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 기간 늘리려다 꼬이는 대법원 해명‥누가 정의를 지연시켰나 [국회M부스]](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5/10/15/joo251015_25_1.jpg)
날짜가 여러 개 등장하다 보니 헷갈릴 수 있어 주요 내용을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검토 기간 늘리려다 꼬이는 대법원 해명‥누가 정의를 지연시켰나 [국회M부스]](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5/10/15/joo251015_18.jpg)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 천대엽은 "3월 28일"‥그런데 대법원 문건은 "4월 22일"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사건(이하 '이 대통령 사건')이 파기환송된 다음 날인 5월 2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국회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했습니다.
이 날 천대엽 처장은 대법관들이 7만 페이지를 사건 기록을 사건 접수 직후부터 전자문서로 확인했다는 취지로 말합니다.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된 3월 28일부터 사건을 검토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최근까지도 이어집니다.
"기록이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바로 치밀하게 검토를 시작했다는 것이 다수 보충의견에 나와 있습니다. 3월 28일 기록을 보기 시작했다면 그때부터 4월 22일까지 25일 정도 기간 여유가 있습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지난 13일 대법원 국정감사 中)
그런데 앞서 MBC가 보도한 대로, 이 무렵 대법원이 작성한 <사건 기록 인수·인계부>라는 내부 문건을 보면 '2025도4697 당사자 이재명' 사건 기록은 4월 22일 대법관실에 인계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에 대한 평결이 이뤄진 4월 24일로부터 불과 이틀 전에 사건 기록이 대법관실로 넘어갔다는 겁니다. 대법원 공식 문건대로면 대법관들이 이 사건의 기록 검토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짜는 4월 22일인 겁니다. '이틀 만에 7만 페이지 기록 검토가 가능하냐'는 의혹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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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현안 관련 긴급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
■ 3월 31일의 등장‥검토기간 최대한 늘리려다 말 꼬여
천대엽 처장은 기록 검토 시작일로 3월 28일을 줄곧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번 국감을 앞두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추미애 위원장실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또 하나의 날짜를 제시합니다.
바로 3월 31일입니다.
대법원이 답변서에서 "해당 사건기록은 관리재판부 지정 시(2025.3.31) 재판연구관실로 전달되었습니다"라고 한 겁니다.
여기서 관리재판부란 기록관리재판부를 의미합니다. 통상 사건이 접수되면 대법관들은 돌아가면서 사건 기록을 넘겨받는 일을 담당합니다. 이때부터 사건기록의 이동과 흐름이 관리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올해 3월 28일에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됐고, 그로부터 사흘 후인 3월 31일에 기록관리재판부가 지정됐고, 바로 이 날 담당 재판연구관실로 사건 기록이 이동하는 절차가 진행됐다는 뜻입니다. 앞서 천대엽 처장은 3월 28일부터 검토를 시작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3월 28일에는 사건 기록 관리자조차 정해지기 전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종합해보면, 사건 기록은 3월 31일에야 담당 재판연구관실에 전달됐고 그로부터 20여 일 후인 4월 22일 대법관실에 인계됐습니다. 백 번 양보해 대법관들이 3월 28일부터 검토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그 검토의 대상이 7만 페이지의 사건 기록일 가능성은 크지 않은 정황이 드러난 겁니다.
결국 대법원이 기록을 최대한 오래 검토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시작일을 3월 28일이라고 하긴 했는데, 3월 28일에 기록을 스캔한 것이 맞는지, 복사를 한 것은 맞는지, 종이로 본 것인지, 전자 문서로 본 것인지, 3월 28일에 본 기록은 무엇인지, 4월 22일에 인계된 7만 페이지의 사건 기록은 읽어본 것인지 등 이어지는 질문에 답을 제대로 못하면서 혼란이 거듭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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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하는 조희대 대법원장
■ 전자 문서? 기록 복사?‥"복사 여부도 알 수 없다"
천대엽 처장은 당초 대법관들이 기록을 3월 28일부터 전자문서로 스캔해서 봤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박은정: 대법원으로 가면 다 전자문서화되는 겁니까?
천대엽: 예. 요즘에는 형사기록이 전부 전자사본화가 돼서…
박은정: 그러면 이 전자문서 7만 페이지를 대법관들이 다 봤다고요?
천대엽: 그렇게 스캔해 간 것으로 지금 확인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2일, 국회 법사위 긴급현안질의)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는 대법관들이 당시 제출된 '문서'를 읽었다면서, 스캔 기록을 봤다는 앞선 언급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합니다.
