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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방통] 홍범도 장군, 그는 왜 카자흐스탄에 잠들었나…

[외통방통] 홍범도 장군, 그는 왜 카자흐스탄에 잠들었나…
입력 2021-08-12 19:43 | 수정 2021-08-1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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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통방통] 홍범도 장군, 그는 왜 카자흐스탄에 잠들었나…

    [사진 제공: 연합뉴스]

    백두산과 만주 벌판을 누비벼 일본군을 토벌한 '독립전쟁의 전설', 여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오는 15일 국내로 봉환됩니다.

    지난 1943년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서 서거한 지 78년, 마침내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게 되는 겁니다.

    홍범도 장군이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한 뒤 일본군의 대대적 토벌을 피해 1921년 연해주로 이주했습니다.

    그런데,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극동지역 침략이 본격화되자, 소련은 한인들의 스파이 활동에 경계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6년 뒤, 소련 정부는 극동지역에서의 한인강제추방을 결정했고 한인들은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됩니다.

    홍 장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37년 강제 이주 당시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얀꾸르간 시르다리아 강 건너편의 사나리크 셀소비에트(카잘린스크 구역)에 도착했습니다.

    이듬해 4월 즈즐오르다 도시구역인 크라스늬고로독(붉은 구석)으로 이사했습니다.

    이주 후 삶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병원 경비로 일하면서 알게된 고려극장 관계자들이 월 50루블의 수위장 자리를 만들어 줬습니다.

    그의 임무는 고려극장 빈 창고에 모아둔 무대기구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소나마 여유로운 말년을 보내던 홍 장군은 1943년 10월 25일 크즐오라디시 스테프나야거리 2번지에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했습니다.
    [외통방통] 홍범도 장군, 그는 왜 카자흐스탄에 잠들었나…

    [사진 제공: 연합뉴스]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공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카자흐스탄 고려인들 성금 모아 '철비' 세워

    홍범도 장군이 사망할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독-소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현지 고려인들은 급한대로 홍 장군의 묘소를 일단 그의 생가 근처에 임시로 조성했습니다.

    묘소가 제대로된 공동묘지에 마련된 건 그로부터 6년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고려인 인사들은 성금을 모아 분묘 주변에 철벽을 쌓고, 철로 만든 비도 세웠습니다.

    철비에는 장군을 기리는 문구가 새겨졌습니다.

    "조선의 자유독립을 위하여 제국주의 일본을 반대한 투쟁에 헌신한 조선 빨찌산 대장 홍범도의 일홈은 천추만대에 길이길이 전하여지리라 - 1951년 10월 25일 레닌기치 신문사 동인, 고인의 전우 및 시내 유지한 조선인 일동 건립"

    이후에 묘지에는 홍범도 장군의 반신조각상도 설치됐습니다.

    그리고 1983년에는 조각가 최니꼴라이와 미술가 허블라지미르가 제작한 반신청동상과 추모비도 세워졌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묘소에 한국정부와 기업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1996년 흉상 주변에 3개의 기념비를 건립하고, 공원묘역을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외통방통] 홍범도 장군, 그는 왜 카자흐스탄에 잠들었나…

    [사진 제공: 연합뉴스] 박경미 대변인 브리핑

    북측 '사기협작극' 반발, 우여곡절 끝에 봉환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오려는 시도는 사실 북한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1993년 북한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카자흐스탄 정부에 공식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고려인 사회의 거부로 봉환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 즈음, 우리 정부도 정부조사단을 현지에 급파했습니다.

    장군 묘소 조사에 착수하고, 카자흐스탄 정부 측과 유해 봉환을 위한 협의에 나섰습니다.

    봉환이 곧 이뤄질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당시 언론은 "정부가 1995년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평양방송을 통해 남측이 '사기협작극'을 벌이고 있다며 강력 비난하고 나선 겁니다.

    북측은 "홍 장군의 고향이 평양이고, 후손들도 평양에 있기 때문에 유해는 평양으로 옮겨져야 한다"며 강력 반발했습니다.

    26년 전 유해를 봉환하려던 우리 정부의 시도는 그렇게 좌절되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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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카심조마르트 코타예프 대통령

    생일 축하 서한에도 '봉환 요청' 메시지 담아

    1995년 봉환 계획은 좌절됐지만, 우리 정부는 국가보훈처가 예산을 들여 현지 묘역 관리를 꾸준히 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20여 년만인 2017년 홍 장군의 유해 봉환 논의의 불씨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우리 정부가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와 유해봉환 관련 논의를 다시 시작한 겁니다.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 후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추진을 지시했고, 논의는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문 대통령은 당시 한-카 정상회담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봉오동 전투 10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늦어도 2020년까지는 유해를 고국으로 봉환하기를 희망한다"며 유해 봉환 의지를 명확히 전달했습니다.

    이후, 외교부 담당 국장은 주한카자흐스탄 대사를 만날 때마다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지속적으로 요청했습니다.

    또 우리 정부는 카자흐스탄 대통령 취임 축하 서한을 보낼 때도, 심지어 외교장관 생일 축하 서한에까지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요청한다는 내용을 담아서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방부까지 나섰습니다.

    2019년 9월 국방부 차관은 서울안보대화에 참석한 카자흐스탄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과 양자회담 시 유해 봉환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2019년 12월 한국을 찾은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유해 봉환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실무 협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마침내 2020년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됐다"며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오는 15일 저녁 한국에 도착하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이틀 간 국민추모기간을 거친 뒤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됩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잠든 지 78년 만의 귀환입니다.

    * 자료 출처 : 국가보훈처 / 반병률, 2013. '홍범도 장군의 항일무장투쟁과 고려인 사회', 한국근현대연구(2013년 겨울호 제6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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