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정치
기자이미지 신수아

[용산M부스] MBC 기자들의 '민항기' 취재기 - 시험대 오른 대통령의 언론관

[용산M부스] MBC 기자들의 '민항기' 취재기 - 시험대 오른 대통령의 언론관
입력 2022-11-17 16:01 | 수정 2022-11-17 16:11
재생목록
    [용산M부스] MBC 기자들의 '민항기' 취재기 - 시험대 오른 대통령의 언론관
    [ 출발 이틀전 밤 늦게 날아온 문자 "탑승 불허" ]

    9일 밤 9시 7분, "MBC 탑승 불허" 통보가 온 시각. 방송을 끝내고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수천만원을 내고 가는 해외 순방. 오늘은 꼭 들어가서 사전 취재를 하고 기사 계획도 짜야겠다 생각하던 순간, "MBC의 전용기 탑승 불허"가 기습적으로 통보됐습니다. "왜곡·편파 방송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문자 통보가 다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동료 기자들에게도 연락이 쏟아졌습니다. "MBC가 이런 통보를 받았다고 막 들었는데 가짜뉴스죠?" 순방 사전 취재는 커녕, 가는 것부터 험난해져버린 순방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틀 전, 그것도 저녁 메인뉴스가 다 끝난 늦은 밤이 되어서야 통보한 대통령실 때문에 기자단의 공동 대응도 물리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MBC의 취재를 제약하는 조치가, 출입기자 간사단을 거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되자 급하게 기자 총회가 소집됐습니다.

    다음날 용산 기자실로 출근하는 길, 청사 밖에는 전용기에 실을 수하물을 부치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기자들의 공동대응 여부나, 순방 일정에서 보이콧을 한다면 어떻게 할 지 기자단의 의견이 채 모이지도 못한 이른 시각이었죠.
    "지금에라도 타고 갈 민항기 편은 있는거냐, 아직 논의가 덜 됐는데 전용기 짐을 꼭 지금 부쳐야 하냐"는 기자들의 문의와, 수하물 작업을 곧 완료하겠다는 대통령실 직원들과의 대화가 어지럽게 오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전용기 탑승을 하지 않기로 한 경향신문의 동료 기자는 뒤늦게 서울 종로의 외교부 청사를 찾아 여권을 반납받고, 성남공항으로 가서 전용기 탑승을 위해 맡겼던 짐을 되찾는 수고로움을 거쳐야 했죠.
    [용산M부스] MBC 기자들의 '민항기' 취재기 - 시험대 오른 대통령의 언론관

    MBC NEWS 유튜브 캡처

    [ 인천공항에서 인사 건네준 시민들 "취재 잘 하고 오세요" ]

    민항기를 타는 과정에서는 생각보다도 많은 시민들이 MBC를 알아보고 응원의 말을 전해주셨습니다. 탑승 수속을 밟는 과정에서도, 보안 검사를 기다리는 줄에서도 MBC 카메라를 본 시민들이 "민항기 타고 간다더니 그 취재하러 가는거냐"며 "취재 잘 하고 오라"는 응원을 건네 주셨습니다. 민항기 이동 과정을 기록해둔 짧은 유튜브 영상에도 예상보다도 많은 응원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번 전용기 탑승 배제 파문에 그만큼 시민들 관심이 높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그만큼 꼼꼼하게 취재하고, 최대한 누락없이 보도해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 꼬박 하루를 비행기로 이동만‥실시간 상황도 '깜깜이' ]

    하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습니다. 민항기로 따라가는 순방 취재는 정보력도, 기동력도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순방지는 두 곳,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리는 캄보디아 프놈펜과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였는데요. 대통령 전용기는 프놈펜에서 발리로 4시간 만에 곧바로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MBC와 한겨레, 경향신문 취재팀은 밤에 출발하는 항공편이 없어서 다음날 점심에서야 비행기를 탔습니다. 직항도 없어서 이동에만 하루가 꼬박 걸렸습니다. 14일 발리에서 열린 윤 대통령의 외교 일정은 취재가 불가능했던 건데요.
    14일 아침 8시, 현지에서 최상목 경제수석은 먼저 도착한 동료 기자들에게 이번 순방의 경제 외교적 의의를 쭉 설명했습니다. 저는 공항까지 이동하는 차량에 방송장비를 옮기고 나르면서 중간중간에야 SNS로 내용들을 확인할 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현장에서 엠바고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어떤 내용까지 보도 가능하다고 조율했는지 등은 별도로 계속 확인을 거쳐야 했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동료 기자들도 14일 당일 취재가 불가했다는 기록을 이렇게 남긴 바 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민항기’ 취재기…대통령 4박6일 일정, 기자는 6박8일



