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석 의원 33명 중 찬성 24명, 반대 7명. 직권 임명으로 의사결정 제1항 인천광역시의회 허식 의장 불신임의 건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2022년 7월 취임한 제9대 인천시의회 허식 의장. 지난 2일, 인천시의원 40명 의원실에 배포한 40면짜리 인쇄물이 논란이 됐습니다.
5·18은 DJ 세력과 북한이 주도한 내란
인쇄물의 머리기사 제목입니다. 언론사 제호와 함께 5·18 특별판이라는 문구도 적혔습니다.
이 기사를 시작으로 5·18을 폄훼하는 내용의 글들이 40면에 걸쳐 계속됩니다.
즉각적인 항의가 이어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은 국민의힘 소속인 허 의장이 공식적인 절차나 동의 없이 인쇄물을 일괄 배포했다며 반발했고 결국 허 의장은 일부를 회수했습니다.
국민의힘도 이틀만인 지난 4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엄정, 신속 대응 지시"라며 발 빠르게 "윤리위원회를 열어 당 차원 징계를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허 의장이 논란을 자초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취임 한 달여 만인 재작년(22년) 7월에는 SNS에 경찰국 신설에 저항하는 경찰을 '나부랭이'라고 낮잡아 표현했다가 사과했고, 지난해(23년) 10월에는 인천시 교육 행사에 참석해 "인천을 포함한 한국 교육이 공산주의를 교묘히 옹호한다"고 말했다가 교육계의 빈축을 샀습니다.
불과 한 달 전쯤엔 인천시 사업 보고회 축사를 하다가 "미추홀구로 이사한 지인의 아이들이 초등학생인데 욕을 입에 달고 다닌다"며 미추홀구 비하 발언을 해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때마다 지역사회와 일부 여론의 반발이 있었지만 그저 '소란'에 그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 가릴 것 없이 이어지는 비판에도 '모르쇠'..당 징계 피하려 '탈당'까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이어진 정치권의 비판과 더불어 허 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5·18 단체들의 규탄 성명이 잇따랐습니다.
허 의장의 행위 역시 5·18 특별법을 위반한 것이다. 이러한 왜곡·폄훼가 근절되도록 당 차원의 진상조사·징계를 강력하게 촉구한다.(5일/5·18유족회)
허 의장의 행위는 비상식적이며 5·18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것으로 보인다. 허 의장은 5·18 희생자들에게 사죄하고 국민의힘은 5·8 폄훼 행위에 대한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5일/5·18기념재단)
이미 여러 차례 시의회를 대표하는 의장의 '막말 논란'으로 골머리를 앓던 지역사회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허 의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막말로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다..계속된 망언에 이어 헌법 정신까지 부정한 허 의장은 의장직과 시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8일/인천지역연대)
허 의장은 직책의 막중함을 잊고 철 지난 이념 논쟁을 자행해 시민을 대표하는 선출직 공직자로서의 태도를 갖추지 못했다..지방의회 품위를 손상시키고 민주화 운동 발상지인 인천의 명예를 실추시킨 허 의장의 사퇴를 촉구한다.(8일/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
하지만 사과는 없었습니다. 도리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진상 파악을 덜 하고 징계 지시를 한 거라며 5·18 폄훼에 대해서는 신문사에 물어봐야 할 문제라며 책임을 피했습니다.
<그 기사가 5·18 폄훼가 아니라고 보시는 건가요?> "그거에 대한 개념은 우리가 전혀 없어요.. 신문 내용을 내가 썼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선 신문사에다가 얘기해야지."(8일/허식 의장)
당 윤리위보다 허 의장의 탈당계 제출이 앞섰습니다. 결국 허 의장은 당의 징계를 피했습니다.
■ 반성은 없었다..'불신임안' 상정에 의장 직권으로 '셀프 거부'
지난 15일, 한 시의회 간부를 통해 시의원 40명과 공무원 등 65명이 속한 단체 대화방에 '5·18 북한 개입설' 내용이 담긴 기사를 공유한 겁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비판하고 자신을 두둔하는 내용이 담긴 칼럼까지 덧붙였습니다.
자숙하지 않고 또 의회 SNS 단체대화방에 왜곡 기사를 게시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를 보였다..이미 규명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정상적인 공인의 자세가 아니다.(16일/광주시의회 5·18특위)
결국 여당과 야당 소속 시의원들은 의장 불신임안을 공동 발의했습니다. 긴급 기자회견으로 곧장 응수한 허 의장은 "누명 씌우기에 불과하다"며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탄핵 사유가 미약한 박근혜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탄핵한 사건처럼 제2의 탄핵사태로 비화될 것이 우려됩니다."(21일/허식 의장)
그리고 23일 열린 본회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조합장, 그리고 인천시장은 허 의장의 탈당 이후 의원 의장직 사퇴를 지시하거나 종용한 적이 없다..본 의장에 대한 불신임안 상정은 지방자치법상 사유에 해당되지 않고..법리적으로도 근거가 없고 절차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본 의장은 상정을 거부합니다."(23일/허식 의장)
의장 직권으로 안건 상정을 '셀프 거부'한 허 의장은 직접 의사봉을 치고 회의를 해산시켜버렸습니다.
■ "허 의원의 의장직 박탈을 환영한다"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공인한 제도권 신문을 의정활동에 참조하라고 공유한 행동을 가지고 징계를 한다는 것은 헌법상 언론 표현의 자유는 물론 국민 알 권리와 양심의 자유마저도 억압하는 행위이고..중앙정치가 끼어들어 인천시의회를 강타하니 제 자신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힘듭니다."(24일/허식 의장)
표결에 앞서 신상 발언을 요청한 허 의장은 마지막까지 헌법상 기본권을 억압하는 처분이라며 '억울하다'는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가결 직후, 5.18 기념재단은 허 의장의 의장직 상실을 환영한다며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인천시의회의 5·18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통해 이뤄진 허 의원의 의장직 박탈을 환영한다.(24일/5·18기념재단)
인천시의회 33년 역사상 처음으로 '강제 퇴임'의 불명예를 안게 된 허 의장, 다만 시의원 신분까지 잃은 건 아니어서 남은 2년 5개월의 의정활동은 이어갈 수 있습니다.
허 의장은 불신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예고했는데요.
법원의 판단이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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