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땅은 사유지가 아니라 학교 땅입니다. 부동산 등기에는 소유자가 '한양학원'이라고 나와있습니다. 한양대는 원래 묘소가 있던 평택 고덕 사유지가 강제 수용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이장했고, 각종 비용은 김종량 이사장 사비로 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장한 땅이 왜 학교 땅이어야 했을까요. 작고한 설립자, 그리고 그의 가족 묘소까지 챙기는 재단. 우리 사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학교 땅에 설립자 일가 묘소를 설치한 학교, 한양대만이 아니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사립대는 누구의 것인가? 이사장과 족벌왕국(1월 21일 방송)'을 준비하면서 전국 사립대 292곳에 정보공개청구를 했습니다. 방송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을 더 공개합니다.
# "아무것도 공개 못 해"..답변 일절 거부한 39개 대학
<스트레이트>는 정보공개포털에 등록된 사립대 288개와 자체 정보공개시스템을 운영하는 4개 학교(가톨릭대,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 모두 292개 대학교(4년제, 전문대 포함)에 정보공개를 청구하거나 별도로 공식 질의를 전달했습니다.
질문 내용은 크게 네 부분이었습니다.
1) 국가보조금과 법인전입금 5년치 통계('대학알리미'에는 최근 3년만 공개)
2) 학교법인 이사장, 이사, 대학 총장, 부총장 중 설립자 친인척 현황
3) 학교법인 땅에 있는 설립자 친인척 묘소 현황
4) 대학병원 설립자 가족 병원비 감면 규정(대학 부속병원이 있는 28개 학교만 대상)
253개 학교는 일부라도 답변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래 39개 학교는 모든 답변을 '비공개 결정'하거나, 답변을 아예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정보공개청구 '전체 답변 거부' 대학>
경동대학교, 경북전문대학교, 경주대학교, 고려대학교, 고려사이버대학교, 광양보건대학교, 광운대학교, 남서울대학교, 대경대학교, 대신대학교, 동아대학교, 동원대학교,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부산예술대학교, 서울기독대학교, 선린대학교, 성운대학교, 송호대학교, 순천향대학교, 안양대학교, 영산선학대학교, 예수대학교, 예원예술대학교, 우석대학교, 웅지세무대학교, 유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전남과학대학교, 제주한라대학교, 중원대학교, 차의과학대학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칼빈대학교, 한림대학교, 한림성심대학교, 한서대학교, 호산대학교, 호서대학교(총 39곳)
일부 질문이라도 답변을 보낸 253개 학교 역시 불성실한 답변을 한 곳이 적지 않았습니다. 설립자의 아들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전북과학대, 설립자의 딸이 총장을 맡고 있는 동강대, 그리고 설립자의 아들이 총장, 손자가 부총장, 며느리가 이사를 맡고 있는 진주보건대는 처음에는 이 같은 사실을 답변에 넣지 않았다가 <스트레이트>의 재확인 요청을 받고서야 설립자와 친인척 관계임을 인정했습니다.
설립자 친인척이 이사장, 이사, 총장, 부총장 4대 핵심 보직을 맡고 있는지에 대해 공개를 거부한 대학은 46곳이었습니다. 4대 핵심 보직 중 설립자 친인척이 있다고 답한 학교 수(106곳)와 합치면 152곳입니다.
이 숫자는 공교롭게도 <스트레이트>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가 공동 분석한 '세습 대학' 개수158곳와 비슷합니다. 참고로 158곳은 정보공개청구 대상이 아닌 사립대들과 설립자 후손이 현재 형사처벌 등의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 있는 사례까지 모두 합친 수치입니다.
# 설립자 증손자의 배우자의 부모까지..병원비 100% 감면
설립자 일가가 대학병원에서 받는 혜택은 없을까요? <스트레이트>는 부속병원을 갖고 있는 대학 28곳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설립자 친인척 병원비 감면 조항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절반인 14곳은 해당 조항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조항이 있다고 답한 학교는 건양대와 인하대 단 2곳, 감면 액수까지 공개한 곳은 인하대(2022년 3천3백만 원)가 유일했습니다. 아래 학교 12곳은 답변을 아예 거부했습니다.
