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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핫라인] "성적 외에 사상·성분도 본다" 북한의 대학 입시

[평양 핫라인] "성적 외에 사상·성분도 본다" 북한의 대학 입시
입력 2022-11-21 09:16 | 수정 2022-11-2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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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핫라인] "성적 외에 사상·성분도 본다" 북한의 대학 입시
    지난 11월 17일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능시험이 치러졌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수능은 단순한 대입 시험이 아니라 국가적 행사입니다. 수험생을 배려하기 위해 공공기관이나 은행, 주식시장도 평소보다 1시간 늦게 업무를 시작하고 영어 듣기평가 시간에는 항공기의 이착륙도 통제됩니다.

    북한에도 대학 입학시험 제도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대학에 가려면 ①대입 추천권을 받기 위한 지역별 예비시험과 ②대학에서 보는 본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예비시험은 우리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북한의 고급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모두 응시합니다. 이 시험 성적에 따라 대학별 본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던 우리의 예비고사-본고사와 비슷하지만, 당국이 본시험을 치를 학생들의 숫자를 지역별로 할당해주고 학교가 성적 외에도 사상이나 출신성분 등을 따져 대학별 본시험을 볼 학생을 추천한다는 점도 우리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다만 북한의 학부모들도 교문 앞에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등 입시 철 풍경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졸업예정자 중 15%만 대학 진학"

    우리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북한의 고급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대입 추천을 위한 지역별 예비시험을 봅니다. 예비시험에는 국어, 수학, 영어, 화학, 물리 등 일반 교과목에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일의 친모 김정숙 혁명역사 등이 필수과목으로 포함돼 있습니다. 시험은 대부분 주관식 서술형으로 출제되며 오전과 오후로 나눠 하루 동안 진행됩니다.

    예비시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겐 대학에서 치르는 본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학교마다 본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숫자가 다릅니다. 북한 당국이 지역의 학생 수에 따라 학교별로 본시험을 볼 수 있는 추천권의 숫자를 따로 정해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학교는 예비시험 성적 외에도 학생들의 사상이나 출신성분 등을 따져 본시험대상자를 결정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걸 ‘뽄트’라고 부르는데 러시아어에서 유래된 말로 정원이나 TO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거쳐 추천을 받은 학생들은 2월에서 3월, 각 대학에서 치르는 본시험에 응시합니다. 본시험은 해당 대학에 직접 가서 보는데 예비시험과는 달리 2~3일 동안 나눠 진행됩니다. 국어, 수학, 물리 등 과목별 시험 외에도 체력검정과 '담화 시험'이라는 면접도 봅니다. 이런 과정을 모두 통과해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고급중학교 졸업생 전체 인원의 15%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나머지 85% 중 남학생은 대부분 군대에 입대하고 여학생은 직장에 배치됩니다.

    "입시에 성적도 중요하지만‥사상, 성분도 본다"

    북한에서 예비시험이 시작된 건 1980년대부터입니다. 고급중학교의 추천으로 응시할 대학을 지정했던 기존의 입시 방식이 당 간부의 자녀라든가 권력이 있는 집안의 자녀를 추천하는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여러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예비시험 성적을 기반으로 본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하는 현재의 방식이 도입됐습니다. 그러나 성적을 기준으로 하는 평가 방식에 학교의 추천을 받는 구조가 결합되다 보니 사상이나 출신성분 등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실력을 따지는 예비시험이 도입됐지만, 대학 추천권을 배정하는 과정에서 출신성분과 정실 관계에 따라 추천이 결정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겁니다. 당 간부를 비롯한 특권층 자녀가 대학에 갈 기회를 얻기 쉬운 셈입니다.
    [평양 핫라인] "성적 외에 사상·성분도 본다" 북한의 대학 입시

