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가 내일(20일) 국회에서 한자리에 모입니다.
'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에 출석하는 겁니다. 수사 외압에 더해 인사청탁, 징계무마 의혹에도 휩싸인 조병노 경무관은 물론, 수사외압 의혹을 폭로한 당사자인 백해룡 경정도 청문회에 나옵니다.
야권과 일부 언론에선 이 사건을 '경찰판 채해병 사건'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일선 수사팀에서 사건을 수사하다가, 지휘부에서 사건을 수사하지 못하게 막은 의혹이 제기됐고, 그 배경에 이른바 '용산 개입설'까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은 아직 윤곽만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정도입니다.
백해룡 경정이 지난달 29일 조지호 당시 경찰청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직접 선서를 하고, 각종 외압 정황들을 폭로했지만 더는 진전이 없습니다. 경찰 수뇌부는 "외압은 결코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은 현시점에서 경찰 수뇌부와 백해룡 경정 측은 청문회에서 치열한 공방을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청문회에서 도마에 오를 쟁점 세 가지를 살펴봤습니다.
1.'용산 개입설' 진위는?
이른바 '용산 개입설'은 '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 해당 사안에 대해 청문회까지 열기로 한 이유 역시 '용산 개입설'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백해룡 경정은 지난 7월 2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경찰서장님께서 전화 통화로 '용산에서 심각하게 보고 있다', '안 좋게 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밝혔습니다.
백 경정이 언급한 경찰서장은 현재 대통령실에 파견 나가 있는 김 모 총경입니다. 작년 영등포서장으로 재직했고, 인천세관 사건 지휘관이었습니다. 그가 '용산'을 언급했다는 시점은 지난해 9월 20일입니다.
그 뒤 마약 사건 언론 브리핑은 미뤄졌고, 보도자료에서 '세관' 관련 내용이 모두 빠졌고, 서울청 지휘부에서 사건을 영등포서에서 광역수사단 마약수사대로 넘기려 한 상황들이 펼쳐집니다.
시점상 의혹의 시작점이자, 결국 정점은 '용산 개입설'이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용산 개입설'의 단초가 될 김 총경과 백 경정의 간의 대화는 현재로서는 백 경정의 폭로만 있습니다. 둘 사이의 대화 녹취 같은 물증이 없습니다. 김 총경은 '용산 이야기'를 한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청문회에서도 '용산 개입설'은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백 경정은 고위공직자범죄 수사처에 경찰 수뇌부가 대통령실 관계자와 통화한 사실이 있는지 등 통화 내역을 확보해달라며 고발장을 접수한 상황입니다.
2. '사건 이첩 검토' 부당한가, 정당한가?
수사외압의 배경에 '용산 개입설'이 있다면, 수사외압의 행위엔 '이첩' 논란이 있습니다.
서울경찰청은 작년 10월 인천세관 사건을 영등포경찰서 소속 백 경정의 전담수사팀이 수사하지 못하도록, 사건을 광역수사단 마약수사대로 넘기려 했습니다. 이 행위가 부당하냐, 정당하냐가 쟁점입니다.
백 경정과 서울청 지휘부는 이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다투고 있습니다.
백해룡 경정의 주장에 따르면, 작년 10월 6일 이른 아침, 관세청 직원들이 먼저 영등포서를 찾아와, "오는 10일 브리핑에서 세관 직원 연루 의혹 언급을 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다음부턴 오지 말라”며 관세청 직원들 요구를 거절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1시간 뒤엔 서울청 폭력계장이 영등포서를 직접 찾아왔습니다. 폭력계장이 "사건을 마약수사대로 넘기는 걸로 결정했으니 따르라"고 했다는 게 백 경정의 주장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사팀 직원들이 "사건을 못 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따졌더니, 폭력계장이 "그럼 강제로라도 가져가겠죠"라고 답해 서로 싸움까지 났다고 기억했습니다.
실제 백 경정의 말대로 서울경찰청이 '강제로라도 사건을 가져갈 것'이라고 했다면, 이는 경찰 내부 규칙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일선 경찰서가 사건 이첩에 반대할 때, 경찰 내규는 '책임수사관서 지정 심사위원회'를 열어 심의하도록 하는데, 이런 절차는 따로 없었습니다.
10월 10일 언론 브리핑 날 백 경정은 관세청의 요구를 듣지 않고 기자들의 질문에 '마약 조직원들이 통관에서 걸리지 않은 이유를 수사할 예정'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언론 브리핑 다음 날엔 구체적인 세관 직원 연루 의혹이 MBC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보도가 나가고 약 한 시간 만에 폭력계장은 백 경정의 카카오톡으로 사진 하나를 보냈습니다. '검토 결과 문건'이라는 한 장짜리 서류였습니다. '이첩 검토 결과 영등포경찰서가 계속 수사하라'는 결론을 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백 경정은 이같은 '검토 결과' 통보 역시 형사사법포털인 '킥스'를 거쳐 공식 문건을 제시하지 않아 절차 하자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백 경정은 세관 연루 의혹이 이미 보도된 상황에서, 사건을 강제로 가져가려 했다는 게 알려질 경우 서울청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어 사건을 그냥 돌려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합니다.
실제로 지난 16일 MBC 보도를 통해 당시 서울경찰청 수사부장과 수사차장이 마약 사건 이첩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당시 수사부장은 김봉식 신임 서울경찰청장, 당시 수사차장은 박정보 경찰인재개발원장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첩 검토 지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입장입니다. '검토'만 지시했을뿐, '강제 이첩 지시'는 없었다는 겁니다.
