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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전준홍

[알고보니] 사저 앞 집회, 법으로 막는다?

[알고보니] 사저 앞 집회, 법으로 막는다?
입력 2022-06-17 11:46 | 수정 2022-06-1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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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보니] 사저 앞 집회, 법으로 막는다?
    지난 4월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근처에서 보수단체와 유튜브들이 고성과 욕설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어 지난 14일부터는 윤석열 대통령의 서초동 자택 앞에서 확성기와 스피커를 동원한 '맞불' 집회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최측은 양산 시위가 끝날 때까지 서초동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혀 이번 주말에도 이어질 것으로예상됩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어제(16일) 경남 양산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금도를 넘는 욕설과 불법 시위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양산 뿐 아니라 서초동 자택 앞 집회에 대해 "법에 따른 국민의 권리"라면서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얼핏 엇갈린 해석으로 볼 수도 있지만,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모두 집회와 시위에 대해 법을 거론하며 사안을 평가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국회도 마찬가지여서, 한달 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집시법 개정안 4개를 줄줄이 발의했습니다. 양산 사저 앞 시위를 계기로 집회 장소와 소음과 같은 형식을은 물론 모욕과 혐오 발언 등 내용도 법을 바꿔서 규제해야한다고 나선겁니다.

    <알고보니>는 이러한 집시법 개정안이 논의되는 배경, 즉 현행 집시법이 보완될 부분이 있는지 또 이러한 개정안들이 헌법적 가치와 국제적 기준에 비춰 어떨지를 따져봤습니다.

    '공장 소음 수준' 단속 왜 안 되나

    양산 시위에서 측정 결과 최고 소음이 90데시벨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소음이 심한 공장안에나 나오는 수치입니다. 물론 법적 기준치 초과입니다. 주거지에선 최고 소음이 낮 시간대에 85데시벨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위 중단 등 단속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삼진 아웃제 때문입니다. 시위는 최고 소음이 1시간 동안 세 번 기준을 초과할 때 경찰이 중단시킬 수 있는데, 1시간 동안 두 번만 최고 소음치를 넘기는 꼼수를 쓰고 있습니다. 이 경우 경고만 받고 시위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알고보니] 사저 앞 집회, 법으로 막는다?

    1시간 동안 최고소음치 3번 넘어야 단속

    이를 보완하는 것이 '등가소음도' 측정입니다. 양산 같은 주거지역의 경우 일정 시간(10분) 동안 평균적으로 65데시벨을 넘으면 단속 대상입니다. 하지만 소음을 냈다 안냈다 하면 역시 단속을 피할 수 있습니다.
    [알고보니] 사저 앞 집회, 법으로 막는다?

    국내 집회 소음 규제 기준(법제처)

    게다가 1인 시위는 집시법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따라서 '집시법상' 소음규제 대상도 아닙니다. 양산 시위의 경우 대부분 1인 시위 형태입니다. 물론 1인 시위라도 소란을 피울 경우 경범죄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별도의 소음기준도 없고, 처벌도 범칙금 처분에 그칩니다. 경찰청 경비과 관계자는 "1인 시위 소음에 관련해서는 신고나 민원에 따라 피해자 진술을 받아 범칙금 통고를 하고 있다"면서 "양산에서도 이미 1인 시위자들에게 범칙금 통고를 했지만, 처벌이 가벼워 계속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욕설과 모욕은 왜 단속 안 되나

    이번 양산 시위의 경우 욕설과 모욕적인 발언이 특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소음과 같은 물리적이고 형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집회의 '내용'과 관련된 요소입니다. 현행 집시법과 시행령에서는 "사람에게 모욕을 줄 수 있는 구호나 낙서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시위 중단 등 규제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가 사생활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모욕인지, 기준을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찰의 자의적 해석 우려 때문에 현장에서 거의 적용되지 않습니다. 경찰청 정보상황과 관계자는 <알고보니>와의 통화에서 "모욕을 넘어 불안감을 조성해서 위해를 가할 정도가 되어야 집시법 적용이 가능하다"며 "각 상황별로 판단을 해야하고, 어느 정도 이상의 모욕이라는 기준을 잡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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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법제처)

    집시법 개정안, '내용' 규제에 초점

    민주당에서 발의한 집시법 개정안은 장소를 규제하기도하지만, 주로 욕설·혐오·증오 발언 같은 집회의 내용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 제한하자는 취지입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한 집시법 주요 개정안은 ▲정청래 의원안 ▲한병도 의원안 ▲박광온 의원안 ▲윤영찬 의원안 까지 총 4개입니다.
    [알고보니] 사저 앞 집회, 법으로 막는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한 집시법 개정안 주요 내용

