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사회
기자이미지 조희형

[탐정M] 건축가 맞아? '소송왕' 아니고?

[탐정M] 건축가 맞아? '소송왕' 아니고?
입력 2020-07-30 16:09 | 수정 2020-07-30 16:49
재생목록
    [탐정M] 건축가 맞아? '소송왕' 아니고?
    그제(28일) 저녁, 저는 MBC 보도국의 한 편집실에 앉아 다음날 <뉴스데스크>를 통해 나갈 '[다시간다] 두 얼굴의 건축가는 '소송왕'…경찰도 한편?' 리포트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습니다. 편집자가 제게 갑자기 하소연을 합니다.

    "제가 다 귀가 아플 지경이에요." - MBC 보도국 편집자

    유명 건축가 임 모 대표의 욕설을 이른바 ‘삐처리’ 없이 생생하게 듣다 보니 마치 자신이 욕을 먹는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얘기였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지난 1일 방송된 <물 새는 60억 호화 주택..두 얼굴의 건축가>. 연예인도 산다는 서울 한남동의 수십억 원대 빌라가 사실은 물이 줄줄 새는 하자 투성이인데다, 이 빌라를 지은 건축가는 현장 작업자들에게 폭언과 체불을 일삼았다는 내용이었죠. 보도 이후 임 대표와 관련한 추가 제보가 잇따랐고, 한 달 만에 후속 보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 기사 바로가기 :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828462_32524.html

    ▶후속 기사 바로가기 :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858049_32524.html

    임 대표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는 업체들을 만나봤습니다. 밥값 4천만 원을 받지 못해 소송 중인 식당 주인 이지선 씨. 집도 없이 식당에서 지낸다고 합니다. 이 씨는 한남동 빌라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지난 2017년 10월부터 6개월 동안 현장 인부들에게 밥을 배달했습니다. 이 씨는 밀린 밥값을 해결해달라고 임 대표를 찾아갔습니다.
    [탐정M] 건축가 맞아? '소송왕' 아니고?
    "옆에다 깡패 같은 사람을 세 명을 놨더라고요. 들어가니까 임 대표가 있어요. '여기 밥값 받으러 왔어요' 그랬더니 (임 대표가) '밥값을 왜 여기 와서 받느냐고'. (결국) 경찰을 불렀더라고. 아줌마 내쫓으라고." - 식당 주인 이지선 씨

    비슷한 시기에 빌라 설비를 맡은 황 모 씨는 지난해 3월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만큼 임 대표에게 정산을 요청했더니, 난데없는 폭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황 씨 역시 임 대표와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왜 이제 와서 돈 달라고 자꾸 물어 대는 거야. 당신 나가. 나가라고 아이X. 나가 인마." - 건축가 임 대표

    "인건비도 못주고 사무실은 사무실 대로 세금을 못내서 통장이 압류돼있고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 해당 설비업체 이창연 소장

    임 대표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밥을 먹은 현장 인부들은 중간 용역업체 소속이라 원청인 우리가 돈을 줄 이유는 없다’, ‘설비 업체는 공사를 제대로 못해 오히려 손해를 봤다’.

    과연 사실일까요?

    관련 소송 기록을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지난 3월, 1년여 간의 소송 끝에 밀린 공사 대금 3천만 원을 받게 된 한 크레인 장비업체의 대법원 판결문. 여기서도 임 대표는 크레인 장비업체가 중간 용역업체에게 대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판결문엔 "(중간 용역업체는) 시공할 객관적인 조건이나 능력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면서 "임 대표가 직접 시공을 한 걸로 봐야 한다"는 내용이 적시됐습니다. 중간 용역업체라는 건 없고, 원청이 직접 공사를 했다는 뜻입니다.
    [탐정M] 건축가 맞아? '소송왕' 아니고?
    용역 업체 대표라는 조 모 씨는 법정에 나와서 이런 얘기까지 합니다.

