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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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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M] 대한민국 믿었던 이주노동자, 3천만원 포기하고 돌아간 사연

[탐정M] 대한민국 믿었던 이주노동자, 3천만원 포기하고 돌아간 사연
입력 2023-02-19 11:36 | 수정 2023-02-2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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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대한민국 믿었던 이주노동자, 3천만원 포기하고 돌아간 사연
    "밀린 임금 3천만 원‥결국 포기하고 귀국했습니다"

    8년 전 캄보디아에서 온 미나(가명) 씨는 경기도 여주의 한 농장에서 3년 10개월간 일했습니다. 하지만 임금과 퇴직금 3천 3백만 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23살이었습니다.

    평소 똑 부러진 성격이었던 미나 씨는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지구인의 정류장'의 도움을 받아 노동청에 농장주를 신고했습니다. 노동청도 체불임금을 인정했고, 민·형사 재판 모두 미나 씨가 승소했습니다.

    하지만 미나 씨는 3천만 원을 포기하고 캄보디아로 돌아갔습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사이 비자가 만료됐기 때문입니다.

    인력난 사업장에 정부가 이주노동자 선발 알선

    미나 씨를 문제의 임금 체불 농장에서 일하게 한 건 '대한민국 고용노동부'입니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해외에서 이주 노동자를 들여옵니다. 이를 '고용허가제'라고 합니다. 고용허가제는 지난 2004년 국내 중소기업과 농어촌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실시됐습니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사업장에 국가가 나서 이주노동자를 배정해주는 것입니다.
    [탐정M] 대한민국 믿었던 이주노동자, 3천만원 포기하고 돌아간 사연
    국내에 들어올 노동자는 정부가 직접 선발합니다. 필리핀, 몽골 스리랑카 등 인력 송출 협약을 맺은 해외 16개 국가의 50세 미만 청년이 그 대상입니다. 산업인력공단은 각국에서 청년들을 모집한 뒤, 한국어능력시험(TOPIK)과 업무에 필요한 기능 평가를 실시하고 성적에 따라 한국에 올 노동자를 선발합니다.

    일할 곳도 정부가 지정합니다. 사업장을 선택할 수도,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2~4개월 이상 임금 체불 또는 폭행 등 범죄 혐의가 발생한 경우에만 직장을 옮길 수 있도록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수천만 원 못 받아도‥떠나거나, 돈 없이 버티거나

    그런데 이렇게 정부 소개로 왔다가 임금이 체불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기준 임금이 떼여 노동청에 신고한 이주 노동자는 1만 4천 명. 신고 방법이나 도움을 구할 줄 모르는 이주 노동자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자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선택 기로에 놓입니다. 밀린 임금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임금을 줄 때까지 버티는 대신 미등록 체류자가 되거나. 이처럼 매우 극단적인 선택지가 주어진 배경엔 비자 문제가 있습니다.
    [탐정M] 대한민국 믿었던 이주노동자, 3천만원 포기하고 돌아간 사연
    우리나라에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 노동자들은 E-9 비자를 받습니다. 이때 E-9 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기한은 최대 4년 10개월입니다. 그런데 임금체불 피해자들이 노동청에 신고하고, 사업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데 수년이 걸립니다. 구제 절차를 밟는 사이 E-9 비자가 만료되는 것입니다.

    법무부는 임금체불 피해를 진정했다가 E-9 비자가 만료된 이주노동자에게 임시 비자인 G-1 비자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 G-1 비자 소지자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진정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국내에 머물 수는 있지만, 돈을 벌 수 없습니다.
    [탐정M] 대한민국 믿었던 이주노동자, 3천만원 포기하고 돌아간 사연
    결국 비자가 만료된 미나 씨도 캄보디아로 돌아갔습니다. 미나 씨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G-1 비자를 갖고 일하면 불법이라는 사실이 정말 힘들었다"며 "G-1 비자를 받은 노동자에게 진정 사건을 진행할 수 있도록 일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반대로 미등록 체류를 택한 사람도 많습니다. 임금 천만 원을 떼인 사이(가명) 씨는 E-9 비자가 만료된 뒤에도 한국에 남았습니다. 소송에서 이겼지만,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농장주는 임금을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이 씨는 미등록 체류자 신분이 됐습니다. 사이 씨는 "나도 미등록 체류자 되고 싶지 않지만,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임금체불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E-9 비자가 만료됐다"고 하소연했습니다.