    개정안을 보면, 먼저 윤영찬 의원안에는 '1인 시위'도 집시법의 규제 범위에 포함시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한 욕설을 비롯한 '혐오표현' 정의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박광온 의원안은 혐오와 증오를 조장하는 행위도 단속하는 게 골자인데, '정치적인 의견'이 항목에 들어간 것이 눈에 띕니다. 즉 정치적 의견에 따른 증오 발언을 규제하는 근거를 마련한 건데, 악용될 경우 집회의 정치적 의사 표시를 제한한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 밖에 정청래 의원의 안은 아예 장소를 특정해 전직 대통령의 사저 앞 집회를 금지하도록 했습니다. 이번 양산 사저 앞 시위를 직접 겨냥한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습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알고보니>와의 인터뷰에서 "집회 형식과 내용을 제한하면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라며 "집회·시위 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견해를 밝혔습니다. 또 1인 시위 규제에 대해서도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1인 시위가 민주주의 발전의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왔다"며 "개인의 억울함을 호소할 마지막 수단인 1인 시위마저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한 조치"라고 덧붙였습니다.

    시위 '모욕·혐오' 해외에선 어떻게 하나

    집회와 시위에서 욕설과 모욕을 처벌할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욕설 시위는 형법을 통해 규제와 처벌이 가능합니다. 우리 형법 311조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모욕죄를 규정합니다. 따라서 집회 현장에서 문제된 과격한 욕설이나 모욕적인 언행 등의 사실이 인정되면 처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밖에 명예훼손(제307조)이나, 정신적 상해를 인정하는 폭행치사죄(형법 제257조)로도 처벌이 가능합니다. 양산 사저 앞 시위에 대해서 지난달 31일 문 전 대통령 측은 시위대를 모욕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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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의 집회 모욕발언 제재 규정

    선진국에선 대부분 뚜렷한 증오·혐오 발언을 엄정하게 규제합니다. 다만 집회에서 나오는 발언에 대해 집시법을 통해 규율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형법상 명예훼손죄처럼 별도의 법안을 통해 구체적 사례를 따로 다루고 있습니다. 집회 시 발생하는 혐오 발언 등을 처벌할 수 있는 주요 법안은 ▲영국에선 공공질서법 17조와 18조 ▲독일은 형법 제130조인 대중선동죄 ▲프랑스는 형법 제3절과 언론법 제 24조, 32조 등이 있습니다.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을 제정한 일본의 경우도 인종, 성별 등 뚜렷한 증오 발언에 대해 지자체의 '조례' 수준에서 과태료를 부과하지 집시법과 같은 '법률'로 제한하지는 않습니다.

    '소음' 손보되, '표현 자유'는 폭넓게

    '집시법을 통한' 내용 규제의 경우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국제적으로 보면 집회와 시위와 관련된 법률로 발언과 내용을 규제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집회 내용 측면에서 모욕과 욕설과 같은 극단적이고 무도한 발언에 대해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명예훼손죄를 엄정하게 적용해 처벌하는 것이 '집회의 자유'와 '시민의 기본권'을 훼손시키지 않는 절충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한덕수 총리가 강조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알고보니] 사저 앞 집회, 법으로 막는다?
    반면 소음 등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습니다. 집회라는 범주가 아니라 환경과 공해라는 측면에서 보다 세밀하게 규정을 마련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이나 독일, 미국 뉴욕 등에서는 우리처럼 한 시간동안 측정을 하는게 아니라 10분의 측정 시간 동안 최고 소음의 기준이 한번이라도 넘어가면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경고나 제재를 줄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배경소음도'라는 개념을 자치경찰법규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각 해당 집회 장소에서의 집회 소음과 해당 집회 장소에서의 배경소음의 차이 값을 계산해서 규제하는 방식입니다. 구체적으로 프랑스는 옥외 고정 집회 시 주간(7시~22시), 야간(22시~7시)에 각각 주변 배경소음 대비 5데시벨, 3데시벨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합니다. 즉 조용한 시골마을과 소란스러운 도심을 규제에 차등을 두는 겁니다. 독일은 소음 기준을 달리 적용하는 대상 지역을 7개로 세분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확성기를 10분 사용하고 15분을 쉬게 하는 식의 규정을 도입해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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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일반 국민도 집회 소음 받아들여야"

    하지만 유념할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 개선 논의는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법원은 "집회에 참가하지 않는 일반 국민도 집회 소음을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고 다양한 판례들을 통해 일관되게 밝혀두고 있는 이유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 글/구성: 박호수

    ※ [알고보니]는 MBC 뉴스의 팩트체크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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