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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M] "신생아에게 '교육'한다"는 산부인과… 문제제기한 직원은 고소당했다

[탐정M] "신생아에게 '교육'한다"는 산부인과… 문제제기한 직원은 고소당했다
입력 2020-09-14 09:55 | 수정 2020-09-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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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신생아에게 '교육'한다"는 산부인과… 문제제기한 직원은 고소당했다
    ‘아기 포개기’에 ‘셀프 수유’까지

    “신생아 한 명이 울면 다른 아기들도 덩달아 우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시끄럽다고 아기들을 인큐베이터에 넣어요. 방음이 잘 되기 때문이죠. 결국 아기들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땀 흘리다 지쳐 잠들었어요.” - 간호조무사 A씨

    경기도 김포의 한 산부인과에서 일했던 전직 간호조무사 3명의 증언은 모두 비슷했습니다. 산부인과 신생아실 간호조무사들이, 우는 아기들을 1인용 인큐베이터에 넣고 잠들 때까지 방치했다는 겁니다. 한 직원은 이런 ‘학대’ 행위를 ‘교육’이라고 부를 정도로 거리낌이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전직 직원들은 “많으면 3명까지 인큐베이터에 넣었다”면서 “이런 지시를 거부하면 신생아실 팀장과 몇몇 직원들이 배척했다”고 말했습니다.
    [탐정M] "신생아에게 '교육'한다"는 산부인과… 문제제기한 직원은 고소당했다
    올해 1월과 봄쯤에 신생아 두 명이 동시에 황달 치료를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치료 기기가 하나기 때문에 황달 증상이 있는 아기가 둘 이상이면 당연히 교대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병원 신생아실에선 그렇게 하면 황달 수치가 천천히 내려가 퇴원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좁은 요람에 아기 둘을 함께 넣었다고 합니다.

    실제 올해 1월에 찍힌 사진을 보면, 요람이 얼마나 좁은지 아기들이 말 그대로 포개진 채 누워 있습니다. 보통 황달 치료는 하루 정도 걸린다고 하니, 말도 못하는 신생아들이 이 작은 곳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물론 이렇게 면역력이 약한 아기들을 붙여 놓으면 전염병이 옮을 위험성도 높아집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 병원에선 질식사를 일으킬 수 있는 이른바 ‘셀프 수유’도 수시로 이뤄졌습니다. 태어난 지 이틀째 되는 날부터 누워 있는 아기들 입에 젖병을 꽂고 알아서 분유를 먹게 한 겁니다. 빠는 양보다 많은 분유가 나오기 때문에 아기들은 자주 ‘켁켁’댔고 또 분수처럼 토했다고 합니다.

    ‘셀프 수유’는 이미 그 위험성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폐기되긴 했지만, 2013년에 산후조리원을 대상으로 '셀프 수유' 처벌 조항을 신설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병원 신생아실 간호조무사들은 “안아주면 손 탄다”는 이유로 무책임하게 아기 입에 젖병을 꽂았다고 합니다. 신생아실은 면회 시간을 외에는 커튼으로 가려졌기 때문에 부모들은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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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제 얘길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위에다 알려도 바뀌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돌아온 건 괴롭힘이었습니다. (..) 겁 없이 혼자 덤비며 아무도 제 얘길 들어주지 않던 시간들과 정직함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짓밟히던 날들을 생각하면 정말 외롭기도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보도 이후, 이 산부인과의 전직 직원 A씨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A씨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상급자를 비롯해 병원장에게까지 신생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시정을 요구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또 “경찰서에 증거 사진을 들고 ‘아동학대’ 신고 상담을 받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신고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했습니다. 보건소에서는 “코로나 관련 민원만 접수 받는다”는 말을 듣고 제대로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고,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공익제보 핫라인’과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의 문도 두드렸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증거 사진과 함께 내부 직원으로서 증언까지 했었는데도 진지하게 들어준 곳은 없었습니다. 결국 A씨가 피해 산모 중 1명에게 병원에서 벌어진 일을 알리자, 병원측은 오히려 이 직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심지어 경찰과 보건소는 이런 의혹의 일부를 사실로 확인하고도 제대로 된 조사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병원과 관련된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CCTV를 통해 ‘셀프 수유’가 있었다는 걸 확인했지만, 의료법에 이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수사하지 않은 겁니다. 마찬가지로 보건소도 같은 이유로, 정식으로 조사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병원장은 인큐베이터에 아기 둘 넣는 게 법적으로 문제되는 건 아니라고 밝혔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던 겁니다. 결국 보다 못한 전 직원들은 ‘아동학대’ 혐의로 병원장과 신생아실 간호조무사 일부에 대해 원곡법률사무소를 통해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의료사고 '은폐시도'도 있었다”
    [탐정M] "신생아에게 '교육'한다"는 산부인과… 문제제기한 직원은 고소당했다
    첫 보도 이후, 제보가 잇따라 들어오면서 병원의 추가 의혹도 드러났습니다. 앞서 전직 직원들은 인터뷰에서 “아기들이 수술 분만 과정에서 상처가 나도 숨겼다”고 면서 사진도 보여줬었는데, 첫 보도에선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보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증언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 겁니다.

