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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청년엔 '발등의 불', 사회엔 '강건너 불'? (채용형 인턴)

[알고보니] 청년엔 '발등의 불', 사회엔 '강건너 불'? (채용형 인턴)
입력 2021-08-19 11:42 | 수정 2021-08-1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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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보니] 청년엔 '발등의 불', 사회엔 '강건너 불'? (채용형 인턴)
    채용형 인턴은 증가하는 추세다. 임계점을 넘어 ‘채용갑질’이라는 구직자들의 호소도 이어지지만, 사회적으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기업이 맞춤형 인재를 뽑기 위한 진화된 채용 트렌드 정도로 간주되고 있을 뿐이다. ‘인턴’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도 한 몫을 한다. 견습생, 수련생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할 기회를 통해 업무를 배웠고, 나중에 이력서에 쓰는 데도 도움되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수련생과 일 체험형 인턴, 채용형 인턴이 같은 ‘인턴’이란 용어로 묶였지만, 성격은 다르다. 일을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니라 평가를 내리고 받는 ‘채용 전형 과정’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상 채용을 전제로 한 인턴이다보니, 바로 취업이 가능한 시점에 인턴을 해야 하고, 만약 몇 달을 쏟아붓고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다면 치러야할 대가가 크다. 중요한 구직 시기를 날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단기계약직 신분.. ‘정규직 전환 0’ 이어도 용납

    기업이 채용형 인턴을 실시하고 정규직으로 한 명도 채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삼을 근거는 없다. ‘인턴’을 규정하거나 보호하는 노동관계법이 없기 때문이다. 채용형 인턴의 경우는 단기 계약직과 같은 법적 지위를 갖는다. 즉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자동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것이다. 객관적인 해고 사유를 입증해야 하는 수습사원보다도 갑작스런 ‘이별’이 쉽다. 마음에 들면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아니면 그냥 다 내보내도 되니, 기업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아르바이트생보다 다루기도 쉽다. 정규직 채용과 연계된 탓에 인턴사원들이 부당한 처우에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알고보니] 청년엔 '발등의 불', 사회엔 '강건너 불'? (채용형 인턴)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 만들기 어렵다”

    불법이 아니란 이유로 관계 당국도 손을 놓고 있다. 앞서 2016년 ‘일경험 수련생 보호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던 고용노동부는 “민간기업의 채용 과정에 관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업이 ‘채용과정상 필요한 기간’이라고 한다면 이를 제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서 지정한 일경험 가이드라인은 인턴 중에서도 ‘수련생‧실습생’의 교육 중 부당노동행위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고용노동부는 “채용형 인턴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은 현재로선 만들기 어렵다”고 밝혔다. 관련 실태 파악도 전무하다. <알고보니>팀이 채용형 인턴제도와 관련한 문제점을 연구한 자료가 있는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측에 문의했지만, “해당 연구를 하거나 이슈를 알만한 연구원이 없다”고 답했다.

    채용연계형 인턴 경험자 64명에게 물었다

    기업의 자율 채용이라는 명목 하에 사실상 방치된 이슈인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청년 구직자에겐 ‘발등의 불’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채용형 인턴이 취업준비생들에게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 알아보기 위해 <알고보니>팀은 채용형 인턴 경험자들 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8월 12일부터 5일간 대학 커뮤니티와 취업정보 카페에 설문을 올렸고 채용형 인턴에 대한 생각을 간단한 글로 받았다.
    [알고보니] 청년엔 '발등의 불', 사회엔 '강건너 불'? (채용형 인턴)

    <대학 커뮤니티에 올린 설문지>

    전환율 평균 50%.. “1~2개월 보통, 최대 10개월”

    설문조사 결과 채용형 인턴 근무기간은 짧게는 2주, 길게는 10개월까지 있었다. ‘1개월 이상 2개월 미만’이었다는 응답자는 총 23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광고업계’의 경우, 인턴 기간이 8개월, 10개월인 사례도 있었다. 전환율의 경우, 평균치는 50% 수준이었다. 전환율이 10%라고 답한 응답자의 인턴 근무 기간은 6개월이었다. 전환율은 업종에 따른 차이도 있었다. 전환율이 70% 이상이라 응답한 사람은 응답자 50명 중 15명이었는데, 과반인 8명이 ‘전자, 반도체, 컴퓨터 하드웨어’ 업종이었다. 반면 전환율이 30% 이하라 응답한 사람은 50명 중 15명이었는데, 이 중 3분의 1이 ‘문화, 미디어’ 업종이었다.

