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불 피해가 컸던 이유를 두고 각종 진단이 쏟아져나옵니다. 진화대원의 고령화, 헬기 부족, 불타기 쉬운 소나무숲의 높은 비율. 여기에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 원인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임도' 부족입니다.
임도란 임산물을 나르거나 삼림의 관리를 위해 산속에 낸 도로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 '임도'를 두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산림청은 국내 산림에 놓인 임도가 현저히 부족해 산불 진화의 어려움을 겪었고, 따라서 앞으로 임도를 더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해발 900m의 높은 봉우리에 위치한 산불 현장에 접근할 임도가 없어 진화인력을 현장에 투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임상섭 산림청장(지난달 30일)-
"임업 선진국들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치는 열악한 임도가 산불 예방과 진화, 구호를 막았다"
-박종호 전 산림청장-
반면, 환경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임도는 산불 진압에 큰 효과가 없고 산림의 연속성만 단절시켜 환경을 훼손하며 오히려 산사태 피해를 키운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과연 임도 부족은 이번 산불 확산의 원인이 됐을까요? 임도가 산불 방지와 진화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까요? 국내 삼림에 임도는 진짜 부족한 상황일까요? 환경단체들은 왜 산림청과 정반대 주장을 하고 있는 걸까요?
■ 임도가 없어서 산불 확산 못 막았다?‥산림청 자료 따져보니

하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니 뭔가 이상합니다. 먼저 나라별로 자료 출처가 통일되지 않습니다. 미국과 오스트리아, 독일, 핀란드 등은 정부 공식 자료를 인용하지 않았고 학술지 등에 적힌 통계를 가져왔습니다.
기준도 다릅니다. 산림청이 적시한 23년 일본 '임야청의 산림·임업백서'를 확인해봤습니다. 해당 자료 어디에도 '임도'라는 단어는 없었습니다. 대신 한자로 '노망밀도'가 1헥타르당 24.1미터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단 '노망' 즉 '도로망'에는 어떤 도로들이 포함되는지는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답은 일본 임야청이 낸 또 다른 공식 자료에 나와 있었습니다.

산에 낸 길만 갖고 임도 밀도를 계산한 우리나라와 다르게 일본은 임도뿐만 아니라 국도와 농업용도로, 산림작업도 등을 모두 포함해 계산한 것입니다.

이마저도 오스트리아는 우리나라와 달리 '숲 내부는 물론 숲의 경계로부터 75m 이내에 있는 공공도로와 사유도로 등을 모두 합산해' 산정한 결과였습니다. 만약 이 기준을 적용한다면 우리나라는 1헥타르당 임도가 51미터로 집계됩니다. 산림청이 게시한 4.1미터보다 열두 배는 더 긴 겁니다(산림도로 밀도 현황분석 및 고찰, 홍석환·안미연, 한국환경생태학회지 74-81p, 2025).
하지만 산림청 홈페이지엔 어디에도 '나라마다 임도 산정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등의 주석이 없습니다. 출처도 기준도 제각각인 통계를 별도 설명 없이 게재해 통계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입니다.
■ "임도서 멀어질수록 피해 커" vs "산불·산사태 위험 가중"

산림과학원은 "미국 내 연구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삼림의 임도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불이 옮겨붙을 가능성이 높아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으며, 임도로부터 거리가 1미터 멀어질수록 산불 피해 면적은 1.55제곱미터씩 증가한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와 산림 여건이 유사한 핀란드는 13만km의 임도가 개설돼 산불 진화가 쉬워, 산불 한 건 당 피해면적이 0.4ha로 주변국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산불도 임도 여부에 따라 진화 성패가 갈렸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울산 울주군 대운산 산불은 임도가 없어서 엿새간 축구장 1천3백 개 면적을 태웠는데, 근처 화장산 산불은 임도가 있어 20시간 만에 잡혔다는 내용입니다.
울주군에 직접 연락해봤습니다. 임도가 없어 피해가 컸다던 대운산은 알려진 바와 달리 임도가 존재한다고 울주군은 답했습니다. 반면 화장산의 임도는 정식 설치된 임도가 아니라 산주가 불법적으로 낸 길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2022년 경남 밀양 산불 현장 모습 [출처: 기후재난연구소]

2025년 경북 청송 산불 현장 모습 [출처: 기후재난연구소]

2023년 강릉 산불 피해면적 지도 [출처: 홍석환 교수 논문]

2025년 경북 의성 산불 현장 모습

경북 산불 피해면적 지도 [출처: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SNS]
그동안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임도가 환경파괴는 물론 산사태 위험성을 키운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습니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11월 전국 725개 임도 유역 아래에 있는 1,925가구의 민가가 산사태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무분별하게 건설한 임도가 산사태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 소속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지난 23년 7월, 2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충남 논산 납골당 산사태 원인으로 임도를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 '통계의 오류' 알고 있는 산림청? 그래도 "임도 계속 만들겠다"
산림청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임도를 개설해왔습니다. 2023년 말 기준 전국에 설치된 임도는 총 2만 584km입니다. 최근 10년간 한 해 평균 745km의 임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산도 매년 꾸준히 늘어 작년 예산은 2천5백억 원이 넘습니다.
산림청은 '기준이 다른 해외 통계를 인용해 우리 임도밀도가 매우 낮은 것처럼 나타내고 이를 근거로 임도를 늘리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임도 개설 예산을 확보하려는 목적은 아니고, 단순 참고용으로 올린 수치"라며 "국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임도 개념이 조금 다르긴 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임도 개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중형·대형 산불로 진행되지 않게 인력 및 장비가 초기에 신속히 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주불을 잡은 뒤 뒷불 감시, 재불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도 임도가 있어야 효과적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소형 태풍급 바람이 불고, 불붙기 쉬운 소나무숲이라면 임도는 제 기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2025년 경북 영덕 산불 피해 현장 모습
임도 신설을 강조하는 모습과 달리 불붙기 쉬운 소나무숲 위주의 산림 정책을 돌아보거나 불에 강한 활엽수로 숲을 가꾸려는 노력은 크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국내 산림 대부분이 사유림이라 조림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하는 경향이 큽니다.
기후변화는 분명 산불 위험을 키웁니다. 하지만 비슷한 기후대의 중국과 일본에서는 대형산불이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산림청의 예산은 2조 5천억 원이 넘습니다. 임도도 늘려왔고, 산불진화를 위한 헬리콥터와 헬리콥터 발진 기지도 늘려왔습니다. 그런데도 산불 피해는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산불로 목숨을 잃기 전에, 정말 산불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 무엇인지 객관적이고 정밀한 연구와 숙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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