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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정혜인

[탐정M] '학대 부모'와 분리는 됐지만‥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탐정M] '학대 부모'와 분리는 됐지만‥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입력 2021-10-18 12:14 | 수정 2021-10-1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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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학대 부모'와 분리는 됐지만‥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탐정M] '학대 부모'와 분리는 됐지만‥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묻고 또 묻고..나쁜 기억 들추는 어른들

    14살 혜림이는 작년 10월부터 서울의 한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에 어머니는 지적 장애가 있어 집은 늘 엉망이었고, 집에서는 아버지의 고성과 때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주민의 신고로 작년 여름 일시보호시설로 옮겨졌고, 지금은 장기보호시설에서 살고 있습니다.

    평소 식사도 제때 하지 못 해 깡마른 몸으로 시설에 도착한 혜림이는 이가 잔뜩 썩어 어금니도 없었습니다.

    지워 버리고 싶은 기억들이지만 혜림이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3번 넘게 학대당한 순간을 떠올려야 했습니다.

    어른들은 똑같은 내용을 묻고, 또 물었습니다.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수사 중인 경찰에, 부모 재판을 진행하는 가정법원에서 수차례 피해 사실을 진술한 겁니다.

    혜림이는 "말하기 싫었는데 계속 물어봐서 얘기했다"고 말했고, 말하기 싫었던 이유를 물으니 "안 좋은 기억 때문에 그랬던 거 같다"고 답했습니다.

    옆에서 함께 이야기하던 시설 친구도 “진술하며 눈물이 났다. 이야기하면 마음이 아팠다”고 덧붙였습니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란 걸 아는 어른들도 있었습니다.

    올해 1월부터 아동학대 사건은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함께 출동해 조사하고, 이 내용을 관련 기관들이 공유하도록 대응 체계가 개선됐습니다.

    해바라기센터에서 전문 수사관이 첫 피해진술을 녹화하면 법원에서도 증거로 인정되는 성범죄 사건처럼 바뀐 겁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올해 5월 보호시설에 들어온 12살 정아(가명) 역시 경찰과 지자체 1차 조사부터 보호시설에 올 때까지 3번이나 같은 진술을 반복했습니다.

    "자꾸 말했는데 똑같은 이야기를… 저도 한 마디 얘기하면 다 알아듣기는 하는데, 계속 물어봤어요." "(아빠를) 감옥에 집어넣고 싶냐, 그 얘기도 했고… 아빠가 어디를 많이 때렸냐…" 현행 체계는 경찰과 지자체가 함께 출동해 1차 조사를 하고, 지자체가 학대 판정을 내립니다.

    이후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에 대한 치료 등 사례 관리를 담당합니다.

    체계상 아동은 지자체에 한 번만 진술하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조사 내용이 서류로만 공유되다 보니 구체적인 학대 내용까지 파악하기 어려워 이후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보호시설에서, 법원에서 몇 번이나 같은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또 학대 신고가 늦은 밤에 들어오면 당직을 서는 아동학대 담당 공무원이 있더라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경찰만 출동하기도 합니다.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진술을 요구하는 건 '상처를 후벼 파는 일'이라면서도, 횟수를 줄이는 것만큼 '어떻게' 질문하는지도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묻는 횟수만 줄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겁니다.

    피해 아동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의료진 등 전문가가 제대로 질문해 진술을 받고, 컨트롤타워에서 이를 관계기관에 공유하는 체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특히 아직 판단이 미숙한 아동 특성상 시간이 지나거나, 외부 압력을 받으면 진술이 쉽게 바뀔 수 있어 조사관의 전문성은 더욱 중요합니다.

    실제로 한 학대 피해 아동은 취재진에게 "부모가 범죄 사실을 무조건 부인하라고 해서, 법원에서 진술을 바꿨다"고 털어놨습니다.
    [탐정M] '학대 부모'와 분리는 됐지만‥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분리조치 될 때 설명 못 듣는 아이들 "엄마, 아빠에 인사도 못해"

    아이들이 공통으로 토로하는 불편함은 또 있었습니다.

    17살 진희(가명)는 아빠의 성 학대와 엄마의 방임으로 두 차례 분리조치 됐는데, 분리되는 자리에서 한 번도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설명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진희는 학교에 있다가 곧바로 보호시설로 옮겨졌는데, 집에 들를 시간도 주지 않아 "엄마, 아빠한테 인사도 못 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메뉴얼상 공무원은 분리조치 시 아동에게 이를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지자체 관계자는 현장에서 이러한 메뉴얼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했지만, 정작 아이들이 체감하는 건 달랐습니다.

    보호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이나리 자립지원팀장은 "처음 보호시설로 온 아이들의 불안감이 상당히 크다"며 "최소한 어디로 가고, 얼마나 머물 예정인지 알려줘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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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집에 돌아가고 싶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만났던 아이들에게 또 바라는 게 있는지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요." 부모에게 목이 졸리고, 두들겨 맞아 코피가 쏟아져도 부모에게 돌아가고 싶은 게 아이들의 마음이었습니다.

    12살 정아(가명)는 신고를 받고 집에 온 경찰이, 자신을 때리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을 때 "경찰이 엄마를 잡아갈까봐 무서웠다"고 말했습니다.

    아동 학대 가해자의 80% 이상은 부모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부모들마저 그리워합니다.

    아동학대가 재발될 게 뻔한 경우, 아이들이 원한다고 바로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16개월 정인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생을 마감한 지 벌써 1년이 됐습니다.

    세상의 전부인 부모에게 상처 받고, 도와주겠다고 나선 어른들에게 또다시 좌절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더 상처받지 않도록 곳곳에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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