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사회
기자이미지 차현진

[탐정M] 땅속에서 나온 68개의 치아‥'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탐정M] 땅속에서 나온 68개의 치아‥'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입력 2022-10-23 07:30 | 수정 2022-10-23 09:05
재생목록
    [탐정M] 땅속에서 나온 68개의 치아‥'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선감도에 묻힌 아이들

    "썰물 때가 되면 갯벌에 친구들의 주검이 박혀있는데요. 그 시신을 가마니에 실어 야산에 묻어준 기억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안영화 / 선감학원 피해자

    경기도 안산의 작은 섬 선감도.

    지금은 육지와 연결됐지만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외딴 섬이었습니다.

    서울과 가까워 주말이면 나들이객들로 붐비는 대부도와도 가까운 위치에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이곳에 있는 한 야산에서 유해 발굴이 진행됐습니다.

    조사관들이 조심스레 흙을 파내자 그 안에서 몇 개의 치아와 하얀색 단추가 발견되더니,
    이내 파내는 무덤마다 유해와 유품이 나옵니다.
    [탐정M] 땅속에서 나온 68개의 치아‥'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그렇게 26일부터 닷새간 무덤 5기에서 발굴된 치아는 68개.

    감식을 맡은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이 치아들을 15살에서 18살 사이 청소년들의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과연 이들은 누굴까. 왜 이들은 이곳에 묻혔을까.

    섬 특유의 한적함이 묻어나는 이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국가기관 주도로 운영된 선감학원

    봉분에 묻힌 이들은 '선감학원' 희생자들이었습니다.

    치아와 함께 발굴된 6개의 단추가 선감학원 제복의 단추와 같았습니다.

    선감학원은 일제 강점기인 1942년부터 82년까지, 40년간 운영된 '부랑아 보호소'입니다.

    이곳에 끌려온 아이들만 최소 4천 6백여 명.
    [탐정M] 땅속에서 나온 68개의 치아‥'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경기도가 운영을 했는데 도지사가 선감학원의 구성원을 조직했고, 원장 역시 주로 3급 이상의 도 사무관이 맡았습니다.

    당시 정부는 '거리를 배회하거나 걸식하는 아동을 근절한다'는 명목 아래 전국에 있는 아이들을 선감도로 잡아왔습니다.

    그럴싸한 명목과는 달리, 아이들이 선감학원에 끌려오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옷이 허름해서" "친구들과 놀다가" "주소를 잘못 대서"

    버젓이 부모가 있는 아이도 잡혀 왔는데, 원아 대장에는 '아버지는 숨졌고 엄마는 정신이 나가 행방불명됐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별도의 확인 절차 없이, 엉터리로 기재된 겁니다.

    '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선감학원에 들어간 아동들은 그곳에서 끔찍한 인권 유린을 당했습니다.

    군대식 통제와 폭행, 강제 노역이 자행됐기 때문입니다.
    [탐정M] 땅속에서 나온 68개의 치아‥'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아이들의 일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학원 본관 건물 앞에 있는 운동장에 모입니다.

    원장의 훈시가 있은 후 각자 배치된 장소로 가 일과를 시작하는데,

    보통 염전, 가축장, 농지 등으로 이동해 개척, 사육, 농사 등의 일을 했습니다.

    물론 이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없었습니다.

    일부 아이들은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탐정M] 땅속에서 나온 68개의 치아‥'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고단한 일을 하지만 아이들의 식사는 형편없었습니다.

    꽁보리밥과 함께 감자국과 무장아찌, 김치 정도만 반찬으로 나왔고 그마저도 부패가 심해, 배고파서 흙속 애벌레를 먹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뻘건 황토 흙인데, 그 흙이 맛있어‥어떻게 먹을 수 있는 수단으로 그걸 먹은 거지" - 김영배 선감학원 피해자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할 수 없었는데, 1인당 0.3평의 공간에서 옆으로 뉘어 자는 '칼잠'밖에 청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견디지 못한 아이들은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목숨 걸고 바다를 헤엄쳤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망자가 속출했고, 시신마저 학원에 남은 아이들이 근처 야산에 묻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모두 29명.

    이마저도 퇴원한 아동 가운데 '탈출'한 비율이 5명 중 1명꼴이라, 실종되거나 사망한 사람은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탐정M] 땅속에서 나온 68개의 치아‥'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탈출을 위해) 헤엄쳐서 물을 건너가야 하는데 그 물을 이기지 못하고 익사를 해서 떠밀려오는 친구들‥여기다 제가 와서 묻었어요" - 안영화 / 선감학원 피해자

    "국가에 짓밟힌 삶"‥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들

    기자가 만난 피해자들은 공통으로 "국가가 나의 삶을 짓밟았다"고 말했습니다.

    선감학원에 수용되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아, 번번이 취업에 실패해 구두닦이와 공사장 등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아왔다는 겁니다.

    "나를 경찰관들이 선감학원에 안 잡아갔으면, 대학교까지 나와 떳떳하게 세상을 살았을 텐데‥제 인생이 다 삐뚤어졌어요" - 정효일 / 선감학원 피해자

    피해자 대부분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한 피해자는 "결혼한 뒤 자식들을 교육할 때 나도 모르게 한 번씩 분노 조절을 못 한다"며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선감학원 내에서 있었던 강압적인 태도들이 내 몸에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선감도의 악몽 때문에 살면서 한 번도 바다로 여행을 가지 않았다는 피해자도 있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 이번 선감학원 인권 침해 사건 진실규명 신청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자살을 시도했다고 답변했습니다.

    또, 선감학원을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린다'거나 '식은땀이 나고 불안하다'는 등 피해자들 대부분이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렸을 때 선감학원에서 있었던 고통은 그대로 있죠" 김영배 - 선감학원 피해자
    [탐정M] 땅속에서 나온 68개의 치아‥'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국가 첫 진실규명‥폐원 40년 만에 나온 공식 사과

    선감학원의 실체를 조사해 온 진실화해위원회는 그제(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선감학원 피해자 167명에 대한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을 '국가 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로 규정한 겁니다.

    경기도와 경찰, 법무부 등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라고도 권고했습니다.
    [탐정M] 땅속에서 나온 68개의 치아‥'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운영에 적극 가담한 경기도 역시 김동연 경기지사가 회견에 직접 참석해 피해자에게 거듭 사과하며 '생활안정지원금 지급'과 '추모공간 마련' 등을 약속했습니다.

    앞서 김 지사는 회견이 열리기 전날(19일) 선감학원에 방문해 일부 잔존시설들을 피해자들과 함께 둘러보고 갔습니다.

    경기도 국정감사장에서 선감학원 피해 보상에 대한 주체를 경기도가 아닌, '중앙정부'로 규정한 지 하루 만입니다.

    피해자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운영에 가담한 경기도가 책임을 중앙 정부에 미뤘다는 겁니다.

    실제로 김 지사는 경기도 자체적으로 유해 매장 추정지에 대한 전면 발굴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중앙정부와 함께 논의해봐야 할 사안"이라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습니다.

    앞으로 경기도가 선감학원 운영에 관한 책임을 어디까지 질지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연관 기사] 10.20 뉴스데스크 외딴 섬으로 사라진 선감학원 소년들‥"국가폭력" 첫 진실규명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419095_35744.html

    (취재: 차현진 chacha@mbc.co.kr / 영상취재: 위동원 정지호 김재현)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