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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김건휘

[탐정M] "개농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탐정M] "개농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입력 2020-06-02 14:31 | 수정 2020-06-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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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개농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1. 목불인견, 그 끔찍한 실상

    목불인견(目不忍見). 중국 명(明)나라 주국정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겼다고 합니다.

    "데려가 지옥을 보게 하니 광경이 참혹하여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어 서둘러 달아났다[又導觀諸獄,景象甚慘,目不忍視,狼狽而走]."

    그야말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참한 상황,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을 나타내는 표현이지요.

    제가 지난달 두 차례 방문한 인천 계양산의 개농장의 모습이 딱 그랬습니다.
    [탐정M] "개농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개농장의 환경은 처참했습니다. 300여 마리의 개들이 '뜬장'에 갇혀 있었습니다. 뜬장은 공중에 떠 있어 발로 땅을 디딜 수 없게 된 우리입니다. 사육장이라고는 하지만, 철망 틈에 발이 푹푹 빠져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렵습니다. 이처럼 개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생활 환경이지만, 배설물이 철망 구멍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많은 개농장이 사용합니다.
    [탐정M] "개농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그나마도 개들에게 할당된 공간은 형편없이 좁았습니다. 개들이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한 칸에 여러 마리의 개가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견, 그리고 미처 자라지 않은 강아지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습니다. 현장을 같이 찾은 동물권단체 케어의 활동가는 이런 환경을 두고 "사람으로 치면 조그만 박스 안에 몸을 욱여넣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좁은 우리 안에서 개들은 몸을 조금씩 비트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비좁은 우리 안에서 개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여러 방향으로 표출됩니다. 여러 마리의 개들이 좁은 공간에 있다 보면 서로 싸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깊은 상처가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개농장의 특성상 다친 개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습니다. 심하면 2차 감염으로 인해 폐사하는 경우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라 제자리를 뱅뱅 맴돌면서 짖는 등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이른바 '정형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특정 행동을 계속하는 겁니다.
    [탐정M] "개농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눈에 보이는 농장의 실태도 물론 끔찍했지만, 농장 한참 밖에서부터 진동하던 악취가 정말 심각했습니다. 농장주는 개들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급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옆에는 아예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이 놓여 있었고, 창고 안에서도 사람 키 높이의 잔반 수거함 여러 개가 발견됐습니다. 단순히 잔반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썩은 냄새가 강하게 났고 파리가 계속 꼬였습니다. 언제 들여왔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에는 기본적으로 염분이 많아 동물이 먹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양파 같은 몇몇 음식의 경우 개들에게 급여했을 경우 급사할 위험도 있다고 합니다. 동물용 사료가 따로 있는 이유입니다. 설령 이런 지식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음식물 쓰레기를, 그것도 부패한 상태의 잔반을 급여한다는 건 상식선에서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개들이 과연 어떻게 지내왔을지, 몇 마리의 개가 유명을 달리했을지는 오로지 농장주만이 알고 있겠지요.
    [탐정M] "개농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2. 적반하장 농장주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농장주는 시종일관 당당했습니다. 자신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뜬장에서 사육하는 것이 비인도적이지 않냐는 질문에는, 다른 개농장에서도 모두들 그렇게 한다고 답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여서 키워도 되는 거냐는 물음에는, 뜨거운 물을 섞어서 주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잔반을 동물에게 급여할 때는 기본적으로 30초 이상 가열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사료관리법 위반입니다. 그렇지만 농장주는 자신들이 돈이 없어서 그런다며, 사료가 비싸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 수밖에 없다고 답했습니다. 사람이 먹는 '식견'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알아서 한다고 한다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더 위생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별다른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농장주는 자신들이 구청에서 여러 차례 행정처분을 받았으며, 벌금을 다 내고 제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이들이 여러 번 벌금을 내기는 했습니다. 개발제한구역법 위반, 폐기물 처리시설 미신고 등 받은 처분도 다양했습니다. 그렇지만 과태료는 미미한 수준이었으며, 개농장을 폐쇄하게 할 수 있는 실질적인 규정은 없었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사용금지 명령까지 받았지만, 과징금 90만 원을 내면 계속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구청과 8월 말까지 개 농장을 비우기로 약속했다는 걸 계속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구청은 이미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으며, 자발적으로 나가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설사 약속을 지키지 않더라도 강제로 내보낼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겁니다. 다시 과태료를 물리고 경고 조치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어쨌든 지금처럼 계속 영업을 할 수 있습니다.
    [탐정M] "개농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8월까지 버티겠다는 선언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복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달 16일 초복을 시작으로 8월까지 중복, 말복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개고기 판매업자들로서는 놓칠 수 없는 일 년 중 최대 대목입니다. 이들은 복날까지 개를 모두 팔고 가겠다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부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도 먹고살아야 한다며, 그때까지 개를 어떻게든 다 처분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성견 한 마리 당 시세가 20만 원 정도 하는데, 값을 쳐줘서 개를 매입해 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물러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300마리나 되는 대형견을 선뜻 매입할 수 있는 기관은 사실상 없습니다. 구청은 물론이고, 동물보호단체도 이 정도 규모의 개를 수용할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탐정M] "개농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3. 롯데는 정말 몰랐을까