<'설립자 친인척 병원비 감면' 비공개 대학>
건국대학교, 경희대학교, 고려대학교, 순천향대학교, 연세대학교, 원광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인제대학교, 조선대학교, 중앙대학교, 차의과학대학교, 한림대학교(총 12곳)
(*경희대는 추후 추가 질의를 받고서야 공개)
<스트레이트>가 별도 질의한 한양대의 경우 설립자 가족 46명에게 병원비를 최대 100% 감면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한양학원이나 소속 학교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은 단 2명, 김종량 이사장과 그의 어머니 백경순 이사뿐입니다. 나머지 44명은 학교나 재단 직원도 아닌데, 단지 '설립자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병원비를 감면받고 있었습니다. 감면율의 경우 설립자의 배우자, 자녀, 자녀의 배우자, 손·외손자녀 및 그 배우자, 증손·증외손자녀 및 그 배우자, 그리고 직계비속의 배우자의 부모까지 100%입니다. 설립자의 조카 및 배우자, 조카의 자녀 및 그 배우자, 조카의 손자녀 등은 감면율이 50%입니다.
이들이 감면받은 병원비는 얼마나 될까요? 백경순 이사의 경우 3억 9천만 원(2023년 3월~2024년 1월)이고, 백 이사를 뺀 다른 친인척 감면 비용은 7천만 원(2023년 3~12월)입니다. 합치면 4억 6천만 원쯤 됩니다. 참고로 2023년 3~12월 한양대(대학원 포함) 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감면받은 액수는 4천8백만 원. 설립자 친인척 감면 액수의 10%에 불과합니다. 한양대 앞에서 몇몇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대다수는 재학생 병원비 감면 규정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양대의 2023년 등록금 의존율은 54.6%, 법인전입금 비율은 2.6%입니다. 수입의 절반 이상을 학생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설립자 일가가 이사장과 이사인 재단(법인)의 기여도는 3%도 채 안 된다는 뜻입니다.
# "학교법인 부지에 설립자 묘소 있다" 17개 대학
<스트레이트>는 설립자 본인이나 후손의 묘소가 학교법인 땅에 있는지도 물어봤습니다. 앞서 언급한 한양대 외에도 17개 학교가 설립자 묘소를 재단 땅에 설치했다고 답했습니다.
건국대, 군장대, 단국대, 동명대, 동양대, 사이버한국외대, 서원대, 성결대, 세명대, 신안산대, 충북보건과학대, 한국외대(단, 사이버한국외대와 한국외대는 설립자 동일) 등 12곳은 설립자 본인의 묘소만 있다고 했지만, 설립자와 함께 다른 가족들의 묘소가 학교 땅에 마련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신여대는 본인과 부모, 그리고 조카, 대전보건대는 본인과 배우자, 대덕대는 본인, 배우자, 동생의 묘소까지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본인, 자녀가 학교법인 소유 부지에 묻힌 곳도 2곳(대구대, 유한대) 있었습니다.
※ 단국대의 경우 공동 설립자인 장형 선생과 조희재 여사의 묘소가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다만, 경기 용인시에 있는 장형 선생의 묘는 국가보훈부의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묘소로 지정돼 있다고 설명했고, 경기 남양주에 있는 조희재 여사의 묘는 학교법인이 소유하기 이전에 이미 설치돼 있던 묘소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학교법인 땅에 설립자 일가 묘소를 설치한 곳이 17개뿐일까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 질문에 답변하지 않은 학교가 47곳이나 됐기 때문입니다.
