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속 전화번호로 장난전화 하루 '4천 통']
"제가 지금 잠을 못 자요, 전화 때문에‥ 하루에 4천 통 정도 돼요. 전화기가 지금 먹통이에요."
피로에 지친 듯한 메마른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한 남성이 기자에게 털어놓은 하소연입니다.
대체 누가 그에게 이런 '전화 폭탄'을 보내고 있는 걸까? 지난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에는 게임에 참여하고 싶으며 연락하라며 주인공에게 건내는 명함에 적힌 8자리 전화번호가 등장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노출된 전화번호는 이 남성이 실제 쓰고 있는 번호였습니다.
이미 무수히 많은 '장난전화'를 받고 있을 피해자에게 한 차례 더 전화를 거는 건 아닐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10년 넘게 쓴 번호인데..새벽 3시에 '오징어 게임 시켜달라'고 전화"]
경기도에 살고 있는 평범한 40대 남성 A씨. 그에게 지난 일주일은 말 그대로 악몽 같았습니다.
"저는 '오징어게임'을 본 적도 없는데, 그냥 '스팸전화' 겠거니 하고 생각했거든요. 제 번호가 드라마에 나왔다는 사실도 전화 걸었던 어떤 분이 알려주셔서 그제서야 알았던 거예요."
'오징어게임'에는 앞자리 '010'만 빼고 8자리 전화번호가 고스란히 노출됐는데, 이후 '장난전화 폭탄'을 견디는 건 고스란히 그의 몫이 됐습니다.
"아이들 목소리로 '오징어게임 자기도 시켜달라' 이런 전화도 오고요. (새벽) 1시, 2시, 3시 가리지 않고 전화가 와요. 문자도 보내고 사진도 찍어보내고 장난이 아닙니다, 이거."
["사업차 쓰던 번호라 바꾸기도 힘들어‥부인도 끝자리만 다른 전화번호여서 피해 입고 있어"]
10년 동안 써온 번호이고,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거래처와의 연락 문제로 전화번호를 쉽게 바꿀수도 없다는게 A씨의 하소연입니다.
심지어 A씨의 아내 역시 끝자리 한자리만 다른 전화번호를 쓰고 있어서, 잘못 걸려온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대박이 났지만 이 부부는 졸지에 엉뚱한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번호 주인 "넷플릭스·제작사 모두 사전 연락 없었다"]
A씨가 더욱 분통을 터트린 건 넷플릭스와 제작사 측의 태도 때문입니다.
드라마가 공개되기 전에는 물론, 장난전화 폭탄세례를 받는 지금까지도 넷플릭스나 제작사 측에서 어떤 연락도 못 받았다는 겁니다.
'제작사 측에서 사전에 연락을 해왔다면, 제가 제 번호 쓰는 걸 허락을 했겠냐'며 되물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넷플릭스 고객센터에 전화해봤지만, 상담사는 "어디에 보고해야될지도 모르겠다"며 어떤 대책도 주지 않았습니다.
제작사 측 연락처는 알지도 못 해 전화조차 못 해봤습니다.
[넷플릭스 측 "제작사가 원만한 해결 위해 대화 지속"‥번호 주인 "넷플릭스가 거짓말"]
취재진이 넷플릭스 측의 입장을 물었더니, 아래와 같은 짤막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오징어게임' 제작사와 해당 번호 소유자분이 이번 주 초부터 원만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지속하고 계시다는 부분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A씨는 기자와 통화하며 어느 쪽에서도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기자가 연락했던 번호 주인인 A씨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 했다고 말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질의했지만, 넷플릭스 측은 "공식 입장을 참고해달라"는 답만 했을뿐, 추가적인 설명을 듣지는 못 했습니다.
"(다른 보도에선 넷플릭스 측이) '피해자랑 연락이 닿아서 이야기 중이다'라고 하는데,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고. 저한테 넷플릭스든 제작사든 전화 한 통도 안 됐는데‥"
[번호 노출된 남성, 소송 검토 중이지만 비용 때문에 '난감']
번호 노출에 대한 법적 조치도 알아봤다는 A씨. 소송 착수 비용으로만 수백만 원이 들어가는 데다, 생업으로 시간적인 여유도 넉넉하지 않아 아직까지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일주일째 제대로 잠도 자지 못 했다는 그는 장난전화로 거래처와의 통화까지 큰 지장을 받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제가 수면제를 먹는데도 잠이 잘 안 와요.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가지고 속수무책인 거죠."
한국 작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인기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한 '오징어게임'. 연일 이어지는 호평 속에, 혹여 애먼 '번호 노출' 피해자가 묻혀버리지는 않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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