"대법관들은 빠른 시기에 원심판결 공판 기록을 기초로 사실관계와 쟁점 파악에 착수했고 지체없이 제출 문서를 읽어 그 내용을 숙지했습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지난 9월 24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中)
그래서 국회가 어떤 제출 문서를 읽었는지, 대법관들의 내부 시스템 접속 기록과 복사 기록을 제출하라고 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국감장에서 더불어민주당 김기표 의원은 천대엽 처장에게 "사건 기록을 복사한 것이 맞느냐"고 세 차례 반복해 물었고, 이에 대해 천 처장은 "판결문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버티다 결국 "복사 여부는 알 수 없다"며 한발 물러섰습니다.
7만 페이지의 사건 기록을 복사했는지도 이제는 모호해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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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기록은 위에 있습니다"‥덧대진 손 글씨 논란
그런데 대법원의 <사건기록 인수·인계부> 문건 '비고란'을 보면 "이미 기록은 위에 있습니다"라는 손 글씨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월 22일 자 <사건기록 인수·인계부>는 4월 22일이나 그 이후에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고, 해당 손 글씨는 문서 작성 이후에 누군가 문서를 출력한 뒤 손으로 적은 다음 문서를 복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4월 22일에 사건 기록이 인계된 총 4건의 사건 중, 유독 '이 대통령 사건'에만 "이미 기록은 위에 있습니다"라는 손 글씨가 덧대져 있다는 겁니다. 왜 '이 대통령 사건'에만 손 글씨를 적어놨을까요? 이미 위로(?) 올렸다고 쓴 이유는 뭘까요? 이에 대한 대법원의 공식 입장은 문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이 대통령 사건'을 서둘러 심리하고 판결하기 위해 주심이 배당되기도 전부터 "사건 기록을 인수·인계 할 때는 인수·인계부를 작성하고 비서관으로부터 영수인을 받아야 한다"는 <대법원 내규>도 무시하고, 당시 있던 기록들부터 서둘러 위로(?) 올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근 5년간 35일 이내에 대법원 판결이 나온 1천8백여 건의 형사 사건 중 파기환송 된 사례는 '이 대통령 사건'이 유일하다는 사실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두른 결과가 유일한 파기환송 사례가 됐으니 말이죠. 결론은, 대법원이 왜 대선을 앞두고 예외적으로 '이 대통령 사건'만 판결을 서둘렀는지, 서두른다고 해도 사건 기록을 제대로 검토는 하고 서두른 것 인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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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12월 3일에는 왜 침묵했나
천대엽 처장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로 이 대통령 사건의 파기환송을 서둘렀던 이유를 에둘러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12월 3일 내란의 밤, 계엄 선포 직후 시민들이 계엄군 장갑차와 맞서고 있을 때 천 처장을 비롯한 대법원 간부들은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해산했습니다. 제2, 제3의 계엄 선포가 내려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가득했을 때 그들은 침묵을 택한 겁니다.
그리고 사흘 뒤인 12월 6일, 천 처장은 국회에 나와 "헌법 규정에 반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 있다"고 말했고, 12월 11일에는 "지금의 사태는 위헌적인 군통수권 행사로 인해 발생했다"는 취지로 발언했습니다. 비상계엄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야 '위헌'을 거론한 겁니다.
지난 13일 대법원 국정감사가 끝날 무렵, 천대엽 처장은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과의 질의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서영교: 법무부가 그날 긴급회의를 열었어요.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 구치소, 교도소 방을 찾았어요. 그날 법원도 긴급회의를 열었어요. 법원은 왜 긴급회의를 열었죠?
천대엽: 당연히 계엄이 만약 합법적이었다면 저희들이 계엄에 따라야 할 조치가 있고 또 사법부의 기능 작동이 정지되기 때문에 저희들로서는 굉장히 시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서영교: 그렇죠. 법원도 똑같습니다. 비상계엄이 되면 거기에 따라야 될 무엇인지 여러분들은 논의한 거예요.
(지난 13일 대법원 국정감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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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의 밤, 장갑차 막던 시민들 모습
과연 그날 밤 계엄이 성공했다면, 천대엽 처장이 "계엄이 헌법 규정에 반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 있다", "지금의 사태는 위헌적인 군통수권 행사로 인해 발생했다"라는 발언을 사후에 했을지 의문입니다. '위헌' 주장은 12월 3일 밤 시민들이 장갑차를 막아섰을 때 했어야 했습니다.
천 처장의 말대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닙니다. 그런데 내란이 실패로 끝난 뒤 그제서야 위헌을 꺼내든 대법원이 이제 와서 '지연된 정의'를 꾸짖을 자격이 있을까요? 사법부 독립과 삼권 분립은 서슬 퍼런 총칼 아래서 스스로 용기를 냈을 때 지킬 수 있습니다.
결국 조희대 대법원장이 입을 열어야 합니다. 7만 페이지에 달하는 사건 기록을 누가 언제 어떻게 검토했는지, 3월 28일부터 일단 있는 서류라도 검토를 서두르자고 누가 지시했는지, 12월 3일에 왜 침묵했는지, 계엄이 성공했다면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명쾌하게 밝히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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