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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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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M]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을왕리 만취운전 사고' 취재수첩

[탐정M]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을왕리 만취운전 사고' 취재수첩
입력 2020-09-16 11:39 | 수정 2020-09-1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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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을왕리 만취운전 사고' 취재수첩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씁니다

    을왕리 만취운전 사고가 벌어진 새벽부터 가해자의 구속까지, 일주일간의 취재수첩과 노트북 폴더를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목격자와 주변인을 수소문했고, 많은 분들이 취재를 도와주신 덕분에 여러 증언과 당시 정황이 담긴 영상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알면 알수록 늘어만 가는 것은 의문점들이었습니다. 음주 차량이 오토바이를 들이받은, 어찌 보면 굉장히 간결한 사건사고였지만, 쉬이 납득되지 않는 행적과 진술이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명백하고 엄중한 사실도 있었습니다. 바닷가를 놀러온 관광객들에게 치킨을 대접하며 성실히 살아온 50대 가장이 숨졌습니다. 숨진 치킨집 사장의 가족은 "가정이 파탄났다"고 호소했습니다. 엄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벌써 60만 명에 육박했습니다.
    [탐정M]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을왕리 만취운전 사고' 취재수첩
    "동일 신고건은 없었습니다"‥듣고도 안 믿겼습니다

    사고가 벌어지면 가장 먼저 사건기자가 물어보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신고시각, 인명피해, 그리고 신고자가 누구인지입니다.

    이번 사건은 첫 취재부터가 이상했습니다. 인천소방본부는 신고자가 목격자 한 명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사람이 쓰러진 것을 발견했다'는 다급한 목소리였고, 분명 지나가던 목격자인 듯 했습니다. 소방본부는 '이 외에 동일 신고건은 없었다'고 못박았습니다.

    하지만 이 목소리가 '목격자인 척하는 가해자'일수도 있는 상황. 더욱 명확한 사실확인이 필요했습니다.

    만약 가해자들이 정말 신고를 안 했다면? 사고를 내 놓고도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신고조차 안 한 가해자들‥ 사건이 커지겠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탐정M]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을왕리 만취운전 사고' 취재수첩
    "그 신고 저희가 했는데‥가해자들은 변호사부터 찾아"

    수소문 끝에 최초 목격자를 만났습니다. 당시 블랙박스 화면에서 앞장서 교통정리를 하며 2차 사고를 막아냈던 그 남성입니다.

    목격자 일행은 박살난 오토바이를 보고 다급히 119에 신고했습니다. 그러니까, 119 신고자는 실제로 목격자 한 명뿐이었던 겁니다.

    이들은 역방향으로 놓여 있는 벤츠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벤츠가 피해자를 도와주려고 멈춰서 있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벤츠의 앞부분이 심하게 파손되고, 앞번호판이 뒤에 떨어진 것을 보고는 사고 당사자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목격자는 119 신고하랴 차량 통제하랴 쉴새없이 뛰어다니고 있는데, 벤츠 차량에서는 아무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목격자 일행이 확인해보니 가벼운 부상조차 입지 않은 남녀가 차량 안에서 대화만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차에서 내린 것은 그로부터 6분 뒤, 구급대원이 다 도착했을 즈음이었습니다. 혼신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벌이고 있는 구급대원에게 다가가서는 '역주행을 한 사람이 누구냐'고 술에 취해 따져 물었습니다.

    목격자들이 가해자들과 변호사의 통화 내용을 들은 것도 이 즈음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앞뒤가 안 맞는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OOO 변호사님이시죠' 라고 또렷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동승자 남성은 운전자 여성에게 전화를 바꿔줬고, 여성은 변호사에게 범죄 사실을 비교적 명료하게 말했다고 목격자는 전했습니다.

    이후 운전자 여성은 국선 변호인을, 동승자 남성은 회사 사내변호사를 대동하고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너, 합의금 낼 능력 안 되잖아"‥일행 간 회유 정황까지

    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경찰 조사 단계에서, 이들 일행이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 위해 말 맞추기와 회유를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수사 사흘 째, 운전자 여성의 지인이 경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동승자 남성 측에서 자꾸 만나자는 연락이 온다"는 겁니다. 동승자 측은, 일행이었던 여성을 통해 지속적으로 운전자 여성에게 회유성 문자를 보냈습니다.

    문자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이런 사건은 무슨 각오를 해서라도 (합의하기 위해) 유족들한테 먼저 가야 한다"며 "너는 합의금 낼 능력이 안 되니, 동승자 오빠가 민사상의 '합의금'을 다 내주겠다"고 회유를 합니다. 그러면서 "동승자 오빠가 (음주운전 방조로) 입건되면 너를 못 도와주니 사건을 쉽게 가자, 오빠가 도와준다고 할 때 협조 좀 하자"고 재촉합니다.

    이에 대해 운전자 여성은 "대리운전을 부르자고 권유했지만 동승자가 '네가 운전하라'고 말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서로 책임을 넘기려 하는 건데, 이 역시 경찰 수사에서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져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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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을 못 쉬겠다"며 세 차례 병원行‥사망사고 내고도 '귀가 조치'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게 된 가해 여성,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유치장에 입감된 뒤에도 경련은 계속됐습니다. '숨을 못 쉬겠다', '머리가 아프다'며 가해 여성은 세 차례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조사가 시급했지만 경찰은 '피의자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라'는 지침에 따라 귀가 조치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두고 인터넷에서는 구속을 피하기 위해 변호사의 조언대로 행동한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 여성은 실제로 관련 병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적어도 꾀병은 아닌 셈입니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습니다. 이 여성이 사고 당일 혈중알코올농도 0.150%가 넘는, 좀처럼 보기 드문 수치가 나올 정도로 술을 마셨다는 사실입니다. 잠깐의 경찰 조사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으면서 정작 과음을 했다는 사실은 여성 측 주장의 신빙성을 스스로 격하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법원도 이 여성을 구속하면서 '건강 문제로 불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여성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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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잡고 2차 술판 벌이다"‥CCTV 추적으로 드러난 행적

