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사회
기자이미지 전준홍

[알고보니] '몰카'범죄는 왜 일상이 되었을까

[알고보니] '몰카'범죄는 왜 일상이 되었을까
입력 2021-11-01 10:07 | 수정 2021-11-01 10:39
재생목록
    [알고보니] '몰카'범죄는 왜 일상이 되었을까
    초등학교 교장의 불법촬영이 사회에 충격을 안기고 있습니다. 학생들에 윤리의식을 함양하고 인성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그것도 '교장선생님'이 계획적으로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것에 술렁이고 있습니다. 50대 교장 A씨가 초소형카메라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른 정황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A씨는 적발된 카메라를 "시골에 있는 농장에 설치하려고 산 카메라"라고 주장했습니다. 카메라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서, 여교사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A씨는 해당 카메라의 메모리칩을 훼손하려 한 것으로도 전해졌습니다. 수사가 진행되면 새로운 내용이 나오겠지만, 일단은 증거인멸 시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A씨에겐 구속영장이 발부됐습니다.
    [알고보니] '몰카'범죄는 왜 일상이 되었을까

    불법촬영을 위해 구멍을 낸 티슈상자

    <알고보니> 팀은 지난 22일 변형카메라와 스마트폰을 사용한 불법촬영 범죄가 일상에 얼마나 침투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A씨의 사례는 <알고보니>가 살펴본 불법촬영 범죄의 전형적인 유형과 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어떤 점이 그런지 따져봤습니다.

    변형 카메라, 구하기가 너무 쉽다

    A씨는 '농장 설치용'으로 카메라를 샀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용도이든지 우리 주변에서 변형카메라를 구하기는 쉽습니다. 이전처럼 번거롭게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할 필요도 없습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사이트를 통해 인터넷 주문을 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의 유형도 다양합니다. <알고보니>팀은 앞서 일상 용품으로 둔갑한 변형카메라의 실태를 직접 보여드렸습니다. 지름 1mm의 초소형 카메라는 어디에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안경이나 볼펜은 진부한 수준입니다. 물병, 거울, 어댑터, 콘센트, 화재경보기, 리모컨, 각종 화장품, 탁상시계, 의류, 수첩 등 일상에서 접하는 무엇이든 불법촬영용 카메라가 될 수 있습니다.
    [알고보니] '몰카'범죄는 왜 일상이 되었을까

    일상용품에 숨어든 초소형카메라

    변형카메라를 만드는 기술은 고난도의 기술이 아닙니다. 외피를 교묘하게 감추는 아이디어(?)가 필요할 뿐이어서, 대부분 중국산이거나 업자들이 직접 개조한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말합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불법촬영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변형카메라의 수입은 매년 증가추세입니다. 지난해에는 10만 건 가까이 수입됐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일 뿐이지 불법촬영용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A씨처럼 "농장에 설치하려고 샀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변형카메라 탐지업체의 손해영 대표는 "변형카메라가 갈수록 소형화되고 기술이 좋아져서 적발이 힘들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변형카메라의 구매를 규제하는 제도를 만들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변형카메라 포상금제도를 실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알고보니] '몰카'범죄는 왜 일상이 되었을까

    변형카메라 연간 10만건 가까이 수입

    집, 지하철, 길거리‥학교도 우범지대

    불법촬영이 가장 많이 벌어지는 곳은 어디일까요. 주거지와 지하철이 1위를 다툽니다. 유동인구가 많고 상대적으로 익명성이 보장되는 지하철이 대개 수위를 지켰지만, 지난해는 아파트·주택 등 주거지로 분류되는 곳에서 발생한 불법촬영 사건은 963건으로, 가장 많이 적발됐습니다. 지하철과 지하철역은 804건이었습니다. 길거리와 상점은 702건으로 세 번째로 많았습니다. 학교는 매년 꾸준히 100건을 상회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110건의 불법촬영이 학교에서 적발됐는데, 이는 유흥업소와 '기타 교통수단'과 비슷한 수준이고, '사무실'보다 많이 적발된 수준이었습니다. 학교는 이미 불법촬영의 안전지대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알고보니] '몰카'범죄는 왜 일상이 되었을까

    불법촬영 범죄가 일어난 장소별 통계

    재범률 75%‥약한 처벌이 경각심 낮춘다?

