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방, 다방도 허위매물이 많구나"
최근 새 직장을 얻어 수원에서 서울로 이사 오려던 지인이 단체 대화방에 보낸 메시지입니다.
부동산 앱을 통해 집을 구하려는데 허위매물이 많아 쉽지 않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자 단체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거(허위매물) 진짜 많음. 그냥 살 동네로 직접 가서 부동산 투어하는 게 제일이야"
"아예 없는 물건 올리던데"
"방 있다고 하고 약속 잡으면 다른 거 보여주는 경우가 많음"
대화창은 금세 부동산 성토장이 됐습니다.
부동산 허위매물 문제, 과연 그 대화방에 있던 사람들만 겪은 일일까요?
직접 집을 구해보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부동산 앱 <다방>에 따르면 지난해 허위매물 신고 처리율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부산, 그러니까 접수된 신고 중에 허위매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매물이 부산에 가장 많았다는 겁니다. 서울에서는 관악, 구로, 금천, 동작 이른바 관악 4구가 61.8%로 단연 1위였습니다.
관악 4구 중에서도 대표격이라는 '허위매물의 성지', 관악구로 향했습니다.
과연 '성지'답게 건물마다 부동산 간판이 빼곡했는데요, '소문만 듣고 갔다가 허탕치면 어쩌나' 했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찾아가는 부동산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저를 낚더군요…
#"부동산 사무실에 실적 스티커..?"
부동산 앱에서 보증금 300만 원에 관리비 포함 월 35만 원에 살 수 있는 집을 찾았습니다. 연식이 오래됐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사진상으로 깔끔한 내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방이 있다"는 말에 부동산까지 찾아갔습니다.
신림역을 조금 지나 모퉁이 상가에 있던 부동산.
문을 열자마자 테이블 한구석에 다닥다닥 앉아있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직원들이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20대 초중반쯤 보이는 모습에 순간 '중개사 자격증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벽 한쪽에 스티커 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가 누가 실적을 많이 냈나'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동그라미 모양 스티커가 직원 이름 위에 세로줄로 쌓여있었습니다. 마치 보험왕을 뽑듯 말이죠.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습니다.
관리비 포함 35만 원이라던 방은 37만 원에서 38만 원, 집주인 마음에 따라 40만 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동산 직원은 정해진 대사를 읊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방이랑 비슷한 느낌으로 다른 방 준비해놨으니까 일단 한번 보시죠"라고.
포기할 수 없죠.
앱에 올려둔 다른 집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부동산이 올려놨던 예닐곱 개의 집 모두 보증금 300에서 35만 원을 벗어나지 않았거든요.
그러자 부동산 직원은 뭐라고 했을까요?
"주소가 없다."
있는 방을 낮은 가격에 올려놓은 건 그나마 양반이었습니다.
실존하지도 방을 '풀옵션' '희귀매물'이라며 홍보하다니요…
하지만 직원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며 "어쨌든 찾아온 다른 물건들이 있으니 보시라"고 얘기했습니다.
더 볼 것도 없이 부동산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흰색 BMW
이번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27만 원짜리 방입니다.
널찍한 크기에 신림역 도보 5분!! 서울에 이런 싸고 좋은 방이 남아있었을까요?
부동산 직원은 휴대전화기로 지도를 전송해주며 길가에 서 있으면 자신들이 태우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문득 동료 PD가 해준 조언이 생각나더군요.
"허위매물 성지 가면 젊은 사람들이 다 흰색 BMW 같은 거 태우고 집 보러 다녀요"
그런데 순간 멀리서 저를 향해 깜빡이를 켜고 다가오는 차.
진짜 흰색 BMW였습니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그 직원은 저를 태우자마자 대뜸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죄송한데 아까 문의하신 방이요… 거기 집주인이 바뀌어서요."
황당한 설명에 재차 묻자 직원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1. 사실 얼마 전에 집주인이 바뀌었고
2. 기존에 살던 세입자가 도중에 나가게 돼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고 있었다.
3. 그런데 조금 전에 연락이 와서 세입자를 안 구해도 된다고 하더라
하필, 공교롭게, 조금 전에!!! 집주인이 그런 연락을 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부동산 직원은 역시 대사를 읊듯 "사실 제가 정말 좋은 물건을 구해왔다"고 하더군요.
가는 부동산마다 태연하게 저를 속이는 허위매물 업자를 겪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또 다른 부동산 직원은 아예 대놓고 자신들이 올린 방이 허위매물이라고 얘기하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경쟁이 심하다 보니 전쟁터에 총 두고 갈 수는 없지 않느냐. 마치 인스타그램에 풀메이크업 사진 올리는 거랑 비슷하다."
그 와중에 만난 정직한 부동산 사장님을 통해 허위매물 실태를 더 들을 수 있었는데요,
경기도에 있는 집을 서울에 있는 방이라고 올리는가 하면 이미 계약된 방을 남아있는 것처럼 홍보하기도 한답니다.
실제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속여 미끼를 던지는 건 예삿일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부동산 앱에 허위매물을 올려 세입자들이 찾아오게끔 끌어들이는 건데요, 취재 목적이었지만 부글부글 속이 끓더라고요, 제가 이 정도였으니 실제로 방 구하시는 분들은 어떻겠습니까.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 사이 온라인 부동산 매물 허위·과장 광고 681건을 적발했습니다. 해당 지자체에 통보해 과태료를 물릴 예정입니다.
위반하면 과태료는?
최대 500만 원!
이번이 지난해 8월에 이어 두 번째 단속인데요.
단속할 때 허위매물이 급감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늘어나는 모양새입니다.
사장님들, 안 그래도 방 구하기 힘든데 허위매물 좀 그만 올리시면 안 될까요?
▶ 관련 영상 보기 [엠빅뉴스] 부산에 있는 방인데 서울시 관악구?....허위매물 성지 체험기
사회
이지수F
[뉴스인사이트] 앱에는 있는 집, 가보면 없는 집…성지 다녀왔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앱에는 있는 집, 가보면 없는 집…성지 다녀왔습니다
입력 2021-03-06 07:56 |
수정 2021-03-0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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