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감전사 일용직에게 "회사가 살아야‥작업 아니었다 해줘"](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2/10/16/rt1.jpg)
9월 21일, 제보 한 건이 들어왔습니다.
지난 8월 6일, 경기 고양시에서 일용직 근로자 52세 김모 씨가 전기작업 중 감전사고를 당했고 45일간의 치료 끝에 결국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지자체의 관할 부서에 전화해봤지만 어느 곳도 이 사고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제보자도 사망하신 분과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어 더 아는 바가 없다 했습니다.
유족을 만나봐야겠다는 마음에 무작정 돌아 본 대형병원 장례식장에서도 별다른 단서를 얻지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된 건 아닐까, 서른여덟 살의 나이에 전신주 위에서 사고를 당해 생을 마감한 故 김다운 씨가 떠올라 답답했지만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제발 진실을 밝혀주세요"..큰 딸의 제보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9월 27일, 한전 하청노동자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숨진 분의 이름은 김효용 씨였습니다. 그분의 큰 딸이 제보를 해왔습니다.
김효용 씨 큰딸 제보 中
"작년 11월에도 한전 하청 노동자의 감전 사망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음의 외주화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건의 은폐와 조작 역시 이뤄지고 있습니다. 심장이 너무도 아려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마음에 제보합니다.
제발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그 다음 날, 김효용 씨의 아내와 큰 딸을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탐정M] 감전사 일용직에게 "회사가 살아야‥작업 아니었다 해줘"](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2/10/16/rt2.jpg)
김효용 씨는 두 딸을 둔 가장입니다. 큰딸은 대학생, 늦둥이 막내딸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김효용 씨가 사고를 당하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45일, 두 딸이 아빠와 보낸 시간은 딱 반나절에 그쳐습니다. 코로나19로 중환자실 면회가 제한된 탓이었습니다.
김효용 씨 부인 인터뷰 中
"8월 초부터 애들 아빠 혼수상태 빠지기 전 9월 15일까지 딱 하루 봤어요. 집에 와서 잠깐 있을 때 보고, 그 반나절 동안 대화가 힘들어서 말 못하는.. 대화 몇 마디 하는 그 반나절만 보고 보낸 거예요."
막내 딸은 아직 아빠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아빠의 입관식에 엄마 손을 잡고 들어갔지만, 그게 아빠인 줄은 모릅니다. 좋은 모습만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에 엄마가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김효용 씨의 마지막 모습에 가족들은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뒷목과 머리, 어깨에 3도 화상을 입고 뇌출혈·뇌부종에 근육이 녹아내리는 질환까지 앓은 탓에 몸 이곳저곳이 계속된 치료와 수술로 찢겨 있었습니다. 차마 염을 하지 못하고 김효용 씨를 떠나보냈습니다.
김효용 씨 부인 인터뷰 中
"그 놈의 돈이 뭐라고. 굶어 죽어도 옆에 있었으면 살릴 수 있었을까. 그 놈의 산재가 뭐라고 뛰어다니느라고.. 아기 아빠 지켰어야 되는데."
김효용 씨의 아내는 가슴을 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치료에만 집중해" 늦어진 산재 처리
김효용 씨 부인 인터뷰 中
"그 사람들이 나한테 '산재는 우리가 처리한다. 신랑 건강만 신경써라'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런 줄 알았죠."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현장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효용 씨의 아내에게 "남편 치료에만 집중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배려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2주 가까이 흐르고, 8월 18일. 김효용 씨의 상태가 악화돼 병원을 옮겨야 했습니다. 입원 수속을 밟는데 간호사가 "산재 신청은 왜 안 하세요?"라며 물었습니다. 효용 씨 아내는 당황했습니다. 분명 회사에서 다 알아서 해 준다 했는데, 무엇 하나 처리돼 있는 게 없었습니다.
김효용 씨 부인 인터뷰 中
"누구를 상대로 이걸 써야 되나를 모르겠더라고요. 사람이 저렇게 됐는데, 그 누구도 나한테 어느 회사 일을 해서 어떻게 해서 이렇게 사고가 났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직접 산재 신청을 해야 하는데, 남편이 어느 회사가 하는 공사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다 사고를 당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병상에 누운 남편에게 펜을 쥐어 주고 현장 약도를 그려달라 했습니다. 현장 동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 그날의 기억 조각조각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겨우 사고 경위서를 완성했습니다.
