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부터 사흘간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2023 국제 CSI 컨퍼런스>. 국내·외 학자 및 연구자, 현장의 과학 수사관, 유관 기관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최신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행사인데, 마지막 날 <이상동기 범죄를 묻다> 세션에서 경찰청의 공식 통계와 향후 대책 등이 처음으로 발표됐습니다.
일단, '묻지마 범죄'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한 걸까요?
[문혜민/동국대학교 법심리학 박사 수료]올해 7월 21일, 33살 남성 조선이 길에서 흉기를 마구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을 살해하고 30대 남성 3명을 다치게 한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위에서 얘기한 두 가지 특징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건입니다.
"과거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1997년, 초면인 남녀가 짝을 맞춰 여행을 떠나는 향락 사업에 대해서 '묻지마 관광'이라는 키워드가 처음으로 사용됐고요. 2000년대 초반에는 '묻지마 투자'·'묻지마 소비'·'묻지마 청약'‥ 이런 식으로 행위의 이유나 동기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경제 현상을 지칭할 때 사용했습니다.
범죄 사건에 '묻지마'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2000년 4월 26일 한국일보에서 '묻지마 살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첫 시작이고요. 2003년 이후부터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에 대해 '묻지마'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묻지마 범죄'라고 지칭할 때 그 특징은 크게 두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일면식 없는 피해자를 무작위로 선정한다는 점. 두 번째, 특별한 범행 동기를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 사건 이후 언론 보도에서 '묻지마'라는 키워드가 급증합니다.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이전 한 달간 '묻지마' 라는 키워드가 언급된 기사는 4건 뿐(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 기준). 그런데 이후 한 달간, 관련 키워드 언급은 485건으로 100배 넘게 폭증했습니다. 실제로 사건이 100배 넘게 늘었던 걸까요? 그보다는, 신림동 사건의 충격으로 그 이후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훨씬 더 많이 기사화됐다는 분석이 정확할 겁니다.
'묻지마' 대신 '이상동기'라는 용어가 공식화 됐으니, 지금부터는 이 글에서도 '이상동기 범죄'로 통일하겠습니다. 실제로 '이상동기 범죄'는 얼마나 많이 일어났을까요?
<국제 CSI 컨퍼런스> 발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이상동기 범죄는 "23건"입니다.
[윤정아/부산경찰청 과학수사과 범죄분석관]이 23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살인 5건(살인미수 포함), 상해치사 1건, (특수)상해 15건, 폭행 2건입니다. 살인 뿐 아니라 상해와 폭행까지 포함됐습니다.
"최근 신림역 사건, 서현역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현황 관리가 시급하다는 우려에 힘입어서 저희가 최초로 범죄 현황 파악을 실시하였는데요.
2023년 1월부터 8월까지 발생한 살인, 상해, 폭행 등의 사건 중에서 피해자가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경우, 또 범행 동기가 '제3자 대상 분풀이' 혹은 '사회에 대한 적대감'인 경우로 자료를 1차 추출한 결과 총 987건이 확인됐습니다.
해당 사건들의 수사 자료를 검토해, 단순 시비에 의한 폭행이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다툼 같은 경우는 이상동기 범죄로 판단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평가해 제외했더니, 987건 중 16건이 남았고요.
전국 각 시도청 범죄 분석관이 자체적으로 인지한 사건 7건을 더해, 23건으로 최종 집계됐습니다."
범행 장소는 23건 중 20건이 길가(노상)에서 발생했습니다. 발생 시각은 저녁 8시에서 새벽 4시 사이가 12건, 주로 야간 시간대였습니다.
누가 이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남성이 18명, 여성이 5명이었습니다. 연령대별로 보면 10대가 1명, 20대가 4명, 30대가 7명, 40대가 4명, 50대가 6명, 60대 이상이 2명입니다.
전과가 전혀 없는 경우가 8명, 약 3분의 1을 차지했습니다. 3분의 2 정도는 전과가 있었습니다. 전과 1~5범이 6명, 6~10범이 5명, 무려 '전과 11범' 이상도 4명이나 있었습니다.
범행도구를 사용한 경우(10건)와 사용하지 않은 경우(13건)가 비슷했고, 대부분 범행이 충동적으로 발생했지만, 살인의 경우에는 도구를 미리 준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상동기 범죄란 이런 것이다'라고 개념을 명확히 정의할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전체 23건, 어떤 추이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기에도 아직 데이터가 너무 적습니다.
이 때문에 이런 비판도 나왔습니다.
[박형민/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본부 본부장]
"명확하게 어떤 현상을 '이상동기 범죄'로 구분할 수 있는가? 라고 했을 때 저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개념이 아직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개념에 맞는 통계가 아직 없습니다. 경찰청에서 지금 수집을 하고 계시지만, 케이스가 명확하지 않으니 특성을 분석하기 어렵고요. 그래서 또 개념이 미정립되고‥ 이런 악순환이 있지 않을까.
