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사회
기자이미지 박은지

[탐정M] 대청봉은 누구 땅? 비석 하나 주소 3개

[탐정M] 대청봉은 누구 땅? 비석 하나 주소 3개
입력 2021-07-28 11:11 | 수정 2021-07-28 11:31
재생목록
    [탐정M] 대청봉은 누구 땅? 비석 하나 주소 3개
    <설악산 대청봉은 누구 땅?. 비석 하나 주소는 3개>

    강원 속초시 설악동 산 1-1번지.
    강원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1번지.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산12-24번지.

    지번은 다르지만 가리키는 곳은 모두 한 곳, 그 이름도 유명한 설악산 대청봉입니다.

    설악산의 상징, 대청봉 표지석을 두고 3개 시·군이 모두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시·군 경계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묘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시·군 경계선을 명확히 긋는 '경계 일치화' 작업도 풀기 어려운 숙제 였는데요, 이 숙제가 이제는 풀릴 것 같습니다.
    [탐정M] 대청봉은 누구 땅? 비석 하나 주소 3개
    < '중청대피소'의 주소를 찾아라?!>

    중청대피소 일대 지적 현황 측량에 동행하기로 한 7월 20일 오전 10시. 설악동에서 국립공원공단 헬기를 타고 이륙한 지 10여 분 만에 중청대피소 공터에 무사히 내렸습니다.

    헬기는 일행들을 내리고 나서도 부지런히 물자를 나르고 산 정상부에 발생한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가는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중청대피소는 코로나19로 지금은 운영이 중단돼있지만, 등산객들에게는 여전히 쉼터로 열려있습니다.

    야외 테이블에서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들은 목을 축이거나 요기를 하고 있었는데 출발시각을 물었더니 이날 새벽 4시쯤부터 발걸음을 재촉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등린이(?)도 안되는 저희를 기꺼이 옮겨준 헬기에 심심한 감사를 전하며 본격 취재가 시작합니다.
    [탐정M] 대청봉은 누구 땅? 비석 하나 주소 3개
    <중청대피소가 없어진다고?>

    중청대피소는 1995년 문을 연 이래 산악인들의 쉼터로 오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지금은 시설이 낡고 오래돼 안전등급 D등급을 받아 계속 사용하기 위험한 상태로 환경 문제 등도 있어 중장기 계획에 따라 철거와 신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숙박시설은 없애고 긴급대피시설만 남겨 대피소 일대를 복원한다는 구상인데 아직은 계획일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철거나 신축이나 어떤 건축을 하려면 담당 시·군에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실제로 어디에 속했는지 명확하지 않은 겁니다.

    중청대피소를 포함한 대청봉 일대는 속초시와 양양군, 인제군 3개 시·군이 맞닿아있는데 시·군마다 등록된 지적도가 서로 맞지 않거나 비어있는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청봉은 3개 시·군의 서로 다른 주소 지번을 가지고 있지만, 지적도로 보면 중청대피소 일부와 최정상부 등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놓여있습니다.

    경계를 일치화하면 될 일이지만 설악산 최정상 대청봉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협의가 쉽지 않았습니다.
    [탐정M] 대청봉은 누구 땅? 비석 하나 주소 3개
    <대청봉을 둘러싼 갈등의 역사>

    2013년 양양군이 서면 오색리 산1-24번지였던 대청봉 지번을 산-1번지로 고쳐 대청봉 선점에 나서자 인제군과 속초시가 즉각 반발했습니다.

    3개 시·군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경계 일치화를 위한 담당 부서 간 협의에 나섰지만, 당시엔 결국 불발됐습니다.

    2016년에는 서면의 명칭을 대청봉 면으로 변경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재연됐는데 결국 대청봉면 개명은 포기하고 2018년 이후 경계 일치화를 추진하기로 협의하게 됩니다.

    하지만 숙제를 미뤄둔 것일 뿐 시·군간 이해관계가 달라 협의가 어려운 상황에서 흐지부지되고 있었는데 2019년쯤 중청대피소 문제가 등장하며 생각지 않은 곳에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탐정M] 대청봉은 누구 땅? 비석 하나 주소 3개
    <경계를 정하기 위한 지적측량 시작되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국유림관리소, 국립공원공단 등 관련기관 협조를 받아 측량에 나섰습니다.

    최소 3곳 이상 기준점을 정해 1시간마다 장비로 위성 좌표를 받아 면적과 각도, 거리 등 땅의 모든 정보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기록된 땅의 현황 정보를 가지고 앞으로는 시·군, 또 땅 소유주인 산림청, 신흥사 등과도 협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경계 일치화 작업을 마무리하게 된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청봉 정점에 있는 표지석 일대 소재지도 가려지게 되는데 대청봉이 시·군간 갈등이 아닌 화합의 상징으로 가는 목표도 설정됐습니다.
    [탐정M] 대청봉은 누구 땅? 비석 하나 주소 3개
    대청봉 표지석 앞면에 멀지 않은 곳에는 모든 측량의 기준자료가 되는 국가기준점, 삼각점이 존재하는데 국토정보공사는 1987년 만들어진 이 삼각점 외에 측량을 통해 확인된 3개 시·군이 통합해 만나는 지점에 새로운 기준점을 하나 더 세운다는 계획입니다.

    지난 과정에서 알 수 있듯 협의가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대청봉이라는 의미 있는 곳이 더는 해묵은 갈등의 장소로 남지 않고 어울리고 화합하는 출발의 장소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운좋게 헬기를 타고 올라 동행할 수 있었던 취재는 시작과 달리 험난하게 마무리됐습니다.

    변화무쌍한 산 정상의 날씨는 짙은 안개로 헬기 이·착륙을 어렵게 했고 설마 했던 마음과 준비되지 않은 체력으로 오색방면으로 6시간여에 걸쳐 겨우 하산에 성공했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등산객들은 중청대피소가 없어진다는 소식에 크게 걱정하며 대청봉을 하루 만에 종주하려면 무리한 산행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는데요.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말았던 것이 산에서 내려오는 동안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내며 크게 와 닿았습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