김 청장은 MBC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영등포서 사건은 마약 조직원들 수사에서 밀반입을 세관 직원들이 도왔다는 의혹으로까지 확대됐다"며 "이것이 사실이면 국가가 흔들릴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사건인데, 대형 사건을 일선서에서 그대로 하게 둘지, 아니면 지방청 차원에서 수사하게 할지 검토시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검토 안 하는 게 직무유기다."
서울청 지휘부가 인천세관 사건을 마약수사대로 넘기려 한 게 형식상 특별한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원래 경찰은 사건이 전국적인 규모나 대형 부패범죄 성격으로 확대되면, 전담수사대로 사건을 넘깁니다.
하지만, 이첩 행위 자체가 형식상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당시 지휘부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이첩 검토를 지시했는지는 중요합니다. 대통령실 또는 관세청과 조율해 사건 이첩을 하려 했는지는 밝혀져야할 지점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김 청장은 "직을 걸고 대통령실이든 관세청이든 그 어디로부터도 전화를 받은 적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이첩 검토를 지시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광호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지시도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박정보 원장 역시 같은 입장입니다.
또 한 가지 의문은 경찰청 폭력계장과 백 경정의 말이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폭력계장은 MBC와 통화에서 "이첩 지시를 할 거였으면, 전화로 하면 되는 일"이라며 "검토가 필요해 수사팀 의견을 듣기 위해 영등포서를 찾아갔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강제적 이첩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10월 6일, 폭력계장은 서울청 직원들을 대동시켜 영등포서로 갔고, 백 경정 역시 자신의 수사팀 일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함께 있었던 제3자의 진술이 필요해 보입니다.
폭력계장의 통보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따라, '검토만 시켰을 뿐'이라는 지휘부 입장에 힘이 실릴 수도 있고, 아니면 '강제 이첩이라도 하려 외압을 행사했다'는 백 경정의 입장에 힘이 실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통상 조직 에서 윗선에서 '사건을 이첩할 필요가 있으니 검토하라'고 지시하면 하급자가 이를 단순 검토로만 받아들일지도 의문이긴 합니다.
3. 인천세관 수사는 명분이 있었나?
백 경정이 이끌었던 인천세관 직원들에 대한 수사 자체가 정당했느냐를 두고도 청문회에선 쟁점이 될 전망입니다. 수사 자체가 무리였다면, 지휘부의 행태가 '수사 외압'이 아니라 '수사 절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그럼 사건 진행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작년 9월 초 수사팀은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들로부터 '세관 직원들 도움으로 무사히 마약을 들고 통관을 지날 수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마약 조직원 6명은 작년 1월 27일 아침 8시쯤, 종아리와 허벅지 등에 필로폰을 한 사람당 4킬로그램을 부착한 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말레이시아를 떠나기 전 현지 총책이 "한국 세관 직원들이 먼저 너희를 찾을 것"이라고 했고, 조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실제 'CUSTOM'(세관) 조끼를 입은 남자 직원 2명이 자신들을 안내해줬다고 합니다.
입국장 4번, 5번 검색대는 그날 입국객들을 받지 않았지만, 또 다른 남자 직원 2명이 각 검색대에 위치해 다른 입국객들과 자신들을 분리시켜주고 그냥 통과시켜줬다고 진술했습니다.
조직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팀은 9월 말 인천공항을 현장 방문해 진술 내용을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조사를 받은 조직원 세 명이 통관 경위와 동선에 대해 동일한 진술을 한 사실이 확인되고, 두 명은 자신들을 도왔다는 세관 직원마저 동일한 인물을 지목했습니다.
수사외압 의혹이 불거진 뒤 관세청은 "백 경정이 마약 조직원들의 일방적 진술만을 근거로 무리하게 강압수사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관세청 직원들이 연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직접 찾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세관 수사가 명분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경찰과 관세청의 입장이 조직 차원에서 달라 보입니다.
백 경정은 말레이시아 조직원들의 구체적인 진술을 토대로 세관 직원들을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상부에 여러 차례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당시 영등포서장 김 총경은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직접 카카오톡으로 '마약 조직원 통관 과정 수사'를 하겠다며 수사계획을 보고습니다.
서울청 수사부장이었던 김봉식 서울청장도 이를 보고받았던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 청장 말대로 '국가를 흔들 만한 사건'이라고 판단해 이첩 검토를 지시했다면, 이 말은 그만큼 서울청 지휘부가 수사가 무리하다고 보지 않고, 중대 사건 수사라고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청문회엔 고광효 관세청장 등 관세청 전·현직 고위직들도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인데, 이들과 경찰 고위직들이 어떤 식으로 각자 견해를 밝힐지 주목됩니다.
4. 그 밖에도..
청문회는 수사외압 의혹의 실체 규명이 주된 목적이지만, 사실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는 또 다른 의혹도 있습니다. 바로 조병노 경무관의 인사청탁, 징계무마 의혹입니다.
앞서 MBC는 조 경무관이 백 경정에게 전화해 외압성 발언을 한 문제로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에 넘겨졌지만, 최종 '불문'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또 조 경무관의 최측근 부하인 최모 경위가, 임성근 전 해병대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으로 알려진 ‘멋쟁해병’ 단체대화방 멤버 5인 중 1명이고, 그가 “대통령실 경호처 출신 송호종씨에게 조 경무관의 승진 얘길 언급한 사실이 있다”고 말한 사실도 보도했습니다.
조 경무관은 구명 로비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종호씨는 "전혀 모른다"는 입장을 뚜렷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송호종씨를 아는지, 안다면 송씨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등 취재진 질문엔 "그 부분에 대해선 답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회 행안위는 이번 청문회에 송호종씨도 증인으로 불렀지만, 송씨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불출석을 통보했습니다. 조 경무관에게 질문이 향할 수밖에 없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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