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 만화가 있습니다. 99년도에 출간된 '맛의 달인 25권'의 한 장면입니다. 해당 장면에는 '이탈리아에서 수입된 스파게티에서 고농도의 방사능이 검출됐다'며 우려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방사능 불안을 묘사한 겁니다.
만화가 게시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체르노빌 사고에는 '유럽산 농산물과 식품 수입을 금지' 하며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으면서, 이제는 자신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주변국의 불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입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MBC 팩트체크 '알고보니'팀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직후부터 1996년도까지 10년 동안 일본 4대 일간지(아사히, 마이니치, 요미우리, 니혼게이자이)에서 '체르노빌(チェルノブイリ)'이 들어간 약 4,000개의 기사를 검토해, 당시의 일본의 '내로남불' 행태를 팩트체크 했습니다.
체르노빌 사고 나자, 日 매일 '전투기' 출격
체르노빌 사고 직후, 일본은 하늘에 전투기를 띄워 방사능 먼지를 채취했습니다. '방사능 먼지가 제트기류를 타고 일본 상공에 떠내려 올 가능성이 있다' 면서 취한 선제적 조치입니다.
일본 정부는 (원전 오염수와 방류 계획에 대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해 정보 공개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ソ連は原?事故の速やかな情報公開を 衆院が全?一致で決議] (아사히, 86년 5월 8일)
(해석: 소련의 원전사고의 조속한 정보공개를 중의원의 만장일치로 결의)
[原?事故でソ連に情報公開求める ?院でも決議] (아사히, 86년 5월 9일)
(해석: 원전사고의 조속한 정보공개요구 참의원에서도 결의)
86년 5월 8일과 9일 양일간 일본의 의회는 구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해 조속한 정보공개를 '만장일치로 의결'했습니다. 직전 일본 도쿄에서 열린 G7+소련 정상회담에서도 "원전을 가동하는 모든 나라는 안전성을 확보해야 할 국제적 책임을 진다. 체르노빌의 경우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은 소련 정부는 주요 7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요청하는 모든 정보를 즉시 제공해야 한다"는 '원전사고성명'을 채택했습니다.
日 방사능 기준 강화, 유럽산 식품 '빗장'
원전 사고가 난 이후, 일본이 취한 조치는 검역 강화입니다. 이어 식품에 대한 방사능 안전 기준치를 강화합니다. 86년 10월부터 모든 식품의 세슘 기준치를 킬로그램당 370bq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유럽 연합 기준치에 비해 월씬 엄격한 수준입니다. 같은해 12월 유럽연합은 역시 세슘 기준치를 신설했는데 유제품의 경우 1,000bq, 기타 식품의 경우 1,250bq을 기준치로 삼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문제없이 수입되던 유럽산 식품들도, 이같은 강화된 기준에 의해 87년 들어서부터 통관절차에서 줄줄이 반환됩니다. 당시 방사능 기준치를 초과했다며 돌려보내진 유럽식품과 관련된 주요 일본 신문 기사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 유럽을 여행한 사람들의 수하물은 물론, 인체의 방사능 수치까지 측정했습니다. 88년 5월 1일 마이니치 신문은 '골든 위크 중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이 20만 명이 넘는다'며 '후생성이 2년 전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이 우려되는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하물 방사능 측정을 실시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식품의 방사능 기준을 강화하고 검역을 깐깐하게 하는 것은 국가가 취해야할 당연한 조치입니다.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도 후쿠시마 인근 해역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를 했지만, 일본이 내놓은 반응은 WTO 제소였습니다.
'체르노빌' 2년 후에도…日 방사능 측정기 '날개 돋친 듯' 팔려
체르노빌 사고 직후 일본에서는 개인용 방사능 측정기가 '날개 돋친 듯(飛ぶように)' 팔렸습니다.
88년 9월 3일 마이니치 신문은 요코하마의 한 업체가 개발한 방사능 측정기가 '사용법이 간단하고, 24시간 측정이 가능해' 체르노빌 사고 후 2년 간 307대의 방사능 측정기가 팔렸다고 보도했습니다. 사고가 난 지 2년 넘게 지난 뒤에도 일본 시민들 역시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인접’ 국가의 원전 사고과 오염수 처리에 불안감을 갖는 것을 뭐라 할 입장은 아닌 겁니다. 일본은 체르노빌과 8,000킬로미터가 떨어져 있고, 우리나라 서울과 후쿠시마와의 거리는 약 1,200킬로미터입니다.
?理府調査で原?不安が過去最高の86%に (마이니치 88년 1월 4일)
(해석: 총리실 조사, 원자력발전 불안 사상 최고치인 86%)
체르노빌 방사능으로 인한 일본의 불안감은 당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납니다. 88년 1월 4일 마이니치 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일본 '총리실' 조사 결과, '원자력 발전에 불안을 품는 사람이 사상 최고치인 86%'에 달했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은 이러한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해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쓰루가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에 이어, 재작년에는 체르노빌 원전에서 대형 사고가 일어나며 원자력에 대한 불안감이 증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방사능 생선회 먹게 됐다"…일본인들의 분노
일본인들의 체르노빌 불안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1993년, 러시아가 핵 폐기물을 일본 근해에 투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일본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ロシア核?棄物投棄 日本海、不信も“たれ流し” 漁民ら怒りあらわ (요미우리 93. 10. 18)
(해석: 러시아 핵폐기물 일본해에, 불신도 "방류" 어민들 분노 표출)
1993년 10월 18일 요미우리 신문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핵 폐기물 방류에 어민들이 '배신당한 느낌'이라며 분노합니다. 당시 외교 실장은 '핵 폐기물 방류가 사실이라면 러시아에 강력히 항의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방사능 생선회 먹게 됐다"는 말은 바다에 방사능이 퍼지는 것에 대한 일본인들의 우려가 얼마나 깊었는지는 보여줍니다.
1993년 러시아 핵 폐기물 투기의 파장은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 째 되는 해인 1996년까지 이어집니다. 당시 일본은 G7 회의를 통해 러시아가 과거 바다에 핵 폐기물을 투기한 것과 관련해 보리스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핵 폐기물의 바다 투기를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는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한지 10년 째 되는 해인 현 시점, "중국과 한국 따위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일본의 모습과 180도 다른 모습입니다.
최근 아소다로 일본 부총리는 "후쿠시마 오염수는 마셔도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결정하자, 찬성 여론이 과반을 넘는 등 일본 시민들 사이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누구보다 방사능에 민감해했고, 엄격하게 수입 식품을 규제하고, 핵폐기물의 해양 투기를 반대하던 일본인들의 이 모든 역사의 기록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내로남불'이란 말을 떠올릴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 글/구성: 이예슬
※ <알고보니>는 MBC 뉴스의 팩트체크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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