<'학교법인 땅에 설립자 묘소 설치' 답변 거부 학교>
경동대학교, 경북전문대학교, 경주대학교, 경희대학교, 경희사이버대학교, 고려대학교, 고려사이버대학교, 광양보건대학교, 광운대학교, 남서울대학교, 대경대학교, 대구사이버대, 대신대학교, 동남보건대학교, 동아대학교, 동원대학교,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명지대학교, 부산예술대학교, 서울기독대학교, 선린대학교, 성운대학교, 송호대학교, 순천향대학교, 숭실대학교, 안양대학교, 영산선학대학교, 예수대학교, 예원예술대학교, 우석대학교, 웅지세무대학교, 유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전남과학대학교, 제주한라대학교, 중원대학교, 진주보건대학교, 차의과학대학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칼빈대학교, 한림대학교, 한림성심대학교, 한서대학교, 혜전대학교, 호산대학교, 호서대학교(총 47곳)
# "거액 기부했으면 그 정도는 누려도 되지 않느냐"는 질문
'조용한 곳에서 집필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경희대 안에 숙식이 가능한 60평짜리 별도 집무실을 두고, 월세 70만 원에 쓰고 있는 경희학원 이사장, 대학병원 건물 120평 공간에 30년 넘게 살면서 한양대 최고 의료진과 전담 간호사의 보살핌을 바로 옆에서 받고 있는 한양학원 이사장의 모친. 이른바 '인서울 주요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학재단 사유화 논란을 조명한 이번 <스트레이트>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열이 받아서 끝까지 보기 힘들다", "나랏돈, 애들 돈으로 진짜 왕처럼 사는구나", "교육이라는 업종으로 장사를 하는 시설" 등 설립자 일가를 비판하는 댓글도 많았지만, "설립자(의 부인)이기도 하고 기부도 저 정도(2천2백억 원) 했으면 살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물론, 사립대 비중이 90%에 가까운 우리나라에서 국가를 대신해 교육을 책임진 사학재단의 역할은 마땅히 인정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공을 설립자 일가에 대한 보상이나 특혜로 돌려주는 게 맞는지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독지가가 사재를 들여 장학재단을 설립한 상황을 떠올려보겠습니다. 그 뜻에 공감해 다른 사람들의 기부가 이어졌고, 국가에서도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상속세도 없이 독지가 가족들이 재단을 물려받고 재단에서 돈을 받으며 각종 혜택을 보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대학의 기업화, 몰락하는 대학에 관하여」라는 책을 쓴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고부응 교수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일단 재산을 내놓았으면 ‘내 것이 아니야. 니네가 써.’ 라고 하는 것을 선언하는 행위가 출연이거든요. 그것에 대해 금전적이라든지 어떤 실질적인 보상을 받으려고 하면 출연 행위가 아닌 겁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출연이 아니었다고 투자였다고 노골적으로 말을 하고 나서 그 투자에 대한 몫을 달라고 얘기하는 것이 솔직한 이야기죠. 근데 차마 그런 얘기는 못하겠죠. 아주 좋은 취지로 출연했다 그럴 거 아닙니까."
실제로 이번에 스트레이트가 보도한 경희학원 조인원 이사장의 아버지인 조영식 경희대 설립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재산이 될 수 없는 게고 국가의 재산이고 국민의 것입니다. 이 의료원을 이 자리를 기해서 국민 여러분에게 헌납합니다. 하는 말씀을 드리고 국가에게 바로 헌납합니다.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1971년 10월 5일, 경희의료원 개원식)
무엇보다 사립대 교비회계 수입 23조 5천억 원에서, '학생'들이 낸 등록금 수입(12조 원)이 51%, '세금'으로 마련된 국고보조금 수입(4조 7천억 원)이 20%를 차지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설립자 후손들이 포진해 있는 법인에서 내는 돈(법인전입금)은 7천6백억 원(3.2%)에 불과합니다.
저출생 여파가 몰고 온 사립대의 위기 속에서 설립자 일가의 잘못된 인식이 결국 사립대를 더 큰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 사립대학체제의 형성과 재단법인의 정치」 논문을 쓴 서울과학기술대 인문사회교양학부 김일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설립자의 후손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공적인 자산을 좌지우지하는 방식으로는 사립대학의 운영이 사회적인 신뢰를 더 이상 얻기가 어려울 거고, 아마도 이 사립대학들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이나 다른 어떤 사회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것도 아마 어려울 것이다. 너무 불신받는 집단이기 때문인 거죠. 자기 마음대로 할 것이 너무 분명한데, 누가 세금으로, 정부의 재정으로 그 사립대학을 지원하는 걸 찬성하겠어요."
이번에 <스트레이트>가 다루려 했던 문제는 단순히 설립자 일가의 기여도와 그들이 받는 혜택의 양을 비교해 이런 '예우'가 적절한지 따져보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설립자 일가가 학교를 마치 소유물처럼 여기고, 학교는 그들을 모시는 것처럼 보이는 문화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스트레이트> 보도 이후 교육부는 경희대, 한양대 사례에 위법 소지가 있는지 내부 검토에 착수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결과가 나와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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