은 "여성혐오의 이력이 있어도 청와대 비서관까지 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여성들의 절규에 응답하는 것이 강간문화를 거짓말이라며 옹호한 개인을 공직에 두는 거라면, 이는 성폭력·성착취 문제해결의 의지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탁 내정자 본인은 물론 청와대도 이같은 논란이 재연될 것임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같은 인사를 결단한 배경은 무엇일까요?
    [청와대M부스] '논란의 탁현민' 다시 부른 이유는?
    '논란 부담' 상쇄한 '대체 불가능성'

    지난해 탁 내정자의 사직 직후 만났던, 한 청와대 참모가 한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문 대통령을 비교적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는 이 참모는 탁 내정자에 대해 이렇게 평했습니다. "탁 행정관은 일을 참 잘했었다. 청와대에서 일하기엔 부적절한 논란의 당사자였던 것은 맞다. 그러나 일만 놓고 보면 참 아까운 사람이다. 열정적인 태도도 좋았다."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이 관계자가 탁 내정자와 원래부터 친분이 깊었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에 들어와서 알게 된 사이였고 철저히 일로 소통하던 관계였습니다. 그랬던 그였기에 조금은 더 객관적인 평가로 들렸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간 청와대를 취재하면서 탁 내정자의 '수행성'에 있어서는 아쉬움이나 인색한 평가를 감지한 적이 없습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탁 내정자의 발탁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즘 대통령 일정 보면 생동감이 없지 않나. 기획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탁 내정자 자신은 부정했지만, 그의 '대체 불가능'이 확인된 셈입니다.

    녹색당은 이렇게도 주장합니다. "탁현민을 천하제일의 인재로 아는 청와대의 낡은 심미안이 안타깝다. 시대흐름을 예민하게 읽어내는 유능한 공연기획자들이 상당하다"고 말이죠. 청와대도 이런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문 대통령과 탁 내정자의 오랜 호흡까지도 감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이를 구현하는 행사 기조를 누구보다 감각적으로 읽어내고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게 청와대의 고민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로써만 말해야"

    탁 내정자의 심경을 묻기 위해 전화를 여러 번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기억입니다. 그는 청와대 재직 시절 기자의 전화를 받았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기자와 소통하는 업무가 아니기도 합니다. 청와대를 나온 뒤에는 가끔 통화가 됐는데, 다시 전화가 되지 않는 것을 보고 그의 재입성을 실감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1월 사표가 수리된 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로써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능력이 없기에 일 자체로서 표현하려는 입장밖에는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일들에 대한 평가는 칭찬이든 비난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추정컨대 그는 지금도 이런 심경이 아닐까 합니다. 부담을 감수하고 청와대에 복귀한 탁 내정자가 다시 '일로써'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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