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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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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회장 사과, 헛웃음만 나왔다" 어머니의 작심 토로

"SPC 회장 사과, 헛웃음만 나왔다" 어머니의 작심 토로
입력 2022-10-26 11:44 | 수정 2022-10-2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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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C 회장 사과, 헛웃음만 나왔다" 어머니의 작심 토로
    SPC 계열사의 평택 공장에서 교반기에 끼어 숨진 20대 여성 노동자의 어머니를 천안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뷰가 이뤄진 날(24일)은, 마침 그의 생일이었습니다.

    매년 생일이면 딸아이는 미역국을 끓여줬다고 합니다.

    손끝이 야무졌던 딸이 만든 미역국은 정말 맛있었다고, 어머니는 잠깐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다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드셨는지 이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조그마한 체구인 어머니의 두 눈은 눈물에 짓물러져 있었고, 잠도 못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못해 손가락은 앙상하게 말라 있었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 조차도 죄스럽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사고 자체와 SPC의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은 물론 언론의 관심에도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하지만 딸에게 죄 짓지 않으려 한다며 인터뷰에 나섰습니다.

    힘든 질문에도 딸이 죽은 이유를 꼭 알고 싶다며, 눈물을 삼켜가며 대답했습니다.

    방송에 담지 못했던 내용까지, 전문을 공개합니다.
    "SPC 회장 사과, 헛웃음만 나왔다" 어머니의 작심 토로
    Q. 작업 자체가 신입이 하기에는 맞지 않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연차가 적거나 여성들이 하던 일이 아니었다는데
    "그러지 않아도 딸과 같이 일했던, 가끔 도와주셨던 남자분이 있다. 그분이 장례식장에 오셨길래 물어봤다. '무게가 어느 정도고, 남자가 하기에도 어느 정도냐' 여쭤봤는데 남자가 하기에도 벅찼던 일이라고 하더라. 그 소리를 듣는데 더 마음이 아팠다. 그런 일을 딸이 혼자 했다는 것이잖나. 저는 아직까지도 왜 이런 일이 저한테 일어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Q. 평소에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었나
    "평소에 무거운 거를 든다는 얘기는 종종 했었다. 가끔 야근하고 오면 몸에 멍이 좀 많이 들어있었다. 팔 다리, 특히 다리 같은 경우에는 어디다 부딪혔다고 얘기를 했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길래 그렇게 맨날 부딪히면서 일을 하는지 사실은 되게 궁금했다. 그런데 위험한 일이라고는 전혀 얘기를 안 했었다."

    Q. 12시간씩 맞교대로 근무했다는데
    "저도 12시간이라고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이 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풀 가동시켰다는 것 아닌가. 이건 완전히 사람을 기계 취급하는 것 아닌가. 저는 용납이 안 된다."

    Q. 12시간 근무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나
    "항상 오면 몸이 축 처져서 왔다. 힘들어하는 모습이 선하게 보였다. 그래서 저는 진짜 솔직히 그만두라고도 몇 번 얘기했었다. 계속 너무 힘들어하고 온몸에 멍들어 오고 그러니까. 그랬더니 딸이 그거 안 하면 뭐 하냐고, 했던 일이니까 해야 되고‥책임감이 워낙 강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도 많이 어른스러웠다. 그리고 끝내는 이렇게까지 됐다. 진작에 제가 말렸어야 했는데, 그만두라고 했어야 되는데 그렇게 못 한 게 진짜 너무 한이 된다."


    때로는 투닥거리고, 또 때로는 서로를 챙겨주는 여느 평범한 모녀였습니다. 그날도 딸의 출근길은 너무나도 일상적이었습니다. 딸을 다시 못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Q. 마지막 출근 모습은 어땠나
    "야근할 땐 항상 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갔다. 사고 전날도 식사하고 그렇게 하고, 똑같았다. 출근할 때 다녀와라 고생해라 하고‥딸아이가 힘들게 커서 제가 자책이 많이 든다. 조금만 더 제가 덜 힘들게 했더라면 이렇게 가지 않았을텐데‥하루 아침에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나. 뉴스에서나 남일로만 받아들였지 내 일로 이렇게 닥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Q. 피해자가 제빵을 좋아했다고 들었다
    "딸이 고등학교 때 특성화고에 들어갔다. 조리과. 한식 자격증도 따고, 제과 제빵 자격증도 따고 해서, 관심도 있고 손재주도 있었다. 딸아이가 그래서 학교에서도 늘상 인정을 받았다. 그러다 이제 학교에서도 취업을 해야 되니까, 추천하는 회사들이 있지 않나. 거기에 파리바게트가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괜찮다, 대기업이다 하니까 그쪽으로 가보지 않겠냐는 식으로 해서 딸이 선택을 한 것이다."

