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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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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진지한 반성을 만들어 드립니다."

[뉴스인사이트] "진지한 반성을 만들어 드립니다."
입력 2021-12-12 13:13 | 수정 2021-12-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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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진지한 반성을 만들어 드립니다."
    반성하면 왜 감형해줄까요?

    형벌에는 세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응보와 예방, 그리고 교화입니다. 저지른 죄에 응당한 벌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예방과 교화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는구나"라는 메시지를 통해 일반 대중의 범죄를 예방하고, 또 죄를 저지른 사람이 이를 반복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교화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범죄자가 '진지한 반성'을 하면 형벌을 깎아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성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에 범죄를 반복할 가능성이 낮다는 논리입니다.


    "한번도 법정에서 (성범죄 피고인이) '잘못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사건은 아직 보진 못했어요. 재판장에서는 공손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주눅들어 있기도 하니깐요."


    한 변호사는 MBC 기획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성범죄 피고인은 매우 드물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억울한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이렇게 반성한 성범죄자들은 정말 반성하고 재범을 하지 않았을까요?

    법무부에서 발행한 [2020 성범죄 백서]에 따르면 성범죄자 60%가 성범죄를 다시 저지른다고 합니다. 강력범죄의 재범률이 40%, 동종범죄 재범률이 14%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낮은 수치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재판장에서 고개를 숙여 반성을 말했던 성범죄자들의 절반은 거짓을 말했던 걸까요? 그들의 거짓말을 판사가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요?


    나의 반성 목록: 기부, 헌혈, 장기기증서약, 봉사활동…

    문제는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본인을 제외하면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내밀한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성범죄자들이 내미는 '증거'가 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진지한 반성을 만들어 드립니다."
    바로 반성문, 기부, 헌혈, 장기기증서약, 봉사활동 등 양형자료 입니다. 도대체 이 자료들이 어떻게 진지한 반성을 보여준다는 걸까요? 도대체 누가 이것들이 반성을 증명한다고 이들에게 말해준걸까요?
    [뉴스인사이트] "진지한 반성을 만들어 드립니다."
    비밀은 판결문에 있었습니다. 많은 판결문에 피고인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이유로 "OO단체에 300만원을 기부하는 등", "XX단체에서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점", "헌혈과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새 삶을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이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재판부가 직접 기부, 헌혈, 장기기증 서약은 '삐빅, 반성입니다.'라고 판단해준 겁니다.

    사과도 받지 못하고 용서도 하지 않은 성범죄 피해자들은 이렇게 쓰인 반성문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정말 반성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할까요?


    '반성을 만들어 드립니다'

    취재진과 인터뷰한 한 변호사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알음알음 아는 사람만 내는 자료"였지만, 지금은 '성범죄 양형자료'라고 검색만해도 정보가 쏟아집니다. 요즘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는 성범죄자가 먼저 이런 양형자료를 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반성을 증명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비즈니스화' 되어 있다는 겁니다. 성범죄 변호를 주로 하는 로펌들은 우리만의 '양형자료 목록'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웁니다. 또 양형자료를 마련하는 법 등을 선후배 성범죄자들끼리 공유할 수 있도록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합니다.

    마치 입시 컨설팅 처럼 체계적입니다. '진지한' 반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재판부가 반성의 증거로 받아들여줄 최적의 자료들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어떤 자료를 받아들여줄지 모르니 최대한 많이 준비하는 것이 가장 큰 팁입니다.


    '진지한 반성'… 이대로 괜찮을까요?

    쉽게 만들어내는 반성과 이를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재판부. 이대로 괜찮을까요? MBC가 시민 1천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기부나 헌혈, 장기기증 서약 등은 반성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답변이 84.9%에 달했습니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선 입장에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응보 이외에도 예방, 교화의 기능도 균형을 맞춰 고려해야하는 재판부에겐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국민의 건강한 상식'을 반영해 '진지한 반성'의 의미를 무겁게 들여다보려는 재판부의 노력, 현실적인 양형 기준 마련은 이제 더이상 미룰 수 있는 일은 아닐 겁니다.


    [연관기사][집중취재M] '성범죄 속죄' 기부한다더니‥재판 끝나니 '기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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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관기사]장기기증·헌혈·자원봉사‥"성범죄 감형 3종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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