일본의 경우에는 이런 사건을 '도리마 살인'이라고 하는데, '도리마'가 거리의 악마라는 뜻이잖아요. '거리'라고 하는 장소적 측면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 맞게 통계를 수집하는 것 같고요.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이상동기 범죄 비슷한 게 총기 난사 범죄가 아닌가 싶은데, 미국은 '공공장소에서 가해자를 제외한 4명 이상이 총격을 당해 사망한 사건'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상동기 범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동기가 이상해서'가 아닙니다. '행위가 위험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나도 모르게 범죄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관심을 갖는 거지, 이들의 동기가 이상해서 우리가 두려움을 갖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범죄 유형을 '동기'보다는 '행위'에 근거해 구분하자, 이 용어를 수정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인간의 행위에 동기가 없는 건 없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이죠. '이상동기 범죄'도 말 그대로 하면 동기가 이상하다는 건데, 그렇다면 그걸 다시 분석을 해야 하는데 그냥 "그건 이상한 거야"라고 하는 건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범죄에 정확한 명칭을 부여할 때 그 현상에 대한 포착이 가능하고, 의미 있는 대책이 마련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이나 미국은 범행 장소, 혹은 피해자 수 같은 객관적 지표로 범죄 유형을 분류하기 때문에 훨씬 근거가 명확한데, 우리나라에선 '이해할 수 없는 동기'라는 추상적 기준으로 분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실질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또 이런 불명확한 통계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신림역 흉기난동,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 경찰 사상 첫 특별치안 활동이 선포된 이후에도 유사 범죄가 잇따랐습니다. 시민들의 불안감은 더 커졌고, 호신용품 구매가 급증했습니다. "치안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윗선의 대책에, 현장에선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습니다.
[현직 경찰관(지구대 근무)]
"경찰관들 바깥으로 도보 순찰시키고, 치안력 강화를 한다고 온 동네방네 떠들 게 아니고‥순찰차를 세워놓고 경광등을 돌려놓고 시동 켠 상태로 그 주변을 경찰관이 걸어다니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하면 (다시 차로 걸어서 돌아오느라) 신고 출동이 몇 분씩 늦어지니까‥이건 아니다, 말씀을 (위에) 많이 드렸죠. 경찰관이 이렇게 활동하고 있다고, 순찰차 세워놓고 이렇게 하는 건 정말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쇼에 불과하다, 문제가 있다고‥"
과거의 연구들을 쭉 분석해 봤더니 '이상동기 범죄'의 상당수는 정신장애 범죄였습니다. 정신질환 증상과 관련된 비율이 최소 21%에서 55%를 차지하는 겁니다. (홍현기/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검사과 심리연구사).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대책이 필요할 겁니다.
정신질환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상동기 범죄자들은 대부분 심리학적으로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박은영/대구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뉴스를 통해서 많이 보셨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사건을 보면 어떤 사소한 자극, 사소한 일이 그렇게까지 분노할 일이었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이상동기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은 대개 정서적인 경험에 대해 대처하는 기술이 매우 부족합니다. 보통은 가정 내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이 감정은 기쁨이구나', '이 감정은 뿌듯함이구나' 이런 걸 배우고, 그걸 바탕으로 '이런 상황에서 나는 슬프게 느꼈으니까 저 사람도 많이 슬프겠구나'라는 걸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갖게 되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가정 내에서 적당한 또는 적절한 양육을 받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란 모든 사람들이 범죄를 일으키는 건 아니지만, 보호자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돌봄과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학대나 방임을 당하는 경우 '나는 누군가한테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구나' 라면서 자신, 타인, 나아가서는 사회에 대해서도 굉장히 불신하는 태도가 만들어집니다.
이런 경험을 갖고 학교에 가면 학교 폭력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거꾸로 가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좌절과 거부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사회에 나갔을 때도 장기간 누군가와 함께 업무를 하는 직장에서 굉장한 어려움들을 겪게 되고, 실직과 해고를 반복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더해집니다.
그러니 누군가와 만나서 어떤 관계를 맺고 지속적으로 정서적인 교류를 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마트에 다녀오거나 PC방에 다녀올 수는 있지만, 그 어떤 사람과도 가까운 소통 없이 사회적으로 위축되는 상황인 거죠.
그렇지만 본인이 지금 처한 현실은 본인도 원하지 않았던 상황이다 보니 거기서 느껴지는 불편함, 이런 걸 견디다 못해 결국은 이 원인을 다른 데로 돌리게 됩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사회가 나를 버린 거야' 또는 '너희들이 전부 다 나를 미워한 거야'라면서 피해의식이 생기고, 본인이 누군가를 해치거나 공격할 때에도 '이건 정당한 거야, 왜? 사회가 나한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저 사람들을 벌할 권한이 있어'라는 매우 왜곡된 인지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 거죠."
이런 왜곡된 사고가 형성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겠죠.
[박은영/대구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가정이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진다는 걸 많이 느끼고요. 제가 여러 가지 주제로 논문을 쓸 때마다 가정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부모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양육 지원책들을 좀 더 다양화해서 가정에서 배워야 하는 사회적인 기술들을 제대로 터득할 수 있도록 국가가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 사회적 유대가 갈수록 약화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일탈적, 반사회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와 단절된 채 온라인 공간 등에서 자신의 (왜곡된) 사고를 강화시킬 수 있는 자극을 찾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음. 이상동기 범죄는 형사정책적 방안을 통해서만 예방될 수 없고 사회 복지정책이 함께 개선되면서 비공식적 사회통제 시스템이 함께 작동될 때 가능함.-
최근에 나온 연구보고서, <이상동기 범죄의 유형과 대책>(윤정숙/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결론입니다.
결코 어느 한 부처, 어느 한 기관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부는 신림역과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 예방부터 조기 발견, 치료, 복귀까지 전 주기에 걸쳐 전 국민의 정신건강을 제대로 보살피겠다며 지난 8월, '마음건강 투자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관리가 시급한 정신건강 고위험군 환자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상담을 실시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선, 요즘 이 '마음건강' 사업비 539억 원 중 208억 원을 삭감하자는 논의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한국심리학회는 "이젠 국민의 마음 건강까지 정쟁의 대상이냐"며 예산 삭감 논쟁을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영상취재 : 임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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