    <알고보니>팀이 수치보다 눈여겨 본 것은 채용형 인턴에 대한 취업준비생들의 인식이었다. 설문 응답자들이 쓴 글을 데이터화해 시각화했다. 약 1,800여 개 낱말 분량의 ‘채용형 인턴 활동과 관련해 겪은 어려움’에 대한 응답 중, 자주 언급된 상위 27개의 낱말을 시각화했다. 시각화 자료에서 크기가 크게 표현된 낱말일수록, 높은 빈도로 언급한 낱말이다. 가장 많이 언급된 상위 5개 낱말은 ‘인턴(54번)’, ‘면접(24번)’, ‘기간(20번)’, ‘과제(14번)’, ‘평가(13)’ 였다.
    [알고보니] 청년엔 '발등의 불', 사회엔 '강건너 불'? (채용형 인턴)

    <채용연계형 인턴 경험 응답 내용 시각화>

    ⓵ 채용형 인턴하면 떠오르는 것 “면접”

    ‘면접’은 ‘인턴’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다. 채용형 인턴이 ‘장기 면접’과 마찬가지여서 심리적 압박감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경우가 많았다.

    “사람 미치게 한다. 면접을 2개월 동안 보는 것 같다”
    “제도자체가 불쌍한 취준생을 말려 죽이는 장기 면접제도”

    인턴중 면접 횟수가 과도하다는 불만도 있었다.

    “3주에 걸쳐 과제 3번과 발표 면접 4회, 최종면접까지 많은 단계를 거쳤는데도 전환이 되지 않아 상실감을 느꼈다”,
    “면접을 세 번이나 치르고 채용형 인턴으로 입사한 후 무려 6개월 동안 인턴십을 했다”

    채용형 인턴에 묶여 구직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토로도 많았다

    “다른 회사 면접 전형에 참여하지 못했다”,
    “인턴 기간 동안 다른 회사 면접을 보는 건 불가능했다”

    ⓶ 채용형 인턴의 가장 큰 부담 ‘기간’

    ‘기간’은 주로 인턴 기간 동안 다른 회사에 지원하지 못했다는 맥락에서 주로 언급됐다.

    “채용형 인턴 기간 동안 구직 활동이 전면 중단됐다”
    “인턴 기간이 채용 시즌 직전이라 가장 중요한 시기에 다른 회사를 준비하지 못하고 일을 해야 했다”
    “한 분기 동안 타 기업 면접에 참석하지 못해 취업 준비 기간이 몇 개월 더 길어졌다”

    긴 인턴 기간을 지적한 답변도 있었다.

    “5개월이나 되는 인턴 기간이 너무 길다”
    “코로나를 핑계로 전환 면접을 미뤄 계약 기간을 두 번 연장했다”

    ⓷ 채용형 인턴, “과제와 평가의 연속”

    주로 인턴 기간 수행한 ‘과제’와 ‘평가’를 언급하며 부담이 과중하다는 답변이 대다수였다.

    “직무 시험 외에도 6주간 매주 2회씩 과제가 진행됐다”
    “과제 발표를 인턴끼리 평가하게 해서 서로 협력하기보다 경쟁하는 상황도 힘들었다”
    “과제로 인해 늦게 퇴근해 근무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선배에게 질문을 하거나 배우는 시간도 없이 과제만 제출했다”
    “평가 점수를 객관적으로 확인하지 못해 왜 전환이 되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계속 평가 받는 상황에 압박감을 느꼈다”

    이밖에도 주어진 권리인 휴가(5번)를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는 응답도 많았다. 기회(5번)가 언급된 경우도 있었다. 긴 인턴 기간으로 치러야할 “기회비용”이 크다는 언급이 다수였지만, “직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다는 긍정적인 답변도 있었다.

    채용형 인턴 피할수 없다면.. ‘사회적 관심’ 시급

    청년 구직자들은 대체로 채용연계형 제도의 활성화를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해당 직업과 직무를 미리 체험해볼 기회라는 점도 잘 안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 길고, 전형 과정이 일방적인데다 개인이 너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채용에 발목 잡혀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했다는 의심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좋은 평가가 절박한 그들이 문제를 제기하긴 어렵다. 다만 불투명한 정규직 채용 가능성을 꿈꾸며 ‘견디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채용형 인턴제가 구직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제도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면, 고용과 노동을 책임지는 당국이 실태 파악과 함께 최소한의 지침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 글/구성: 이예슬

    ※ <알고보니>는 MBC 뉴스의 팩트체크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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