    "임 대표는 매일 현장에 나와 작업 지시를 했습니다. 재판에서 유리하게 하기 위해 임 대표가 지시해 거짓으로 서류(하도급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공사 대금을 제가 횡령해서 도망간 것처럼 만들기 위해서였고, 제게 협박도 했습니다." - 중간 용역업체 대표 조모 씨
    [탐정M] 건축가 맞아? '소송왕' 아니고?
    취재진이 확인한 한남동 빌라와 관련한 민사소송 건수만 24건. 이중 20건이 공사대금, 인건비와 식비 등 체불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공사를 맡은 업체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 짐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영세 업체일수록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소송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소송을 포기했다는 업체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줄 생각도 안 해요. 게다가 우리는 아주 질려가지고 (돈)받을 생각도 못해요." - 지게차 업체 관계자

    제가 만난 임 대표 측 변호사만 3명. 임 대표는 피해 업체들에게 ‘억울하면 소송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합니다. 기나긴 소송전을 이어갈 수 있는 인력과 자본까지 갖춘 임 대표. ‘소송왕’의 비결일까요?

    "(임 대표가)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가 있었어요. '나는 (돈을) 줄 놈이고 너네들은 받을 놈이기 때문에 버티면 누가 이기겠냐, 소송할래?'" - 석재 업체 관계자

    "공사 과정에서 전기업체가 임 대표와 분쟁이 있어서 쫓겨났어요. (임 대표는) '전기 업체한테 나중에 수억 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할 거'라고 떠들고 다니고 그랬어요." - 설비업체 이창연 소장

    임 대표의 비결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민사소송뿐 아니라 형사고소도 서슴지 않았던 임 대표. 이번엔 경찰 유착 의혹까지 제기된 겁니다. 사건이 복잡하니까 최대한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임 대표가 지은 한남동의 고급빌라는 지난 2015년, 한 채에 20억 원에서 30억 원 정도에 선분양됐습니다. 3년 뒤 임 대표는 갑자기 초기 분양자 4명을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는데요. 이들이 투자를 약속해서 7억원을 할인해 분양해줬는데, 약속을 안 지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초기 분양자들은 이에 대해 "부동산 시세가 오르고 분양이 잘 될 것 같으니 돈이 아까워 고소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탐정M] 건축가 맞아? '소송왕' 아니고?
    '소송왕' 임 대표, 초기 분양자들을 상대로 형사 고소와 더불어 분양 계약을 취소해달라는 민사소송까지 제기합니다. 그런데 이 민사 소송에서 초기 분양자들이 경찰에 가서 작성한 진술조서(피의자신문조서)가 지난 5월, 증거로 제출된 겁니다.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었던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원칙적으로 형사 사건의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는 고소인(임 대표)이 피고소인(초기 분양자)의 경찰 진술 조서를 볼 수 없습니다.
    [탐정M] 건축가 맞아? '소송왕' 아니고?
    [탐정M] 건축가 맞아? '소송왕' 아니고?
    초기 분양자들은 자신들을 조사한 경찰, A 경감이 빼돌렸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한테 (서류를) 빼내가지고 민사 소송의 증거로 제출해버린 거예요. 고소인에게 그렇게 자료를 빼돌릴 수 있을 만큼 다년간 그런 커넥션(관계)이 있었다…" - 초기 분양자
    [탐정M] 건축가 맞아? '소송왕' 아니고?
    A 경감은 취재진에게 “임 대표를 모른다”고 잡아뗐습니다. 임 대표 측 변호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실수로 사건 기록을 가져왔지만 법원에 접수한 뒤 문제가 돼 철회했다”고 합니다. 실수로 사건 기록을 가져왔다고요? 경찰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화장실 갈 때도 수사 기록을 서랍에 넣고 잠그는데, 실수로 유출했다?’ 서울지방경찰청도 사건 고소인에게 수사 기록이 통째로 넘어간 것은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렵다고 보고 수서경찰서 소속 해당 경감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탐정M] 건축가 맞아? '소송왕' 아니고?
    취재를 하면서 제가 느낀 점은 딱 한 가지. 임 대표 같은 ‘소송왕’ 때문에 우리 사법시스템에 엄청난 낭비가 초래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였습니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를 반박하기 위해 임 대표는 수십 건의 고소고발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소송왕은 결국 이길까요? 지켜보겠습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