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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김주만

[단독] 삼성가 마당에서 쏟아져 나온 유골‥무덤 61기 주인은?

[단독] 삼성가 마당에서 쏟아져 나온 유골‥무덤 61기 주인은?
입력 2022-06-06 09:02 | 수정 2022-06-0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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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삼성가 마당에서 쏟아져 나온 유골‥무덤 61기 주인은?
    이태원동 101-oo 번지, 이른바 ‘삼성타운’의 한 저택 앞마당에서 처음 일이 벌어진 건 2년 전이었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상속을 앞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자신이 살았던 건물과 부지 총 5필지를 팔았습니다. 매매가는 247억 3580만 5000원, 매수자는 동생인 이서현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이었습니다.

    해괴한 일은 이서현 이사장이 신축공사 신고를 마치고, 터파기 공사를 시작한 직후 일어났습니다. 무덤이 발견된 겁니다. 공사는 즉각 중단됐습니다.

    한기, 두기....61기 “더 파는 게 무섭다”
    [단독] 삼성가 마당에서 쏟아져 나온 유골‥무덤 61기 주인은?

    2020년 삼성타운의 한 저택에 ‘발굴조사 안내’ 공고가 걸렸다.

    문화재청의 의뢰를 받은 한 민간법인이 발굴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개의 빈 무덤으로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관(棺)도 없는 정말 ‘흙구덩이 무덤’이 마당과 건물 아래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무덤만 61기. 빈 무덤도 아니었습니다. 정강이뼈처럼 단단해서 형태를 갖춘 극히 일부의 유골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형태를 잃어버려 검은 진흙과 구분이 안 되는 수준의 유골이 있었습니다. 한 무덤에 시신 한 구가 묻힌 것인지, 아니면 2-3구가 함께 묻힌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당시 상황을 아는 한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도 “더 파는 게 무섭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2020년 유난히 덥고 장마가 심했습니다. 유실을 막기 위해 61기의 ‘흙구덩이 무덤’ 위로 천막이 씌워졌습니다. 문화재청에는 토광묘(土壙墓)로 신고됐습니다. 공사는 이듬해인 2021년 3월 재개됐습니다. 삼성측은 ‘오너 일가’는 이곳에 무덤이 있는 지도 모르고 집을 산 “일종의 피해자”라고 설명했습니다.

    관도 없는 흙무덤...왜 이곳에 무덤이?
    [단독] 삼성가 마당에서 쏟아져 나온 유골‥무덤 61기 주인은?

    유골이 모든 옮겨진 이후의 공사 현장 모습

    이렇게 공사를 하다 무덤이 발견될 경우, 공사는 중단되고 문화재청의 조치를 따라야 합니다. 모든 무덤이 그런 건 아닙니다. 무덤 자체가 가치가 있거나, 의관을 갖추고 있는 등 무덤(유골)이 문화적 발굴 가치가 있으면 유적으로 보존되지만, 변사자나 공동묘지처럼 큰 의미(?)를 갖지 못할 경우, 관할 관청과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으로 중요한 ‘조치’는 마무리됩니다. 이태원 삼성타운에서 나온 ‘토광묘’는 말 그대로 흙구덩이를 파서 시체를 묻은 흙무덤입니다. 백제시대 석촌동 ‘토광묘’ 조차 부장물과 함께 ‘나무 관’의 흔적이 있었지만, 삼성타운 ‘토광묘’는 죽음길을 가는 死者에게 나무관조차 허락되지 않은 빈자(貧者)의 흙무덤이었습니다. 발굴을 벌인 해당 법인은 조만간 최종 보고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101-oo 번지는 일제의 ‘적산가옥’
    [단독] 삼성가 마당에서 쏟아져 나온 유골‥무덤 61기 주인은?
    이태원동 101-oo 번지 외 4필지, 이 가운데 한 곳을 골라 소유권자를 추적해 봤습니다. 폐쇄된 등기부 등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건물의 주소는 경성부 이태원죠 8번지(京城府 利泰院町 八). 일본 연호인 쇼와(昭和) 십 몇 년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1936년을 전후해 이 자리에 주택이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나카무라(中村oo), 노구치우타코(野口歌子)로 이어진 일본인의 소유권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LH의 전신인 조선주택영단(朝鮮住宅營團)으로 바뀝니다. 이후 이 집은 이00, 은00, 최00, 우00으로 소유권이 넘어갔습니다. 이 가운데는 과거 명동의 유명한 사채업자로 알려진 인물도 있습니다. 일제가 물러나며 남긴 적산(敵産)을 정부가 압수한 뒤 이를 다시 한국인들에게 넘긴 걸로 보입니다. ‘적산가옥(敵産家屋)’이 어떤 매매 절차를 거쳤는지는 문서상으로는 확인하기 힘듭니다. 다만, 광복 직후 ‘적산’을 두고 다툼이 심해, 이를 담당하는 ‘전담 순경’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특히 장춘동, 이태원동, 후암동 등 고급 ‘적산가옥’은 산업시설과 함께 큰 돈벌이 수단이었고, 이를 불하받기 위해 미군정이나 우리정부에 이리저리 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거래된 적산가옥은 공식적으로만 20만 건에 이릅니다. 당시 여러 가지 편법을 통해 친일파나, 기존 부자들이 ‘적산가옥’을 차지하고, 이것이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더 큰 부를 이룬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진 일입니다.