그것 말고도 처리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로서, 남편의 보호자로서 해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남편의 상태는 나빠져만 갔습니다.
김효용 씨가 마지막으로 머문 병원은 코로나19 검사 결과지를 제출한 간병인만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게 했습니다. 대신 들어가면 24시간 상주해야 했습니다. 당장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생각하면 요양급여와 같은 문제를 그냥 제쳐둘 수 없었습니다.
![[탐정M] 감전사 일용직에게 "회사가 살아야‥작업 아니었다 해줘"](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2/10/16/rt5_1.jpg)
할 일을 다 마치고 코로나19 검사 결과까지 받은 건 9월 14일. 급히 중환자실에 들어섰지만, 남편은 이미 수술실로 향한 뒤였습니다. 그 날은 김효용 씨가 8시간의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또 음력 생일을 챙기는 김효용 씨의 생일이자, 아내의 양력 생일이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짧은 대화마저 힘든 상태였습니다. 집에 없는 엄마, 아빠를 위해 두 딸이 케익을 불며 생일축하 영상을 찍어 보내 왔는데, 김효용 씨는 그 15초짜리 영상마저 끝까지 보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의식 불명 상태로 닷새를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휴대전화에 남은 수십 개의 통화 녹취
김효용 씨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휴대전화를 샅샅이 뒤져 본 유족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효용 씨 생전 통화 녹취 中
"회사도 좀 살기 위해서..우리가 이제 점검, 그날 뭐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얘기해 줘"
"모르는 전화는 받지 마. 이것저것 물어보려고 전화할 거야. 그런데 받지 마."
"혹시 물어보면 하청 아니고 일용직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이야기만 해."
"미안하다. 이런 부탁도 해서.."
병상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에게, 현장 관계자들은 집요하게 조작과 은폐를 지시했습니다. 김효용 씨는 화는 커녕 볼멘소리 한번 하지 못했습니다. 친한 동료에게 "다 나아서 또 일 하려면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고 털어놓을 뿐이었습니다.
![[탐정M] 감전사 일용직에게 "회사가 살아야‥작업 아니었다 해줘"](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2/10/16/rt3.jpg)
이 같은 은폐 시도 배경은 뭐였을까요.
지난 1월 보도된 故 김다운 씨 사망사고 이후 한국전력은 주요 재해 근절을 위한 특별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감전사고를 막겠다며 '정전 후 작업'을 확대하고 모든 공사 현장에 안전담당자를 배치하겠다고 밝혔고, 모든 작업에 대해 전날 오후 4시까지 작업계획을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김효용 씨가 사고를 당한 그날 작업은 한전에 보고되지 않은 '무단 작업'이었습니다. 8월 6일 당일은 '토요일'이기도 했습니다.
그 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김효용 씨에게 현장 관계자들은 그날의 작업을 '점검'이라고 말하라고 했던 겁니다.
김효용 씨-업체 관계자 생전 통화 녹취 中
"토요일(작업)이 무단이야 원래..회사도 좀 살기 위해서..우리가 이제 점검, 전날 작업해 놓고 확인 차원에서 (한 걸로)"
그래서일까. 그 날 현장에는 김효용 씨를 비롯한 작업자들의 '안전'을 책임질 담당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공사 전반을 관리해야 하는 감리원은 물론, 현장안전관리책임자 역할을 하는 현장대리인도 없었습니다. 위험성을 점검하는 한전의 실시간 모니터링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김효용-현장 동료 생전 통화 녹취 中
"맨홀에 들어가 있었는데, 막 큰소리 나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아가지고 뭔일인가 하고 올라왔어. 올라와서 딱 보니까 아무도 안 달라붙어 있잖아."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작업하던 김효용 씨는 결국 380V 전압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미승인 무단작업을 필수 금지행위로 제정하고 집중 관리하겠다던 한전의 선언은 유명무실했던 겁니다.
시공업체는 00전기, 현장에 있던 건 △△전기?
김효용 씨와 김효용 씨의 가족들과 가장 많이 통화한 건 △△전기 소속의 A소장이었습니다.