    지난해 2월에 태어난 한 신생아는 제왕절개 과정에서 눈 위쪽 피부에 상처가 났습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깊은 상처였지만 주치의와 병원장은 이를 바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출산 직후에는 속싸개에 상처 부위를 교묘히 가렸고, 이후에는 반창고를 계속 붙여 놓은 겁니다.

    아기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가벼운 스크래치’라고만 설명했지만, 출산 3일째까지 반창고가 붙어 있는 게 이상했다”고 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병원 측을 추궁했고, 주치의는 ‘메스’에 의한 상처라는 사실을 실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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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도 모르는 사진”이라던 병원장, 지금 입장은?

    첫 취재 당시, 증거 사진에 대해 “출처도 모르는 사진”이라고 잘라 말했던 병원장. 이후 병원 마크를 근거로 다시 묻자 “병원에서 찍은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도 “허언증에 걸린 퇴사 직원이 꾸민 일”이라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병원장은 “그 직원이 연출한 사진일 것”이라며 모든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이 CCTV를 통해 셀프 수유 사실을 확인하고 간 상황에서도, “CCTV 한달 치를 확인했지만 인큐베이터나 황달 치료기에 아기 둘 넣는 장면도, 셀프 수유 장면도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전직 직원이 이런 문제를 보고한 적이 있다고 증언한 것과 관련해선, 병원장과 보고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상급자는 모두 “보고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9일 첫 보도를 한 이후, 병원 측은 새롭게 제기된 의혹에 대해 묻는 취재진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한 산모가 지난 2월에 찍은 사진 속에 인큐베이터에 아기 2명이 들어가 있는 사진이 추가로 나왔는데도, 이에 대한 질문에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지난해 2월 있었던 의료 사고 은폐 시도에 대해서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병원장은 “의료사고가 나면 산모들이 모를 수 있겠냐”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병원장은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데, 먼저 “일부 언론에 보도된 사실과 관련하여 의료진은 지시하거나 묵인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인큐베이터에 ‘신생아 둘 포개기’라고 보도된 사진은, 쌍둥이 아기 둘이 인큐베이터에서 나란히 치료받는 모습의 사진으로, 산모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전직 직원이 악용했다”며 “분만이 동시에 일어난 경우에는 체온 유지 및 산소 공급을 목적으로 둘을 넣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병원장의 주장대로 필요할 경우 쌍둥이가 한 인큐베이터에 치료를 받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 병원의 경우는 신생아들이 울면 시끄럽다는 이유로 동시에 집어넣곤 했다는게 전직 직원들의 설명입니다. 병원장은 분만 시 상처가 났던 경우에 대해서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얘기하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었으며, 설명이 미흡했던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황달 동시 치료’와 ‘셀프 수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남은 과제는 '의료법 개정'

    첫 보도 다음날, 경기 김포경찰서는 제기된 ‘아동 학대’ 의혹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경찰은 “내사 단계로, 제기된 의혹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포시도 산부인과 신생아실과 산후조리원에 대한 전수 점검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실효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산후조리원의 경우 ‘셀프 수유’ 금지 지침은 있지만, 병원의 경우에는 그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김포시 관계자는 “병원에 대해선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산후조리원에 적용되는 지침을 준수해달라고 요청할 뿐 강제하긴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영유아 포개기'든, '셀프 수유'든 병원에서 일어날 거라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렇지만, 더 황당한 건 개별 행위에 대해 수사기관이나 보건소가 조사하고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일 겁니다. 예전에 '셀프수유' 금지 등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되긴 했었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습니다.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서야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아동 학대' 수준의 병원 운영을 막기 위해선 결국 국회가 나서야합니다. 희망적인 소식이 있습니다. 산부인과가 위치한 곳을 지역구로 둔 박상혁 국회의원은 산후조리원과 병원 신생아실 등에서 ‘영유아 포개기’와 ‘셀프 수유’ 등의 행위가 발생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이번주에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황당한 병원 운영이 더 이상 없도록 이번엔 꼭 법안이 통과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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