    무덤 위에 집..유치원도 운영
    [단독] 삼성가 마당에서 쏟아져 나온 유골‥무덤 61기 주인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이름이 등장한 건 1973년입니다.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둘째 딸 ‘이숙희’씨가 이00, 은00 등으로 나뉘어 있던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한 겁니다. 한때 세금체납으로 용산구청에 압류되기도 했지만, 결국 이 집은 이숙희씨를 거쳐, 1992년에는 이재용 현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주인이 바뀝니다. 고모와 조카의 매매거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집을 구매할 당시 이 부회장의 주소지가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한 오래된 아파트였다는 겁니다. 실제 거주한 것인지, 위장 전입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최고 재벌 오너의 아들이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살면서, 어떻게 이태원의 저택을 사들였는지는 의문입니다. 당시는 이 부회장이 삼성에 입사한 지 6개월도 안 된 시기였습니다. 자신의 월급을 모두 모아도 ‘내돈내산’은 힘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난 2020년 이 집은 다시 동생 이서현씨가 소유하게 됐습니다. 그 사이 28년 사이에 이 집은 이 부회장의 신혼집으로 사용됐고, 이후에는 집을 비워뒀는데, 재산세를 회피하기 위해 ‘교육시설’로 허위 신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삼성측은 해당 부지가 몇 년간 지역 주민들을 위한 ‘유치원 시설’로 ‘분명’ 사용됐다는 해명을 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부회장은 10년 넘게, 유치원은 최소 몇 년간 61기의 무덤 위에서 함께 지낸 셈입니다. 그렇다며 재벌가들이 모여 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부촌에서 왜 이런 무덤이 쏟아져 나온 걸까요?

    수백년 공동묘지 위에 세워진 부촌
    [단독] 삼성가 마당에서 쏟아져 나온 유골‥무덤 61기 주인은?

    경성도(조선교통지도, 1924)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단독] 삼성가 마당에서 쏟아져 나온 유골‥무덤 61기 주인은?
    1924년 일본이 만든 병영지도입니다. 좌우 상하로 선을 그어 비교해 보면, 현재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과거 국방부 청사에는 일본군 24사단 사령부가 있었습니다. 전쟁기념관 자리는 ‘보병영’으로 표시가 돼 있습니다. 용산 주한미군기지 전체가 거대한 일본군영인 셈입니다. 오른쪽에는 이태원, 황학동, 보광리 등 익숙한 지명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지명 바로 옆에 공동묘지(共同墓地)라고 써 있습니다. 공동묘지는 지도에서 경계를 표시할 수 없을 만큼 넓었습니다. 지금의 이태원동 한남동 일대의 산 전체는 일부 논밭을 제외하고는 거대한 공동묘지산이었습니다. 이 지역이 집단 무덤이 된 것은 조선중기때부터로 전해집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애오개’ ‘서소문’ 그리고 와현(용산구 한강로), 새남터(이촌동 이근)등에 사형장이 만들어졌지만, 여기서 수습된 시신이나, 선산이 없는 빈궁한 백성들은 4대문 밖인 이태원을 공동묘지로 사용했습니다. 한 하급 관료가 가족의 시신을 이곳에 장례 치렀다가 관직을 박탈당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일제 시대 당시 일본군영에서 사형이 집행되고, 대한제국 당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으로 서울에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이태원 101-oo에서 나온 무덤이나 ‘진토’는 이보다 훨씬 오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다른 인근의 다른 집이나 신축 공사 현장에서 무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개발되는 빈자(貧者)의 마지막 안식처
    [단독] 삼성가 마당에서 쏟아져 나온 유골‥무덤 61기 주인은?
    최근 유명 아이돌 ‘지드래곤’이 용산에 최고급 아파트를 구입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됐습니다. 매매가 164억원으로 역대 아파트 최고가를 경신했다고 합니다. 이 아파트 역시 이태원 공동묘지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을 공사할 때 유골이나 무덤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문화재청에는 이태원 인근 지역에서 유골이 발견됐다는 많은 보고서가 공개돼 있습니다. 다만 이태원의 모든 곳에서 유골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일제 강점기인 1922년을 전후해 이태원 일대에서는 대규모 유골 이전 사업이 있었습니다. 이태원에 군 관련 시설을 건설하려던 일제가 강제로 유골을 정리해 미아리에 집단 매장한 겁니다. 이태원의 한 부동산 업자는 과거 이태원 일대의 집에서 공사 도중 유골이 나온 경우는 매우 흔했으며, 요즘에도 재건축 과정에서 무덤 형태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한남재정비촉진지구 일대가 공동묘지였던 만큼 재개발이 시작되면 많은 무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유관순도 묻혔던 곳... 바라던 광복은 왔는데..
    [단독] 삼성가 마당에서 쏟아져 나온 유골‥무덤 61기 주인은?
    다시 돌아와, 이태원 일대 무덤을 강제 이전할 당시 유실된 유골들 가운데는 한 18세 소녀의 유골도 있었습니다. 고향 천안에서 3.1운동을 주도했다가, 자신은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고, 끝내 살아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역시 만세운동 중에 일본군에 의해 숨진 상태라 시신을 수습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에 의해 소녀의 시신은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지만, 이듬해 무덤은 강제 이전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 소녀의 이름은 유관순입니다. 유관순이 처음 묻혔던 이태원에는 그 이름을 딴 골목이 만들어지고, 작은 공원 한 쪽에는 추모비가 서 있습니다. 추모비가 있는 ‘이태원 부군당’에서는 한 눈에 서울 시내가 시원하게 보입니다. 무덤위에 서 있는 이태원의 최고급 저택들과 다른 한쪽에는 대통령 집무실,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미군기지가 우리 역사와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오늘은 67회 현충일입니다.
    [단독] 삼성가 마당에서 쏟아져 나온 유골‥무덤 61기 주인은?

    부군당에서 본 서울 야경, 왼쪽부터 대통령 집무실, 주한미군기지, 이태원 주택가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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