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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김민욱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입력 2022-09-17 08:32 | 수정 2022-09-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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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인간이 플라스틱을 쓰기 시작한지 150년입니다. 당구공 재료였던 코끼리 상아를 대체할 목적으로 처음 탄생한 플라스틱. 그 뒤, 인간은 이제 플라스틱 없이는 살 수 없게 됐습니다. 이제 석기, 청동기, 철기를 지나 플라스틱기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분해되는 데 수백년이 걸리는 플라스틱은 땅과 바다 그리고 인간까지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일상 생활에서 쓰고 있을까요? 그리고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플라스틱 감축을 선도하는 유럽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소비자, 생산자, 정부의 입장에서 플라스틱 문제를 들여다 보기로 했습니다.

    # 1. 소비자

    먼저 MBC 기후환경팀 현인아, 김민욱, 류현준 세 기자는 가정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을 일주일 동안 전수조사하는 그린피스의 플콕조사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집집마다 가족 구성원과 생활 모습이 다른 만큼 플라스틱 종류도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기후환경팀 기자인데 플라스틱을 왕창 쓰고 있는 모습이 나오면 좀 부담스럽겠죠?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 현인아 / 고등학생 중학생 딸 둘
    고등학생, 중학생 딸 둘과 함께 사는 워킹맘 현인아 기자. 가족끼리 스케줄도 다르니 아무래도 배달용기가 걱정됩니다.

    ■ 김민욱 / 26개월 아이 1
    이제 두 돌이 조금 지난 아이가 있는 김민욱 기자. 아기 용품 상당수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졌고 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 류현준 / 부모님
    부모님과 함께 사는 류현준 기자는 그래도 좀 자신만만해 보였는데 정수기가 없어서 생수를 구입해 먹는게 살짝 마음에 걸렸습니다.

    현인아 기자 집에서는 조사 둘째 날부터 일회용 컵들이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큰 딸이 들고 들어왔습니다. 텀블러를 써보려고 한 적이 있긴 한데, 아무래도 용량이 안 맞는 경우도 있고 애매해서 지금은 그냥 일회용컵을 받고 있다더군요.

    3일차에 김민욱 기자는 밖에서 김밥을 한 줄 포장했습니다. 종이상자에 담겨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상자 안 쪽이 반짝입니다. 얇은 비닐 코팅이 돼 있었습니다. 이른바 히든 플라스틱.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플라스틱이 우리 주변에 많았습니다.

    4일차, 류현준 기자에게는 뜻밖의 소득이 있었습니다. 밖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잘 몰랐던 부모님의 식생활을 알게 된 겁니다. 시금치도, 도토리묵도, 어린잎 채소 샐러드도… 모조리 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예상대로 배달 음식 용기들이 차례차례 쌓여간 현인아 기자의 집. 아이 먹을 신선식품 등을 주문했더니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에 비날 아이스팩까지 덤으로 받은 김민욱 기자. 부모님이 드시는 건강 식품들이 모조리 플라스틱 폐기물이 되면서 지구의 건강은 못 지키게 된 류현준 기자까지. 일주일 동안 확인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정말 자잘하면서도 다양했습니다. 세 사람의 집에 쌓인 플라스틱 폐기물은 모두 351개. 한 집당 평균 117개나 되는 플라스틱이 나왔고 가장 많은 집은 167개, 적은 집은 72개였습니다. 아직 집계중이지만 이번 조사에 참여한 전국 3천여 명의 집에서 나온 플라스틱 제품은 모두 10만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조사를 한다고 하니 조금은 신경이 쓰여서 플라스틱을 약간 줄여보긴 했지만 쏟아져 나온 플라스틱 폐기물. 분명한 건 줄이고 싶어도 줄이기 어려울 만큼 우리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을 줄이기는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번 조사에는 서울 목운중학교 1학년 15반 학생 29명도 함께 했습니다. 취재팀은 학교의 허락을 받아 조사 마지막 날인 8월 26일 금요일,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등교길 학생들의 가방에는 하나씩 생수병이 꽂혀 있었습니다. 페트병이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학교에서 정수기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학생들은 대부분 물을 사옵니다. 1학년 15반에서만 일주일 동안 모인 페트병만 122개였습니다. 한 학년에 15학급, 세 학년이 있으니 일주일 동안 5천개 넘는 페트병이 학교에서 버려진다고 보면 되는 겁니다.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그런데 마지막 날, 한 친구의 발표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줄이고 싶었지만 줄일 수 없었던 점을 반성한다"는 발표였습니다. 우리가 줄일 수 없는 플라스틱 폐기물, 그런데 정말 이 중학교 1학년 학생이 반성할 일일까요?

