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이 갑자기 차로 뛰어들었다는 운전자의 증언.
그리고 사고 현장 근처에서 이 여성의 속옷이 발견됐습니다.
숨진 여성은 당시 속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가족들의 끈질긴 추적 끝에 무려 15년이나 지난 뒤 드러난 사건의 윤곽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교통사고 전 성폭행을 당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 발표.
하지만 정작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공소시효와 부실한 증거 탓에 법망을 빠져 나갔습니다.
부실수사가 만든 미제사건.
대구 대학생 성폭행 사망 사건입니다.

두 발로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가파른 경사를 오르자 모습을 드러내는 고속도로.
정현조씨가 24년 전 딸을 잃은 현장입니다.
착잡한 듯 사고현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버지는 딸을 잃은 슬픔 못지 않게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절규를 외면한 수사기관에 대한 분노가 크다고 말합니다.
[정현조(故 정은희씨 아버지)]
"이제는 괘씸하다는 생각뿐이 안 드는 거다. (수사기관이)조사를 해야 입증할게 나오잖아, 조사를 안 하면 뭐로 입증하느냐 말이야 내가 또 유가족이 얘기하는 건 하나도 받아주지 않으니까."
24년 전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98년 10월 17일 새벽 반찬 장사에 쓸 야채를 구하러 시장에 갔던 정현조씨는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정현조(故 정은희씨 아버지)]
"어머님이 가야 기독병원으로 빨리 가보라는 거야. 그때는 영문도 모르고 이제 빨리 갔지. 병원에 가니까 응급실 입구에 (은희)동생 둘이 있더라고.."
그렇게 갑작스레 닥친 딸의 죽음.
당시 대학교 1학년, 19살 정은희양은 그날 새벽 5시 10분경 구마고속도로에서 23톤 화물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당시 출동 구조대원]
"아주 비참했습니다. 참혹했고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화물차 운전자는 은희씨가 갑자기 차로 뛰어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고차량 운전자]
"사람이 튀어나오는 것 움직이는 것은 봤어요. 움직였어요. 그래가지고 바로 정면으로 옆에 박았는데.."
사고가 난 곳은 은희 씨 집에서 정 반대 방향.
학교에서도 약 7킬로미터 떨어진 곳.
은희씨는 새벽 시간 왜 그곳에 있었던 걸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사고 전 은희씨의 행적을 되짚어 봐야 합니다.
사고 하루 전인 16일, 은희씨는 학교 축제에서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밤 11시가 다 됐을 무렵 남자친구 박 모 씨와 함께 학교를 떠났다고 합니다.
[은희 씨 친구]
"거의 11시 다 돼서 나갔는데요. 제 친구들도 주막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걔네들이 기숙사 점호 한다고 40분쯤에 갔었거든요 10시40분에.. 그래서 걔네들 보내주고 난 다음에 00이랑 은희랑 간다고 해서 배웅해줬습니다."
그렇다면 박 씨는 은희씨 행적을 알 수 있을까.
[박00]
"(은희가 저를)데려다 준다고 데리고 갔대요. 그렇게 가서 그 뒤로는 제가 기억이 없거든요. 술이 엄청 많이 취했으니까.."
은희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16일 밤 11시.
사고가 난 시간은 다음날 새벽 5시 10분경.
6시간 사이에 은희씨 죽음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있을 겁니다.

#수상한 경찰
설명되지 않는 사고 전 은희씨의 행적.
은희씨의 생활 반경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고속도로까지 어떻게 이동했으며, 왜 고속도로로 뛰어든 것일까가 의문으로 남습니다.
가족들도 이 부분에 의문점을 두고 사고 현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사고 현장 인근에서 찾은 은희씨의 속옷.
[정현조(故 정은희씨 아버지)]
"처남하고 동서 둘이서 남대구 IC에서 300미터 지점(사고현장)에서 학교하고 거리를 재보러 간 거야. 학교하고 우리 집하고 거기를 재보러. 차를 (사고현장 인근) 농로에 세워 놓고 (고속도로로) 올라오니까 풀밭에 속옷이 있더래 그래 예감이 딱 드는 거지.."
좀 더 정확한 확인을 위해 다시 영안실을 찾은 가족들은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합니다.
[정현조(故 정은희씨 아버지)]
"(사고 직후)영안실 직원이 (딸)얼굴만 머리만 요리 딱 보여주고 아이고 뭐 교통사고로 형편이 없으니까 밑에는 보지 마이소 하더라고..(나중에 다시 가서)영안실 직원한테 속옷 있나 보자고 하니까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한번 보자고 하니까 청바지를 잡고 내리면서 청바지 속 호주머니 이걸 가지고 이게 푸르죽죽했거든 이게 속옷이라고. 야 인마 그게 왜 속옷이야 하면서 내려봐 하니까 (속옷이)없는거야."
확인 결과 사고 당시 은희씨는 브래지어와 팬티를 모두 안 입고 있었습니다.
