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정치
기자이미지 이준희

그날 밤 사령관의 전화 "정훈이가‥"

그날 밤 사령관의 전화 "정훈이가‥"
입력 2023-09-26 07:35 | 수정 2023-09-26 08:03
재생목록
    그날 밤 사령관의 전화 "정훈이가‥"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이 보직 해임된 8월 2일 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수사단원 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시 4분 43초 분량의 음성 파일을 MBC가 입수했습니다. 김 사령관은 해병대 수사가 '문제 없다'며 박 대령을 두둔하는 듯한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어차피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어."

    "정훈이가 국방부 법무관리관하고 얘네들 통화한 거 다 있을 거 아니야. 기록들 있지?"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걸로 이렇게 갈 수밖에 없을 거야"
    그날 밤 사령관의 전화 "정훈이가‥"

    9월 24일 뉴스데스크 화면

    김계환 사령관은 이번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당사자입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결재가 번복된 7월 31일부터 수사 자료 경찰 이첩, 박 대령이 보직 해임된 8월 2일까지, 박 대령과 많은 대화를 나눈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트레이트>가 보도한 '윤석열 대통령 격노' 발언을 박 대령에게 알려준 전달자로 지목돼 있습니다. 박 대령과 국방부·대통령실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김 사령관의 태도에 따라 이번 사건은 '외압'이 될 수도, '항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 사령관의 발언은 두 차례 공개됐습니다.

    ① 최근에 공개된 8월 2일 밤 해병대 수사단원과 통화

    ② 8월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발언입니다.

    ①번 발언은 박 대령의 보직 해임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기 전에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외압이든 항명이든,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나눈 '날 것 그대로'의 대화입니다.

    반대로 ②번 발언은 한 달 내내 언론의 외압 의혹이 제기된 상태에서 김 사령관이 국회에 나와서 한 겁니다. 다시 말해 '정제된' 답변입니다.

    <스트레이트>는 김계환 사령관의 ①번 8월 2일 통화 내용과 ②번 8월 25일 국회 발언을 비교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봤습니다.

    [1] 항명이 아니다?

    (8월 2일 녹취)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걸로 이렇게 갈 수밖에 없을 거야."


    (8월 25일 국회)
    "사령관의 정당한 지시에 대해서 어긴 겁니다."



    8월 2일 김 사령관 통화에는 어디에도 항명이나 지시사항을 어겼다는 표현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다가 안 되면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걸로 이렇게 갈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누가 '하다가 안 되면' 이렇게 간다는 건지 행위의 주체를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맥락상 국방부 검찰단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걸로 이렇게 갈 수밖에 없을 거야'라는 말은 실제로는 위반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몰아갈 것으로 예측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날 밤 사령관의 전화 "정훈이가‥"

    9월 24일 뉴스데스크 화면

    그런데 8월 25일 국회에서는 발언이 좀 달라집니다. 국회 정성호 국방위원이 "박 수사단장이 항명했다고 생각해요? 사령관님, 솔직히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김 사령관은 "사령관의 정당한 지시에 대해서 어긴 겁니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①번 발언과 ②번 발언 사이 약 3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국방부 검찰단의 박 대령 구속영장청구서를 보면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날 밤 사령관의 전화 "정훈이가‥"

    군 검찰의 구속영장청구서

    여기 보면 김 사령관은 1회 진술, 즉 8월 2일 첫 군검찰 조사에서는 피의자(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 지시를 했는지 기억 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김 사령관은 수사단원에게 전화해 '하다가 안 되면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걸로 갈 수밖에 없을 거다'라고 말한 겁니다. 하지만 2, 3회 조사가 거듭되면서 김 사령관의 기억이 분명해집니다.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 지시를 했다고 진술한 겁니다.

    이에 대해 박 대령 측은 "군검찰단에서 사령관에 대해 3회나 진술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냐,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진술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사령관의 전화 "정훈이가‥"

    9월 24일 뉴스데스크 화면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걸로 갈 수밖에 없을 거다'는 발언이 실제로 항명이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는 <스트레이트> 질의에 대해 김 사령관은 "이첩을 강행한 것은 사령관의 지시사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며, 항명이 아니라는 법적인 판단을 얘기한 것은 아니"라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2] 외압 의혹 알고 있었다?

    (8월 2일 녹취)
    "정훈이가 국방부 법무관리관하고 얘네들 통화한 거 다 있을 거 아니야. 기록들 있지?"


    (8월 25일 국회)
    "7월 21일 수사 기획부터 언론브리핑 자료까지 조직적인 개입이나 이런 것들은 없었습니다."



    8월 2일 통화에서 김 사령관은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다'고 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입니다. 박 대령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통화한 기록을 갖고 있느냐고 물은 겁니다. 이 말이 외압 의혹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는 <스트레이트> 질의에 김 사령관은 "외압이나 위법한 지시를 인지한 것이 아니라 전 수사단장이 법무관리관과 수차례 통화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외압이 의심되어서가 아니라 단지 통화 사실을 확인한 것뿐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날 밤 사령관의 전화 "정훈이가‥"

    9월 24일 뉴스데스크 화면

    그런데 김 사령관의 '통화 기록 있냐'는 질문에 해병대 수사단원은 구체적인 외압 정황을 이야기합니다. 기록도 있고, 위법한 지시라고 다들 느꼈다는 겁니다.