    Q. 처음부터 SPL에서 일을 했나
    "처음에는 (파리바게뜨) 매장에 나가서 제빵사로 일을 7개월간 했었다. 그런데 혼자서 이제 빵을 다 만들어야 되고, 거기서도 쉬는 시간이 없었다. 풀 가동이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고. 너무 힘들어하고 스트레스 받고 하니까 7개월 하다가 못 버텼다. 그래서 그만뒀는데, 놀기는 그러니까, 또 저한테 도움이 좀 되려고 그 파리바게트 SPL 거길 들어가게 된 거다."

    Q. SPC라고 하면 대기업이지 않나
    "그러니까. 그래서 저는 믿고, 대기업이면 또 차이가 날 것 아닌가. 안전이나 대우나 이런 것들. 그래서 대기업이니까 믿고 저도 잘 됐다, 너무 기뻐하고 막 그랬다. 그런데 이렇게 안전에 대해 열악한지 정말 몰랐다. 이번에 이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알았다."

    Q. 야간 근무는 언제부터 했나
    "처음에는 주간만 들어갔었다. 그런데 회사 측에서 6개월 이상 지나고, 이제 얘가 워낙 또 일을 잘하고 성실하니까 야간을 하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딸이 지원을 해서 간 게 아니라 야간조가 인원이 부족하니까 충원하려고 딸을 불러들인 거다. 그래서 야간을 시작하게 됐다."


    어머니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SPC의 대응입니다. 특히 어머니는 딸이 숨진 현장에서 동료들이 다음날 바로 일을 시작했다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Q. 사고도 물론이고 그 후의 대응도 대중의 공분을 사고 있는데
    "정말 사람이 아닌 거다. 어떻게 사고가 난 그 현장에서 다음날 다시 작업을 시작을 하고, 이게 말이 되나. 이게 말이 되나.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도 있을텐데 어떻게 거기서 바로 일을 시키나.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Q. SPC에서 장례식장에 빵 보낸 건 어떻게 발견했나
    "저는 몰랐다. 저는 겨를이 없지 않나. 그런데 나중에 사람들이 그러는 거다. 회사에서 빵을 갖다 놨다고. 무슨 빵이냐 했더니 답례품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그 빵을 갖다놨다고 하는 거다. 나중에 보니까 얘기가 나와서 그런지 이미 치우고 없긴 하더라. 그렇다 쳐도 어떻게 사망자가 나온 거기서 만든 빵을 장례식장에 갖다 놓나. 그게 말이 되나."

    Q. 그 부분에 대해서는 SPC가 설명을 했나
    "전혀 없었다. 그것 관련 얘기는 전혀 없었다."

    Q. 허영인 회장은 장례식장 왔을 때 뭐라고 했나
    "그냥 고개 숙여서, 그냥 죄송하다고만. 눈도 안 마주치고 그냥 죄송하다고만 했다. 말로만 그냥. 사고 경위 이야기도 안하고 전혀 아무 소리 없이 그냥 죄송합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다. 저희 입장에선 어떻겠나"

    Q. 그러면 사고 경위는 언론을 통해 들으신 건가
    "그렇다. 처음에는 그렇고, 저희가 부검도 처음에는 안 했기 때문에 사고 경위는 전혀 없었고. 사체 검안서에 그냥 '미상'이라고만 돼 있었다. 너무 이해가 안 됐다. 사고로 사망한 걸 다 알고 있는데 '미상'이라니. 그래서 부검을 했다."