성범죄 피해를 입었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드는 상황.
가족들은 속옷에 대한 국과수 감정과 함께 교통사고 이외의 다른 범죄에 휘말렸을 가능성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당시 부검의도 성범죄 등 은희씨 신변에 중대한 위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밝혔습니다.
[당시 부검의]
"감정 결과에 대해서는 우리가 경찰에 이미 부검 끝난 즉시 그대로 다 이야기를 해주거든요. 그럼 이 사람들은 이미 결과를 알 것 아닙니까. 왜 정은희 양이 이 시간에 집하고 아무런 관계없는 장소에서 고속도로를 횡단해야 했는가. 그 경과를 조사해야 사고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다른 가능성을 배제했습니다.
딸의 속옷이 맞다는 가족들의 주장에도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속옷이 젊은 여자가 입는 속옷이 아니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담당 경찰]
"고속도로에 가면 XX하고 던진 것(팬티) 많아요. 차타고 가면서 한번 보세요. 이 먼지와 잔디가 묻은 것을 주워와 가지고 우리 딸이 입던 거라고 한단 말이야. (팬티가)커다랗잖아. 이것을 주워 와서 맞다고 하는 거예요. 이건 아니다..그렇게 된 겁니다."
가족들은 사고 직후 사진 등 주요 증거들이 사라지기까지 했다고 전합니다.
[정현조(故 정은희씨 아버지)]
"무슨 사건이든지 맨 처음에 조사받고 조사한게 제일 중요하지 그다음에는 필요 없는데. 그러니까 그 조사했는걸 전부 없애버린 거다 맨 처음에 거는 그러니 사진도 없었잖아. 그리고 부검할 때 사진 찍은 것도 (부검의는) 달서경찰서에 빌려줬다고 그래 그런데 그게 없단 말이야."
어떻게 된 일일까.
당시 경찰서에서는 교통사고 조사를 맡았던 파출소에서 사진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담당 경찰]
"유족들이 진정을 하고 투서를 하면서 교통계에는 안 묻고 우리한테 자꾸 물으니까 우리가 변명할 자료가 있어야 한다. 사진 내놔라 이러니까 안 받아갔습니까 이러는 거야 우리가 왜 사진을 가져갑니까 우리가 사진 가져갈 이유가 뭐 있느냐."
그러나 파출소의 말은 달랐습니다.
[당시 파출소 근무 경찰]
"가져가고도 안 가져갔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 사진 찍어 놓은 것도 아니고 보통 우리 일반 서류 같은 경우는 좀 중요한건 문서상에 사인받아놓고 그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통상적으로 사진 같은 경우는 우리 담당형사니까 믿고 주는데 가져가는 걸 사인하고 가져가라 이러지는 않거든요 보통."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상황이지만 불과 2달 만에 은희씨의 죽음은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됩니다.
[정현조(故 정은희씨 아버지)]
"(가족들이)속옷 검사를 해라 해라 하니까 안하고 계속 머무른 거야. 그리고 현장에서 발견된 가방 이니 이런 게 있어요. 이런 것도 이제 (지문 감식 등) 해달라고 하니까 가방은 비닐이라서 안 된다고 하고.."
가족들의 끈질긴 문제 제기와 속옷 없는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 대한 언론의 의혹 제기에 경찰은 사건 발생 5개월 만에야 국과수에 속옷 감정을 의뢰합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은희 씨 속옷에서 정액 양성 반응이 나온 것.
하지만 시료 오염으로 속옷에 묻은 혈액형을 감정할 수 없다는 분석 결과를 토대로 경찰은 속옷이 은희씨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딸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진정서와 탄원서를 곳곳에 접수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은희씨가 숨진 지 1년 8개월이 지난 2000년 6월에야 국과수에 속옷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의뢰해 은희씨 속옷이 맞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가족들은 뒤늦게나마 범인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은희씨 주변 인물 가운데 의심스러운 몇몇에 대한 DNA를 채취해 속옷에서 나온 DNA와 대조해 봤지만 결과는 불일치.
유족들은 경찰이 처음부터 성범죄 가능성을 열어뒀다면, 그래서 속옷에 묻은 정액 외에도 은희씨 소지품에서 지문과 같은 다른 증거물을 초기에 확보했다면, 사건의 전개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도대체 당시 경찰은 왜 그런 걸까.
[당시 담당 경찰]
"내가 설명 드릴게. 처음에 이 사건을 강력사건으로 처음부터 우리가 받아서 발생보고 하고 강력사건으로 조사했으면 일개 반이 다 들어가서 조사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되는데 처음부터 사건이 들어올 때 교통사고로 해서 사망했다고. 어찌 됐느냐 하면 우리한테는 (어디까지나) '민원'사건 입니다."

초동 수사의 실패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지만, 아버지의 외로운 싸움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법전과 인터넷을 뒤지며 직접 작성한 고소, 고발장만 수백여 장.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답은 같았습니다.
