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소비자
먼저 MBC 기후환경팀 현인아, 김민욱, 류현준 세 기자는 가정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을 일주일 동안 전수조사하는 그린피스의 플콕조사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집집마다 가족 구성원과 생활 모습이 다른 만큼 플라스틱 종류도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기후환경팀 기자인데 플라스틱을 왕창 쓰고 있는 모습이 나오면 좀 부담스럽겠죠?

고등학생, 중학생 딸 둘과 함께 사는 워킹맘 현인아 기자. 가족끼리 스케줄도 다르니 아무래도 배달용기가 걱정됩니다.
■ 김민욱 / 26개월 아이 1
이제 두 돌이 조금 지난 아이가 있는 김민욱 기자. 아기 용품 상당수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졌고 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 류현준 / 부모님
부모님과 함께 사는 류현준 기자는 그래도 좀 자신만만해 보였는데 정수기가 없어서 생수를 구입해 먹는게 살짝 마음에 걸렸습니다.
현인아 기자 집에서는 조사 둘째 날부터 일회용 컵들이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큰 딸이 들고 들어왔습니다. 텀블러를 써보려고 한 적이 있긴 한데, 아무래도 용량이 안 맞는 경우도 있고 애매해서 지금은 그냥 일회용컵을 받고 있다더군요.
3일차에 김민욱 기자는 밖에서 김밥을 한 줄 포장했습니다. 종이상자에 담겨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상자 안 쪽이 반짝입니다. 얇은 비닐 코팅이 돼 있었습니다. 이른바 히든 플라스틱.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플라스틱이 우리 주변에 많았습니다.
4일차, 류현준 기자에게는 뜻밖의 소득이 있었습니다. 밖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잘 몰랐던 부모님의 식생활을 알게 된 겁니다. 시금치도, 도토리묵도, 어린잎 채소 샐러드도… 모조리 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번 조사에는 서울 목운중학교 1학년 15반 학생 29명도 함께 했습니다. 취재팀은 학교의 허락을 받아 조사 마지막 날인 8월 26일 금요일,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등교길 학생들의 가방에는 하나씩 생수병이 꽂혀 있었습니다. 페트병이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학교에서 정수기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학생들은 대부분 물을 사옵니다. 1학년 15반에서만 일주일 동안 모인 페트병만 122개였습니다. 한 학년에 15학급, 세 학년이 있으니 일주일 동안 5천개 넘는 페트병이 학교에서 버려진다고 보면 되는 겁니다.


# 2. 생산자


물론 기업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취재했던 기업들은 플라스틱 병의 무게를 줄이고, 과자 비닐포장 안쪽의 플라스틱 트레이를 없애고, 생수병 라벨을 없애고, 캔 햄의 뚜껑을 없애는 등의 감축 노력을 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런데 충분할까요? 정말 무게 줄이고 뚜껑 없애면 플라스틱 폐기물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까요? 취재 중 만나고 통화한 그린피스 등의 환경단체 전문가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 부분적인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지요. 언제까지 얼만큼 줄이겠다는 정확한 로드맵과 플라스틱을 대체할 포장재의 활용과 같은 혁신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질문을 하고 싶은 곳이 생깁니다. 네, 정부입니다.
# 3. 정부

하지만 전국 100개 이상의 매장을 가진 프랜차이즈 중에는 메가커피, 커피베이, 백다방 등도 있습니다. 이들 프랜차이즈의 특징은? 네, 매장에서 음료를 마시는 손님보다 포장하는 손님이 많고 비교적 저렴하게 음료 가격을 책정해 많이 파는 방식으로 영업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매장을 점주 혼자 운영하는 점포도 많습니다. 이런 점포에서 다른 프랜차이즈의 컵도 반납받아 보증금도 돌려준다고 생각하니 점주들의 부담은 이만저만 아니었을 겁니다. 결국 여기저기서 거센 반발이 부딪혔고 환경부가 보다 잘 준비해 보겠다며 시행을 미룬 겁니다.
환경부가 이 보증금 제도를 준비한 기간은 2년입니다. 물론 그 2년 사이 코로나19라는 예상 못 한 상황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상공인들의 반발도 예상 못하고, 그거에 대비한 자동회수장치도 준비하지 못하고 제도를 시행하려 한 겁니다. 그런데 유예 이후 논의 내용들도 이상합니다. 관련 논의 내용을 접한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차 반납 불가, 즉 스타벅스의 컵은 스타벅스에만, 투썸플레이스의 컵은 투썸플레이스에만 반납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수정하고 보증금제도 적용 대상을 줄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전국 시행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일부 지역에서만 시범적으로 실시한다는 내용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제주와 세종이라는 구체적인 지명까지 언급됐습니다. 당초 시행하려던 계획이 엄청 축소됐다고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도를 둔 우왕좌왕은 플라스틱 정책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정부는 그 동안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카페 매장 내 플라스틱 컵 사용 제한 등의 플라스틱 감축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이유로 중단하기도 하고 또 현장에서는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정책도 있습니다. 이런 정부의 플라스틱 정책이 염려되는 이유는 국제사회 흐름 때문입니다. UN은 지난 2월 제5차 환경총회에서 2024년까지 플라스틱 협약을 체결하기로 했습니다. 법적인 구속력을 갖는 이 협약이 체결되면 우리 정부와 기업은 구체적인 플라스틱 감축 로드맵을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와 산업 측면에서 불이익을 입는 상황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재활용을 잘 한다고, 라벨을 잘 뗀다고 플라스틱 폐기물이 줄진 않습니다.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이 이에 따라 적극적인 감축 노력을 기울여야 유의미한 변화가 생겨날 겁니다. 지구 전체가 플라스틱으로 뒤덮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그래야만 조금씩 잦아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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