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이번 취재를 하면서 영화 해바라기 속 김래원 배우의 절규가 떠올랐다. 10년 동안 거의 한 가지 사업을 보고 달려온 작은 중소기업, 쇼핑·부동산·동영상·음악·뉴스 배포 등 손으로 일일이 꼽을 수도 없는 포털 업계의 공룡 '네이버'. 이 두 기업 간의 상표 분쟁 속에서 중소기업이 뼈저리게 깊이 느낄 감정을 정리하자 바로 딱 저 대사가 떠올랐다.네이버가 작년 '팬십'(Fanship) 서비스를 출시하자 한 중소기업에 축하 전화가 빗발쳤다.
중소기업의 이름은 디엘토. 2013년 '팬십'이란 이름을 상표로 정식 등록한 회사다. 중소 스타트업들은 하나의 사업을 목표로 목숨을 바쳐 일하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브랜드'는 '자식'과 다름없다. 주변인들은 이 중소업체 디엘토가 7년 전부터 '팬십'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네이버가 '팬십' 서비스를 시작하자 당연히 네이버와 제휴를 통해 함께 사업을 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 "어떻게 네이버와 공동 사업을 하게 됐냐"를 묻는 축하 전화에 디엘토 장준호 대표는 참담하고 막막한 기분이었다 한다.네이버로부터는 단 한 통의 전화도 메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K-POP 중소기업 디엘토는 2013년에 머물지 않았다. 계속해서 사업을 발전시키려 노력했고 네이버판 '팬십'이 나오기 1년 전인 2018년도에는 해외 기업의 투자를 받아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자체 '가상화폐'를 만들어 거래소에 상장도 했다. 그리고 이 자체 화폐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스타와 팬 간에 모든 스타 관련 상품이나 콘텐츠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계획과 백서도 발표했다. 그러나 2018년 가상화폐 시장이 혼돈에 빠졌고 디엘토는 사업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팬십'사업을 개편하기 위한 작업 중이었다."이름도 똑같은데 디자인까지 거의 똑같으니까…"
2019년 3월 네이버는 팬십 서비스를 시작하고 곧이어 상표권 등록을 했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 다른 부모의 품에 안겨있는 것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장 대표와 중소기업 직원들이 더 참담해 했던 건 바로 네이버 '팬십'의 디자인 때문이었다. 팬십이라는 이름도 똑같은데 로고와 보라색 계열의 그라데이션 디자인이 자신들이 보기에는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혹시 '디자인 까지 비슷해 보이는 건 우연인가'라는 MBC의 질문에 네이버는 보라색은 널리 쓰이는 색이고 인스타그램, 트렌비도 활용하고 있다고 답해왔다.가장 중요한 건 바로 사업 내용이다.
네이버의 팬십을 가입하려면 매달 수천 원에서 수만 원의 돈을 내야 한다. 특정 아이돌의 팬십을 가입하면 특별한 영상, 공연정보, 기념품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중소기업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2018년도에 홍보 자료와 백서를 통해 공개한 자신들의 '팬십' 역시 '팬'들이 자신만의 스타를 찾고 그 안에서 돈을 내고 스타의 상품과 콘텐츠를 이용하는 이 사업 개념은 네이버가 지금 하고 있는 팬십과 기본 골격이 동일하다는 것이다.억울함 알리고 싶었지만 일부 '언론사'는 보도를 거부했다.
장 대표는 설마설마 하면서도 네이버에서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나도 네이버는 연락이 없었고 그때부터 부랴부랴 법적 검토를 시작했다. 그러나 자체 법무실과 대형 로펌으로 무장한 거대기업에게 소송을 제기하고 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에서도 모두 만류했다고 한다. 고심하던 끝에 일단 지난 6월 장 대표는 네이버에게 직접 '상표권'을 침해당한 것으로 보인다며 입장을 달라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억울함을 언론을 통해 알리려고 했다. 그런데 접촉한 몇 개 언론사는 "네이버 관련 기사를 쓰기 어렵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 MBC에까지 제보가 온 것이다.
네이버의 답은 중소기업을 더욱 황망하게 만들었다.
