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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의 무게] 금태섭 징계는 헌법과 충돌하는가

[팩트의 무게] 금태섭 징계는 헌법과 충돌하는가
입력 2020-06-05 14:41 | 수정 2020-06-0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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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팩트의 무게] 금태섭 징계는 헌법과 충돌하는가
    사실은, 무겁습니다. 팩트의 무게.

    지난해 12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표결 당시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 화면입니다.
    [팩트의 무게] 금태섭 징계는 헌법과 충돌하는가
    금태섭 전 의원의 이름 앞에 기권을 뜻하는 노란색 불이 들어와 있습니다. 공수처 설치라는 민주당의 당론을 따르지 않은 행동이었죠.

    다섯 달이 지난 5월 25일, 민주당 윤리심판원이 금 전 위원에게 '경고'라는 징계를 내렸습니다. 바로 저 기권이 당론을 위배한 행동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징계 소식이 알려지자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대표적으로 김해영 최고위원의 발언을 들 수 있습니다.

    "당론에 따르지 않은 국회의원의 직무상 투표행위를 당론에 위반하는 경우에 포함시켜 징계할 경우 헌법 및 국회법의 규정과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금 전 의원 개인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민주주의 하에서 국회의원의 직무상 양심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대단히 중요한 헌법상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소신 투표 : 자유위임

    그럼 먼저 헌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헌법 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양심은 ‘소신’과 비슷한 뜻입니다. 즉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은 국회의원은 외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국익을 고려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법률적으로는 '자유위임'이라고 불리는 개념입니다.

    정당민주주의 : 정당기속

    그런데 또 살펴봐야하는 부분이 '정당'이라는 조직입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운영에서 정당은 필수적인 조직이 됐습니다. 비례대표 선거는 정당에 투표하는 행위이고, 유권자는 지역구 투표를 할 때도 후보 뿐 아니라 정당을 보고 표를 던집니다. 국회 내에서 이뤄지는 각종 교섭, 그리고 당정 협의 등 정당 자체가 정치의 주체이기도 합니다. 무소속이 아닌 다음에야 국회의원도 정당의 구성원이고, 따라서 정당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의무도 가집니다. 이 개념을 바로 '정당기속'이라고 부릅니다.

    즉 이번 문제는 '자유위임'과 '정당기속'이 일으키는 갈등으로 볼 수 있는데요, 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17년 전 헌법재판소의 판단

    우리나라 최초로 1백만부 이상 팔린, 즉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소설 '인간시장'의 작가인 김홍신 전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자유위임과 정당기속의 충돌 문제에 중요한 논쟁거리를 남겼습니다. 직장 건강보험과 지역 건강보험의 재정통합을 앞두고 2001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에 반대하며 건강보험 재정분리법안을 추진했습니다. '당론'이었던 거죠.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 전 의원은 이 문제를 담당하는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이었는데 문제는 김 전 의원이 당론을 따르지 않으면서 생겼습니다. 김 전 의원이 건강보험 재정 통합 찬성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자 한나라당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김홍신 전 의원을 빼고(사임) 그 자리에 다른 의원을 넣겠다고(보임) 국회의장에게 요청했고, 국회의장은 이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김 전 의원의 의사에 반한 상임위 사보임이 일어난 거죠. 그래서 '국회의원 권한이 침해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팩트의 무게] 금태섭 징계는 헌법과 충돌하는가

    김홍신 전 의원

    '당론' 따르지 않으면 징계 가능?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결론부터 소개하자면 2003년 헌재는 김 전 의원의 보건복지위 사임이 문제없다고 판단했습니다. 8대1로 다수의견이 압도적이었습니다. 결정문에서 헌법재판소는 정당의 강제조치가 정당성이 있는지 설명을 했는데요, 한 번 읽어 보시겠습니다.

    "특정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이 정당기속 내지는 교섭단체의 결정(소위 '당론')에 위반하는 정치활동을 한 이유로 제재를 받는 경우, 국회의원 신분을 상실하게 할 수는 없으나 "정당 내부의 사실상의 강제" 또는 소속 "정당으로부터의 제명"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당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소속 국회의원을 당해 교섭단체의 필요에 따라 다른 상임위원회로의 전임(사보임)하는 조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정당 내부의 사실상 강제"의 범위 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당론'을 따르지 않으면 정당 내부에서 강제 조치가 가능하다는 뜻이겠죠. 정당의 징계는 엄밀히 보면 정당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나 위상에 영향을 주는 것이지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에 영향을 주지는 못하죠. 이런 기준에서 보면 금 전의원에 대한 징계는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헌재의 결정에 대해 헌법학계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논문을 몇 개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2012년 경희법학에 실린 강태수 교수의 논문 "국회의원의 정당기속성과 자유위임관계에 대한 고찰"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양심에 따라서 직무를 수행하는 국회의원의 헌법상의 자유위임관계보다 법률상의 교섭단체강제를 우월한 지위에 두는 과오를 범하였다."