취재진도 처음 이 사건을 마주했을 때는 당연히 △△전기가 이 공사의 시공업체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한전의 발주를 따낸 시공업체는 00전기였습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김효용 씨를 비롯해 현장에 있던 모든 동료들은 00전기가 고용한 '일용직 노동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김효용 씨를 비롯한 현장 노동자들을 관리한 건 △△전기였습니다. 노동자들의 현장 투입부터 임금을 관리하고 심지어 '현장소장'이라는 직책을 두며 작업 전반의 실질적인 책임자 역할까지 했습니다.
시공업체인 00전기가, 법으로 금지된 하청을 △△전기에게 주고, 그 사실을 가리려고 △△전기 소속 작업자들을 자신들이 직접 일용직으로 고용한 것처럼 의심되는 대목이었습니다.
불법 하도급을 한 것으로 보였다는 뜻입니다.
<전기공사업법 제14조>
1. 공사업자는 도급받은 전기공사를 다른 자에게 하도급 주어서는 아니 된다.
현행법상 전기공사를 하는 업체는 또 다른 업체에게 하도급을 줄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특히 산업재해의 피해가 하청 노동자들에게 집중되는 '죽음의 외주화' 문제가 불거지자 작년부터는 이런 불법 하도급이 한 번만 적발돼도 업체는 6개월 내 영업정지 처분을 받습니다.
심지어 이 공사 현장의 공고문에도 명시돼 있었습니다.
13. 기타사항
사. 본 공사는 전기공사업법 제14조(하도급의 제한 등)에 의거 하도급이 불가하며, 관련법령상 하도급규정을 위반하여 하도급을 하거나, 당사의 승인 없이 하도급을 하는 경우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장 관계자들도 이 문제를 분명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주문을 김 씨에게 했겠죠.
김효용 씨-업체 관계자 생전 통화 녹취 中
"한전 직원이 통화 하게 되면, △△전기가 하청으로 해서 일을 들어갔냐고 물어볼 수 있어 혹시..하청 아니고 일용으로 계약서 쓰고, 그냥 일을 하러 들어갔다 그렇게 이야기만 해”
그럼에도 이들은 취재진에게 "근로계약서를 직접 작성한 적법한 고용관계"라고 주장했습니다. △△전기와는 "임금 지급 문제나 인력 수급에 대해 상의한 수준"이라는 겁니다.
불법 하도급 관행을 원천 차단하겠다던 한전은 "현장 작업자들의 근로계약서를 확인"했다며 "제3의 업체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밝혔습니다.
![[탐정M] 감전사 일용직에게 "회사가 살아야‥작업 아니었다 해줘"](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2/10/16/rt4.jpg)
처음 김효용 씨의 사고를 알게 된 9월 27일부터 약 2주간 취재진이 확인한 '불법' 정황들만 해도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안전 수칙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은 물론, 시공업체가 다른 업체에 재하청을 준 정황과 보고 없이 이뤄진 '무단 작업'까지.
하지만 고용노동부와 경찰의 본격적인 수사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취재진-고용노동부 통화 녹취 中
"글쎄요, 이거는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은 없거든요."
취재진-지자체 통화 녹취 中
"기자님께서 말씀하신 거 통보가 들어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고 발생 한달 반 만인 9월 21일에도 산업재해를 관리하는 지자체와 고용노동부 부처 직원들은 이 사고에 대해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의 초기 수사도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김효용 씨와의 첫 통화에서부터 "종결해도 되냐"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곧 '불입건 통지서'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이후 김 씨가 숨진 뒤에야 부랴부랴 재수사에 착수해 협력업체 관계자 3명을 입건했습니다.
故 김다운 씨 사건 이후 한전이 내세운 주요 대책들은 이번 현장에서 대부분 지켜지지 못했고, 결국 또 다른 전기노동자가 감전 사고를 당했습니다.
무단 작업도, 불법 하도급 정황도 "몰랐다"고만 하고 있는 한전이 정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협력업체들은 언제든 사업상의 이유로 '무단 작업'이나 '불법 하도급'의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희생이 반복될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한전이 만들겠다던 '중대재해 퇴출의 해', 반복된 전기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더 깊은 고민과 촘촘한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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