네이버는 변리사를 통해 이메일로 답을 보내왔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상표권 등록 분야가 달라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브랜드 개편작업을 할 것이고 '팬십' 이름 변경도 고려하고 있다. 결정적인 답은 그 다음이었다.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건강과 사업번창을 기원한다"대체 얼마나 시간이 걸린다는 건지 MBC는 네이버에 직접 물었다. "올해 중에는 관련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이며 시일은 더 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중에 '시작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올해 중에 시작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 2013년부터 최근까지 이름을 만들고 디자인을 하고 상표를 등록하고 앱 서비스를 하고 가상화폐를 만들어 상장했다. 10명 남짓의 직원을 둔 중소기업은 이 팬십 사업에 40억 원이 들어갔다고 말한다. 네이버의 개편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 중소기업은 사실상 '팬십' 서비스를 포기했다.
네이버는 '팬십' 상표권이 이미 있던 것을 몰랐을까?
먼저 답을 알려드리자면 네이버는 '알고 있었다'. 본인들도 '팬십' 상표권 등록을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는 이미 시장 조사를 통해 등록하고자 하는 상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이다. 네이버도 상표 등록 전 이미 중소기업의 팬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2013년도에 팬십 상표를 출원한 중소기업도 팬십이란 이름을 만들기 전에 나왔던 브랜드들을 조사해보니 상표 등록이 되어 있거나 다른 업체가 쓰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팬십'이란 이름을 짓는데만 1년이 걸렸다고 한다. 중소기업이 이럴진데 네이버는 더욱 더 잘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네이버가 믿는 것은 무엇일까?
실제 위에서 언급했듯 중소기업 디엘토는 '어플리케이션'으로 2014년도에 상표 등록을 했고 네이버는 '문구, 완구, 사이버머니 발행 업 등 84개 상품으로 2019년도에 상표 등록을 마쳤다. 사업 영역은 둘 다 K-POP으로 동일하지만 중소기업이 온전하게 다양한 사업 분야에 대한 상표권 등록을 미리 못했던 것을 네이버는 '법적으로' 매우 잘 알고 준비한 것이다. 그래서 상표권 분쟁이 법정에 갔을 때 네이버는 중소기업이 등록하지 않은 사업부분으로 상표 등록을 했고 우리가 등록한 상표권 내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고 이는 '법적으로는' 맞는 주장이다. 법적으로 네이버가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네이버가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거대기업 네이버에게 '지적재산권에 대한 감수성'을 묻는다.
디엘토 장준호 대표는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다. 그는 상명대학교에서 모바일콘텐츠, 소프트웨어와 인문학 등에 대해 가르치는 대학교수다. 학생에게 디지털의 미래를 가르치는 교수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겪으며 힘들면서도 '운명'이었다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다시 미국의 반독점법을 공부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정치 활동을 보장해야 하고 자본주의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시장지배력 가진 기업을 감시하여야 한다" 장 대표는 미국 판결문에 새겨진 이 문구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결국 학교를 졸업하고 스타트업을 시작할 학생도 있고 대기업에 취직할 학생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보여줄 것인가 장준호 대표 아니 장준호 교수는 이런 말로 끝을 맺었다.
"네이버와 같은 시장지배력 가진 기업들이 이런 지적재산권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저희 같은 작은 회사들만 희생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역시 희생자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네이버와 싸운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의미를 언론을 통해 알리고 싶었습니다"*MBC 취재가 시작되자 네이버는 이사급 임원을 중소기업에 보냈다. 이 임원은 "경영진이 이 분쟁을 잘 몰랐다. 정확한 사태 파악을 위해 왔고 경영진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네이버 경영진에 어떻게 보고했고 MBC의 보도를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네이버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할지 주목한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에 대한 협의가 아니라 대기업 네이버가 가진 지적재산권에 대한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낼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이버의 그 결정은 스타트업을 하고 있고 앞으로 스타트업에 뛰어들 젊은이들에게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고은상
[탐정M] "거대기업 '네이버'에 묻습니다"
[탐정M] "거대기업 '네이버'에 묻습니다"
입력 2020-09-19 16:29 |
수정 2020-09-19 18:13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