    북한 TV 연속극: 자기를 바치라

    이런 북한의 현실은 TV 드라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12년에 제작된 텔레비전 연속극에는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집안 환경에 따라 대학의 추천권이 갈리는 북한 입시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 드라마에선 예비시험에서 3등을 한 학생이 김일성종합대학 추천권을 받고 1등을 한 학생은 청진농업대학 추천권을 받습니다. 3등을 한 학생의 아버지는 노동당의 간부, 1등을 한 학생의 아버지는 일반 농장원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는 결국 노동당이 개입해 1등을 한 농장원의 딸을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시키지만, 현실에서는 출신성분 때문에 입학 대학이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김수경 교수는 "북한의 입시 제도가 시험 성적을 기반으로 추천권을 주는 식으로 바뀌면서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최종적인 추천권은 학교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의 재량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다 입학하거나 군 제대 후 진학"

    북한에서 대학별로 치르는 본시험은 한 번, 한 학교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대학에 떨어지면 군대에 가거나 직장에 배치되기 때문에 재수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럼 아예 대학 진학의 기회가 없는 걸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다 추천을 받아 입학하거나 군 제대 후 대학에 진학하기도 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직장에서 일하다 대학에 진학한 이들을 '현직생'이라고 부릅니다. 사전엔 없는 단어인데 현장에서 일하다 당 조직의 추천을 받아 입학한 이들을 지칭하는 뜻입니다. 군 제대 후 대학에 온 학생들은 '제대군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반면 고급중학교에서 곧장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직통생’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데 들르지 않고 곧바로 간다는 '직통'과 '학생'이 결합 된 말입니다.

    북한도 사교육 기승‥"6개월 전부터 숙식 과외도"

    대학에 진학하면 좋은 직장을 잡거나 간부가 되는 걸로 인식되면서 북한에서도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과외 등의 사교육이 성행하는 걸로 전해집니다. 시장화의 진전 속에 경제력을 끌어모은 이른바 ‘돈주’들은 물론, 일반 주민 가정에서도 사교육이 깊숙이 뿌리내린 걸로 알려졌습니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 교사를 구해 입시 과목 위주의 과외를 시킵니다. 영어와 중국어 등 외국어는 물론 국어와 수학 등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을 주로 가르칩니다. 과외 선생님으로는 명문대에 진학한 대학생을 선호합니다. 먼저 대학에 간 선배에게 배우는 과외가 대단히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목표로 하는 대학의 학생을 집으로 불러 숙식 과외를 한다는 겁니다. 탈북민 나민희 씨는 김책공대 출신 오빠를 예로 들었습니다. 나 씨는 "오빠가 입시 철만 되면 과외를 하느라 집에 붙어있지를 않았다"며 "시험 6개월 전부터는 학생과 같이 숙식하면서 공부를 하는데, 학교를 마치고 오면 새벽 2~3시까지 같이 공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김수경 교수는 "요즘은 북한에서도 아이를 하나, 둘밖에 낳지 않기 때문에 형편이 좋지 않아도 꼭 과외 선생님을 붙여 아이를 열심히 공부시켜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교문 앞에 찰떡 붙이고‥입시 풍경, 크게 다르지 않아"
    [평양 핫라인] "성적 외에 사상·성분도 본다" 북한의 대학 입시

    북한 TV 연속극: 자기를 바치라

    입시 풍경은 남과 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북한에서 대학 입시를 다룬 TV 연속극 중 한 장면입니다. 사진 속 남녀는 대입 시험을 보고 있는 여주인공의 부모입니다. 그들은 시험을 마치고 나올 자신들의 딸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고사장 밖에서 자녀를 기다리는 우리의 수능 풍경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 북한의 입시 풍경도 이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떨어지지 말고 붙으라는 의미로 교문 앞에 부모들이 찰떡을 붙여놓기도 하고 녹두나 소금, 고춧가루 등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시험을 잘 본다며 마치 부적처럼 자녀들의 주머니에 넣어주기도 한다는 겁니다.

    입시철 반짝 특수를 누리는 곳도 있습니다. 탈북민 나민희 씨는 "점심을 먹을 때 부모님들이 도시락을 싸 와서 밖에서 같이 먹거나 아니면 주변 식당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입시철만 되면 시험 기간 주변 식당들이 굉장한 성수기를 누리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입시 제도와 시험과목 등은 남과 북이 다르지만, 교육열이 높고 대학 입시에 관심이 많은 건 남과 북이 다르지 않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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