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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이재욱

[탐정M] 당신의 집은 병원과 얼마나 가깝습니까

[탐정M] 당신의 집은 병원과 얼마나 가깝습니까
입력 2020-09-05 09:16 | 수정 2020-09-0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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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당신의 집은 병원과 얼마나 가깝습니까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을 놓고 한 달여간 계속됐던 정부와 의사들 사이 갈등이 당장은 봉합된 모양새입니다. 정부가 내놓았던 의료정책 추진을 멈추고, 코로나19 국면이 안정된 이후에 다시 대한의사협회와 논의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인데요. 양측은 의정협의체를 만들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화하기로 결정했고, 대한의사협회는 집단행동을 중단하고 진료 현장에 복귀한다고 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1일, 정부와 의사들과의 갈등으로 의료공백이 이어질 경우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을 것”이라고 말한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됐으니까요. 물론 제가 ‘당장은 봉합됐다’고 했듯이 양측의 합의가 사태의 완전한 해결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합의안에 대해서도 전공의를 중심으로 내부 반발이 거센 상황이고, 의정협의체 논의 과정에서 갈등은 더욱 첨예화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부정적으로 볼 일만도 아닙니다. 상대가 밉더라도 갈등 해결의 실마리는 결국 대화와 소통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인건 극한의 갈등 속에서도 정부와 의사단체 모두가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다는 겁니다.

    ‘병세권’을 아십니까

    제가 오늘 얘기하고 싶은 주제는 바로 그겁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제공받는 것.’

    여러분이 사시는 곳과 병원은 얼마나 가깝나요. 지하철역과 가까워 접근성이 높은 지역을 뜻하는 ‘역세권’. 이 역세권이라는 말처럼, 요즘 분양시장에서 ‘병세권’이라는 말이 자주 홍보문구로 쓰이는데요. 들어보신 분들 있으실 겁니다. 말 그대로 대형병원과 가까워 아프면 바로 찾아가 치료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이죠.

    뭐 별 말이 다 있다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가뜩이나 아프면 서러운데, 병원 좀 가보려고 멀리 가야한다면 더 서럽겠지요. 내가 사는 곳과 병원이 가깝다는 사실이 건강할 때는 크게 고마운지 모르는 요소지만, 아프게 되면 금방 깨닫게 됩니다.

    SRT 고속열차의 종착지인 수서역. 매일 역 앞에는 환자가 길게 줄을 늘어선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인근의 삼성서울병원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인데요. 몇 해 전 이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으신 저희 어머니도 분기에 한 번씩은 질병을 추적·관찰하기 위해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오셔서 이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십니다.

    내 몸이 아플 때, 적절한 치료를 신속하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런 권리를 잘 누리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가 ‘보건의료체계 개선’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었는데요. 이 조사에서 국민들은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점으로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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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까지 1시간

    병원을 가기 위해 1시간 여정을 떠나야 하는 일.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즐비한 동해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주민들에게는 일상입니다. 2만 7000여명의 주민은 응급상황이 발생하거나 전문적인 진료를 받으려 한다면, 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인근 속초나 강릉까지 가야합니다.

    강원 고성군은 전국에서 가장 의료서비스가 열악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고성군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는 0.45명에 불과합니다. 정형외과, 산부인과, 신경외과, 피부과 등 대부분의 진료과목 전문의는 없습니다. 의원급 병원만 7곳 있을 뿐입니다. 그마저도 주민들이 거주하는 5곳의 읍·면 가운데 거진읍에 4곳, 간성읍에 3곳의 병원이 몰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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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내면과 죽왕면, 토성면 3곳의 주민들은 의사와, 한의사 물리치료사만 각각 1명씩 있는 면 보건지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만, 녹록치는 않습니다. 정태윤 죽왕보건지소 공중보건의는 “일단 기구가 부족해 진단이 어렵고, 약국이 없어 원내 약품으로 처리를 하다 보니 제한이 많다”며, “다치거나 급한 증상 같은 경우에는 속초 등의 큰 병원으로 가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주 보건지소를 찾는다는 김옥란씨도 “어느 정도는 기계를 갖춘 상태에서 진찰을 받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그렇지 못하다 보니 의사들은 ‘다른 병원을 가보세요’라는 말만 반복한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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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이 없다보니 고성군에서는 보건소가 사실상 관내 중앙의료기관의 역할을 합니다. 변원용 고성군 보건소장은 “고성군 보건소는 방문보건사업이라던가 방역사업도 하지만, 무엇보다 진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 건강검진도 보건소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고성군 보건소 이용자 수는 다른 시·군보다 인구대비 많은 편인데, 하루에 50명 정도가 진료를 본다고 합니다. 제가 고성군보건소에 취재를 나갔을 때도, 보건소 진료가 시작하는 오전 9시 전부터 환자 여러명이 미리 와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일들도 자주 벌어집니다. 지난 7월 18일 오전 10시 5분. 강원 고성소방서에는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고성군 간성읍 광산리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50대 노동자가 갑자기 심정지로 쓰러졌는데요. 119대원들은 13분만인, 10시 18분에 현장에 출동했지만 그로부터 1시간 가까이 지난 11시12분에서야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환자는 결국 숨졌습니다.
    [탐정M] 당신의 집은 병원과 얼마나 가깝습니까
    촌각을 다투던 위급한 환자가 왜 이리 늦게 병원에 도착했을까요. 고성에는 응급의료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성에서 발생한 환자들은 응급의료시설을 갖춘 인근 속초의료원이나 강릉아산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는데요. 차로 속초의료원까지는 30~40분, 강릉아산병원까지는 1시간 이상 걸립니다. 이 50대 노동자도 그날 속초의료원에 이송됐지만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고성소방서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성 관내에서 이런 심정지 환자는 적어도 매달 3명씩은 발생하지만 목숨을 살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강원 고성소방서 119구조대에서 일하는 김민수 소방교는 “병원과의 먼 거리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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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천명당 의사 수가 1명이 안되는 지자체는 46곳