    개농장에 대한 제보를 처음 받았을 때 가장 놀라웠던 건, 이 농장이 자리 잡고 있는 땅이 롯데의 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소유라는 점이었습니다. 계양산 등산로 입구에는 과거 롯데가 추진하던 골프장 사업인 'SKY HILL 인천'의 사업계획도가 있었고,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나타난 이름도 분명 신격호 명예회장이었습니다. 농장주는 자신들이 여러 위법 행위를 저지르긴 했고 행정처분을 받은 건 맞지만, 땅을 불법으로 점유한 건 절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1992년 농장에 들어올 당시 롯데 측과, 그것도 신격호 회장의 측근과 구두계약을 맺었다는 겁니다. 심지어 이 개농장의 정식 등록 명칭도 '롯데 목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롯데 측은 이 땅에 불법 개농장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알 수 없다'입니다.

    롯데지주 측은 일단 해당 부지가 롯데 그룹의 소유가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창업주인 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소유였던 땅이고, 그동안 후견인이 관리를 했기 때문에 자신들도 몰랐다는 겁니다. 롯데 측은 지난 1월 신격호 회장이 세상을 떠난 이후 상속이 진행되면서 해당 부지에 개농장이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합니다. 농장주는 롯데의 모 팀장과 계속 연락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롯데지주 측은 사실관계 파악이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게다가 농장주의 주장에 따르면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구두계약을 했으며, 너무 오래전 일어난 일이기에 그간 임대료 등을 납부해왔는지도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롯데 측은 다만 상황의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으며, 해당 부지의 상속자들이 이들을 내보내기 위한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탐정M] "개농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4. "개들을 살려주세요"…책임은 어디에

    지난달, MBC에 불법 개농장에서 죽어가는 개들을 살려달라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계양산에서 만난 제보자는 "이대로라면 여름까지 300마리의 개들이 모두 죽게 된다"며, 어떻게든 개농장의 끔찍한 실상을 알려 개들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MBC의 보도가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계양산 개농장의 개들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쉽지만은 않은 상황입니다. 계양구청은 이미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취했다는 입장입니다. 구청 측은 8월 말까지 나가게끔 합의를 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일단 약속이 됐다는 겁니다. 또, 농장주를 지나치게 압박하면 오히려 개를 버리고 가는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300마리의 개들이 농장에 남겨지게 되는데, 이들을 마땅히 수용할 만한 기관이 없는 상황입니다. 덩치가 큰 대형견이기 때문에 선뜻 입양하려는 사람이 없을 텐데, 그렇게 된다면 결국 안락사에 처하는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롯데 측도 뾰족한 수는 없어 보였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해당 부지는 상속자들 개인 소유의 재산이기 때문에, 회사가 조치를 당장 취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개인과 회사의 재산이 엄격하게 구분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개입하기가 어렵다고도 했는데, 해당 부지의 상속은 7월 중에나 끝날 예정입니다. 롯데 측은 상속자들에게 동물보호단체들의 요구 사항을 전달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농장주가 개들을 모두 팔아 치우기 전에 가능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누구도 나서서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 결국 현재로서는 300마리의 개가 모두 보신탕집에 팔려야 상황이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 뜬장에 갇힌 개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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