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수사단원 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시 4분 43초 분량의 음성 파일을 MBC가 입수했습니다. 김 사령관은 해병대 수사가 '문제 없다'며 박 대령을 두둔하는 듯한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어차피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어."
"정훈이가 국방부 법무관리관하고 얘네들 통화한 거 다 있을 거 아니야. 기록들 있지?"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걸로 이렇게 갈 수밖에 없을 거야"

9월 24일 뉴스데스크 화면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결재가 번복된 7월 31일부터 수사 자료 경찰 이첩, 박 대령이 보직 해임된 8월 2일까지, 박 대령과 많은 대화를 나눈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트레이트>가 보도한 '윤석열 대통령 격노' 발언을 박 대령에게 알려준 전달자로 지목돼 있습니다. 박 대령과 국방부·대통령실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김 사령관의 태도에 따라 이번 사건은 '외압'이 될 수도, '항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 사령관의 발언은 두 차례 공개됐습니다.
① 최근에 공개된 8월 2일 밤 해병대 수사단원과 통화
② 8월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발언입니다.
①번 발언은 박 대령의 보직 해임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기 전에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외압이든 항명이든,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나눈 '날 것 그대로'의 대화입니다.
반대로 ②번 발언은 한 달 내내 언론의 외압 의혹이 제기된 상태에서 김 사령관이 국회에 나와서 한 겁니다. 다시 말해 '정제된' 답변입니다.
<스트레이트>는 김계환 사령관의 ①번 8월 2일 통화 내용과 ②번 8월 25일 국회 발언을 비교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봤습니다.
[1] 항명이 아니다?
(8월 2일 녹취)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걸로 이렇게 갈 수밖에 없을 거야."
(8월 25일 국회)
"사령관의 정당한 지시에 대해서 어긴 겁니다."
8월 2일 김 사령관 통화에는 어디에도 항명이나 지시사항을 어겼다는 표현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다가 안 되면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걸로 이렇게 갈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누가 '하다가 안 되면' 이렇게 간다는 건지 행위의 주체를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맥락상 국방부 검찰단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걸로 이렇게 갈 수밖에 없을 거야'라는 말은 실제로는 위반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몰아갈 것으로 예측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9월 24일 뉴스데스크 화면
①번 발언과 ②번 발언 사이 약 3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국방부 검찰단의 박 대령 구속영장청구서를 보면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군 검찰의 구속영장청구서
이에 대해 박 대령 측은 "군검찰단에서 사령관에 대해 3회나 진술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냐,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진술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9월 24일 뉴스데스크 화면
[2] 외압 의혹 알고 있었다?
(8월 2일 녹취)
"정훈이가 국방부 법무관리관하고 얘네들 통화한 거 다 있을 거 아니야. 기록들 있지?"
(8월 25일 국회)
"7월 21일 수사 기획부터 언론브리핑 자료까지 조직적인 개입이나 이런 것들은 없었습니다."
8월 2일 통화에서 김 사령관은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다'고 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입니다. 박 대령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통화한 기록을 갖고 있느냐고 물은 겁니다. 이 말이 외압 의혹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는 <스트레이트> 질의에 김 사령관은 "외압이나 위법한 지시를 인지한 것이 아니라 전 수사단장이 법무관리관과 수차례 통화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외압이 의심되어서가 아니라 단지 통화 사실을 확인한 것뿐이라는 의미입니다.

