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사회
기자이미지 전준홍

[알고보니] 여가부 폐지론 '불똥' 맞는 성인지 예산?

[알고보니] 여가부 폐지론 '불똥' 맞는 성인지 예산?
입력 2021-07-18 10:03 | 수정 2021-07-22 16:09
재생목록
    [알고보니] 여가부 폐지론 '불똥' 맞는 성인지 예산?

    '성인지 예산' 비판하는 언론 보도

    여성가족부 존폐론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각자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들도 제시되고 있다. ‘성인지 예산’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국가 기관이 나라 살림을 축내고 있는 것만큼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일도 없다. “여가부가 35조원에 달하는 성인지 예산을 집행하는데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는 주장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이다. 이같은 주장은 온라인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인과 언론의 인용을 통해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 주장이 사실일까.

    성인지 예산 대신 ‘신무기’ 사는게 낫다?

    비판의 요지는 35조 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성인지, 즉 여성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7조 원이라는 ‘도쿄 올림픽을 두 번 치를 돈’이며, ‘20조 원대인 나사(NASA) 예산보다 많고, 국방예산과 맞먹는 돈’이라 비판이 나온다. 이 돈을 차라리 ‘신형무기를 사는데 쓰는게 낫다’거나 ‘4대강 사업은 현장이라도 남는데 성인지 사업은 사라지는 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즉 정부가 35조 원을 ‘눈먼 돈’처럼 쓰고 있다는 비판이다.
    [알고보니] 여가부 폐지론 '불똥' 맞는 성인지 예산?

    정치인이 실어나르는 가짜 정보

    이는 성인지 예산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예산’이라는 말이 붙어 있어, 성인지 사업을 벌이기 위해 새로 책정된 예산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성인지 예산은 ‘새롭게 투입되는’ 돈이 아니다. 정부의 각 부처와 지자체에서 기존에 하던 사업을 성인지 예산으로 다시 분류해 올리는 것이다. 정부 사업이 양성평등에 효과가 있는지를 따져, 효과가 있겠다 판단되면 예산 사업이라고 신고하는 것이다. 같은 예산을 새롭게 ‘가르마’를 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인지 예산은 지난 2009년에 도입된 제도로, 국가의 재원이 보다 성평등한 방식으로 사용되도록 유도하려는 취지다. 2015년 기준 OECD 회원 가운데 12개국이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여가부의 성인지 예산, 35조 원의 2.5%

    여가부가 주무르는 돈도 아니다. 예산은 대개 보편적인 주거, 복지 사업으로 각 정부부처에 골고루 퍼져 있다. 올해 기준, 38개 정부부처 304개 사업이 해당된다. 가장 많은 성인지 예산 사업을 신고한 곳은 ‘보건복지부’다. 11조 4천억 원으로 35조원의 3분의 1에 달한다. 그 다음은 ‘중소기업벤처부’로 9조 4천억 원이다. 다음이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순이다. 이들 4개 부처의 성인지 예산 사업이 31조 원에 달한다. 여가부는 8천 8백억 원을 쓴다. 전체 35조원의 약 2.5% 수준이다. 앞서 말한대로 별도로 책정되는 돈이 아니기 때문에, 여가부 예산 1조 2천억 원에 모두 포함되는 예산이다.
    [알고보니] 여가부 폐지론 '불똥' 맞는 성인지 예산?

    성인지 예산 사업, 38개 부처 신고

    주무부처는 기재부, 여가부 ‘보조적 역할’

    ‘성인지’라는 이름이 들어가므로 여가부가 사업 선정을 주도하는 거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 제도의 주무부처는 ‘기획재정부’이다. 여가부는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무엇이 성인지 사업이 될 수 있을지 기준을 정하는 ‘성인지예산협의회’에 위원자격으로 참여 한다. 해당 위원회는 기재부와 여가부 외에,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가 참여한다. 이들의 협의를 통해 성인지 사업의 기준을 세우고, 성과측정지표를 설계한다. 성인지 예·결산서를 양식에 맞게 작성하도록 각 부처 공무원들을 교육하는 것도 여가부의 역할이다. 이는 지극히 ‘실무적인’ 영역이다. 여가부가 협의회의 일원으로 성인지적인 관점을 제공한다고 볼 순 있지만, 35조원 사업을 쥐락펴락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평가다.
    [알고보니] 여가부 폐지론 '불똥' 맞는 성인지 예산?

