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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손구민

[M피소드] 부인 장례식장 오지 않은 남편‥딸 잃은 아버지의 편지

[M피소드] 부인 장례식장 오지 않은 남편‥딸 잃은 아버지의 편지
입력 2024-01-06 08:01 | 수정 2024-01-0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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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피소드] 부인 장례식장 오지 않은 남편‥딸 잃은 아버지의 편지
    MBC는 군인이었던 남편으로부터 성관계 영상 촬영과 성인방송을 강요당했다며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임 모 씨의 사연을 지난 3일과 4일 연속 보도해드렸습니다.

    경찰은 남편 김 모 씨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 뉴스데스크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기록해 공개하고자 합니다.
    [M피소드] 부인 장례식장 오지 않은 남편‥딸 잃은 아버지의 편지
    스키 동호회서 만나 2년 연애 끝에 결혼


    임 모 씨는 1986년,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워낙 좋아했던 임씨는 고등학생 육상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20대엔 의류판매업에 종사했으며, 2017년부터는 공공기관에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임씨 부모는 "딸이 어릴 적부터 털털한 성격이었고 먹을 게 있으면 항상 나눠 먹으려 했다"고 떠올립니다. 또, 힘든 일이 있어도 잘 내색하지 않는 속 깊은 딸이었습니다.

    그런 임씨가 직업군인 김 모 씨를 만난 건 2018년 무렵, 스키동호회에서였습니다. 그리고 2년여의 연애를 거쳐, 2020년 김씨와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임씨는 가족들에게 김씨를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꿈꿔왔던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결국, 임씨는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결혼 약 3년 만인 2023년 12월 8일, 37번째 생일을 맞기 보름 전이었습니다.

    임씨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M피소드] 부인 장례식장 오지 않은 남편‥딸 잃은 아버지의 편지
    "언니가 남편에게 휘둘린다는 건 알았지만‥"


    임씨가 남긴 유서와 유족들, 또 임씨의 가까운 지인 등의 말을 종합하면 남편 김씨는 결혼 생활 직후부터 아내 임씨에게 자신 또는 다른 남성과의 성관계 영상 촬영을 강요하기 시작한 걸로 보입니다.

    2018년부터 임씨 부부와 가깝게 지냈던 임씨의 친구는 "언니의 노출 사진이나 성관계 영상을 사이트에 올려 처음 돈을 받고 팔았다"고 말했습니다.

    가혹행위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2021년부터는 성인방송까지 강요했다는 겁니다.

    임씨의 친구는 "남편 김 씨가 수익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된 뒤 인터넷 방송 일도 시킨 것 같다. 평소 언니가 남편에게 휘둘린다는 걸 잘 알았지만, 부부의 문제라 생각해 내가 개입할 문제가 아녔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를 알게 된 건, 김씨가 임씨의 친구에게도 일을 제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임씨 친구는 "김씨가 게스트로 출연해서 같이 성관계 영상을 찍자길래 거절하고 그때부터 자주 안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한동안 끊겼던 연락은, 작년 여름부터 다시 이어졌습니다.

    임씨는 친구에게,
    "남편이랑 살기 너무 힘들다, 숨 막힌다, 남편이 날 감시하고 감금시킨다."
    "떠나겠다고 하니 남편이 자꾸 폭로한다고 한다, 남편이 막 나간다."
    "배가 고파서 뭘 먹으려고 하면 남편이 '살찐다'며 못 먹겠다"고 하소연했다고 합니다.

    숨진 임씨가 발견된 자택 냉장고엔, 냉장고 문을 한 번 열어보기 전에 생각해보라는 듯 '목표 몸무게 48kg'이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습니다.

    "임씨에게 '휴대전화를 바꾸고, 자신의 집에서 한동안 지내라'고 제안했지만 임씨가 남편 감시에 집 밖을 못 나왔다"는 게 친구의 증언입니다.
    [M피소드] 부인 장례식장 오지 않은 남편‥딸 잃은 아버지의 편지
    임씨 어머니, "사위가 딸을 식구들과 완전히 분리했다"


    임씨는 친구에겐 고통을 토로할 수 있었지만 가족에겐 차마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임씨를 보러 집에 가겠다고 하면 부부가 매번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부모와 언니, 동생이 임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22년 10월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임씨의 사망 시점은 2023년 12월. 무려 1년 넘게 만나지 못한 겁니다.

    임씨 어머니는 "딸은 통화 때마다 회사 생활 때문에 힘들다는 말 정도만 했고, 만나러 간다고 하면 딸이 '알겠다'고 했는데, 다음 날 집 앞으로 가면 사위가 '지금 부인이 바빠서 못 나와요'라며 대신 나왔다"며 "이제 와서 보니 김씨가 완전히 식구들과 분리해놓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딸이 숨지기 사흘 전엔 전화로 '회사 잘 다니고 있느냐' 안부를 물었는데 딸은 "요새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었던 어머니는 "사업을 잘하기 바란다"고 응원만 했습니다.