9월 24일 뉴스데스크 화면
만약 김 사령관이 외압을 염두에 두고 물어본 게 아니라면 뜬금없이 '외압' 얘기를 꺼낸 부하에게 펄쩍 뛰면서 "아니 외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라고 묻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김 사령관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러면 결국은 그것 때문에 본인이 책임지겠다라는 거 아니야?"라면서 말이죠.
김 사령관의 '외압' 관련 발언은 8월 25일 국회에서 바뀐 듯, 바뀌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김계환 사령관의 '외압' 관련 발언은 국회 김병주 국방위원의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8월 25일 김병주 위원 질의에 답하는 김계환 사령관
"사실은 안보실에서는 조금 전에 확인했지만 7월 21일 날부터 수사계획서도 보내달라, 7월 28일 날 사령관 보고서를 보내달라, 7월 30일 날 언론 브리핑을 보내달라 등 조직적으로 여기에 개입이 됐던 정황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라고 하자
김 사령관은
"7월 21일 수사 기획부터 언론브리핑 자료까지 조직적인 개입이나 이런 것들은 없었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김 사령관의 이날 국회 답변 중에 '외부 개입이 없었다'고 말한 부분은 이것이 유일합니다. 얼핏 보면 외압 사실을 전면 부인한 것 같지만, 자세히 뜯어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7월 21일부터 언론브리핑 자료까지', 즉 7월 30일까지는 개입이 없었다고 한 겁니다. 김 사령관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 대령이 윗선 개입을 주장하는 핵심 시기는 7월 31일부터입니다.
박 대령의 진술서에 따르면 '대통령이 격노해서 국방부장관을 연결하라고 했다'고 언급된 날은 7월 31일이고,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혐의자를 빼라'고 한 날은 7월 31일과 8월 1일입니다. 또, 해병대 수사단이 이첩한 서류를 경북경찰청이 군 검찰에 고스란히 돌려준 날은 8월 2일입니다.
정리하면 김 사령관은 국회에서는 7월 31일 이후 외압이 없었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7월 30일 이전까지 조직적인 개입이 없었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이후 스트레이트 보도로 '대통령 격노'를 박 대령에게 전달한 인물로 지목되자 박 대령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부인했습니다.
[3] 박 대령은 어떤 부하?
(8월 2일 녹취)
"잘못된 건 없어. 정훈이가 답답해서 그렇게 했지."
(8월 25일 국회)
"수사단장 직책을 수행할 때 또 해병대 군사 병과장 직무대리를 수행하면서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지난 22일 처음 음성 파일을 확인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김계환 사령관이 박 대령을 "정훈이"로 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박 대령', '수사단장'도 아니고 '정훈이'라고 이름을 부를 정도로 김 사령관은 박 대령을 가깝게 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녹취에서 '정훈이'라는 표현은 4차례나 등장합니다. 박 대령도 김 사령관에 대한 충성심을 공개적으로 나타냈습니다. 지난 8월 11일 군검찰 조사를 거부하며 언론 앞에 처음 나섰을 때 박 대령은 "저는 해병대 사령관님의 명을 생명처럼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김 사령관의 지시를 어긴 적이 없고, 그러니 항명도 아니라는 겁니다.

8월 11일 기자들 앞에 선 박정훈 대령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수사단장 직책을 수행할 때 또 해병대 군사 병과장 직무대리를 수행하면서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여당 국방위원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박 대령의 행위에 대해 '군기 문란'이라며 비난을 퍼붓는 와중에서도 부하에 대한 애정을 끝까지 숨기지는 않은 것입니다.
결국 김 사령관의 8월 2일과 8월 25일 주요 발언들을 정리해 보면,
1) '항명' 부분은 기억나지 않다가 기억이 분명해졌고,
2) '외압' 부분은 7월 31일 이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3) 박 대령을 아끼는 마음은 여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 국정감사가 10월 10일부터 시작됩니다. 8~9월 국회 예결위, 운영위, 법사위, 국방위에서 외압 의혹을 전면 부인해왔던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방부 관계자, 그리고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상대로 국감 질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박 대령은 국방부 장관, 대변인 등의 진술이 담긴 구속영장청구서를 보고 "어떻게 똘똘 뭉쳐서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피가 거꾸로 솟는다"며 "거짓말 탐지기를 할 용의도 있다"는 말을 주변에 했다고 합니다.

<스트레이트>가 입수한 대통령 개입 의혹 문건
[연관기사]"국방부 통화 기록 있지?"‥사령관도 외압 알았나?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528013_361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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