    성인지 예결산 제도 관련 기관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

    ‘여가부 폐지’ 근거로 오용되는 성인지 예산

    따라서 “성인지 예산이 여가부가 쓰는 돈”이라거나, “성인지 예산으로 쓰지 않고 다른데 쓸 수 있는 돈”이라는 주장은 틀린 말이다. 여가부 폐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성인지 예산’을 무리하게 끌어 쓰고 있는 셈이다. 성인지 예산에 대한 비판은 정확히는, 그것이 양성평등에 ‘실질적으로 기여 했는지 아닌지’로 향해야 한다. 성인지 사업이기에 앞서 각 부처가 ‘별도의 예산’으로 수행하는 사업이니만큼 사업 종류는 다방면에 걸쳐 있다. 국토교통부의 버스환승센터 설치 사업도 한 사례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 사업이 “특정 성별을 사업수혜자로 구분하기 어려워 성인지 사업으로 적절치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성인지예산협의회’에서 성인지 사업에 포함을 시켰는데, “환승센터를 설치할 때 여성과 노약자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는 취지”라고 여성가족부는 설명했다. 이처럼 성인지 예산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양성평등이라는 목표를 내세운 성인지 사업들이 ‘치밀한 설계’ 없이 양적으로 ‘사업 수 늘리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하는게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알고보니] 여가부 폐지론 '불똥' 맞는 성인지 예산?

    성인지 사업 '정책 효과' 검증해야

    '눈먼돈'-'혈세', 관습적인 예산 보도

    성인지 예산에 대한 오해는 ‘언론’과 ‘정부’에도 일정부분 귀책사유가 있다. 성인지 예산을 보도하는 언론의 대다수가 통상의 예산 감시·비판 보도의 관행과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즉,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는 식의 도식적인 관점이다. 성인지 사업이라고 예산을 따놓고, 환승센터 구축같은 엉뚱한 곳에 전용해서 썼다는 식의 지적이 그것이다. 성인지 예산 총액을 일자리나 국방예산으로 단순 비교하는 것도 오해를 부추긴다. 앞서 말했다시피, 일자리 예산과 국방예산은 성인지 예산과 별개의 예산이 아니다. 정부측, 기재부든 여가부든 성인지 예산과 관련된 오해를 관심으로 받아들여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했다. 뒤늦게 지난 15일 여가부가 반박자료를 내놨다. 여가부는 “성인지 예산에 대해 구태여 잘못된 소문에 대응해서 확산되는 걸 방지하는 차원에서 묵묵히 할 일만 하자는 차원에서 가만히 있었다”고 소극적인 대응의 배경을 설명했다.
    [알고보니] 여가부 폐지론 '불똥' 맞는 성인지 예산?

    '눈먼 돈' 식의 관습적 예산 보도

    기-승-전-여가부 폐지? 오락가락 판단 기준

    성인지 예산은 여가부 폐지론과 맞물려 의혹의 십자포화를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난주 <알고보니>의 팩트체크 이후 여성·가족·청소년 정책의 주무부처인 여가부가, 성인지 예산으로 1년에 8천 8백억 원을 쓴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이제는 “쓰는 돈이 너무 적다”면서 여가부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다른 정부부처에서 성인지 예산을 잘 쓰고 있으니 여가부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당초 성인지 예산이 낭비되는 ‘쓸데없는’ 돈이라고 주장했다가, 이제는 각 부처에서 ‘쓸모있게’ 쓰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가부 폐지론에 성인지 예산은 그저 하나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애초부터 성인지 예산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과 진지한 고민은 불필요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갈등이 첨예할수록 잘못된 주장과 사실을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알고보니>팀의 생각이자 소신이다.

    ※ <알고보니>는 MBC 뉴스의 팩트체크 코너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