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말라야가 녹는다‥하얀 눈 대신 검은 바위산 >
취재진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카날리주로 이동했습니다. 30분 정도 이동하자, 창밖에는 히말라야 산맥이 구름 위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히말라야 하면 하얀 만년설이 떠오르지만, 실상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군데군데 검은 바위 부분들이 드러나 보인 겁니다.만년설이 녹고 있고, 눈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눈으로 바뀌는 지점들을 연결한 '0도 등온선'도 점차 산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매해 여름, 에베레스트산에서 내리는 눈과 비를 측정했더니 2020년엔 전체 강수량의 40%가 비였지만 작년엔 75%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 비가 오면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 무슨 잘못이 있나요? >
네팔은 우기에 전체 강수량의 80%가 집중됩니다. 히말라야 지역에 비가 늘어난다는 건 네팔엔 말 그대로 짧은 시간, 물 폭탄이 쏟아진다는 것입니다. 산악·구릉지대가 국토의 80%인 네팔은 산사태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예전보다 위력적으로 내리는 비로 산사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살 수 있는 땅 자체가 사라지고 아이들은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홍수로 학교 가는 길이 막히고 산사태로 돌이 굴러와 무서워요."
취재진은 원래 카날리주의 체다가드 마을에 있는 학교에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만나 함께 나무를 심을 계획이었습니다. 외국인 취재진을 만날 생각에 들뜬 아이들은 미리 나무를 심을 구덩이를 파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날 아침 학교로 가기 위해 차를 타고 산길을 올랐습니다.그날 새벽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산길은 계곡이 되었습니다. 4륜구동 차로 덜컹거리며 힘겹게 올라갔지만 결국 쏟아져 내린 흙더미에 막혀 멈춰 섰습니다. 산사태가 난 겁니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어 결국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향후 계획을 논의하는 도중에도 취재진이 서 있던 길옆에선 '우수수' 소리가 나며 토사가 쏟아졌습니다.급히 다른 지역인 수르켓에 있는 학교를 섭외해 다음 날 취재에 나섰습니다. 산꼭대기에 있는 학교.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5살부터 14살까지 연령대가 다양했습니다. 이곳 아이들에겐 전해 내려오는 동요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날씨에 대한 노래였습니다. 학생 20명이 합창한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학교 가는 길이 너무 위험해 무서워요. 한밤중에 산사태가 났거든요"우기에는 홍수와 산사태로 전체 학생 100명 중 10명도 채 학교에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한 학생의 하굣길을 따라가 봤더니, 산사태로 쏟아진 바위가 나뒹구는 길을 지나 성인 무릎까지 오는 물웅덩이를 건너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은 1시간 넘게 이런 길을 매일 걸어가야 합니다.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눈 14살 니샤는 최근 기후변화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에 가고 싶어도 비가 오면 작은 계곡물이 불어나고 굵은 빗줄기를 감당할 수 없어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게 다 기후변화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해발고도 1,400미터가 넘는 곳에 세워져 있던 또 다른 학교는 이번 우기에 지붕이 통째로 날아갔습니다. 천정이 뚫린 채 벽면만 남아있는 건물엔 여전히 아이들의 낙서가 선명합니다. 바로 옆에 학교를 새로 지었지만 산사태로 그 부지마저 계속 깎여나가고 있습니다. 전교생은 3백 명인데 우기만 되면 교실이 텅 빕니다.유니세프에 따르면 네팔에서 고등학교까지 정상적으로 마치는 비율은 30%도 안 됩니다. 특히 가정 형편에 따라 격차가 컸는데, 부유층은 70%이지만 빈곤층은 10% 만이 고등학교를 졸업합니다. 여기에 산사태와 홍수 같은 재난으로 빈곤층 아이들의 등굣길은 더욱 힘겨워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기후변화 때문에 이런 재난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기후변화는 취약한 환경에 처해있는 아이들의 교육권마저 빼앗아 가고 있는 겁니다.
"강물에 아내도 아들도 잃어‥모든 게 휩쓸려 가"
홍수로 집을 잃고 10년 넘게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는 이재민들도 만났습니다. 2014년 발생한 베리강 홍수로 마을이 휩쓸려버린 80가구가 임시거주촌으로 이주했습니다. 그중 절반은 다른 지역으로 떠났지만 40가구는 새집과 터전을 마련할 경제적 능력이 없어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두막집은 지푸라기를 엮어 지붕을 얹었고 얇은 나무기둥에 진흙을 덧대 겨우 건물의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변변한 문도 없는 집들. 정부가 조성한 임시거주촌은 영구 거주가 불가능해 콘크리트 건물은 세울 수 없다고 합니다.인터뷰에 응한 50대 바하두르 씨는 10년 전 홍수로 집과 밭은 물론 아내와 아들까지 잃었습니다. 자정쯤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강물이 넘쳐 집 안을 덮쳤고 어디가 땅인지,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간신히 산 위로 도망쳤지만 아내는 나무를 잡고 버티다 강물에 휩쓸렸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바하두르 씨에게 닥친 불행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임시거주촌의 열악한 환경 탓인지 2년 전 뇌졸중으로 한쪽 다리가 마비됐습니다. 자녀들이 일용직 노동으로 벌어오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네팔 산악지대 주민들은 잦은 홍수와 산사태로 도로가 끊기면서 생필품 공급도 원활하지 않아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물가는 높아져 제대로 끼니를 때울 수도 없는 상황도 수시로 발생합니다. 카날리주 주민 80%가 식량부족을 겪어봤을 정돕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앞으로 2050년까지 네팔이 기후변화로 매년 GDP의 2.2%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리고 그 타격은 빈곤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 아시아, 기후변화로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여전히 진행 중인 '기후재난' >
지난 4월 세계기상기구는 아시아가 기후변화로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네팔을 포함한 남아시아 지역이 가장 취약했습니다. 기후변화는 이들이 일상으로 돌아올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피해를 복구하고 일상을 회복하기 전에 또 재난이 덮치는 겁니다. 지난달 말, 네팔에는 22년 만에 엄청난 폭우가 내렸습니다. 하루 3백mm가 넘는 비가 쏟아졌고 2백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맘때면 우기가 끝나야 하지만 비가 그치긴커녕 더욱 위력적인 폭우로 쏟아지고 있고,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에서 배출된 온실가스가 주범입니다. 지난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374억 톤으로 사상 최대치였습니다.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는 중국, 그다음은 미국이었습니다. 한국도 2022년 기준 9위의 탄소배출국입니다. 반면 네팔의 배출 비중은 0.04%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기후변화의 피해는 네팔 같은 저개발국, 취약한 나라들에 집중됩니다. 기후위기 책임이 큰 나라들이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주춤대는 사이 네팔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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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김현지(local@mbc.co.kr) 영상취재: 이종혁(hyouk@mbc.co.kr) 최대환(max_circle@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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