    관내에 서울대학교 병원이 있는 서울 종로구는 인구 천명당 의사 수가 16.29명으로 고성군과 비교 했을 때 천명당 의사수가 36배 넘게 차이 납니다. 면적은 강원 고성군이 서울 종로구보다 30배 가까이 넒은 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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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처럼 인구 천명당 의사수가 1명이 안되는 지자체는 전국에 46곳이 있습니다. 강원 양양군이 인구 천명당 0.47명으로 고성 다음으로 의사 수가 적었고, 충북 단양군 0.65명, 강원 인제군과 충북 증평군이 0.67명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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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 수가 적은 지방자치단체 가운데는 고성처럼 고령화율이 높은 지자체가 많습니다. 응급 상황 발생 확률은 더 높음에도 의료적 대비는 취약한 것이죠. 실제 지난해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김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강원 영월군, 정선군, 평창군이 속한 강원 영월권의 응급사망비는 2.09로,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가 포함된 서울 동남권 응급사망비 0.85의 2.5배에 달했습니다.

    응급사망비는 나이와 성별 등 인구 특성과 질병의 중증도를 반영해 예측한 사망자 수에 견준, 실제 사망자 비율을 뜻하는데요. 쉽게 풀어보자면, 강원 영월권의 경우 100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실제는 그보다 2배 넘게 많은 209명이 사망했고, 서울 동남권은 100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실제 그에 못 미치는 85명만 사망했다는 뜻입니다. 결국 각 지역이 의료기반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사망할 환자도 살게 되고 생명을 건질 수 있던 환자도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의료 불균형 해소는 난제, 그래도 풀어야할 과제

    지금의 지역 간 의료 불균형 문제가 마냥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의사들은 당연히 손님이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병원을 개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여러 가지 삶의 기반이 잘 갖춰진 대도시에서 일하기 원할 것이고요.

    그러나 당연하다며, ‘치료 받을 권리’라는 기본권을 시장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수지가 맞지 않아 지방에 병원을 열 수 없다면, 의사들이 선호하지 않아 지방에서 일하지 않으려 한다면, 국가가 예산을 투입하고 유인책을 내놓아서라도 지역 간 의료불균형 문제를 해소해야 합니다.

    물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지역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처우는 서울의 의사보다 높습니다. 아무도 안 오려고 하니 돈을 더 주고서라도 오게 하는 거죠. 그래도 지역에서의 의사 채용은 쉽지 않습니다. 속초, 고성, 양양, 인제 등 강원도 4개 시군에는 분만을 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 있지 않아, 임산부들이 강릉의 병원들로 ‘원정출산’을 가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원도 4개 시군이 예산을 분담해 속초의료원에 분만시설을 갖춘 산부인과 개설을 준비 중인데, 당초 산부인과 전문의 3명을 채용하려 했으나 겨우 2명만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한 명을 더 채용해야 원활한 산부인과 운용이 가능하지만, 채용난을 핑계로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우선 2명의 전문의로 다음 달 산부인과를 개설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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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셈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게 의료 불균형 문제입니다. 때문에 정부와 의사단체가 대치할 것이 아니라 머리를 맞대 지혜를 모으는 게 절실합니다. 함명준 강원 고성군수는 저희 취재진과 만나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손도 못 써보고 주민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들을 보면서 군 행정책임자로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탐정M] 당신의 집은 병원과 얼마나 가깝습니까
    그러면서, “하루 속히 정부와 의사단체와의 현명한 방안을 도출해달라”고 호소했고요. 정부와 의사간 합의서에 서명하기도 전에 의사들 내부에서 반발이 쏟아졌습니다. 쉽지 않아 보이지만 외면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의료취약지 주민들은 지금도 아픈 몸을 이끌고 ‘원정의료’를 떠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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