    그렇다면 이들은 무슨 관계일까요. 어디서 왜 이토록 술을 마셨으며, 운전대는 왜 잡은 것일까요. 취재진은 의문을 풀기 위해 술판이 시작된 을왕리로 향했습니다. 해답 또한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을왕리 인근 상인들은 당시 정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고 당일은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고 있던 때였고, 때문에 밤 9시에 횟집에서 술을 마시던 관광객들을 전부 퇴거시켜야 했습니다. 이들도 다른 남녀 2명과 함께 식당을 빠져나왔습니다.

    밤 9시, 모두 4명의 일행이 향한 곳은 근처 편의점이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술과 안주를 사는 장면이 편의점 CCTV에 고스란히 찍혔습니다. 편의점 관계자는 "일행이 술을 사서 숙박업소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고 전했습니다.

    숙박업소를 찾는 일만 남았는데, 이 문제는 의외로 간단히 풀렸습니다. 당시 이들 일행이 숙소에서 워낙 크게 싸운 터라, 숙소 직원들과 투숙객들이 혹여나 싸움이 더 커지지는 않는지, 이들을 주시하고 있었던 겁니다.

    다툼이 벌어지자 일행 중 남녀 2명이 먼저 '집에 가겠다'며 숙소를 나갔고, 10분쯤 뒤 나머지 남녀 2명이 퇴실했습니다. 뒤따라 나온 일행은 콜택시를 불러 귀가했지만, 문제는 앞서 귀가한 남녀였습니다.

    MBC가 당시 CCTV 화면을 입수했습니다. 겉보기에는 술을 마시지 않은 듯 똑바로 걸어가는 여성이 향한 곳은, 다름아닌 벤츠 운전석이었습니다. 벤츠는 동승자 남성의 회사 법인 소유였습니다.

    차량이 잠긴 탓에 운전석 문은 열리지 않았는데, 그러자 남성이 다가와서는 스마트키를 이용해 차량 문을 열어줬습니다. 음주 상태를 알고도 차량 문을 열어준 것이기 때문에, 동승한 남성 역시 방조죄의 피의자로 입건됐습니다.

    곧이어 여성이 운전석에, 남성이 조수석에 탑승했습니다. 이들은 1분 정도를 가만히 멈춰서 있다가, 라이트를 켜고는 후진을 해 숙박업소 주차장을 빠져나갔습니다. 골목을 지나 큰 길로 접어들었고, 그로부터 불과 1분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중앙선을 넘어 달렸고, 마주오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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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평생 열심히 안 살아온 적이 없는 아빠"‥인근 상인들도 한숨만

    취재 결과, 숨진 치킨집 사장은 가해자 일행이 술판을 벌인 숙박업소의 바로 옆 건물로 치킨을 배달하는 길이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옆 건물을 방문한 손님은 주문한 치킨이 2시간째 오지 않자 치킨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도 받지 않아 답답해했다고 합니다. 다만 이 인물이 '배달의 민족' 앱에 항의 댓글을 남겼다가 삭제한 인물과 동일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인근 상인들은 '오랜 가족을 잃은 느낌'이라고 심정을 전했습니다. 숨진 치킨집 사장이 정확히 언제부터 을왕리에서 장사를 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상인들이 을왕리에서 가게를 열고 장사를 시작할 때, 이미 그 전부터 치킨집이 영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을왕리 '토박이' 사장님은 종종 다른 상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고단함을 달랬습니다. 어쩌면 경쟁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도 이웃 상인 모두가 사장님을 좋아했고, 소비자들의 업체 리뷰에는 그 흔한 악플마저 없었습니다.

    치킨집 사장의 딸은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청원을 올렸습니다. "아빠는 일평생 단 한번도 열심히 안 사셨던 적이 없었다"며 "가족을 한순간에 파탄낸 가해자들에게 최고 형량이 떨어지게 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적었습니다. 청원 당일 밤에 청와대의 답변 요건인 20만 명을 훌쩍 넘겼고, 김창룡 경찰청장은 직접 인천지방경찰청장에게 엄정 수사를 지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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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난 만취 여성에게 회사 차량 운전대를?‥끝나지 않는 의문

    인천지방법원은 7시간에 걸친 영장실질심사 끝에 가해 운전자인 33살 여성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 이른바 '윤창호법'이 적용돼 중형이 불가피한 만큼,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집에서 머물던 가해 여성은 구치소에서 경찰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경찰의 방침대로 '윤창호법'이 적용된다면 여성에게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내려질 수 있고, 아무리 적어도 징역 3년 이상의 형이 선고됩니다. 다만 최소 형량이 너무 낮아 걱정된다는 피해자 가족들의 호소는 새겨들을 대목입니다.

    조수석에 동승했던 47살 남성은 한 차례 조사를 마쳤고, 다시 소환될 예정입니다. 경찰은 다만 이 남성을 여성처럼 구속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지인의 지인' 관계로, 사고 전날 저녁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왜 처음 만난 만취 여성에게 회사 법인 차량의 운전을 맡겼는지 의문입니다. 남성은 "(왜 운전을 맡겼는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힌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인천 중부경찰서는 조만간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를 기소 의견으로 인천지검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MBC는 이들을 둘러싼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은 물론 최종적으로 어떤 형량이 선고되는지까지 꼼꼼하게 기록하고 끝까지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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