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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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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M] 서울구치소에서 MBC에 온 9장의 손 편지…'제보자 강호순'

[탐정M] 서울구치소에서 MBC에 온 9장의 손 편지…'제보자 강호순'
입력 2021-08-25 13:21 | 수정 2021-08-2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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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서울구치소에서 MBC에 온 9장의 손 편지…'제보자 강호순'
    연쇄 살인범 강호순에게서 온 편지

    며칠 전, MBC 보도국 인권사회팀 앞으로 제법 두툼한 편지 한 통이 배달됐습니다.

    겉봉에 적혀 있는 보낸 사람 이름은 '강호순'. 주소는 '경기 군포우체국 사서함 20'… 찾아보니 서울구치소였습니다. 자필로 쓴 편지지 9장과 A4 용지 9장, 모두 18장을 봉투에 접어 넣은 편지는 강호순 본인의 자기소개로 시작합니다.

    "저는 2009년 연쇄 살인을 저질러 사형이 확정되어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 강호순입니다."

    강호순 "구치소 사고 정보공개 청구했다 억울하게 징벌 위기" 주장

    사형수 강호순이 언론사에 편지를 보낸 이유는 뭘까? 대체 얼마나 절박한 사정이기에 강호순에게 장문의 손 편지를 쓰게 만든 걸까? 호기심반 두려움반으로 편지를 읽어내려갔습니다.

    강호순의 긴 편지를 요약하자면, 교도관들이 자신을 음해하고 있고, 자신이 억울하게 누명을 써 징벌을 받을 위기에 놓였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습니다.
    [탐정M] 서울구치소에서 MBC에 온 9장의 손 편지…'제보자 강호순'
    최근 구치소 안에서 발생한 사고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어 이 사고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더니, 교도관이 "그동안 잘해줬는데 앞으로 힘들어질 것"이라고 자신을 협박했다는 겁니다. 13년 수감 생활 중 처음으로 소장에게 면담 신청을 냈고, 생전 처음 교도관을 의왕경찰서에 고소했다고도 했지만 결과는 '기각'이었다고도 적었습니다.

    "이후에도 억울해서 사소한 비리들을 고발하면 그들은 더 큰 죄를 만들 궁리를 하고 있다"면서 "이 '어려움' 속에서 신속히 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옆방에 있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도 억지 누명을…" 주장도

    이 편지에는 익숙한 이름이 하나 더 등장했습니다. 바로 조주빈입니다.

    조주빈은 텔레그램 '박사방'을 운영하며,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2심에서 42년형을 선고받고, 강호순과 마찬가지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습니다.

    강호순은 "조주빈이 자신의 옆방에 수감돼 있는데 조주빈 역시 억지 누명을 쓰고 강제 징벌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용소 안에서 인권침해가 난무하고, 교도관들이 불법을 저지른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긴급 구제 청원을 보냈으니, MBC도 자신의 사정을 꼭 방송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탐정M] 서울구치소에서 MBC에 온 9장의 손 편지…'제보자 강호순'
    법무부에 편지 진위여부 질의하니 "강호순이 쓴 편지 맞다"

    편지를 다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 강호순이 그 강호순이 맞긴 한가? 누군가 강호순을 사칭해서 편지를 보내온 건 아닐까?

    법무부에 문의를 했습니다. 답변은 "편지는 강호순이 보낸 게 맞다"는 것이었습니다. "강호순이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법무부 장관과 인권위 등에도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탐정M] 서울구치소에서 MBC에 온 9장의 손 편지…'제보자 강호순'
    강호순이 주장한 인권침해와 누명? 사실은?

    보낸 사람이 강호순이 맞다면, 강호순의 주장 역시 사실일까?

    여러차례 법무부에 전화하고 교정당국에 취재한 끝에, 서울구치소로부터 3일 만에 4쪽 분량, 공문 형태의 비교적 자세한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구치소측은 억울한 누명으로 징벌 받을 처지라는 강호순 주장에 대해, "무고에 의해 조사 수용중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습니다. 강호순이 다른 사유로 조사수용된 적이 있긴 한데, 억울한 누명이 아니라는 겁니다. 또 징벌은 징벌위원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징벌이 예정돼 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란 설명입니다. 다만 조사를 받은 사유는 "개인정보라 공개할 수 없다"고 헀습니다.

    조주빈도 비슷한 처지라는 주장에 대해선 사실 여부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편지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 수용자의 정보라 설명이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탐정M] 서울구치소에서 MBC에 온 9장의 손 편지…'제보자 강호순'
    서울구치소, "강호순이 정보공개 청구하고 소장대리와 면담한 건 사실‥협박 피해·누명썼다는 주장은 사실 무근"

    또, 강호순의 정보공개 청구는 법률에 따라 비공개 처리됐고, 이후 교도관의 협박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강호순은 "교도관이 전화를 못 쓰게 했다"고도 주장했지만, 서울구치소는 강호순이 정보공개청구 이후 7차례 전화를 썼다고 반박했습니다. 구치소측은 또 "강호순이 2021년 5월경 소장 면담을 신청해, 소장대리와 면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강호순의 정보공개 청구가 거부당하고 소장대리와 면담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협박 당하고 누명을 썼다는 핵심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게 구치소측의 공식 답변이었습니다.
    [탐정M] 서울구치소에서 MBC에 온 9장의 손 편지…'제보자 강호순'
    '강.호.순'에게 보내는 답장

    지난 1969년에 태어난 강호순은 2005년 10월 경기도 안산에서 집에 불을 질러 장모와 아내를 살해한 뒤 2008년까지 경기 서남부에서 여성 7명을 연쇄 납치,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

    강호순은 살인과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존속살해,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 2009년 사형을 선고받았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지난 2011년에는 강호순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친오빠가 경찰이 됐다는 기사가 다수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실종된 여동생을 찾기위해 부모님과 백방으로 노력을 했던 오빠가 경찰이 된 이유는 '동생의 사건 파일을 열어보고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찰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만약 강호순을 만나면 전하고 싶었다'는 한마디로, 강호순이 보내온 편지에 대한 답장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너는 아무 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내 동생을 죽였지만, 나는 경찰이 돼서 네 가족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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