    Q. 부검 결과는 통보받았나
    "부검을 진행하는 곳(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구두상으로 경찰한테 얘기를 해준 것을, 경찰이 저희한테 전달했다. 질식사로 추정된다고. 그러니까 진짜 말 그대로 2인 1조만 됐어도 우리 딸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거기다 안전장치만 있었어도, 딸을 잃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Q. 입관할 때 너무 힘드셨을 것 같다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그게 사고 나고 처음이었다. 얼굴에도 막 긁힌 자국, 흉터들이 있고 팔 부러지고‥지금도 잠을 제대로 못 잔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못 잔다. 자꾸 그때 모습이 생각이 난다. 왜 우리 딸이 이렇게, 이런 상황이 돼야 하는지 전혀, 전혀 모르겠다."

    Q. 지금의 SPC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진심으로 사과한 적도 없다. 형식적으로만 사과를 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Q. 허영인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는데
    "헛웃음만 나왔다. 저게 사과하는 건가 싶었다. 유족한테 먼저 사과를 제대로 하고 대국민 사과를 한다고 하면 모르겠다, 왜 그 사과를 대국민한테 하나 유족이 우린데. 저는 모든 게 지금 이해가 안 된다. 사고를 무마시키려고만 하고"

    Q. 그런 시도가 있었나
    "합의를 계속 유도를 하니까 그쪽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담당 법무팀이며 항상 대기를 하고 있는 거다. 저희 장례식장 거기에 대기하고 있었다."


    SPC가 구체적인 액수의 합의금을 제시한 건, 어머니가 딸을 입관한 날 저녁이었습니다. 그날 상처투성이인 딸을 본 어머니는 한동안 장례식장에서 조문도 받지 못할 만큼 힘들어했습니다.

    Q. 합의금액을 제시했나
    "금액은 제시를 했었다. 금액은 제시를 했는데 저희 입장에선 그렇지 않나. 이거를 처리해버리면 끝나는 건데, 우리 딸 억울함은 어디서 찾나. 그래서 저희가 그냥 (입관식) 다음날로 미루고 끝을 냈다(발인을 했다)."

    Q. 합의금을 장례식장에서 제시했다는 건가
    "네."

    Q.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러니까. 저희도 움직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겨를도 없고, 그걸 이용해서 합의하려고 일부러 거기서 죽치고 앉아가지고 그렇게 대기하고 있었던 거라고 저희는 생각이 든다. 목숨 값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저희가 이걸 그냥 합의해버리고 끝내면 우리 딸아이에게 정말 죄를 짓는 것이잖나. 그래서 선택을, 변호사님 선임해서 이렇게 고발하고 이게 맞다 싶어서 이렇게 한 것이다."


    어머니가 지금 무엇보다도 원하는 건, SPC가 안전조치 등이 미흡했다는 걸 인정하고 진심으로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것입니다.

    Q. 지금의 과정 속에서 가장 원하시는 게,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까 말씀드렸지만 정확한 사고 경위. 그리고 회사가 안전조치를 못해서 사고가 났지 않나. 이것을 회사에서 인정하고 저희한테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것이다. 솔직히 보상 그런 것 필요없다. 진심으로 사과해주는 것 그게 첫번째다."

    Q. 수사가 진행중인데 처벌 문제는
    "제가 법은 모르지만, 우리 딸아이 생명을 앗아갔잖나. 책임은 져야 하지 않나 회사 측에서. 우리 딸아이 목숨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책임을 질 사람은 정확히 져야 되기 때문에 저는 처벌이 됐으면 좋겠다. 그게 다다. 정말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사랑하고 미안하고.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지금처럼 똑같이, 딸로 태어나면 제가 그때는 정말 생전에 못해줬던 것들 다 해주고‥지금 상황에서는 진짜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것이 우리한테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한은 최선을 다해서 딸에게 해줄 것이다."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에도 SPC 계열 공장에서는 딸아이와 같이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많을 거라 라고 걱정했습니다. 인터뷰 당시 진행 중이던 국회 국정감사에서 강동석 SPL 대표가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책임을 회피하자 어머니는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감히 어머니에게 위로의 말을 건낼 수는 없었습니다.

    SPC가 23살 노동자의 죽음에, 또 다른 노동자들의 안전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기억하고 문제제기하는 게 우리의 역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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