    만약 김 사령관이 외압을 염두에 두고 물어본 게 아니라면 뜬금없이 '외압' 얘기를 꺼낸 부하에게 펄쩍 뛰면서 "아니 외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라고 묻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김 사령관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러면 결국은 그것 때문에 본인이 책임지겠다라는 거 아니야?"라면서 말이죠.

    김 사령관의 '외압' 관련 발언은 8월 25일 국회에서 바뀐 듯, 바뀌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김계환 사령관의 '외압' 관련 발언은 국회 김병주 국방위원의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그날 밤 사령관의 전화 "정훈이가‥"

    8월 25일 김병주 위원 질의에 답하는 김계환 사령관

    김병주 위원이
    "사실은 안보실에서는 조금 전에 확인했지만 7월 21일 날부터 수사계획서도 보내달라, 7월 28일 날 사령관 보고서를 보내달라, 7월 30일 날 언론 브리핑을 보내달라 등 조직적으로 여기에 개입이 됐던 정황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라고 하자

    김 사령관은
    "7월 21일 수사 기획부터 언론브리핑 자료까지 조직적인 개입이나 이런 것들은 없었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김 사령관의 이날 국회 답변 중에 '외부 개입이 없었다'고 말한 부분은 이것이 유일합니다. 얼핏 보면 외압 사실을 전면 부인한 것 같지만, 자세히 뜯어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7월 21일부터 언론브리핑 자료까지', 즉 7월 30일까지는 개입이 없었다고 한 겁니다. 김 사령관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 대령이 윗선 개입을 주장하는 핵심 시기는 7월 31일부터입니다.

    박 대령의 진술서에 따르면 '대통령이 격노해서 국방부장관을 연결하라고 했다'고 언급된 날은 7월 31일이고,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혐의자를 빼라'고 한 날은 7월 31일과 8월 1일입니다. 또, 해병대 수사단이 이첩한 서류를 경북경찰청이 군 검찰에 고스란히 돌려준 날은 8월 2일입니다.

    정리하면 김 사령관은 국회에서는 7월 31일 이후 외압이 없었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7월 30일 이전까지 조직적인 개입이 없었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이후 스트레이트 보도로 '대통령 격노'를 박 대령에게 전달한 인물로 지목되자 박 대령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부인했습니다.


    [3] 박 대령은 어떤 부하?

    (8월 2일 녹취)
    "잘못된 건 없어. 정훈이가 답답해서 그렇게 했지."


    (8월 25일 국회)
    "수사단장 직책을 수행할 때 또 해병대 군사 병과장 직무대리를 수행하면서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지난 22일 처음 음성 파일을 확인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김계환 사령관이 박 대령을 "정훈이"로 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박 대령', '수사단장'도 아니고 '정훈이'라고 이름을 부를 정도로 김 사령관은 박 대령을 가깝게 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녹취에서 '정훈이'라는 표현은 4차례나 등장합니다. 박 대령도 김 사령관에 대한 충성심을 공개적으로 나타냈습니다. 지난 8월 11일 군검찰 조사를 거부하며 언론 앞에 처음 나섰을 때 박 대령은 "저는 해병대 사령관님의 명을 생명처럼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김 사령관의 지시를 어긴 적이 없고, 그러니 항명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날 밤 사령관의 전화 "정훈이가‥"

    8월 11일 기자들 앞에 선 박정훈 대령

    부하 '정훈이'에 대한 김 사령관의 발언은 국회에서는 어땠을까요? 박 대령이 자신의 지시사항을 어긴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하던 김 사령관은 국회 김병주 국방위원이 "평소 전 수사단장은 어떤 스타일입니까, 업무 형태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수사단장 직책을 수행할 때 또 해병대 군사 병과장 직무대리를 수행하면서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여당 국방위원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박 대령의 행위에 대해 '군기 문란'이라며 비난을 퍼붓는 와중에서도 부하에 대한 애정을 끝까지 숨기지는 않은 것입니다.

    결국 김 사령관의 8월 2일과 8월 25일 주요 발언들을 정리해 보면,

    1) '항명' 부분은 기억나지 않다가 기억이 분명해졌고,
    2) '외압' 부분은 7월 31일 이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3) 박 대령을 아끼는 마음은 여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 국정감사가 10월 10일부터 시작됩니다. 8~9월 국회 예결위, 운영위, 법사위, 국방위에서 외압 의혹을 전면 부인해왔던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방부 관계자, 그리고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상대로 국감 질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박 대령은 국방부 장관, 대변인 등의 진술이 담긴 구속영장청구서를 보고 "어떻게 똘똘 뭉쳐서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피가 거꾸로 솟는다"며 "거짓말 탐지기를 할 용의도 있다"는 말을 주변에 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 사령관의 전화 "정훈이가‥"

    <스트레이트>가 입수한 대통령 개입 의혹 문건

    국회 국정감사가 일반 상임위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선서'입니다.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선서한 증인이 위증을 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군검찰의 '항명' 수사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외압'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계환 사령관의 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연관기사]"국방부 통화 기록 있지?"‥사령관도 외압 알았나?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528013_36199.html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