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의 사전엔 내로남불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5일)
표정엔 자신감이 넘쳤고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꼬박 1년 전인 지난해 11월 5일, 용산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예상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됐고 수락연설에서 '내 사전에 내로남불은 없을 것'이라고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이 말은 당시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위선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밖에도 대선 기간 내내 이전 정부와 각을 세우는 가시돋힌 말들을 많이도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당시 내뱉은 많은 말들이 지금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윤석열 정부의 뼈를 때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정부의 역할과 국가의 존재 이유에 크게 실망한 많은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적은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뜻의 이른바 '윤적윤'의 흔적들을 인터넷과 SNS상에 끄집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 "국민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정부의 존재 이유가 있다"
-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그 정부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인데 이 정부는 정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작년 8월 12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캠프를 구성해 대선 행보를 달리던 지난해 8월, 윤 대통령은 당시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정부의 존재 이유'를 언급했습니다. 당시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2천 명을 넘어서자 정부의 대응이 부실해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발언이 최근 150명 넘게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10만 명 인파 운집이 예견됐는데도 현장에는 130여 명의 경찰만 배치된데다 경찰청장은 참사 발생 2시간 후에야 상황을 인지했습니다. 서울경찰청장도 야간 보고를 제때 받지 못했고, 경찰은 빗발치는 112 신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을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해 국민적 공분을 샀고, 대통령실은 한 술 더 떠 '경찰은 법적 권한이 없다'며 실세 장관인 이상민 장관을 두둔하는데 바빴습니다.
재난 콘트롤타워인 대통령실이 참사 당일 밤 10시 53분 소방으로부터 첫 보고를 받은 뒤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 외에, 경찰이나 다른 유관 기관에 언제 어떻게 지시를 내렸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결국 참사 발생 6일 만에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사과 취지의 언급을 했습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부실 대응과 늑장 대응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 "언론의 자유를 훼손시키려고 하는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
- "언론의 자유를 조금이라도 훼손할 만한 '가짜뉴스냐 진짜 사실에 기반한 거냐'를 가지고 언론의 자유를 조금이라도 훼손시키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저는 강력히 반대합니다." (지난 2월 13일)
윤 대통령이 지난 2월 후보 시절 한 말입니다. '가짜뉴스냐 진짜 사실에 기반한 거냐를 가지고 언론의 자유를 훼손시키려 하는 시도를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9월 뉴욕 순방 당시 비속어 논란이 불거지자, 대통령실은 뜬금없이 가짜뉴스라며 언론을 공격했습니다. 대통령실은 발언 15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들어보라,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으로 돼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승인 안해주면'과 '날리면'이 겹쳐서 '~면'이 2번 연속 나오는 어색한 문장이 되자 '승인 안해주면'을 '승인 안해주고'로 바꾸는 다소 무리한 시도까지 감수했습니다.
'이 XX는 한국 국회를 향한 것'이라는 취지의 홍보수석 언급마저 윤 대통령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반응 하나로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대통령 비서실장은 "동맹을 훼손하고 자유를 병들게 하고 국민을 이간질하는 가짜뉴스를 퇴치해야 한다"고 언론에 엄포까지 놓았습니다.
단순 실언과 해프닝으로 끝날 일을 대통령실과 여당이 '가짜뉴스' 정국으로 키운 겁니다. 급기야 수많은 고발장이 언론사로 날아들었고 수사 단계까지 접어들었습니다.
전국민 듣기평가로 번진 비속어 논란으로 윤 대통령이 지켜낸 것은 무엇일까요? 언론의 자유일까요?
'날리면'으로 자문받았다는 음성분석 결과를 대통령실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아직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 "대통령으로서 당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 "당무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지난 7월 8일)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공식적으로는 당무에 관여하지 않겠다,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하지만 같은 달 26일 윤 대통령이 윤핵관에게 보낸 체리따봉 문자가 알려지며 정치권이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 (지난 7월 26일, 윤 대통령 문자)
'당무에 관여하지 않겠다'던 윤 대통령의 말과 '내부총질 당대표'라는 윤 대통령 문자가 정면 충돌했습니다.
체리따봉 문자 논란이후 윤 대통령은 일정을 이유로 한동안 도어스테핑을 하지 않았고 그대로 여름 휴가를 떠나 당무개입 논란에 대한 언급을 사실상 회피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중입니다.
- "대통령으로서 무슨 당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9월 2일)
■ 본인의 말과 싸우고 있는 윤 대통령‥'윤적윤'과의 전쟁?
윤 대통령의 말이 모순되는 경우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3월 당선 직후엔 기자회견을 통해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했지만 불과 6개월 뒤 '이 XX' 발언이 나와 야당 겨냥 논란을 빚고 있고 지난달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고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해 역시 야당이 반발했습니다.
꼬박 1년 전 오늘,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저에 대한 지지와 성원이 언제든지 비판과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지난해 11월 5일)
그리고 대권을 거머쥔 직후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지난 3월 10일)
지난 1년 동안 본인이 쏟아낸 주옥같은 말들과 싸우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시급한 과제는 '윤적윤'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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