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한남3구역 시공사 선정 총회가 열렸습니다.
1군 건설사인 현대건설, 대림산업, GS건설이 참여해 경합을 벌인 끝에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습니다.
저마다 명품 아파트를 짓겠다며 지난 수개월 동안 치열한 홍보전을 벌인 이들 세 건설사.
그런데 이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성신양회가 생산한 불량레미콘을 납품받아 아파트를 시공한 사실입니다.
# 명품 브랜드 자랑…불량 레미콘은 '쉬쉬'
현대건설, 대림산업, GS건설뿐만이 아닙니다.
삼성물산, 대우건설, 현대산업개발, 포스코건설 같은 다른 대형 건설사들을 포함해 다수의 중견 설사들까지...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건설사가 모두 성신양회가 납품한 불량레미콘으로 아파트를 지었습니다.
래미안, 힐스테이트, e편한세상, 푸르지오, 자이 같은 이른바 브랜드 있는 아파트를 지으며 명품이라고 홍보한 것과 달리 정작 불량 레미콘으로 공사를 진행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입주민들에게 철저히 감춰지고 있습니다.
괜히 알면 입주민들이 안전을 불안해할 수 있고, 또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할 수도 있으니 알려줄 필요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 최대 40%나 적게 쓴 시멘트
창업한 지 53년이 된 성신양회는 국내 7대 레미콘 회사 중 하나로 불립니다.
그만큼 많은 건설사와 계약을 맺어왔습니다.
경찰 수사로 확인된 성신양회의 불량레미콘 생산시기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입니다.
레미콘은 시멘트, 모래, 자갈, 혼화재를 섞어 만드는데 시멘트가 가장 비싼 반면 화력발전소나 제철소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로 만든 혼화재는 저렴합니다.
성신양회는 시멘트를 건설사와의 납품 계약보다 최대 40% 줄이고 대신 혼화재를 채워넣는 식으로 이득을 챙겼습니다.
문제는 이 불량레미콘이 건설 현장에서 걸러지지 않은 채 실제 아파트 시공에 쓰였다는 것입니다.
# 가짜 서류에 당한 건설사
명품 브랜드를 자랑하는 건설사들이 왜 불량 레미콘 하나 걸러내지 못한 걸까요?
레미콘은 앞서 언급한 시멘트, 모래, 자갈, 혼화재를 섞어 만든 반제품 상태로 레미콘 차에 실려 건설현장으로 이동합니다.
레미콘 차의 통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것도 레미콘이 굳기 전에 현장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봐서는 레미콘 속에 대체 어떤 물질이 얼마나 쓰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육안으로 관찰이 불가능하니 레미콘 회사가 제출하는 서류(배합표)를 보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성신양회는 시멘트를 적게 쓰고도 정상적으로 쓴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습니다.
건설사들이 눈 뜨고 당한 셈입니다.
![[뉴스인사이트] 아파트에 쓰인 불량 레미콘…가짜 서류에 뚫렸다](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0/06/22/k0622-1_3.jpg)
그럼에도 건설사들은 불량 레미콘으로 지어진 아파트의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레미콘 차가 들어오면 샘플을 추출해 공시체라는 것을 만듭니다.
다수의 시민이 사는 아파트의 안전성이 중요한 건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류만 믿을 수 없으니 샘플로 공시체를 만들고 그걸로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거죠.
문제는 서류 검사라는 안전의 1차 방어선이 뚫린 상황에서 2차 방어선인 공시체 검사 결과만 믿어도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건설사가 셀프 검사한 결과만 믿을 수 있느냐는 거죠.
물론 아파트에는 건설사만 있는 게 아니라 건설 과정을 검증하는 감리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의 각종 부실시공 사례에서 보듯 감리가 허술하게 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건설사와 감리사만 믿을 게 아니라 불량 레미콘이 쓰인 아파트에 대해 한 번 더 전수조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 국토부 "어디에 쓰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감독기관인 국토교통부는 불량 레미콘이 대체 어디에 쓰였는지 현장 목록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년 전 경찰수사 당시 공사장이 어딘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거절해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경찰 쪽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실무자 선에서 구두로 한 번 문의해 수사 중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을 뿐이라는 거죠.
수사 자료를 공유하려면 기관 사이에 공문이 오가야 하는데 이런 공식 요청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사안은 경찰 수사가 끝나 이미 6개월 전에 성신양회의 유죄가 확정된 법원 판결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법원에 자료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애초부터 불량 레미콘 사태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어디에 쓰였는지조차 파악할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 입주민은 알권리가 있다
뻔한 소리지만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순간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불량 레미콘을 썼어도 괜찮다는 건설사 말들만 믿을 게 아니라 실제 어떻게 안전 검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어땠는지 정부가 챙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사실은 입주민에게도 투명하게 공개돼야 합니다.
아파트의 실제 주인은 건설사에 거액의 돈을 주고 건물을 산 입주민이기 때문입니다.
입주민은 건설사가 좋은 자재로 집을 지을 거라는 걸 믿고 거액의 돈을 준 것입니다.
당연히 아파트 건설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문제를 알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이미 지어진 아파트가 정말 안전한 건 맞는지 입주민이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취재를 통해 건설사 측에 모든 정보를 입주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안전 검사를 실시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지만 이에 답한 건설사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쉬쉬하고 넘어가는 게 결코 답이 될 수 없다는 것.
코로나19 사태가 준 가장 큰 교훈일 것입니다.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불량 레미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안전 검사만이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를 막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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