    1천만 원 임금체불해도 벌금은 50만 원‥"경제적 선택"

    왜 사업주들은 임금을 주지 않을까요? 법무법인 원곡의 최정규 변호사는 "현행 제도상 알뜰한 경제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사이 씨의 임금을 체불한 농장주에게 법원이 내린 형사처벌은 '벌금 50만 원'. 어차피 이주노동자는 비자가 만료되면 출국할 테니, 그동안 벌금 50만 원만 내고 버티면 밀린 임금 1천만 원은 주지 않아도 됩니다. 최 변호사는 "임금체불 벌금이 체불액 10분의 1에 못 미치니 벌금을 내는 게 경제적"이라며 "임금 체불액만큼 벌금을 내야 사업주도 임금을 줄 유인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민사소송 결과에 따른 법원의 강제집행도 어렵습니다. 우선 이주노동자가 강제집행까지 하기 위한 법적 조력을 받는 것이 어렵습니다. 더구나 임금 체불 사업주 상당수가 자기 명의 재산을 차명으로 돌려놔 강제집행 할 재산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이 씨가 일했던 농장 주인도 "돈이 있어야 주지. 돈이 없는데 어떻게 주냐?"며 발뺌을 합니다.
    [탐정M] 대한민국 믿었던 이주노동자, 3천만원 포기하고 돌아간 사연
    임금체불 보상액, 많아야 4백만 원‥"대지급금 제도 도입해야"

    임금 체불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비한 보호책도 있지만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노동부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는 사업장에 '임금체불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임금체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주노동자에게 보상액을 지급하는 것입니다. 2021년 인상이 되긴 했지만, 최대 보상액이 4백만 원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임금체불보험의 보상액을 '대지급금'만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대지급금'이란 고용노동부 장관이 사업주를 대신해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제도인데, 최대 보상액이 1천만 원입니다.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이주 노동자는 체류 자격도 제한되고 임금 체불을 당해도 법적 절차를 밟기 어렵다"며 "정부가 대지급금 제도를 이주노동자에게 적용해 최소한의 보상액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엔 좋은 노동법 있다던데‥이젠 정부가 책임져야"

    그런데 이 최소한의 보호장치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경우가 있습니다. 임금 3천 4백만 원을 받지 못한 라이(가명) 씨는 당시 기준 임금체불 보증보험 보상액인 2백만 원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고용주는 라이 씨가 오기 전에도 다른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체불했었는데요. 라이 씨의 임금까지 체불되자, 보증보험 보상이 거절됐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보증보험이 제대로 가입되지 않았던 겁니다.

    "한국은 좋은 나라고 좋은 노동법이 있기에 노동부가 올바른 처리를 해줄 줄 알았다"

    결국 라이 씨는 이 농장을 소개한 고용노동부가 책임지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이주 노동자가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라며 국가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라이 씨는 "나는 3년 8개월 동안 무급으로 한국에서 일했으니 대한민국 정부가 내 사건을 책임져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탐정M] 대한민국 믿었던 이주노동자, 3천만원 포기하고 돌아간 사연
    역대 최다 11만 명 입국한다는데‥임금체불 문제 언제까지 방치하나

    "현장의 극심한 인력난을 반영해 역대 최대규모 도입" - 고용노동부(22년 10월 27일)

    지난해 정부는 올해 고용허가제(E-9 비자)로 들어올 이주 노동자 규모를 11만 명으로 정했습니다. 지난해 대비 4만 1천 명이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이주 노동자들은 국내 노동자가 기피하는 열악한 사업장에서 일을 하며 산업 현장의 최하층부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고용노동부는 이들에게 발생한 임금 체불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법무부 역시 일을 할 수 없는 G-1 비자 문제에 대해 "당사자가 취업 활동 제약으로 처할 수 있는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장기 체류 방편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종합 고려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습니다.

    수천만 원을 포기하거나, 불법 체류자가 되거나. 잔인한 선택지만 남겨둔 상황에서 11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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