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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전준홍

[알고보니] 차별금지법이 '사회주의' 국가 만들까

[알고보니] 차별금지법이 '사회주의' 국가 만들까
입력 2021-06-29 16:24 | 수정 2021-07-2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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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보니] 차별금지법이 '사회주의' 국가 만들까

    '차별금지법' 국회 청원 10만 돌파

    ‘차별금지법’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법안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과 반대하는 청원도 각각 10만을 넘겼다. 국민동의청원을 계기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 법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법안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2007년 이후 여덟 차례나 발의가 됐던 법이다. 한국 안에서만 이슈가 되는 법안도 아니다. 법 제정에 대한 요구는 밖으로부터 들어왔다. 이미 국제기구인 유엔으로부터 9차례나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권고를 받았고, 우리에 앞서 35개 국가가 차별금지법(평등법)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 삶과 ‘밀접한’ 차별금지법

    차별금지법이 한 사회의 인권을 가늠할 국제적 기준인 셈이다. 선진국의 문턱을 두드리는 우리로서는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극단적인 비판이 아니라, 포괄적 차별금지가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세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종교계의 주장은 여전하지만, 최근 재계도 집단적인 반발에 나서고 있다. 기업의 자율 경영을 방해하는 ‘기업 옥죄기’ 법안이라는 주장이다. 해당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나름의 의의가 있다. 대다수 시민들의 삶은 기업의 경영활동, 즉 개인의 노동과 경제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알고보니] 석박사도 동일 임금?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282218_34936.html)
    [알고보니] 차별금지법이 '사회주의' 국가 만들까

    재계 '기업옥죄기' 반발 (뉴스데스크 화면)

    차별금지법은 매번 ‘차별 금지 항목’이 너무 ‘과하다’는 지적에 가로막혔다.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을 때에도 이러한 비판을 의식해 차별 금지 항목 20개 중 ‘성적 지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등을 포함한 7개 항목을 삭제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차별을 폭넓게 규정해야 한다는 게 국제 사회의 중론인데도 국내의 비판은 사그라지지 않는 비판을 어떻게 봐야 할까. 차별금지법을 일찍이 정착시킨 해외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차별금지 항목, 국가별로 다양

    국회 법사위에 회부된 차별금지법의 차별 금지 항목은 총 23개다. 성별, 장애, 인종, 나이, 학력, 고용형태 등이 항목에 포함된다. 국제적인 추세에 비추어 봤을 때 23개 항목은 광범위한 편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을 이미 도입한 35개 국가 상당수가 20개 내외의 차별 금지 항목을 명시한다. 벨기에와 체코의 경우도 한국처럼 23개 항목을 명시했고, 아이슬란드는 한국보다 많은 24개 항목을 올렸다. 스페인의 경우 19개의 차별 금지 항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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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나라별 차별 금지항목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차별 금지 항목은 각국의 사회 경제적, 역사적 배경과 떼어 놓을 수 없다. 어느 것이 과하고 덜 과한지는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국내의 경우 과거 아팠던 ‘병력(病歷)’에 따라 차별하지 말라고 정했지만, 벨기에의 경우 현재는 물론 ‘미래의 건강상태’까지 차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신분제 사회의 유습이 남아 있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가문이나 혈통’을 차별 금지 항목으로 명시했다. 또 크로아티아나 체코를 비롯해 상당수 국가는 우리 법안에는 없는 ‘노조 가입 혹은 활동 여부’로 차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징병제가 도입된 에스토니아에서는 ‘군 복무’를 근거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스페인은 ‘회사 내 다른 직원과의 가족관계’를 차별 금지항목에 올렸다. 즉 성별, 나이, 모성, 인종 등 보편적인 항목 외에 각 나라에선 차별적 요소가 심한 것을 저마다 금지항목에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학력·고용형태’ 차별 심각

    우리나라 교육부가 최근 차별 금지 항목에서 제외해달라는 의견을 낸 ‘학력’은 우리나라 법안에만 있다. 학력은 선전척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에 차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고용형태’ 또한 우리나라에만 있긴 하다. 다만 고용 형태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는 ‘사회적 지위’라는 항목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학력과 고용형태가 눈에 띄게 우리 법안에 들어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학력과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이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대학 나와야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될 만큼 학력에 따른 차별은 우리 사회에서 공고하다. 국가인권위의 2019년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차별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21%가 학력·학벌을 들었고, 17%가 출신 지역을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고 답했다. 고졸자와 대졸자의 월평균 임금 차이는 141만 원이다(고용노동부, 2019년).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는 월 152만 원이다(통계청, 2020년).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 수준은 2013년 56.2%에서 2020년 52.9%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인해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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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력-고용형태 따른 임금 격차 커져

    ‘무조건적인’ 차별 금지 아냐

    무엇보다 차별금지법이 ‘차등’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앞선 기사에서도 밝혔지만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면 차등(차별)대우가 용인이 된다. 무엇을 ‘합리적인 차등’으로 볼 수 있을지는, 해외 사례를 참고할 때, 각국의 다양한 사회 경제적 배경이나 국가별 관행을 고려해 결정됨을 알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도입된다고 해서 모든 차별 금지 항목에 대해 일괄적인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실제로 차별 금지 조항 중 ‘나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논쟁적이었는데 판결은 국가별 관행에 따라 달랐다. 독일과 스웨덴에서는 공공 부문 직원의 유급 휴일 일수를 업무의 숙련도가 아니라 ‘나이가 많을수록 더 많이 주는 것’이 차별금지법 위반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이에 스웨덴의 ‘옴부즈만’은 차별이 아니라고 봤다. 노인 근로자들이 퇴직급여 혜택을 받을 때까지 계속 일하게 하려면 나이에 따라 돈을 받는 휴일을 많이 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 연방노동법원은 같은 이슈에 대해 차별이라고 봤다. 고령자의 ‘필요’에 의해 휴일이 증가한 게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사회주의” 논쟁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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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생활의 차별, 노키즈존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비용’이 든다. 학력에 따라 업무를 세분화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도 재설계해 해야 할 것이다. ‘노키즈존’도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차별로 간주될 수 있다. 부담이 되고 성가신 일이다. 그래서 반발도 나오고 우려도 제기되는 것이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나라에서도 같은 내홍을 겪었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처럼 ‘기본법’적 성격을 띠는 법이다. 차별금지법이 국가를 ‘사회주의로 만드는’ 힘은 없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터키 등 앞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도입한 35개 나라의 사례가 이를 말해준다. 이제, 차분히 차별금지법을 들여다볼 때다.

    (글/구성: 이예슬)

    ※ <알고보니>는 MBC 뉴스의 팩트체크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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