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2년이 지났습니다.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도 먼저 떠난 자식의 빈자리를 채우진 못합니다. 듣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외국인이라서' 어려웠습니다. MBC 취재진은, 외국인 유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년 전 멈춘 딸들의 시간
이 집 식탁에는 빈자리에도 따끈따끈한 밥그릇과 수저가 놓여있습니다. 이태원 참사로 숨진 딸 메이 씨의 자리입니다. 남은 가족들은 매일같이 딸이 좋아하던 음식을 차려둡니다. 그리곤 딸 아이의 사진에 대고 말을 건넵니다.
[토미카와 아유무/메이 아버지]
"밥을 먹을 때도 간식을 먹을 때도 딸 아이 몫까지 같이 준비해요. 딸이랑 대화도 하면서요."
26살이던 메이 씨는 참사 발생 4개월 전인 2022년 6월,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습니다. 한국을 참 좋아했습니다. 이곳에서 카페를 차리고 싶어했을 정도로요.
'비빔밥이 맛있다'는 문자가 메이 씨의 마지막 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가족들은 아직도 한국에서 날아온 메이 씨의 유품 상자를 차마 열어보지 못합니다.호주 시드니의 한적한 주택가 벨필드에도 희생자 그레이스 씨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상자 속에 고이 보관해둔 딸의 유품을 건네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찍은 '인생네컷'과 경복궁 입장표였습니다. 사진 속 그레이스 씨는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레이스 씨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국 여행을 왔습니다. 참사 당일 점심, 가족들과의 마지막 영상통화에서 핼러윈 축제를 무척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레이스 씨가 아직도 긴 여행 중인 것 같다고, 언젠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것만 같다고 합니다.
[레베카/그레이스 동생]
"2년이 지났는데 아직 2주밖에 안 된 것 같아요. 언니가 아직 살아서 멀리 여행 중인 것 같기도 해요."
가족들은 유쾌하고 의욕 넘치던 그레이스 씨를 떠올리며 웃음 짓다가도 눈시울이 붉혔습니다.
23살이던 그레이스 씨는 유명 영화 제작자를 꿈꿨습니다. 최근엔 그레이스 씨가 동료들과 함께 찍은 영화가 상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딸이 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했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 사과도 설명도 없었다" 고립된 외국인 유가족들
우리 정부도 외교부 직원을 각 유가족들에게 1대1로 전담 배치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실이 외교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외교부는 △시신 확인△장례 및 운구△유가족 입출국 등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자 한국 정부는 외국인 유가족들에게서 손을 뗐습니다. 외교부는 "대사관을 통해 유가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지만 가족들의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조안/그레이스 어머니]
"아무 지원도, 연락도 못 받았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심지어 유감이나 사과의 말도 못 들었어요. 전화 한 통 없었어요."
외국인 유가족들은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내야 했습니다. 그레이스 씨의 어머니도 올해 봄부터 어렵사리 한국인 유가족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기록집을 발간한 국내 출판사에 직접 메일을 보냈고, 출판사의 도움으로 유가족 협의회와 연락이 닿은 겁니다.
이태원 특별법이 통과된 것도, 1심 재판에서 주요 공직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도 한국인 유가족들로부터 들었습니다. 한국 정부로부터 여전히, 참사에 대해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 막지 못했나" 질문하기 위해 한국에 온 가족들
호주 자택에서 인터뷰할 때 어머니가 한 말이 내내 귓가에 맴돕니다.
[조안/그레이스 어머니]
"여태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요? 지금 상황은 정의롭지 못해요."
참사 2주기, 여전히 대답할 질문들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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