    2015년 헌법재판연구에 실린 "국회의원의 정당기속과 자유위임"이라는 논문에서 정만희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의원에 대한 정당적 통제의 관대한 허용은 정당국가라는 부차적 명분을 내세워 '자유위임에 따른 국민대표성의 구현’이라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시원적 헌법규범을 침해할 수 있게 되는 문제가 있다"는 소수의견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국회의원 본인의 소신에 따른 결정이라는 자유위임을 소극적이고 보수적으로 해석해서 정당의 권한에 정당의 권한에 너무 많은 힘을 실어줬다는 것이죠.

    헌법재판소의 달라진 분위기

    그런데 '사보임'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들으니까 또 생각나는 사건 있지 않으세요? 바로 지난해 신속처리법안, 즉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이때 문제가 된 법률 역시 공수처 설치법이었는데요, 당시 바른미래당 오신환 전 의원의 사보임 문제가 있었죠. 오신환 전 의원이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데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하자 바른미래당이 국회의장에 요청해 오신환 의원을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사임시키고 그 자리에 채이배 전 의원을 보임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적법성 역시 헌법재판소의 판단으로 넘어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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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은 2003년과 비슷했습니다. 문제없다며 오신환 전 의원 측의 청구를 기각한 거죠.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자율권을 행사한 것으로서 이 사건 개선행위로 인하여 자유위임원칙이 제한되는 정도가 위와 같은 헌법적 이익을 명백히 넘어선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개선행위는 자유위임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헌법재판소의 분위기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8대1에서 5대4로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비등비등해졌습니다. 4명 재판관의 소수의견 내용은 이렇습니다.
    [팩트의 무게] 금태섭 징계는 헌법과 충돌하는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형성된 당론이라고 해도 정당은 국가기관이 아닌 사적 결사에 불과하므로, 사적 결사의 당론에 복종해야 한다는 정당기속성이 사실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국회의원의 자유위임적 지위를 압도하여 형해화할 정도에 리는 것은 헌법상 용인될 수 없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금 전 의원 징계에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정당의 징계는 조직내부에서의 징계일 뿐 국회의원의 업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조치는 아닙니다. 그러나 상임위를 변경시키는 것은 법안 제정이라는 국회의원의 공식적인 업무에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직접적이고 무거운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헌법분쟁에 관한 최종 심판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볼 때 민주당의 징계 조치가 헌법을 어겼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자율성에 무게를 둔 의견이 헌재 내에서도 커지고 있는 것을 보면 헌법과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당론과 징계의 역사 : 금 전 의원의 기권은 징계를 받을만한 일인가

    지금까지는 징계조치 자체에 초점을 맞춰 살펴봤습니다. 그럼 이제 질문의 방향을 좀 바꿔보겠습니다. 당론을 어겨가며 투표를 하는 행위는 징계를 받아 마땅한 사안일까요? 이는 국회법과도 연결되는 사안입니다.

    2002년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국회의원의 자유투표 조항이 명문화 됐습니다. 114조의 2입니다.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

    이 조항이 탄생한 배경에는 1999년 당시 한나라당이 당론을 따르지 않았다며 두 의원을 출당시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팩트의 무게] 금태섭 징계는 헌법과 충돌하는가
    출당당한 의원은 이수인 전 의원과 이미경 전 의원인데요, 이 두 의원은 당시 여당의 노사정위원회법 통과에 협조했습니다. 또 이수인 전 의원은 전교조 합법화에 찬성하기도 했고, 이미경 전 의원은 동티모르 파병에 찬성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소속정당인 한나라당의 ‘당론’을 거스른 행위였습니다. 당시 이수인 전 의원은 징계에 대해 "영광의 훈장으로 생각한다. 당원 자격보다는 국회의원의 자격이 앞서고, 당과 국회의원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이익이 앞서기 때문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자유투표 조항은 이 사건을 겪으면서 탄생한 조항입니다. 이수인 의원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헌법에 담긴 ‘자유 위임’의 정신을 법률로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국회의원이 소신에 따라 투표하는 것은 법률로 보장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신', '양심'의 정당성, 적절성은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요. 다시 헌법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헌법 8조 2항 "정당은 그 목적ㆍ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즉 당론을 정하는데 있어 얼마나 민주적인 과정을 거쳤는지를 함께 봐야겠죠. 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공론화가 적절히 이뤄졌는가, 국가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기 위한 구성원들의 토론이 실질적으로 진행됐는가, 권력이 집중된 소수 의원들의 뜻에 따라 결정이 ‘과두적’으로 이뤄지는 일은 없었는가 등을 고루 살펴봐야겠죠.

    이런 과정이 없었던 것에 반발하며 당론을 거스르는 것은 국회의원의 의무와 덕목에 가까울 겁니다. 반면 이런 과정을 거쳤는데도 고집을 꺾기 싫어서 당론을 거스른 거라면 정당성도 부족하고, 국민들의 신임을 잃겠죠.

    지금까지 팩트의 무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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