    # 2. 생산자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플라스틱 폐기물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생애 주기'로 표현되는 사용 기간이 짧은 플라스틱은 바로 포장재입니다. 특히 식품 포장재가 주범입니다. 지난해 그린피스 플라스틱 조사에는 시민 2천6백명이 참여해 모두 7만 7천개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집계됐습니다. 이중 제조회사가 확인 가능한 폐기물의 기업들 순위를 매겨봤더니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식음료 회사입니다. 1위는 롯데칠성음료, 2위는 CJ제일제당, 3위는 농심, 4위 롯데제과, 5위 한국코카콜라. 상위 10개 기업이 만든 폐기물은 전체 집계된 폐기물의 25%였습니다.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취재팀은 이중 5개 회사에 연락해 제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사용하는지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5위 한국코카콜라를 제외한 4개 회사에서 답이 왔습니다. 롯데칠성음료 연간 5만4381톤, CJ제일제당 3만4865톤, 농심 2만3988톤. 모두 합치면 12만 2507톤입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만들면 122억 5천 7십만 개를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양. 더 놀라운 점은 기업별 사용량 순위가 폐기물 순위와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기업들이 만들면 소비자는 그대로 쓸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기업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취재했던 기업들은 플라스틱 병의 무게를 줄이고, 과자 비닐포장 안쪽의 플라스틱 트레이를 없애고, 생수병 라벨을 없애고, 캔 햄의 뚜껑을 없애는 등의 감축 노력을 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런데 충분할까요? 정말 무게 줄이고 뚜껑 없애면 플라스틱 폐기물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까요? 취재 중 만나고 통화한 그린피스 등의 환경단체 전문가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 부분적인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지요. 언제까지 얼만큼 줄이겠다는 정확한 로드맵과 플라스틱을 대체할 포장재의 활용과 같은 혁신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질문을 하고 싶은 곳이 생깁니다. 네, 정부입니다.

    # 3. 정부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환경부는 지난 6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가 돌연 12월로 미뤘습니다.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잘 기억나지 않는 분들을 위해 보증금제를 다시 설명해 드리자면, 카페나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플라스틱이나 종이컵에 음료를 받아 이른바 '테이크 아웃'을 할 때 200~300원의 보증금을 내고 컵을 반납하면 돌려받는 제도입니다. 전국에 매장이 100개 이상인 프랜차이즈가 대상이었고 각자 다른 프랜차이즈 매장에 컵을 반납해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도록 준비했었습니다. 비교적 재활용 시스템이 우수한 편인 우리나라에서 재활용률이 떨어졌던 일회용컵을 최대한 회수해 재활용하겠다는 제도였죠.

    하지만 전국 100개 이상의 매장을 가진 프랜차이즈 중에는 메가커피, 커피베이, 백다방 등도 있습니다. 이들 프랜차이즈의 특징은? 네, 매장에서 음료를 마시는 손님보다 포장하는 손님이 많고 비교적 저렴하게 음료 가격을 책정해 많이 파는 방식으로 영업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매장을 점주 혼자 운영하는 점포도 많습니다. 이런 점포에서 다른 프랜차이즈의 컵도 반납받아 보증금도 돌려준다고 생각하니 점주들의 부담은 이만저만 아니었을 겁니다. 결국 여기저기서 거센 반발이 부딪혔고 환경부가 보다 잘 준비해 보겠다며 시행을 미룬 겁니다.

    환경부가 이 보증금 제도를 준비한 기간은 2년입니다. 물론 그 2년 사이 코로나19라는 예상 못 한 상황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상공인들의 반발도 예상 못하고, 그거에 대비한 자동회수장치도 준비하지 못하고 제도를 시행하려 한 겁니다. 그런데 유예 이후 논의 내용들도 이상합니다. 관련 논의 내용을 접한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차 반납 불가, 즉 스타벅스의 컵은 스타벅스에만, 투썸플레이스의 컵은 투썸플레이스에만 반납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수정하고 보증금제도 적용 대상을 줄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전국 시행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일부 지역에서만 시범적으로 실시한다는 내용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제주와 세종이라는 구체적인 지명까지 언급됐습니다. 당초 시행하려던 계획이 엄청 축소됐다고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이에 대해 환경부는 조만간 구체적인 시행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며 그 때까지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보증금은 낮추지 않고 300원으로 유지하고 또 50개의 무인 회수기를 연내에 설치한 다는 내용은 확인해 줬습니다. 그런데 50개요? MBC가 있는 마포구에만 무인회수기를 놓아도 50개로는 부족하지 않겠어요?

    일회용컵 보증금제도를 둔 우왕좌왕은 플라스틱 정책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정부는 그 동안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카페 매장 내 플라스틱 컵 사용 제한 등의 플라스틱 감축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이유로 중단하기도 하고 또 현장에서는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정책도 있습니다. 이런 정부의 플라스틱 정책이 염려되는 이유는 국제사회 흐름 때문입니다. UN은 지난 2월 제5차 환경총회에서 2024년까지 플라스틱 협약을 체결하기로 했습니다. 법적인 구속력을 갖는 이 협약이 체결되면 우리 정부와 기업은 구체적인 플라스틱 감축 로드맵을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와 산업 측면에서 불이익을 입는 상황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재활용을 잘 한다고, 라벨을 잘 뗀다고 플라스틱 폐기물이 줄진 않습니다.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이 이에 따라 적극적인 감축 노력을 기울여야 유의미한 변화가 생겨날 겁니다. 지구 전체가 플라스틱으로 뒤덮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그래야만 조금씩 잦아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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