    [경향] 전용기보다 18시간42분 늦게 도착…이래도 ‘취재 제한’이 아니라고요?
    [용산M부스] MBC 기자들의 '민항기' 취재기 - 시험대 오른 대통령의 언론관
    여기에 덧붙이자면 13일 저녁, 한미일 정상회담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던 MBC로서는 현장 상황의 신속한 확인도 제약됐습니다. 한미·한일·한미일의 연쇄 회동이 전용기가 이륙해야 하는 시각 직전까지 숨가쁘게 돌아간 날이었기에, 민항기로 쫓아갈 MBC·한겨레·경향 기자들을 제외한 기자들과 대통령실은 공항으로 먼저 이동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캄보디아 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는데요. 한미·한일·한미일 연쇄 회담 시각은 계속 밀리고 상황도 실시간으로 변했습니다. 곧 방송은 시작하는데 현재 상황을 신속히 알기도 어렵고, 알게 된 정보가 엠바고 요청 사항인지 아닌지도 몰라 머리 끝까지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당일 저녁, 대통령실 순방 기자단 톡방에 쏟아졌던 질의 내용 일부입니다.

    전속 영상 송출되고 있는지요?
    전송과 동시에 사용하면 되나요?
    한미일 정상회담 시작됐나요?
    한미 종료하면 바로 한미일 시작한다는 뜻인가요? 혹은 3분이나 5분이라도 쉬나요?
    한미일은 바로 시작하나요? 엠바고인가요?
    한일 곧 이어 진행될지요?
    전용기 이륙 시간은 몇시로 조정된 게 최종인지요.
    한일 아직 진행 중인지요.



    [ 전속·전속·전속‥기내간담회 0회 ]

    한미, 한일, 한미일, 그리고 한중 정상회담까지 굵직하고 중요한 정상회담들을 현장에서 취재했던 기자들도 이례적으로 매우 적었습니다. 보통 정상회담장은 모든 기자들이 다 들어가긴 어려워서 공동취재를 담당하는 기자들 몇명이 순번을 짜서 취재하는데요. 굵직한 4개 회담 가운데 풀 취재가 허용된 건 한미일 3자 회담 하나뿐. 나머지는 기자들에게 회담장을 공개하지 않고 대통령실의 전속 촬영담당 직원이 직접 촬영해 1분 남짓으로 편집한 영상만 제공했습니다. G20이나 아세안 행사를 위한 비표도 미리 신청해 받아뒀지만, 결과적으로 대다수 기자들에겐 무용지물이 된 겁니다.

    기내간담회도 없었습니다. 전용기 안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이고 참모들의 기내 간담회도 모두 0건이었죠. 한미일 3국의 공동성명문인 '프놈펜 성명' 발표 직후 이륙한 발리행 전용기에서도 별도의 공식 설명은 없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두 매체의 기자들을 따로 불러 '사적대화'를 나눴을 뿐이죠.

    반면 우리 정상회담 상대국이었던 미국과 일본은 달랐습니다. 미국은 에어포스원 안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브리핑을 했고, 바이든 대통령도 14일 밤 발리에서 기자들 질문을 받았습니다. 일본 역시 한일회담 직후 기시다 총리가 직접 13분 동안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회담 논의 과정과 결과를 설명했고요.

    이번 순방 내용을 종합 설명하는 대통령실 브리핑은 정작 새벽 비행기를 탄 기자단이 대부분 귀가한 상태에서 어제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뤄졌습니다.

    "MBC는 전용기 못 탄다" 기습 통보로 시작된 4박 6일 간 순방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대통령실 사람들은 MBC의 전용기 배제 조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비판은 연일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대통령실은 전혀 성찰이 없어 보입니다. "비판하는 언론에 이렇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집단 사고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취임 6개월. 대통령실이 이런 집단사고에서 벗어나 30%에 머물고 있는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