[정현조(故 정은희씨 아버지)]
"전부다 그냥 혐의 없음 공람종결 전부 이런 식이지, 각하, 기각 뭐 이런 식.."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범인에 대한 추적을 이어간 지 15년째 되던 2013년, 검찰은 은희씨 속옷 DNA의 주인을 찾았다고 발표합니다.
[이금로 /당시 대구지방검찰청 1차장 검사]
"1998년 10월 구마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여대생 정 모양이 교통사고 이전에 성폭행 당한 사실을 밝혀내고 검찰은 고소장과 관련 과거 기록들을 엄밀히 검토한 끝에 대검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통해 DNA일치자의 정보를 확인하였습니다"
DNA의 주인은 스리랑카인 K씨.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입건된 K씨에게서 채취한 DNA와 은희씨 속옷에 묻어있던 정액의 DNA가 일치했습니다.
검찰은 은희씨가 K씨와 또 다른 스리랑카인 2명으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도망치다가 고속도로로 들어갔고 그 이후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당시 대구지검 관계자]
"친구들 동료들한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자랑까진 아닌데 술자리에서 들었다. 그런 진술은 있죠. 강간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게 있죠. 그게 중요한 증거가 되는 거죠."
재판에 넘겨진 K씨.
공범으로 지목된 2명은 이미 본국인 스리랑카로 돌아가 국내 법정에 세울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K씨마저도 공소시효 만료와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최종 무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상황.
단순 교통사고에 불과하다는 경찰에 맞서 10년 넘게 싸워온 은희씨 아버지는 검찰 수사 결과 역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은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 은희 씨 아버지.
검찰 수사는 결과만 있고 과정이 생략돼 있어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이 많이 있다는 겁니다.
특히 은희씨가 학교에서 나와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6시간의 행적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스리랑카인 K씨 등을 재판에 넘기면서 17일 자정부터 5시 30분경 사이, 대구 달서구 성서공단 내 불상의 장소에서 K씨 등이 술에 취해있던 은희씨를 발견, 자전거에 태워 수 킬로미터 떨어진 구마고속도로 굴다리까지 이동해 은희씨 물건을 강취한 뒤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초 은희씨를 만난 시간과 장소, 강취한 물건의 규모 등 사건의 전반적인 내용들이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정현조(故 정은희씨 아버지)]
"자전거에 싣고 가는데 하나는 앞에서 타고 둘이 뒤에서 갔다는 건데 7킬로미터 거리를 자전거 타고 가려고 하면 (굴다리) 앞에는 농로고 그렇지만 그 뒤에는 회사가 있고 많았거든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네, 차도 아니고 가려고 하면 애가 살았으면 감히 그렇게 술이 많이 취했더라고 해도 그냥 데리고 갈 수 있겠나. 죽은 사람을 태워 가면 축 쳐져서 가면 누가 봐도 봤을 거 아니냐.. 그리고 성폭행을 3명이 했다고 하는데 정액은 왜 하나만 나오냔 말이야"

딸을 잃은 뒤 아버지는 반찬가게를 정리하고 목격자를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뿌린 전단지만 수천 장.
단순 교통사고로 묻힐 뻔 했던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낸 것도 온전히 아버지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초동수사의 실패이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정현조(故 정은희씨 아버지)]
"경찰들을 직무유기로 고발을 한거예요. 고발하니까 10월 달에, 그 마지막 공소시효가 12월 며칟날인데 (처리) 안하고 미뤘다가 나중에는 공소시효 다 됐다고 처리 안하고 이러더라고 전부 그런 식이야."
정현조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고 지난해(2021) 최종 승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초동 수사가 부실했다는 걸 재판부도 인정 한겁니다.
재판부는 "경찰이 단순한 교통사고로 성급히 판단해 현장조사와 증거 수집을 하지 않고 증거물 감정을 지연하는 등 극히 부실하게 초동수사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현저히 불합리하게 경찰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해 위법하다고 할 것이므로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외로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은희씨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 6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고, 왜 그날 사고 현장을 가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려야만 사건의 실체가 규명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정현조(故 정은희씨 아버지)]
"나는 딸 한테는 뭐 하고 싶은 말이야 많지만..
실제로 중요한 게 진실을 알아야 되지 않느냐 왜 어떻게 죽었으며 왜 뭐 때문에 그리고 수사기관이 왜 숨기고 자꾸 숨기느냐 진실을 밝혀줘야지. 누가 뭐라 해도 궁금한 거는 그건데. 그것이 알고 나야 우리 한이 풀리는 건데 그걸 안 해주고 여태까지 자꾸 미루고 엉뚱하게 둘러대고 말이야.."
▶ [엠빅뉴스] [이거 실화야?] 고속도로 위 속옷 없는 시신..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
https://imnews.imbc.com/original/mbig/6428418_290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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