    <알고보니> 팀은 올해 '성폭력범죄처벌법' 14조의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의 판결문 86건을 분석했습니다. 그 안에서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불법 촬영 범죄의 처벌 수위가 높지 않은 겁니다. 이로 인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촬영·유포 범죄는 5천 1백여 건이 적발됐습니다. 하루에 평균 14건이 '포착'된 겁니다. 적발이 안 되거나, 피해사실을 모르고 넘어가는 범죄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입니다. 2017년 불법촬영·유포 범죄가 6천 4백여 건 발생한 데 비해 올해 25%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5천 건을 상회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불법촬영물을 유포하는 '디지털성범죄'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성범죄 피해 집계를 시작한 2018년 2천 2백여 건의 피해가 파악됐고, 지난해엔 6천 2백여 건으로 3배 가까이 폭증했습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벌써 3천 8백여 건의 피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법무부가 발표하는 <2020 성범죄 백서>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가운데 불법촬영범의 재범률이 75%로 가장 높았습니다. 4명 중 3명은 다시, 같은 불법촬영 범죄를 저지른다는 겁니다.
    [알고보니] '몰카'범죄는 왜 일상이 되었을까

    불법촬영 재범률 75%‥강제추행은 8%대

    지난 2018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불법 촬영 또는 유포를 한 자'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최고 형량이 상향됐습니다. 이로 인해 실체 처벌 수위가 소폭 올라간 건 사실입니다. 2017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실형 비율은 전체 판결의 11.1%, 집행유예는 27.8%였습니다. 벌금형은 54.1%로 절반이 넘었었습니다. <알고보니> 팀이 분석한 올해 판결문을 보면 실형은 15.1%, 집행유예는 50%로 늘었고, 벌금형은 33.7%로 줄었습니다. 즉 벌금형이 크게 줄고 집행유예가 늘어난 겁니다. 실형이 늘었다고 해도 법정 최고형에는 크게 못 미칩니다. 올해 86개 판결 중 실형 판결은 총 13개였습니다. 그 중 최고형은 징역 1년 8개월, 최저형은 징역 4개월이었습니다. 평균 징역 기간은 '1년'이었습니다.

    불법 촬영 도구의 90%가 스마트폰

    교장 A씨는 초소형카메라만 쓰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으로도 불법촬영을 했습니다. 일상용품이 범죄도구로 돌변한 겁니다. 어찌 보면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해 불법촬영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고보니>팀의 판결문 분석 결과 촬영도구의 90%가 스마트폰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스마트폰을 일종의 변형카메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알고보니] '몰카'범죄는 왜 일상이 되었을까

    스마트폰을 변형카메라처럼 쓴 범죄

    올해 판결문에 나온 피고인 B씨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B씨는 종이가방에 구멍을 뚫고, 휴대전화 카메라를 넣고 다니면서, 여성들의 다리나 치마 속을 촬영했습니다. 이러한 행각을 B씨는 4개월 동안이나 벌였습니다. B씨의 휴대전화에서 적발된 사진·영상은 757개에 달합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피고인 C씨의 사례도 스마트폰을 악용한 경우입니다. C씨는 길거리를 다니며 210명을 대상으로 무려 4,175회의 신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4천장 넘게 불법촬영물을 찍는데 걸린 시간은 단 열흘에 불과했습니다. B씨에겐 징역 1년형의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알고보니] '몰카'범죄는 왜 일상이 되었을까

    불법촬영 벌금형 줄고 실형·집행유예 늘어

    가해자는 "충동적으로"‥피해자는 "자살 생각"

    변형카메라는 갈수록 교묘해지고, 법적 규제는 미비하고, 처벌도 약합니다. 스마트폰은 누구나 갖고 있고, 가해자들에게는 심각한 범죄라는 경각심도 적습니다. 판결문에 나온 피의자 대부분은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변명합니다. 하지만 <알고보니> 팀과의 인터뷰에서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이를 반박합니다. 승 연구원은 "카메라로 몰래 상대방의 신체를 촬영하는 게 '나쁜 행위'이고 '불법'이라는 건 상식적인 사람은 다 안다"며 "더 큰 범죄자가 되기 전에, 처음 적발됐을 때부터 이것이 왜 잘못된 건지 성인지적인 관점에서 깨달을 수 있도록 심리와 정신과 치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알고보니] '몰카'범죄는 왜 일상이 되었을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신체에 직접 위해를 가하는 게 아니니까 심각한 범죄가 아닐거란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불법 촬영 유포 피해자 45.6%가 자살을 생각했고 이 중 19.2%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유포와 동시에 2차, 3차 피해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2백여 명의 신체를 무려 4천 번 넘게 사진을 찍고 기소된 C씨는 재판정에서 자신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또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선처를 빌기도 했습니다. 교장 A씨는 카메라가 발견된 직후 "학생이 설치했으면 어떡하냐"고 신고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학생 혹은 학교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자신의 혐의를 숨기기 위해 둘러댄 말이지만, 이런 말이야 말로 불법촬영 가해자와 피해자간 인식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글/구성 : 김민솔

    ※ 〈알고보니〉는 MBC 뉴스의 팩트체크 코너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