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김건희, 그리고 캄보디아
지난 2022년으로 시간을 돌려보겠습니다. 재임 1년차,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첫 동남아 순방으로 캄보디아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순방의 성과보다는, 오히려 영부인이었던 김건희 씨의 행보가 좀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김건희 씨가 단독 일정으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소년의 집을 직접 방문했는데, 여기서 찍은 사진이 배우 '오드리 헵번'을 떠올리게 연출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의료취약계층을 홍보 수단으로 삼은 게, 더 나아가서는 일종의 '빈곤 포르노'로 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모름지기 한 국가의 지도자라면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힘써야겠지요. 좋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는 '국익'이라는 근거가 따라붙어야 할 텐데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 시절 캄보디아 지원을 위해 예산이 편성됐던 과정을 살펴보면, 아리송한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50억 원 불용 → 1,300억 원 신규 편성‥돌연 26배 증가한 예산
사실 우리가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 예산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난 2024년 기준으로 50억 원 남짓이었고, 그나마도 전혀 쓰이지 않아 아예 불용 처리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불용 처리가 결정되고 한 달 후,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 지원 예산으로 돌연 1,300억 원이 편성됐습니다. 전년도보다 무려 26배가 증가했고, 전례없는 규모였습니다.

캄보디아 EDCF, 사업제안서 검토 없었다
우리나라의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초, 1억 달러 규모의 사업 참여의향서를 수출입은행에 제출합니다. 여기서 잠깐.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이라면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는 게 상식적인 절차 아닐까요? 그런데 담당 기관이었던 수출입은행은 이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어떻게 검토 없는 예산 편성이 정상 절차가 될 수 있지?'라는 의문은 잠시 제쳐놓겠습니다. 이들이 근거로 삼는 은행들의 참여의향서조차 대단히 구체적이지는 않았는데요. MBC는 각 시중은행들이 수출입은행에 제출한 참여의향서를 입수해서 살펴봤습니다. 이 문서로 1억 달러, 당시 환율로 1천3백억 원 상당의 사업을 신청한 건데, 개괄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도 3페이지를 채 넘기지 않는 분량이었습니다.


현재 김건희 국정농단 특검은 이러한 캄보디아 원조 예산이, 통일교가 윤 전 대통령 부부에게 캄보디아 지원을 청탁한 결과가 아니었는지 등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 본부장이 대선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났다고 공소장에 적었고, 이후 한국-캄보디아 사업 관련 ODA 예산도 증액이 지속적으로 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특검은 최근에도 기획재정부 개발전략과를 압수수색하는 등, 연관성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정부 공식 문서조차 없다?‥"위법 소지 커"
그런데 이 원조 사업에서 통일교의 청탁과 관련된 근거를 찾는 건 녹록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수출입은행이 '남아있는 게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캄보디아 ODA 사업과 관련해 외교부·기재부 등 타 부처와 협의한 문서와 회의록을 달라'는 국회의 요구에 수은 측은 "없다"는 답을 밝혀왔습니다.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승필 교수는 "기획재정부 고시인 대외경제협력기금 운용 관리 규정은 사업 타당성 조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면서 "수출입은행이 작성한 심사 보고서를 기초로 하여 기획재정부에서 지원을 결정하는데 관련 회의록 등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문서가 없다면 사업 타당성 심사 기준과 그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한 자료도 없다는 것인데 대외경제협력기금법, 공공기록물 관리법, 국가재정법 위반의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관들 간의 공식 논의는 분명 있었습니다. 수출입은행과 기획재정부는 이 사업에 참여할 시중은행과 함께 최소 2번 이상 만났습니다. 예산 편성 몇 달 전부터는 심의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서로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공식 문서로 등록된 건 없다고 답변을 해온 겁니다.

수출입은행은 그러면서 2025년 2월 자료가 있다며,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안'을 보내왔습니다. 황당했습니다. 그 문서가 만들어지기 1년여 전부터 캄보디아 EDCF 사업이 이미 시중 은행들에 공지됐고, 1천3백억 원이라는 예산이 편성됐습니다. 정작 남아있어야 할 시점의 기록들은 존재하지 않는데, 모든 게 결정된 이후 작성된 문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캄보디아만 엮이면 '좋아, 빠르게 가'?‥중단됐던 사업, 2배 확대 시행
문제는 이런 졸속 사업 진행이 한 번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MBC는 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고 추진된 또 다른 캄보디아 EDCF 사례를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지난 2023년, 윤석열 정부는 캄보디아 메콩강 하류 도시 '타크마우'의 하수처리시설 사업에 거액을 지원하기로 합니다. 지원금은 총 1억 2천4백만 달러, 현재 환율로 1천7백억 원에 달합니다. 그런데 이 사업은 이미 박근혜 정부 당시인 지난 2016년 추진된 적이 있었습니다. 수출입은행은 당시 6천4백만 달러의 융자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캄보디아 측이 설계 변경을 요구하며 비용이 늘어났고, 2년 만에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누구를 위한 ODA인가‥국익은 어디에?
지난해 2월, 최상목 당시 부총리는 비공개회의에서 "ODA를 국익에 부합되게 전략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힙니다. "ODA 사업 승인까지 소요 기간을 1년 이내로 대폭 단축하는 패스트트랙 방식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면서, 수출입은행에도 지시를 했는데요. 수출입은행이 "기존의 사업 심사·승인 위주 업무방식에서 벗어나, EDCF 수행 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획기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합니다. 이에 수출입은행은 "타당성 조사 기간을 단축하고, 신속 집행 가능한 차관을 확대하겠다"고 답합니다. 이 회의 이후 캄보디아 사업에서는 타당성 조사를 단축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과감히 생략했으니,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봐도 될까요?
수출입은행에서 아프리카 쪽 EDCF를 담당했다는 한 전직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분명 타당성 조사를 다 마치고 예산이 정해지는 게 원칙이었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타당성 조사를 안 하고 예산을 미리 받아놓으려고 했다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고, 재직 당시에도 그런 사업은 전혀 보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캄보디아 EDCF 사업에 참여 의향서를 냈던 한 시중은행은 이후 이를 철회합니다. '실익이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수출입은행 EDCF 금리가 너무 높다는 겁니다. 캄보디아에 있는 현지 법인에서 훨씬 싼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 굳이 고금리로 사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읽혔습니다. 그런데 왜 시중은행 중 4곳이나 캄보디아·인도네시아 원조 사업에 제안서를 제출한 걸까요?
이 취재를 시작할 무렵, 수출입은행 실무 관계자들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민간협력 전대차관이라는 금융 원조가 한국에서는 시범사업 한 번밖에 없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널리 사용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OECD에서도 민간 지원을 강화하라고 했고, 국제 사회의 추세라더군요. 선뜻 이해가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정식 절차를 생략하고 수백억, 수천억 원 규모의 사업을 졸속으로 집행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을 '국익'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도대체 무얼 위해, 누굴 위해 진행하는 사업이었을까요.
(취재 : 김건휘 gunning@mbc.co.kr / 자료제공 :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정태호 의원실·김영환 의원실·차규근 의원실, 정무위원회 박찬대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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