    임씨 아버지도 "김치를 주러 집에 가겠다고 해도, '아버지 들어오시라'는 말 한마디 없이 매번 밖에서 만나서 김치를 챙겨가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임씨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그래서 가족에게 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임씨 친구 등을 통해, 둘째 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든 것을 알게 된 가족들의 심정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에 임씨의 여동생이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듣게 됐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김씨는 "한쪽 말만 들으면 너무 억울하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고 하는데요.

    정작 세상을 떠난 부인의 장례식장에는 나타나지조차 않았습니다.

    유족이 장례를 치른 뒤 숨진 딸이 살던 아파트에 가보니 벽에는 딸의 나체 사진이 잔뜩 걸려 있었고 김씨는 이미 짐을 다 빼고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M피소드] 부인 장례식장 오지 않은 남편‥딸 잃은 아버지의 편지
    군의 징계 절차는 합당했나


    '어떻게 했으면 딸이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유족의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입니다.

    육군 상사였던 김씨는 2021년 7월 소속 부대에서 감찰을 받고 중징계 처분된 뒤, 현역 복무 부적합 심사를 거쳐 강제 전역당했습니다.

    자신의 SNS 계정에 성관계 영상들을 공유한 게 적발된 겁니다.

    그런데 김씨의 징계 절차에 여러 의문이 남아있습니다.

    군이 MBC에 보내온 입장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해당 인원은 코로나 19 수칙 위반과 개인 SNS 활동간 부적절한 행위가 식별됐으며, 법적 검토 결과 형사 사안으로 분류되지 않아 사단에서 법무 조사 뒤 중징계 및 강제 전역 조치했다. 구체적인 징계 사유 및 결과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의거 공개가 제한된다. 부대는 최근 유가족 문의에 대해 민원신청 및 정보공개청구 절차를 안내했다."

    입장문을 토대로 드는 의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김씨 부대 감찰단의 감찰 개시 경위입니다. '법적 검토 결과 형사 사안으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건, 해당 부대 감찰단이 김씨를 감찰해봤더니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헌병대나 군 검찰에 김씨를 수사 의뢰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지점에서, 감찰단이 김씨 감찰에 착수한 이유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만약 군 장병이 김씨에 대한 민원을 제기한 것이라면, 그 민원이 '감찰을 해달라'는 취지인지, 또는 실질적으로 '수사를 해달라'는 고발 취지인지 확인해야 하는 겁니다.

    민원 내용이 "김씨의 SNS에 이상한 게 올라왔다" 정도인지, 아니면 "김씨의 SNS에 자신이 찍은 성착취물이 올라온다"는 내용인지에 따라, 감찰단의 대응 태도도 달라야 했다는 겁니다.

    사실상의 고발이 접수됐는데, 감찰단이 단순 감찰 민원으로만 치부하고, 담당 군사경찰이나 군 검찰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인지 확인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유족들은 이 성관계 영상들에 임씨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군은 임씨를 포함해 다른 피해자들이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둘째, 김씨가 받은 중징계가 무엇인지입니다.

    '김씨를 중징계한 뒤 강제 전역시켰다'는 건, 김씨에게 정직 처분을 내리고, 군 복무 부적합 심사를 거쳐 강제 전역조치 시켰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씨는 계급이 상사로 연금 대상이 될 수 있는데, 해임이나 파면이 아닌 정직 처분은 연금 혜택이 유지될 수도 있습니다.

    군 법무관 출신 김정민 변호사는 "군에 부담되기 때문에 징계 대상자의 변명을 들어주고 더 문제 삼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며 "피해자가 있을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피해자 진술을 적극 받고, 만약 군사 경찰에 출석하길 꺼린다면 피해자 조사는 민간 경찰에 위탁시키는 방법 등을 고려해서라도 수사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은 경찰에 넘어갔습니다. 경찰은 김씨가 소속됐던 부대에 감찰 자료 등을 요청했고, 임씨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풀어 증거 수집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속도감 있게 수사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임씨 아버지가 보내온 편지


    끝으로, 보도 전 임씨의 아버지가 취재진에게 자필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일부를 공개합니다.

    저는 고인이 된 임 모 씨 아빠입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게 이렇게 힘이 드는 줄 몰랐습니다.

    자다가 일어나 하늘을 쳐다보면 눈물만 나고, 부모로서 자식 아픔을 몰랐다는 게 너무나 자괴감만 듭니다.

    기자님! 저희는 법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기자님에게 하소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빵 한 조각도 제대로 먹지 못해 앙상한 딸의 마지막 얼굴을 봤을 때 가슴이 미어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하늘나라에서 모든 한을 풀고 편히 쉴 수 있도록 기자님한테 애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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