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없다"는 소방청‥ 게시글 댓글에서 터진 원성>
‘대통령실 눈치 보는 소방청, 눈 가리고 아웅이다.’
‘소방, 왜 자꾸 스스로 노예가 되려고 그러는 겁니까?’
‘말장난으로 호도한다.’
지난달 6일 서울시 행정포털 소방청 내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에 이런 원색적인 비판을 하는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실로부터 받아서 살펴본 이 자유게시판 게시글은 소방청의 공식 홍보 자료를 공유해놨습니다. 의료 대란으로 벌어진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에 대한 언론의 지적이 이어지자 소방청이 낸 홍보 자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며 게시글을 올린 겁니다.소방청 홍보 자료는 질의응답 형태로 작성됐는데, ‘이송 병원을 찾는 동안 구급 서비스 공백이 생기진 않나요?’라는 질문에, 소방청이 ‘네,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1)시도 소방본부는 관할 구급차 출동 시간과 장소 등을 실시간 정보 관리한다 2)구급대 출동 요청 시 이미 출동 중인 구급차가 아닌, 빨리 출동할 수 있는 구급차를 배치한다 3)전국 소방헬기 통합출동체계를 구축해 위급환자 이송 시스템을 관리한다 등을 제시했습니다.
잘 관리하고 있고, 헬기도 쓰면 된다는 말로 의료 대란으로 인한 구급 활동에 차질이 없다는 게 소방청 공식 입장인 겁니다.
게시글 댓글엔 ‘이건 소방청이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정부 정책 기조를 따라가겠다고 공표한 거다’, ‘예상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까 했는데..’ 등의 비판도 나왔습니다.
또 다른 게시글에도 소방청의 비슷한 홍보 자료가 실렸습니다. 이 홍보 자료 제목은 ‘구급 환자 재이송은 병원의 환자 거부와는 다른 개념으로, 환자에게 가장 적정한 병원을 찾기 위한 과정입니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 게시글엔 ‘말 장난이다’라는 댓글, ‘이렇게 말하면 구급대원이 애초에 병원 잘못 선정해 재이송한 거라는 말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침 뱉는 거냐’는 댓글 등이 달렸습니다.
<'응급실 뺑뺑이' 8개월 만에 이미 작년 85% 수준>
소방청 직원들이 사용하는 이 내부 게시판에 비판 여론이 거센 건 의료 대란으로 인한 일선 소방관들의 어려움을 소방청 지휘부가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소방청의 공식 입장이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는 건 통계 수치상으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올해 8월 기준으로 응급실 뺑뺑이라 부르는 ‘응급실 재이송’ 건수가 이미 작년 전체 건수의 85%를 넘어섰습니다.
응급실 재이송은 총 3천597건으로, 재이송 사유는 ‘전문의 부재’가 1433건, 39.8%입니다. 쉽게 말해 10명 중 4명이 환자를 치료해줄 의사가 없어 ‘뺑뺑이’를 돌았다는 게 됩니다. 병원으로 두 차례 재이송된 경우도 121건, 세 차례 재이송된 경우는 17건, 네 차례까지 재이송된 사례는 23건이었습니다.
이 통계는 구급대원들이 실제 응급차를 타고 ‘뺑뺑이’를 돌았던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인데, 응급실을 연 병원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전화 뺑뺑이’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앞서 추석 당일인 지난 17일 새벽, 부산에서 30대 여성이 경련과 의식 장애 증상을 보인다는 신고를 받고 나선 구급대가 무려 92번이나 병원 이송 문의를 했지만, 치료를 받을 병원을 찾지 못했습니다. 여성은 밤사이 세 차례 더 심정지가 왔고 결국 숨졌습니다.
소방청 내부 여론은 들끓고 있지만 이에 대한 언론 보도는 사실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공무원노조인 소방노조의 비판 성명 정도만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윗선에서 기자들과 소통 못하게 막아">
소방노조에 물어봤습니다.
김동욱 소방노조 사무처장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응급실 뺑뺑이 실태를 보여주고자, 구급차 동행 취재를 원하는 신문, 방송사 기자들이 엄청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구급차가 공용물이고 관리 주체가 기관이라 마음대로 누구를 태울 수 없는데, 시도 소방본부와 일선 소방서에서 언론 취재 협조를 못하게 막았다”, "말 그대로 '입틀막'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기자들의 동행 취재는 물론, 심지어는 그 어떠한 영상물이나 음성 파일도 기자들에게 제공해선 안 된다고 통제에 나선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양부남 의원실에서 제공한 소방 자유게시판엔, 서울시 이름으로 된 공문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소방활동 중 생산된 기록물 유출 방지 등 관리 철저'라는 제목의 공문인데, 기관장의 허락 없이 직원 개인이 소방 활동 중 만들어진 영상물이나 대화녹음을 밖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평소 소방청은 기자들에게 구급 현장, 화재 현장 등이 담긴 영상물을 제공합니다. 평소와는 정반대로, 이를 '유출'로 규정하고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규정한 겁니다.양부남 의원은 "소방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소방청이 오히려 현장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언론 접촉을 막고 있다"며, "일선 구급대원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국민 안전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의사들과 환자들은 물론, 일선 소방대원도 8개월째 이어지는 '의료 대란'에 점점 지쳐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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